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22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9.22 02:45
조회
159
추천
0
글자
19쪽

악몽을 꾸다

DUMMY

집에 돌아올 때까지 리하는 넋이 나간 상태 그대로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입도 한 번 열지 않았다. 아빠가 간간이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왔지만 리하의 귀에는 그마저도 들려오지 않았다.

도저히 실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엄마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이럴 수는 없다. 엄마는 결코 사념체에게 당할 사람이 아니다. 리하 자신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까지 다다른 마법을 지녔는데, 그런 엄마가 어떻게······.


엄마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사념체의 폭주를 막지 못하고 그 숙주들에게 공격 받아 살해당한 것 같다는 정황만 데이비드에게 전해들었을 뿐이다.

병원 영안실에서 어머니의 눈을 감은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리하는 꿈을 꾸듯 멍한 기분이었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조차 인식이 되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안개처럼 느껴졌다. 휘저어도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 벗어날 수 없고, 계속 침침하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


“내려, 리하야. 집에 다 왔어.”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느낄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아빠가 어깨를 흔들어준 덕에 겨우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병원에서 집까지 돌아와 있었다. 차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리하는 겨우 1, 2분 지난 것처럼 여겨졌다.


“방에 들어가서 씻고, 갈아입을 옷이랑 담요 같은 거 챙겨서 기다리고 있을래?”


아빠가 하는 말에는 여전히 대답 않은 채 리하는 넋 나간 얼굴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되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가 않았다. 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머뭇거리는 리하를 뒤에서 은후가 가만히 달랬다.


“아빠도 금방 준비해서 나올 거야. 리하도 얼른.”


현관문을 천천히 열고 안에 들어갔다. 흐린 날씨에 불이 켜지지 않아 집안은 무척 어두웠다. 엄마의 흔적이라도 찾는 것처럼, 현관 앞에 멈추어 선 딸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은후가 또 한 번 달래는 소리를 했다.


“엄마가 기다릴 거야. 얼른 해야지.”


아빠의 자상한 말투에 리하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가, 이제야 이슬처럼 맺히기 시작한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아빠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


“응······.”


딸의 대답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듯, 은후는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곧 방 안의 샤워실에서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씻는 것도 씻는 것이지만 울음소리를 딸이 듣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겠지.

리하는 안방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정확히는 그 뒤에 숨겨진 아빠의 오열을 듣지 못한 척하며 조용히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안에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리하는 방문에 기댄 채 주르르 미끄러져 앉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오열에 리하는 눈물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가 이제 없다는 사실이 리하의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자상하던 엄마는 여기에 없다. 그 상냥한 미소도 더 이상 없다. 항상 리하의 편이 되어주던 믿음직한 엄마의 모습은 이제 영원히 찾아볼 수 없다.

좀 더 꿈을 많이 가지고, 사람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소중함의 의미를 잊지 말고 지켜나가라던 어머니의 당부도 이제는 지킬 수 없게 됐다. 아직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데, 왜······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엄마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현실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슬픔에 리하는 소리죽여 한참 동안 울었다. 울면 울수록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것을 흘려보낼 기력이 먼저 다해버렸다.

앉아있을 기운조차 없어 어느새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진 리하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했다. 병원에 가야해. 가서 엄마를 다시 봐야 해. 엄마를 다시 만나러······.

사념체와 그 폭주에 대한 것은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럴 생각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리하였다.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그런 건 이제 사소한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다른 일이 뭐가 있을까.


“리하야, 준비 다 됐니?”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밖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닦아낸 리하가 잠깐 새에 쉬어버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아직.”

“그럼 아빠가 잠시 방에 들어가도 될까?”


엄마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리하는 방문을 열어주었다. 말없이 문을 열어준 딸을 바라보며 은후는 측은한 듯 말했다.


“울었니?”

“응······.”

“그래, 마음 아프지. 당연히 그랬겠지······.”

“아빠, 우리 이제 어떡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괜찮을 거야.”


은후는 안에 들어와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는 리하의 어깨와 머리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아빠의 침착한 모습에 다시 눈물이 쏟아지는 리하였으나, 그 와중에 그녀는 뭔가 어색한 것을 발견했다.

분명 준비를 마치는 대로 병원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던 아빠가, 어째서인지 목욕가운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



* * *



“하루 종일 밥 굶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도시락을 좀 사왔는데.”


벌써 간 줄 알았던 진흥이 다시 돌아오자 나래는 의아해했지만 그가 사온 도시락은 일단 감사히 받아들었다.


“금세 다시 돌아오셨네요?”

“일하러 가려다가 점심때가 훌쩍 넘어있길래. 빵이라도 좀 사가려고 들른 거야.”


진흥은 비닐봉투 안에 담아둔 생수 한 병도 마저 꺼내주며 말했다.


“원래는 리하한테 주려던 건데 없으니까 네가 대신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위층 휴게실에 전자레인지 있더라고. 거기서 데우면 돼.”


추가 용건은 도시락 건네주는 게 다였기에 진흥은 그쯤에서 적당히 몸을 돌렸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수사진행에 따라 볼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나래는 제 발로 다시 찾아온 진흥을 놓치지 않았다. 그를 통해 현재 경찰 대응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 예정인지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새벽부터 고생들이 많으시겠어요. 이런 사건이 자꾸 벌어져서······.”

“덕분에 죽도록 바쁘지.”

“이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건지 알아보셨나요?”

“글쎄다, 전에 없던 사태라 뭐 하나 잡히는 게 없어. 무슨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데 진짜 병이라 보기엔 또 방식이 애매하고. 단순한 살인사건이라 보기엔 너무 광범위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뉴스에서는 한 사람이 자살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여럿 살해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런 건지를 알 수가 없다는 소리야. 나 원, 같은 신고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이건 뭐 원인은 고사하고 정확히 무슨 상황인 건지도 정리를 못하는 판국이니.”


가볍게 한숨을 내쉰 진흥에게 나래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까 말씀하시는 걸 조금 들었는데,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된 피해자들이 많은 편이었다고······.”

“그랬는데, 왜?”


나래가 수사에 대한 것을 캐묻는 것 같아 진흥의 표정이 다소 차가워졌다. 그런 거 함부로 물어보는 거 아니라고, 무언의 주의를 주는 그였지만 나래는 오히려 눈치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 그녀로서는 진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떠보려 하는 중이었으니까.


“실은 제가 조사한 자료에서도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된 사람들 비중이 높은 편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흥은 조금씩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네가 조사를 했다고? 뭐를?”

“이번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들 관계 조사요. 반 이상이 오언 파이낸셜 계열사 또는 협력, 하청업체, 아니면 그곳 상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해서 접점이 있는 걸 확인했죠.”

“너 뭔데 그런 걸 캐보고 다니냐? 그런 거 불법 신원조사로 걸릴 수도 있다는 거 알아, 몰라?”


진흥의 어투가 꾸짖는 투로 바뀌었고, 나래는 그럼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을 소개했다.


“전 탐정이거든요. 이번 일에 대한 의뢰를 받아서 조사를······.”


진흥은 반도 듣지 않고 나래에게 윽박지르듯 말했다.


“탐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야, 대한민국에서 탐정이 합법이야? 쬐끄만 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와가지고는, 확······!”


정말 기가 막혀온 진흥은 나래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철부지 여고딩 장난질에 더 이상 어울려줄 시간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할 거 전했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진흥은 병원을 벗어나기로 했다.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밖에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혼자 돌아다니지 마. 친구 올 때까지 빈소라도 좀 지켜주고 있고.”

“빈소는 당연히 제가 지키죠. 그런데 만약 오언 파이낸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형사님이 가서 알아보실 수 있나요?”

“거긴 대기업이라 형사 나부랭이인 내가 어쩔 수 있는 데가 아냐. 하게 되더라도 검찰이 할 테고, 난 끽해야 관련사건 정황조사로 거기 책임자 몇 명 만나 얘기하는 게 다지.”


그렇게 대답하고선 진흥은 나래에게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래 또한 진흥에게서는 생각과 달리 더 알아볼 부분이 없어서 적당히 대화를 끊으려 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수사 진행상황 민간인들한테 공개 안 하도록 돼있다. 내가 경찰이라고 뭔가 이상한 기대 같은 거 하지 마.”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


나래가 문득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진흥의 표정 또한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건물 밖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은 나래와 진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에 나가 무슨 일이 있는지를 살폈다.

동물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있던 피니엘은 나래와 진흥의 대화에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불쾌하게 증폭하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자 그녀는 바로 메시지 스펠을 사용해 나래에게 자신의 의사를 직접 전달했다.


[ 응급실에서 사념체가 폭주하고 있어. ]


피니엘의 메시지를 전달 받은 나래는 아찔한 기분이었다. 여긴 병원이라 안 그래도 위급한 환자들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사념체가 폭주하고 있다니.


“형사님, 응급실로 가봐요.”


나래가 말을 꺼내자마자 진흥은 그 자리에서 응급실 방향으로 달려갔다. 뭐가 벌어지고 있는지는 그 또한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그 일이 여기서도 일어난 것 같다고 말이다.

비명소리 같은 것이 응급실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목소리였다. 빗줄기를 뚫고 거기라 상당히 떨어진 장례식장 입구에까지 들려올 정도로 비명이 들려올만한 일에는 뭐가 있을까.

응급실에 도착한 진흥은 그 비명이 무엇 때문에 생겨난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보자마자 진흥은 얼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강력계 형사로 10년을 일해 오며 별의별 것을 다 봤지만 이것만큼은 그조차도 접해본 적이 없는 참상이었다.


아침부터 몰려온 환자들로 인산인해였던 응급실 내부가 이제 피바다로 변해있었다. 바닥에 흥건히 고인 핏물과 벽, 천장에까지 튀어오른 핏자국들, 그 웅덩이에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의 시체가 여럿 잠겨있었다. 피투성이 시체들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간호사 하나가 양손에 수술용 칼을 들고 응급실의 환자 한 사람을 난도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간호사는 젊은 여성이었다. 제법 미모도 있는 편이다. 허나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메스를 휘둘러 대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지러질 듯 웃어대는 모습은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응급실의 참상도 참상이지만 그 소름끼치는 광기에 질려버린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말렸던 사람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들 중 누가 그녀를 말리다가 변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어 문제일 뿐이지.


“그만!”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진흥은 바로 간호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에게 난도질당하고 있던 환자의 상태는 더 볼 것도 없어보였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간호사는 진흥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바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를 환히 드러내고 웃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 끔찍했다. 동공이 크게 벌어져있고, 마치 무언가를 이루고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그대로 진흥을 바라보면서 간호사는 히히히힛, 하는 소름끼치는 웃음과 함께 진흥에게로 마주 달려왔다.


눈에 뵈는 게 없는 건가, 혀를 한 번 차고 진흥은 반쯤 미쳐버린 간호사의 제압에 나섰다.

헌데 만만치가 않았다. 간호사가 먼저 두 손에 들고 있는 메스를 휘둘러 오자마자 진흥은 바로 식은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사람은 겉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어떻게 된 게 체격도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진흥이 상대해왔던 웬만한 건달이나 범죄자들보다 칼을 더 예리하고 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힘도 예사가 아니었다. 메스를 피하고 팔을 붙잡았더니, 이 역시 무서운 힘으로 튕겨내고는 도리어 진흥의 목을 향해 메스 두 자루를 휘두른 것이다.

피하기는 했지만 진흥은 한 번 부딪혀보고 나서야 응급실 바닥에 왜 이리도 시체들이 즐비하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두강 인력의 조도열 사장이 했던 말도 이쯤에서 생각나고 있었다. 비리비리한 사무실 직원이 건장한 건달 두 명을 힘 한 번 들이지 않고 칼로 찔러 살해했다던, 그 경위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건 뭐 젊은 아가씨가 웬만한 건달들 못지않은 힘으로 칼을 휘두르며 덤벼오는데 사람이 아무리 여럿이 있다 한들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을까.

간호사는 계속해 미친 듯이 웃으며 진흥을 노려왔다. 이 아가씨가 뭣 때문에 이렇게 미쳐버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진흥은 당황하지 않았다. 분명 깜짝 놀랄 만한 힘이긴 하지만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만하고 칼 내려놔라, 다치기 전에.”


말을 한 번 걸어봤지만 간호사는 듣지도 않고 키득거렸다. 이젠 사람이 아니라 무슨 괴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 괴물이 다시 덤벼들었다. 그러나 진흥은 이미 대책을 다 세워놓은 상황이었다. 힘과 속도가 위협적이긴 하지만 무슨 초월적인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흉악범을 상대로 수도 없이 싸우고 체포해왔던 진흥마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달려들던 간호사는 진흥이 팔 하나를 잡은 뒤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 자기가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몸 추스를 새도 주지 않고 진흥이 무릎으로 등을 찍어 누르고, 반대쪽 손목을 비틀어 꺾자 간호사는 비명과 함께 반대쪽의 메스마저 떨어뜨렸다. 완전히 비무장 상태가 된 그녀를 붙잡아 두기 위해 진흥이 일단 수갑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엎드려있는 간호사가 고개를 돌려 진흥을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신경도 쓰지 않고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혀를 앞으로 길게 빼물었다.


“이봐, 잠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진흥이 제지해 보았으나,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간호사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혀를 내민 채로 입을 닫았다. 진흥과 옷과 얼굴에도 피가 크게 튀면서, 핏물 그득한 응급실 바닥 위로 간호사의 입에서 끊어져 나온 무언가가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며 미끄러져 갔다.

그 직후 간호사는 움직임을 멎었다. 흰자위가 까뒤집힌 그 얼굴을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던 진흥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진흥보다 늦게 달려온 나래와 피니엘은 응급실 내부의 처참한 광경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가렸다. 나래가 먼저 토할 듯이 몸을 굽혔고, 피니엘은 굳은 듯 서있다가 문득 뭔가를 깨닫고는 그런 나래를 재촉했다.


“리하네 집에 가봐야 해.”


하지만 나래는 피니엘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피투성이 시체들 여럿을 보자 속이 뒤집힐 듯 울렁거려온 것이다.


“나래의 의심이 맞는 것 같아. 데이비드가 범인이야. 빨리 리하한테 가야 해.”

“데이비드가 범인이라는 단서를 어디서 발견한 거야?”


그 잠깐 동안 진이 다 빠진 듯한 나래의 대답에, 피니엘은 다소 조급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서 폭주한 사념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잖아. 그 사람이 정말 사념체 정화를 하려고 나간 거라면 가장 가까운 여기부터 정리를 하고 나갔어야지.”

“정황이 분명 그렇기는 한데······.”

“거기다 리하에게 집에 먼저 갔다 오라고 한 사람이 데이비드야. 사념체 정화도 안 할 거면서, 그렇다고 리하에게 시킬 것도 아니었으면서, 왜 굳이 리하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곳으로 보내려 한 걸까? 무슨 목적으로?”

“장례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필요한 절차와 준비는 원래 장례식장에서 다 마련해주잖아. 담요나 갈아입을 옷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왜 굳이 집에 다녀올 필요가 있는 거야? 리하뿐 아니라 그 아버지까지?”


나래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자 피니엘은 그녀를 한 번 더 다그쳤다.


“빨리 가야해.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나래가 겨우 정신을 붙잡고 막 대답하려 할 때였다. 간호사의 제압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진흥이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 번 해봐라.”

“예?”

“사념체 어쩌고 저쩌고 하던 거랑, 데이비드가 범인이니 어쩌니 하던 거. 그게 무슨 의미야?”

“아, 그건 저······.”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심하게 당황해있던 나래가 한 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진흥은 굳이 그런 나래를 재촉하지 않았고, 대신 그녀의 옆에 있는 작은 동물을 바라보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전에, 이 말하는 고양인 또 뭐고?”


작가의말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고어한 표현은 없으니 좀 괜찮으려나요ㅎㅎ;

사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황녀님, 그런 황녀님을 알아본 것 같은 형사님, 옆에서 패닉에 빠진 나래양과,
그리고 분명 주인공인데 어째 하는 일이 전혀 없어보이는 리하양...

다음 주에 이 네 사람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또 한 번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소녀 유리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2부 에필로그 16.12.28 220 0 31쪽
54 아픔을 넘어서 16.12.21 69 0 28쪽
53 아픔을 넘어서 16.12.14 119 0 26쪽
52 은하를 가르는 검 16.12.07 167 0 26쪽
51 은하를 가르는 검 16.11.30 122 0 16쪽
50 은하를 가르는 검 16.11.23 121 0 22쪽
49 은하를 가르는 검 16.11.16 93 0 34쪽
48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9 140 0 19쪽
47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3 148 0 16쪽
46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2 217 0 16쪽
45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0.27 229 0 16쪽
44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6 142 0 17쪽
43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0 216 0 19쪽
42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9 125 0 23쪽
41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3 140 0 21쪽
40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2 195 0 12쪽
39 악몽을 꾸다 16.09.29 135 0 14쪽
38 악몽을 꾸다 16.09.28 208 0 16쪽
» 악몽을 꾸다 16.09.22 160 0 19쪽
36 악몽을 꾸다 16.09.21 157 0 17쪽
35 악몽을 꾸다 16.09.15 270 0 20쪽
34 악몽을 꾸다 16.09.14 267 0 18쪽
33 악몽을 꾸다 16.09.08 152 0 14쪽
32 악몽을 꾸다 16.09.07 218 0 20쪽
31 어둠 속에서 16.09.01 213 0 18쪽
30 어둠 속에서 16.08.31 137 0 18쪽
29 어둠 속에서 16.08.24 150 0 19쪽
28 어둠 속에서 16.08.18 202 0 12쪽
27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7 272 0 17쪽
26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1 152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