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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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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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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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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2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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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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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환청메아리 (3)

DUMMY

눈부신 조명에 관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조명과 키보드건반와 스탠딩 마이크와 기타 뿐.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가서 기타를 어깨에 매었는지도 호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 음. 저희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번에 준비해온 노래를 못하게 되어서요. 그래서...”


중얼중얼거리는 말에 관객석이 술렁인다. 호진이 말을 잇는다. 호흡이 거칠다.


“좀... 프리스타일. 로 갑니다.”


건반 앞에 앉은 유진이 씩 웃는다. 한수가 마이크를 고쳐쥔다. 재량이 건들건들 어깨를 흔든다. 호진이 마이크에서 손을 놓는다. 호진도 기타에 손을 대지 않고, 유진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은 채로, 재량이 마이크를 하얗고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가려쥔 채로 입술로 가져간다. 그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양수지의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침묵 속에서 팔랑대는 넥타이 위로 움찔거리는 마이크를 타고 재량의 쉰 목소리가 얼어붙었던 순간을 쨍 하고 깨뜨린다.


“나 지금 할게 자기소개.”


그 뒤론 너네들 맘 속에, 영원히 남을 노래, 너는 그냥 흔들면 돼 그 고개, 와 같은 평범한 라임이 줄을 이었다. 희안하게 아무 반주도 없는데 어디선가 박자를 맞춘 드럼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8마디쯤되는 재량의 프리스타일 랩의 끝무렵쯤에는 한수와 주고 받기 시작한다. 재량이 친 라임을 한수가 받아친다. 한수가 받아친 라임을 재량이 쏘아친다. 이건 나의 고해. 소리질러 그냥 토해. 너희 목소리는 내 속에. 반복되어 돌고 도네. 그게 고조되다가 박자가 마무리된 순간 한수가 돌연 돌출무대쪽으로 냅다 뛴다,


“그러니까 너네! 다 일어나!!!!”


동시에 유진의 피아노소리가 통통 들려오고 호진이 거기에 가세해서 전자기타의 줄을 잡아 디이잉 하고 긁는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호진의 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두 명의 랩퍼는 방금 건져올린 팔딱팔딱 뛰는 날생선처럼 무대 바로맞은편 심사위원석에다 삿대질까지 해대고 있다. 마이크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한수가 외친다. 환! 청! 메아리!!! 그리고 마이크의 머리를 심사위원쪽으로 건네곤 귀를 기울이는 모션을 취한다. 재량이 뒤를 받치듯 훅을 반복하며 날뛰고 있다. 다! 숙여! 대가리!!!


환 청 메 아리 다 숙여 대 가리

이제부터 니 귓바퀴에 콱 박혀 내 말이


반복되는 훅에 오훈은 저도 모르게 그걸 따라하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한 수지도 입술을 움직였다.


환 청 메 아리 다 숙여 대 가리


오훈은 생각했다.


이제부터 니 귓바퀴에 콱 박혀 내 말이


이건 사기잖아.


환 청 메 아리 다 숙여 대 가리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이제부터 니 귓바퀴에 콱 박혀 내 말이


프리스타일로 하냐.


환 청 메 아리 다 숙여 대 가리

이제부터 니 귓바퀴에 콱 박혀 내 말이


모든 심사위원들이 그걸 마지못해든, 자의적으로든 따라했을 무렵, 그 때부터는 말처럼 달리는 한수의 랩을 타고서 재량이 무대를 누볐다. 여기저기서 여자아이들의 비명이 터지는 곳에는 늘 일 초정도 전 쯤에 재량이 있었다.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던 양수지도 어느덧 다른 관객들처럼 벌떡 일어나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오늘 운동화를 신고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기가막혀하는 오훈의 양 옆으로 흩어진 재량과 한수가 한 명은 재킷을 벗어던져버리고 한 명은 벗다말고 살짝 걸친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그리고 고조되는 그 때에 섞여들어오는 멜로디에 오훈을 포함한 전심사위원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고 만다. 건반이 이루어내는 코드에 절묘하게 맞춘 즉흥 허밍과 그 밑을 받쳐주는 두 명의 랩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니 저기서 기타를 치고 있는 호진이 보인다. 환청메아리. 정말로 귓바퀴를 돌고 도는 이 노래가 환청인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오훈은 데스크 위 빽빽이 채웠던 태희팀에 대한 메모와 달리 텅 텅 빈 한수팀에 대한 메모를 보면서 웃어버렸다.




“저래서 힘 좀 빼라고 한건데.”


윤수가 대기실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릴 때에도 태희는 여태껏처럼 모니터에는 눈길도 안 줬다. 그 와중에 편의점에서 과자를 잔뜩 사온 호석이 입안으로 와구와구 칩을 밀어넣고 있다. 옆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멍하니 쳐다보던 태희의 옆얼굴을 잠자코 지켜보던 윤수가 불쑥 묻는다.


“왜그래.”

“뭘.”

“미안해하지마.”

“내가?”

“결과적으로 우리가 진 것 같으니까.”

“...우리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지금은 가루상태여도 조금 있으면 대걸레에 물과 함께 버무려진채로 사라져갈 것이다. 태희는 그런 부스러기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가 진다고?”


마주쳐온 태희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아, 윤수는 순간 추위를 느꼈다.




비명소리같은 환호성이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껏 그렇게 호흡을 잘 맞춰온 삼분여와는 달리 같은 팀이라고는 믿기지않을 만큼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사를 하고 있는 영학고팀은, 일순 불협화음인 것 처럼 보여도, 지금 이 공간 안의 사람들에게만큼은 최고의 팀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무대를 말그대로 제압해버린 재량의 야생스러움과 덤덤하게 그걸 뒷받침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한수와 커다란 성량으로 두명의 랩퍼와 견주어도 뒤치지않던 호진과 뻔하지않은 메인 멜로디라인을 즉흥적으로 두드려대던 유진까지. 그들이 무대를 내려갈 때까지도 관객들의 감탄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눈부신 조명이 사라지자마자 앞이 어두워지기에 팔을 뻗어 더듬더듬 걷던 호진이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땀으로 범벅이 된 손바닥에 묻어나온다. 짜릿함. 오랜만에 겹쳐본 유진과의 잼이었지만 전혀 녹슬지 않았다. 재량과 한수와는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던 어울림이었지만 미친 것처럼 합이 잘 맞았다. 바빴던 부모님 때문에 어렸을 때 유진과 둘이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하게 적절한 놀이였던 게, 다른 사람들이랑 공유할 수 있을 만한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진은 침을 삼킨다. 그는 깨닫고만다. 아 이거 존나...


재밌다.


그 순간 목께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든다.


“뭐하냐. 정신차려.”


눈 앞에 손을 흔들어보이는 재량과 호진의 목에 캔음료를 갖다댄 유진이 웃고 있다. 저 멀리 세 걸음쯤은 더 나아간 한수가 돌아보고 있다. 아까 전의 그 무대를 좁게 만들던 에너지는 어디로 가고 금새 냉정해져 있다. 숨만 몰아쉬고 있는 호진과 눈을 마주친 채로 한수가 씩 웃어보이며 말했다.


“내 말대로지?”


그 순간 토할 것 같던 설레임이 결국은 땀을 쥐는 성취감으로 다가온 이 일련의 과정들을 몇 번이나 겪었을 한수가, 호진의 눈에는 몇 십배는 거대하게 보였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제 롤모델을 발견한 걸 알기나 하는지, 한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제야 숨겨뒀던 박카스병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재량에게 건네주고 있다. 그걸 받자마자 꼴깍꼴깍 단숨에 들이키던 재량이, 야 근데 그거 아냐, 니가 좋아죽는 그 음료수 내 이름이랑 라임 맞는거. 하고 한수가 낄낄거리며 말하자마자 푸우우우웁 하고 그의 얼굴에 음료수를 토해버린다. 박카스로 세수한 박한수 라며 이번엔 재량이 깔깔대서, 둘이서 멱살잡고 투닥거릴 때 쯤에는 무대위에서 관객들을 진정시킨 MC가 새로 진행을 시작하는 게 들려왔다. 조금 후에는 넓지도 좁지도 않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무대 위로 모든 참가자가 올라섰다. 좁아져버렸다. 우글우글하다. 돌출무대쪽으로 나가있던 MC가 뒤를 돌아다보며 다들 긴장될텐데 사실은 자기가 제일 긴장된다는 둥의 뻔한 말을 하며 질질 끈다.


오훈에게서 미리 결과를 전해들은 양수지는 초조해하지도 응원을 하지도 않았다. 잠자코 앉아있었다. 반면 결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를 참여 학생들은 긴장감 반,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공연을 했다는 자신감 반으로 이루어진 표정을 마음껏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그 중 이상하게 자꾸만 주뼛주뼛 눈치를 보고 있는 재량의 옆에서, 꺅꺅대는 여자애들에게 여유롭게 손인사를 해주고 있던 한수가 재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왜 관객들을 째려보고 그러냐. 재량이 속닥거린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이컨텍트 해주는거거든. 한수가 놀라 한 쪽 눈썹을 까딱일 때 차례대로 수상의 절차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래봐야 호진을 제외한 영학고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건 상금이 수여되는 유일한 자리, 대상. 그 외의 상은 그 어떤 상이건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대학교에 들어갈 때 한 줄이라도 더 써낼 수 있을 법한 경력이 이 자리에서 만들어질 지 어떨지 초조해진 호진만이 입술을 깨물고 있다. 수상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버퍼링이 걸린 듯 주변이 느려진다.


“그럼 이제 마지막 대상이 남았습니다! 대상은-”


순간 팟 소리가 난 듯 눈 앞이 밝아지는 느낌에 호진이 주변을 살핀다. 조명이 딱히 다르게 켜진 것도 아닌데 시야가 밝다. 팀원들을 보니 다들 같은 표정이다. 시선을 마주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웃는다. 그리고.


“나태희, 문윤수, 주호석의 산호고팀!”


MC가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친 순간 호진과 유진, 재량은 저도 모르게 당황해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웅성웅성거리는 건 관객석도 마찬가지였다. 박한수만이 변하지않은 자세로 선 채 흔들림없이 웃고 있다. 돌출무대로 걸어가는 세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눈을 뎅그랗게 뜬 유진이 허, 하고 숨을 몰아쉰다. 태희는 아무렇지않게 수상을 했다. 윤수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가 재량과 눈이 마주치자 고요히 웃었다. 저 새끼가! 노발대발 뛰어대는 재량을 진정시킨 건 수상이 끝난 뒤 돌아오는 세 사람 중 주호석이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까무잡잡한 팔뚝으로 눈가를 슥 훔치며 그 와중에도 예의 그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다른 두 사람보다 느릿하게 돌아오는 호석의 벌개진 눈가를 보며, 재량이 얌전해진다. 하긴. 좀 더 시야를 넓혀보니 호석을 제외하고도 다른 몇 팀이 훌쩍이고 있다. 다들 마찬가지구나. 재량은 탄식한다. 그 과정을 볼 수야 없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무대 위 한 순간의 실력과 우연으로 빚어진 결과 뿐이겠지만. 그래도 그 목적이야 다를지언정 그 누구하나 열심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보답은 한정되어 있다. 그 보답을 받아서 울건 받지 못해서 울건 어느 쪽이건 그래도 후자보다는 전자가 나은데. 재량은 다른 아이들의 얼굴표정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떨군다. 아까까지만 해도 구름 위인 줄 알았던 무대의 마른 바닥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딱딱하고 차갑게 윤이 나고 있다. 진건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간다. 진거야. 조금 후에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인다. 재량은 그게 누군지 직감으로 알았다. 쳐다보면 쪽팔려할 게 분명할 상대이니 손을 뻗어 그 큼지막한 손을 꽉 잡아준다. 뜨겁게 열이오른 손이 재량의 손을 피하려다가 마주잡아온다. 재량의 손이 하얗게 질릴 만큼.


“쟤네 왜저러고 있어.”


MC가 연이어 발표한 인기상을 수상하러 나간 유진이 영 허전한 양 옆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이제는 아예 얼싸안고 둘이서 청춘드라마 찍는 것마냥 훌쩍이고 있는 다 큰 사내를 보며, 한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몰라 그냥.


“내비둬 내비둬.”


하더니 한수는 그들을 정말로 완벽하게 내버려뒀다. MC도 다른 학교 팀들도 유진도 모두 모두 무대를 내려가고 조명이 꺼질 때까지.


작가의말

영문학도들 1부를 마무리 하며.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한 분 한 분 감사드린다고 손을 잡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모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영문학도들을 조심스레 경험삼아 내어볼까 했으나, 소수여도 저에겐 소중한 댓글과 조회수가 전부 삭제된다는 사실에 결국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평소에 쓰고싶던 다른 이야기를 아예 새로 써서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를 위해 잠시동안 공모전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연중은 단언코 아닙니다. 공모전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진심으로 빌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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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22:02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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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 중복된 어제 (1) +1 15.03.12 343 2 14쪽
12 4. 중간고사 레퀴엠 (3) +1 15.03.11 338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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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 중간고사 레퀴엠 (1) +2 15.03.10 324 2 11쪽
9 3. 구씨네 어제 (3) +1 15.03.09 333 2 11쪽
8 3. 구씨네 어제 (2) 15.03.09 428 2 16쪽
7 3. 구씨네 어제 (1) +1 15.03.09 38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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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소네트 18 (2) 15.03.06 424 4 12쪽
1 1. 소네트 18 (1) +1 15.03.06 65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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