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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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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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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1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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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DUMMY

리하가 자기 방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동안, 거실에 남은 진흥과 피니엘, 나래는 그 다음 할 일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장 신통한 수단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걱정되는 건 사념체 폭주를 막는다 치더라도, 언제 몰려올지 알 수 없는 프레네티코의 무리예요.”


사념체도 사념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피니엘이 제일 먼저 어두운 목소리가 되었다.


“프레네티코라는 게 뭐, 무슨 괴물이라 그랬지?”


프레네티코에 대해 처음 들어본 진흥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지 그냥저냥 그런 반응이었다.


“뉴스는 온통 오늘 새벽부터 있었던 사건에 대한 얘기뿐이고, 무슨 괴물 같은 게 나타났다는 기사는 눈 씻고 찾아도 나오지 않는 걸.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잠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던 나래는 진흥과 비슷한 무덤덤한 어투로 피니엘의 걱정을 가로막았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아. 내 괜한 걱정만으로 끝날 테니까.”


걱정의 한숨을 쉬는 피니엘을 한 번 힐끗했다가, 진흥은 곧 나래를 향해 말했다.


“너 아까 나한테 탐정이라고 했었지?”

“네, 합법적 활동 아니라고 야단까지 맞았죠.”

“피해자들 중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된 사람들 비중이 높다고 했는데, 수사 협조 차원에서 좀 알려줄 수 있겠어?”

“그럴게요. 합법적인 일은 아닐 테지만 협조를 바라신다니 알려드릴 수밖에 없네요.”

“아, 거 기집애가 뒤끝은······.”


진흥의 살짝 짜증 섞인 핀잔에 나래는 지금까지 조사한 피해자 현황에 대한 것을 진흥에게 간략히 알려주었다. 다 듣고 난 진흥이 얼굴빛을 굳히며 말했다.


“그 정도면 데이비드 오언 씨한테 가서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 될 것 같은데.”

“아까 병원에서 제가 그러려고 했는데, 피니엘이 하지 말라고 해서 잠깐 미뤄뒀어요.”

“왜? 이런 건 바로바로 물어봐야지.”


그러면서 진흥이 자신을 돌아보자 피니엘은 침착하게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데이비드 오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사념체가 폭주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손을 쓴 게 없어요. 능력이 없어서라고는 보기 힘들죠. 할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쳐갔고, 자회사의 상품에 사념체를 심어서 사람들에게 기생시킬 생각을 했다고, 자기가 범인이라면 그렇게 할 거라는 말까지 했거든요. 농담조이기는 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 한 번쯤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봐요.”

“그걸 가지고 범인이라 하기에는 좀······. 기업에서 사고가 좀 일어났다고 그 회장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격이잖아.”

“물적인 증거는 없죠. 하지만 지금 정황이 데이비드 오언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실제로 오언 파이낸셜과 그 협력업체, 하청업체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고, 그 사람은······.”


피니엘은 잠시 거기서 말을 끊었다. 데이비드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듯 말하기는 했으나, 진흥이 지적한 것처럼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정황이 몇 가지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분명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애매한데, 왜 이렇게 넘겨짚어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사실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이쪽 세계에 불시착하고 나서 이제 겨우 하루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생각도 못한 사건에 휘말리고, 그 사건 너머에서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괴물들의 무리까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침착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을 피니엘은 지금 막 자각할 수 있었다.

한마디를 듣고 바로 대답이 없어진 피니엘을 좀 격려도 해줄 겸, 나래가 대신 진흥에게 말했다.


“알아봐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요?”

“확실한 증거로는 부족하다니까.”

“아까 제가 데이비드에게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된 희생자가 많은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요. 형사님께서 같은 걸 알아봤다고 물어보면, 경찰이 하는 말이니까 데이비드가 그냥 무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나래나 피니엘의 발언 모두 수사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했기에 진흥은 잠깐 망설임이 일었다. 괜한 소리에 넘어가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봐서였다.

하지만 그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밖에서는 질병도 아니고 단순 사고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집단자살이 수시로 일어나는 판국 아닌가.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알아볼만한 게 있다면 그게 뭐든 찾아가서 뒤적거려야할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데이비드 오언에게 연락을 한 번 해보지.”


바로 휴대폰을 꺼낸 진흥은 아까 병원에서 받아둔 데이비드의 명함에 적인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전화 안 받는데?”

“아까 제가 전화했을 때도 그랬어요.”


나래도 아까 병원에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이 갈 만한 상황이 되는데, 나래도 진흥도 피니엘도 그 다음을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바깥에서 초인종 누르는 소리와 함께, 대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대 왔나 보다. 시신 수습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아까 연락해둔 119구조대가 뒤늦게 도착한 걸로 여긴 진흥이 집 밖으로 나갔다. 나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피니엘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진흥을 제지하려 했다.

초인종과 함께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노크가 아니라 육중한 무언가가 몸으로 들이받는 것에 가까웠던 것이다.


“형사님, 문 열지 마세요!”


그러나 피니엘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진흥은 이미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고 그 너머의 누군가를 안으로 들여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일어난 일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쿠웨에에에엑!”

“뭐야, 이건?!”


형태는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괴성을 내지르는 무언가의 팔이 문틈에서 뻗어 나와 진흥을 붙잡았다. 진흥은 그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멱살을 잡고 끌어당기는 그것은 병원에서 제압한 간호사보다 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팔이기는 한데, 힘은 도저히 사람의 것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쿠아아아악!”


진흥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그것은 대문 틈새를 비집고 삐져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냥 진흥을 놓고 문을 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질 않는 것으로 보아 이성이 없거나 미쳐버렸거나 둘 중 하나인 듯 했다.


“이런, 썅!”


거칠게 욕을 하면서 진흥은 현관문으로 그것의 팔을 여러 번 찍어 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지 절대 진흥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를 악문 진흥은 마음 독하게 먹고, 몸으로 문을 막은 다음 그것의 손목을 붙잡아 비틀어버렸다. 단순 제압용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부러뜨려 버린 것이었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바깥의 괴성이 더 크게 울렸다. 이때다 싶어 진흥은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뼈가 부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정체불명의 그것을 발로 걷어차 넘어뜨린 다음 재빨리 대문을 잠그려 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이, 병원의 간호사처럼 그 사념체인가 뭔가 하는 것이 쓰여서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었다면 진흥은 정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아아악!”


문 밖에 있는 것이 뭔지 드러난 순간, 나래에게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니엘 또한 충격을 받고 새하얘진 얼굴이 되어 입을 가렸고,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어온 베테랑 형사인 진흥조차 경악하고 말았다.


“크궤에에에에!”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그것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외모는 평범한 중년의 사내이고 체격은 조금 마른 편이다. 그리고 그 몰골이 너무도 끔찍했다.

이 사람도 아마 사념체의 폭주에 의해 자살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몸 전체가 피투성이였다. 배가 일자로 갈라져 있고, 그 틈새에서 삐져나온 내장들이 덜렁거리는 게 몹시도 끔찍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한 건 남자의 몸 이곳저곳에서 신체를 꿰뚫고 나온 뾰족한 가시 같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이었다. 어깨 위, 등, 옆구리, 입, 머리 등등, 불규칙적으로 형성된 촉수들의 모습은 이 사람이 이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걸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뭐야, 뭐야! 저거 뭐야!”


패닉에 빠진 나래가 그 괴물을 보고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보다 좀 덜하긴 하지만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인 피니엘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세상에 어떻게, 어떻게 벌써······.”


더듬거리는 피니엘 또한 나래 못지않게 넋이 나가있었다. 내내 신경 쓰고 걱정하던 사태가 기어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그녀는 지금 무슨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눈앞이 캄캄해지고 있었다.


“위험하니까 물러나!”


그나마 행동이 되는 사람은 진흥 하나뿐이었다. 그 또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고 있으나, 이 괴물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놈이 문을 막고 있으니, 도망쳐봐야 어차피 집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 번 맞서서 유인하려 하는 진흥에게, 그 자리의 인물들 중 유일하게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는 피니엘이 다급하게 말렸다.


“안 돼요, 형사님! 맞서다간 죽어요!”


피니엘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진흥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괴물이 문에서 비켜나도록 해야 했다. 이 집의 담벼락은 사람이 기어 올라가기엔 너무 높은 편이니 말이다.


“크그르르르······!”


괴물은 으르렁거리며 뜰 안의 세 사람을 노려보는 듯싶다가, 곧 바로 앞의 진흥을 향해 맹수와도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죽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르고 민첩한 동작이었다.


“안 돼!”


피니엘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겁에 질리고 당황해있는 상태라 마법을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흥이 감염 변이체에게 당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피니엘의 공포와는 별개로, 진흥은 침착하기 위해 애쓰면서 괴물을 상대했다. 좀비라는 게 실제로 나타났다는 것만 해도 기절할 일인데, 무슨 외계 괴물마냥 징그러운 촉수들까지 여럿 달려있으니 그 끔찍한 모습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달려드는 괴물을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하고, 놈의 옆구리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균형을 잃은 괴물이 잠시 비틀거리는 동안 재빨리 물러난 진흥은 주위에 뭔가 무기로 쓸 만한 게 없는지 살폈다. 딱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촉수들이 흔들거리고 있는데, 접근해서 뭔가 해보려 한다면 그게 곧 저승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아까의 일격도 워낙 갑자기 벌어진 것이기에 반은 천운으로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카아아악!”


이미 이성도 지성도 남아있지 않은 괴물은 마치 본능에 의해 사냥하는 맹수처럼 다시 진흥을 노리고 들어왔다. 뒤로 물러나면서 진흥은 집 정원에 놓인 화분들을 괴물에게 집어 던졌다. 흙과 돌이 들어가 묵직한 화분 투척을 맞고도 괴물을 끄떡없이 밀고 들어왔다. 큰 상처가 나있는 사람의 시체답지 않게 강인한 돌진이었다.


“뭐 이딴······!”


투우와도 같은 맹렬한 공격을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한 진흥이 급한 대로 다른 화분을 들어 괴물의 머리를 내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놈은 별 타격이 없었다. 조금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흉포한 기세는 그대로였다.

이를 악문 진흥은 있는 힘을 다해 괴물의 두 발목을 걷어찼다. 강동서 전체의 형사들 중에서도 특히 싸움이라면 이골이 나 있는 그의 기술과 힘이 이번에는 먹혀 들어갔는지, 괴물은 균형을 무너뜨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밖으로 나가, 빨리!”


쓰러진 괴물을 향해 화분 하나를 더 집어던진 진흥이 나래와 피니엘을 향해 외쳤다.

어쩔 줄 모르고 서있던 나래와, 진흥의 고함에 다소 정신을 차린 피니엘 또한 다급하게 대답했다.


“도망쳐야 해요! 형사님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구요!”

“그딴 거 신경 쓸 틈 있으면 빨리 피하기나······ 이런 개 썅!”


진흥이 다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괴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선 데다, 아직 집안에 리하가 남아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괴물이 날뛰는 판에 그 꼬마 하나만 놔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일어선 괴물이 다시 진흥에게 달려들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겨우 대응을 생각해낸 피니엘이, 나래를 데리고 문까지 도망치다가 그 광경을 보고 그제야 간신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감염 변이체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있는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았다.


“야, 뭐하냐! 빨리 안 도망가고!”


나래와 피니엘을 피신시키고 리하까지 구하기 위해 괴물과 맞서는 쪽을 선택한 진흥이 다급함과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로서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 번 붙어보고 나니, 이 괴물은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도망갈 시간이라도 벌어보기 위해 앞에서 얼쩡거리며 시선을 끄는 중인데, 피니엘이라는 저 꼬마는 가라고 했더니 가지도 않고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니들이 가야 나도 유리하 데리고 어떻게 피할 수 있을 것 아냐! 빨리 가!”


답답한 마음에 피니엘과 나래를 한 번 돌아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진흥의 앞까지 파고든 괴물이 두 팔과 촉수를 일제히 날려온 것이다. 반사신경만으로 어떻게 피하기는 했으나 진흥은 촉수들에 의해 팔과 가슴팍 몇 군데를 긁히고 말았다. 시큰한 통증이 몰려왔지만 주저앉을 정도까지는 아니라 뒤로 몇 발짝 물러나자, 괴물 또한 그를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엎드려요!”


뒤에서 피니엘의 외침이 들려왔다. 왜 그러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진흥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인 채 웅크렸고, 그때 피니엘의 쥐어짜는 듯한 고함소리가 한 번 더 울려왔다.


“파이어볼Fireball!”


엎드린 등 위로 뭔가 화끈한 것이 스쳐지나갔다. 그 직후 앞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일어나자 진흥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직감에 몸을 굴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건 또 뭐야?”


몸을 일으켜보니 그 괴물은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듣기에도 끔찍한 비명소리를 마구 내지르는 괴물을 잠깐 어처구니없어 하며 바라보다가, 그 괴물이 불덩이가 되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또 달려들려 하자 진흥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매직미사일!”


다시 한 번 피니엘의 외침이 있었다. 그녀의 몸 주위로 타오르는 듯한 빛의 화살 여섯 개가 생성되는 걸 본 진흥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재빨리 뒷걸음질 쳐 괴물에게서 멀어졌고, 덕분에 사격 선상을 확보한 피니엘이 매직미사일을 일제히 쏘아 날렸다.

퍼퍼퍼퍼퍽! 고깃덩이를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불에 타올라 신체 내구성이 떨어진 괴물의 육체가 빛의 화살에 의해 완전히 뜯겨지고 분해되어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조각이 나고서도 놈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오기 시작했고, 그 광경에 질린 피니엘이 거의 악에 받쳐 다음 주문을 외우려 할 때 집안에서 리하가 뛰쳐나왔다.


다른 세 사람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리하는 괴물의 조각난 몸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이미 변신한 리하가 신체강화 주문까지 더해 걷어찬 것이라, 괴물의 몸은 공처럼 날아가 담벼락에 부딪혀 완전히 고깃덩어리처럼 뭉개져 버렸고 움직임도 그제서야 멎었다.


“리하야······.”


떨리는 목소리의 피니엘과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진 나래를 돌아보면서, 리하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우울해하는 기색이 남아있지만 리하의 표정은 굳건한 편이었다. 혼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마음을 굳게 먹기로 다짐한 듯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 좀비는 또 뭐야?”


괴물의 촉수에 어깨와 가슴을 긁힌 진흥이 상처를 손으로 대충 누르며 말했다. 리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피니엘이 부상당한 진흥의 모습에 소스라칠 듯이 놀랐다.


“감염 변이체에게 당하셨어요?!”

“저놈이 덤비는 거 막다가 좀 긁혔어.”

“아아,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진흥의 대답을 듣자 피니엘은 그야말로 어찌할 줄 모르고 발을 동동거렸다.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진흥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피만 살짝 나는 정도야. 죽을 만한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그게 아니에요. 감염 변이체의 공격에 상처를 입으면 나중에······.”

“감염 변이체? 저 좀비가 그렇게 불리냐?”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지금! 어떡하지, 어떡하지. 백신이 있어야 하는데 나한텐 지금 아무 것도······!”


피니엘은 패닉에 빠져 허둥거리기 시작했고, 사태가 우선 끝났다는 사실에 겨우 말문이 트인 나래가 더듬거리며 진흥에게 말했다.


“경찰서, 경찰서로 가요. 이런 괴물이 밖에 하나만 있을 것 같지 않은데, 형사님 빨리 서에서 총이라도 가져오셔야 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일단 나가. 밖에 차 세워뒀으니까 빨리 타고 가봐야겠어.”


더 말할 시간도 아까운 일행은 진흥을 따라 모두 집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바로 옆 담벼락에 주차해놓은 진흥의 차에 네 사람이 모두 올라탔고, 진흥은 빠르게 시동을 건 다음 지체 없이 경찰서 방향으로 속도를 높였다.


“저 좀비 정체가 뭐라고?”


진흥이 운전하면서 묻는 말에, 피니엘은 창백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감염 변이체라는 거예요.”

“뭐하는 괴물이야, 그건?”

“프레네티코가 전투, 또는 사냥 현장에서 위협을 느꼈을 경우 시체를 감염시켜 만들어내는 병력이에요. 자체적으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고, 촉수를 통해 적을 공격하죠. 이 촉수에는 감염 인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공격당하면 감염 인자가 체내에 침투해 대상을 변화시킵니다.”


감염 인자라는 말에 진흥이 손을 움찔했다. 나래 역시 흠칫 놀라며, 피니엘이 아닌 진흥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는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감염된 시체가 변이체 A타입, 그 A타입의 공격을 받아 변형되는 변이체는 B타입이에요. 시체가 변화하는 A타입과 달리, B타입은······.”


과거의 경험 중 감염 변이체와 대적했던 기억이 떠오른 피니엘은 차마 그 다음을 말할 수가 없었다. 진흥이 혀를 차면서 그런 피니엘을 다그쳤다.


“뭐, 어떻게 되는데?”


피니엘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그 말에 대답했다.


“······산 채로 변해버려요.”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진흥에게서 한숨이 흘러나오자, 피니엘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프레네티코가······. 에너지 반응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는데······.”

“야, 야! 떠드는 거 나중에! 그놈들 또 나타났다!”


피니엘의 말을 가로막듯 진흥이 고함을 질렀다. 놀라며 고개를 들어보니, 골목 앞에서부터 기괴하게 변한 시체들의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진흥의 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흠... 어째 좀비 호러가 된 것 같습니다. 사념체에, 좀비에, 그리고 늑대인간과 그것들을 각각 조작하는 일족의 범인, 공공의 적이 될 것 같은 프레네티코...
...일행 모두가 고단하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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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아픔을 넘어서 16.12.14 119 0 26쪽
52 은하를 가르는 검 16.12.07 167 0 26쪽
51 은하를 가르는 검 16.11.30 122 0 16쪽
50 은하를 가르는 검 16.11.23 121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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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9 140 0 19쪽
47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3 148 0 16쪽
46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2 217 0 16쪽
45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0.27 229 0 16쪽
44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6 142 0 17쪽
43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0 216 0 19쪽
42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9 125 0 23쪽
»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3 141 0 21쪽
40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2 195 0 12쪽
39 악몽을 꾸다 16.09.29 136 0 14쪽
38 악몽을 꾸다 16.09.28 208 0 16쪽
37 악몽을 꾸다 16.09.22 160 0 19쪽
36 악몽을 꾸다 16.09.21 157 0 17쪽
35 악몽을 꾸다 16.09.15 270 0 20쪽
34 악몽을 꾸다 16.09.14 267 0 18쪽
33 악몽을 꾸다 16.09.08 152 0 14쪽
32 악몽을 꾸다 16.09.07 218 0 20쪽
31 어둠 속에서 16.09.01 214 0 18쪽
30 어둠 속에서 16.08.31 13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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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어둠 속에서 16.08.18 20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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