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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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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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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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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1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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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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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환청메아리 (2)

DUMMY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돌아온 수지가 아무리 관객석을 뒤져봐도 오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새 어디로 사라진거냐며 툴툴거리며 무대 근처로 가서 관객석을 넓은 시야로 둘러본다. 아까는 텅텅 비어있던 좌석들이 이제는 제법 반 이상은 찼다. 꺅꺅거리는 중학생 소녀무리가 군데군데 드물게 있고 나머지는 가족들로 보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정직한 폰트의 슬로건을 멍하니 쳐다보며 수지가 오훈에게 전화를 건다. 짧은 신호음 후로 들리는 여보세요? 에,


“어. 어디야?”


하고 답하자마자 수지는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만다. 방금 어깨를 두드린 존재 때문에 소름이 바싹 오른 몸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다본다. 오훈이 멎쩍어하며 서있다.


“아 놀래라.”


가슴을 쓸어내리는 수지에게 오훈이 웃으며 묻는다.


“애들 연습 잘하고 있더냐?”

“응. 뭐, 알아서 하는 애들이니까. 근데 좀 정신없어보이더라고.”

“그럴만도 하겠지. 갑자기 곡을 바꾸려면.”

“곡을 바꿔?”

“아, 어. 벌써 주최측한테 엠알도 다시 줬다고 하더라. 그건 그렇고 곧 시작될텐데 앉아있지 그러냐, 그만 쏘다니고.”


나도 모르는 걸 니가 왜 아냐고 물어보려던 수지가 오훈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할 말을 잊고 고개를 튼다. 인상을 쓰며 다시 오훈을 마주보는 수지가 장난치지 말라는 투로 헛웃음을 내며 말한다.


“저기 심사위원석인데?”

“아니 거기 뒷줄에 앉으라고.”

“아 저기 앞줄이라 다 앉을 사람 있다고 아까 나한테 못 앉게하던데. 선생님들 자리는 저 쪽 구석이라고...”

“아. 착오가 있었나보네. 그 앉을 사람 중 하나가 넌데.”

“어?”

“어?”

“어?”

“뭐가?”


빤히 얼굴을 쳐다보며 뻔뻔하게 정색을 하는 오훈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도저히 쟤가 뭐라고 하는 건지 영문도 이유도 알수없었던 수지는 조금 후에 가요제가 시작될 때 쯤 왜 오훈이 수지에게 지정석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는지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니가?”

“응?”

“심사위원?”

“어 왜?”

“니가?”


심사위원석에 떡하니 앉은 오훈의 마른 등을 바라보며 양수지가 경악한다. 아니 대체? 쟤가왜? 여기가 의학관련 세미나도 아니고 가요제인데? 노래하는 데인데? 마이크잡는 데인데? 입밖에는 안내도 얼굴 표정으로 이미 그렇게 토로하고 있는 수지를 보며 오훈이 한숨쉰다.


“도대체 넌 평소에 날 얼마나 재미없는 놈으로 봤길래...”

“상식만 통하는 인간인 줄...”

“나도 취미 하나정도는 있다 임마.”

“언제부터!”

“대학생때부터!”


그러고보니 대학교 때 이상한 동아리에 빠져서 마초맨처럼 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였나. 그 동아리가 음악관련 동아리였던가 그랬을거다. 한동안 이어폰만 귀에 꼽고다닌다고 서로 연락도 안하던 시절이 있긴 했었다. 곰곰이 과거를 곱씹어보며 오훈의 의자 뒤를 양손으로 붙들고 무의식적으로 흔들어대는 수지 때문에 오훈은 정신이 없다. MC가 무대위에서 가요제소개를 하고 있는데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 괜히 양수지한테 좋은 좌석 달라고 주최측한테 졸랐나. 그냥 떨어져앉을걸. 마음에도 없는 후회를 하는 척 할 때쯤 수지가 섭섭하다는 듯 묻는다.


“근데 왜 말안했어.”

“뭘 말해, 내가 사실은 이 바닥에서 좀 유명한 딴따라평론가니까 이번에 너네 애들 평가할거라고? 그러고 니가 나한테 뭐 뇌물이라도 주려고?”


수지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세상에. 오훈은 생각보다도 순진한 절친을 앞에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요새 그런 게 통하는 줄 아냐. 나 혼자 높은 점수준다고 상 받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니 학생들도 아는 사람이 심사본다는 걸 몰라야 정정당당하지. 그래야 최선도 다할거고. 그리고.”


MC가 마이크를 입술에서 떼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된다. 오훈의 이어지는 목소리가 쿵쿵거리는 음악소리에 묻힌다.


“걔네 인맥같은 거 없이도 잘할 애들이야.”




“괜찮냐?”

“아니. 토할 것 같아.”


진짜 토악질하는 시늉까지 해보이는 호진을 곁눈질한 재량이 의아해한다. 아니 그 음악실에서의 오디션에서는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실력을 뽐내던 애가 왜 갑자기 수줍은 척 하고 그런대. 재량의 머릿 속에 들어찬 호진의 이미지란 두 살 형인 재량에게도 반말을 찍찍 할만큼 당차고 싸가지없는, 좋게 말해선 베짱좋은 녀석이었다.


“처음이라 그래.”


무대 위로 올라간 다른 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빈 철제의자를 꿰어찬 한수가 근처에 있던 신문을 주워읽으며 재량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말했다.


“난 딱히 첫무대도 아니고 유진이도 프로DJ인데. 호진인 평범한 고딩이니까.”

“그럼 나는.”

“넌 종자가 다르지.”

“어떻게 다른데.”

“그걸 꼭 말로 해야 겠냐.”

“말로 해보지 그러냐 좋게 말할 때?”

“니가 좋게 말할 줄 알긴 아냐?”


금방이라도 또 싸울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한 한수와 재량을 보니 아까의 위기에 대한 긴장은 사라지고 평소대로의 상태가 된 것 같아 유진은 안심을 한다. 문제는 이제 호진 뿐인데. 여전히 안색이 안좋은 동생의 얼굴을 찰흙만지듯 주물러본 유진이 무심한 말투로 그런다.


“토하고 와. 포기만 안하면 돼.”


제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누나의 작은 손을 평소처럼 쪽팔린다고 쳐내지도 않을 만큼 혼이 나간 호진이 정말 혼이 나가버린 목소리로 유진을 부른다.


“누나.”

“응?”

“누나 그래도 체르니까지는 쳤었나?”

“응...?”


대기실에 연결된 조그만 텔레비전 안에는 벌써 열 번째 팀이 공연중이었다. 시간 상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여유에도 불구하고 호진은 기세좋게 유진의 재능을 탈탈 털어낼 셈이었다. 아까까지 겨우 짜낸 무대설정을 다시 갈아엎어버린 호진에 맞춰 알딸딸한 유진과 그 옆으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호진에게 맞춰 따라가는 재량과, 그것 보라며 니 동생은 이게 체질이라고 만족스러운 듯이 유진에게 웃으며 말하는 한수가 모여 다시 새로운 무대를 쥐어짜내고 있다.




심사위원석의 뒷자리는 과연 명당자리였다. 훤히 무대가 보이는 건 물론이고 작은 스피커까지 지원되어서 음정 박자를 놓치는지 어떤지 숨을 끊었다 쉬는지 아닌지까지 세세하게 캐치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참가자들이 긴장했는지 어떤지 정도도 그들의 무대매너로 미루어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양수지는 저 눈부신 조명아래에서 어느날 들려준 그 노래를 선보일 아이들을 상상해본다. 조마조마해지는 심장에 맞추어 근질거리고 있는 손가락으로, 오훈의 등받이를 그러모으듯 쥐고선 무대를 바라본다. 간혹 오훈이 뒤를 돌아다보며 양수지가 혹여나 기절한 건 아닌지 확인을 했는데, 이는 양수지가 그토록 의자를 붙들고 흔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의자를 흔들지 않았는데도 오훈이 슥 뒤를 돌아다본 건 대회의 거의 막바지 무렵이었다.


“대상후보 나온다, 잘 봐놔.”


양수지가 정신을 차리고 무대를 본다. 주홍빛 조명 아래 세 명이 서 있다.




세 명은 블랙으로 드레스코드를 맞췄다. 텔레비전 안에서. 연예인도 아니고 리허설하는 옷이랑 본방용이랑 다르냐고, 재량이 가는 눈을 뜨고 못마땅해한다. 동시에 아까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윤수를 눈으로 쫓는다. 힘 좀 빼지 그래. 그 목소리에 더 힘을 뺄 수가 없다. 이를 갈며 저 재수없는 새끼. 하고 중얼거리는 재량을 쳐다보던 한수가 조용히 씩 웃는다.


“저 남자애랑 저 여자애랑 사귀는 거 아닐까? 아까보니까 분위기 좋아보이더라고.”


호진을 툭 치며 옆에서 다 들리도록 귓속말하는 척을 한 한수가 재량의 눈치를 살피니 예상대로 재량의 얼굴이 더 시뻘개져서는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호진은 영문을 모른 채 저는 딱히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진짜 사귀나 고민하며 재량처럼, 하지만 다른 의미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재량이 호진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텔레비전 앞을 사수한다. 평소에는 결좋은 머리카락이 무엇때문인지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있는 듯한 재량의 뒷통수를 보며 한수는 예감한다. 승산이 있겠어. 한 때 유행했던 길거리 오락기에서는 캐릭터가 분노가 쌓이면 에너지도 함께 쌓였었지. 그 에너지바가 올라가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강재량의 머리 위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제 그럼 초필살기를 쓸 차례.




“쟤네를 이기려면 진짜 초필살기라도 있어야 할거야.”


팔짱을 낀 채 이 대회의 결론이라도 미리 본 것마냥 오훈이 뒤를 슬쩍 돌아다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다른 심사위원들이 줄곧 눈치를 주지만 오훈은 굴하지 않는다. 음악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두 가지 평가 중 하나만 내릴 줄 아는 순수한 소비자인 양수지의 의견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는데.


“아... 어...”


돌아다본 양수지의 얼굴은 생각보다도 더 솔직했다. 넋이 나가 무대를 보고 있는 양수지의 눈에는 여태껏 없던 스타일로 화려하게 랩을 하는 나태희와, 짐승처럼 그 랩을 받쳐주고 있는 주호석, 그리고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려버리는 성량의, 낮은 톤의 보컬을 선보이는 문윤수 이 세 학생이 가득 찼다. 이제껏 참가한 스물세팀이 몇 팀은 머릿수가 훨씬 많았고 몇 팀은 화려한 악기들까지 준비해서 연주했지만 심플하게 마이크와 목소리만 준비해온 이 세 명의 아이들처럼 무대를 꽉 채우진 못했다. 아이들이 무대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압도감. 오훈이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응. 그래.


“뭐든 기본이 중요한 거거든.”




“우린 기본이 안되는 거 알지. 급조된 팀이니까.”


영학고팀 준비하라는 말에 우르르 모인 넷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손을 마주모으고 있다. 긴장이 포화되어 얼굴이 푸르죽죽해진 호진과, 긴장한 건 아닌데 급피아노를 연주해야 해서 심장이 울렁거리는 유진과, 산짐승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재량과, 팀의 사기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한 마디 하고 있는, 이제껏 팀플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던 만승개인플 한수 넷이서.


“그래도.”


한수의 안경 밑 눈동자가 평소보다도 더 침착하다.


“우린. 기분은 되잖아.”


그 말에 재량이 픽 웃은 걸 시작으로 유진도, 마지막으로는 호진조차 마지못해 웃었다. 긴장이 눈녹듯 풀린다. 자. 가자. 조용한 한수의 말을 필두로 여덟 개의 다리가 무대 뒤로 향한다. 대기실에서부터의 복도가 세상에서 가장 긴 통로처럼 느껴진다. 어지러울 정도다. MC의 평범한 소개말이 마이크를 통해 회장을 꽉꽉 채우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대 뒤에서 호진은 초조하게 발을 굴려본다. 웅웅 울리는 건 귓바퀴 근처인지 심장 근처인 지 알 수가 없다. 꽉 끼는 정장이 가슴팍을 옭아맨 것처럼 숨을 쉬는 게 갑갑해져온다. 어둑하게 조명조차없는 그 곳에서 인식할 수 있는 건 모두의 흐릿한 실루엣 뿐. 그 중 한수일 법한 실루엣이 다가와서 호진의 어깨를 붙든다. 냉정하게까지 들리는 그 침착한 목소리와 태도.


“그 느낌 잘 기억해놔.”


순식간에 호진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정시키는.


“그거 떨리는 게 아니라, 설레는 거니까.”


정의.


언뜻 재량의 시선이 내리꽂혔다가 거두어진 느낌이 들었지만 알 길이 없다. 호진은 호흡을 가다듬는다. 정장이 없으니 체육복 대신 교복을 거의 강제적이다시피 입은 유진이 아 불편하다고 궁시렁거리고 있는 게 그제서야 얼핏 들리기 시작한다. 인이어를 귀에 붙인다. 저도 모르게 팔과 입술을 부르르 털어낸다. 호진과 재량이 목을 가다듬는 헛기침소리가 엇박으로 번갈아들린다. 유진은 이제 손가락마디를 딱 딱 소리를 내며 굽히고 있다. 사실상 3분쯤은 될 그 대기시간이 3초처럼 지나가고나서, MC의 마무리멘트를 필두로 분주해진 스테프들이 준 사인을 뒤로하고 무대 위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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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 중간고사 레퀴엠 (1) +2 15.03.10 32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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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 구씨네 어제 (1) +1 15.03.09 38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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