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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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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54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06 21:09
조회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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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1. 소네트 18 (2)

DUMMY

살다살다 경찰서를 다 와본다. 분명 강재량은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혐오할 정도로 싫어해서 괴롭히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수지는 확신한다. 여즉 교복차림인 강재량은 양수지가 나타나자마자 잠오는 표정으로 고개만 꾸벅 숙였다 들며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 수지는 어이가 없다. 수지의 질문은 단순했다. 담배를 폈나요? 음주를 했나요? 폭력서클과 다투기라도 했나요? 그 모든 질문에 말도 안된다는 듯 발끈한 강재량이 벌떡 벌떡 일어나는데 그 옆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경찰은 다른 사정을 얘기했다. 그 뒤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를 연달아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며 경찰서를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수지의 손에 강재량의 팔목이 붙들려있다. 그런 수지를 별 반항없이 따라가던 강재량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을 때에는,


“쌤. 저 배고파요...”


다 큰 소년의 배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치우는 재량에게 며칠 굶은 놈같다고 마주 앉은 수지가 평하지만 재량의 귓등엔 꽂히지도 않는다. 참 맛있게도 먹는다 싶어 수지가 턱을 괸 채 재량을 살핀다. 꽤 하얀 편인 얼굴에 날이 선 듯하면서도 그래봐야 아직 소년같은 이목구비. 비록 겉돌기야 했지만 저리 반반한 얼굴에 키도 몸집도 어느정도의 수준은 되어서 남자아이들도 그랬지만 재량은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그런 애가.


“잘 먹었습니다.”


홈리스라니.


“쌤, 저... 당분간은 못 갚을 것 같고 제가 다음달 알바비 타면 꼭 갚아드릴게요.”


입에 묻은 라면국물도 채 닦지않고 강재량 답지않게 영 기죽은 모양새로 하는 말이 평범한 그 나이대 남자아이같이 들려서 희안했다.


“됐어. 교통카드 찍어준 빚 갚은 거라 쳐. 입 닦고.”


양수지는 옆에 있던 티슈를 한 장 집어 내밀며 경찰이 전화통화상으로 한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렸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사고로 돌아가신 거야 담임인지라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마저 최근에 병으로 돌아가셨는지는 정말이지 몰랐다. 제사를 치르고나자 빚 때문에 비록 코딱지만할지언정 그나마 이불은 덮어주던 집마저 법정으로 넘어가버렸단다. 강재량이 둥지를 틀었던 달동네 골목을, 우연히 그날따라 비번인데 그 쪽길로 지나가던 경찰이 발견하고 낚아오지 않았더라면 양수지는 평생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었다. 어쩌면 강재량이 출석률미달로 학교에서 짤렸을 그 날까지도. 형제도 친척도 이제는 부모님도 없는 이 19살의 고아는, 어쩌면 엉엉 울법도 한데 눈 앞에서 멀쩡히 웃고 있다.


“왜 말안했니.”

“뭘요?”

“내가 내일 말해서 결석처리된 거 수정해놓을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양수지는 옆에 있던 숟가락으로 애꿎은 라면국물을 들쑤셨다. 하지만 죄책감에 담임이 몸둘바를 모르건 말건 강재량은 뜬금없는 말을 한다.


“쌤.”

“응?”

“학교 못다닐거 같은데요, 저.”

“어?”

“그러니까 굳이 신경안쓰셔도 돼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머리가 뎅 울렸다. 그 순간. 주구장창 드릴 말씀이 있다고 운만 떼고 결국 그 드릴 말씀의 말자도 못꺼내던 강재량의 다급해보였던 얼굴이 양수지의 뇌리를 스친다. 강재량은 이제야 말을 꺼냈다고 속이 시원하다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당분간은 돈을 모아야할 것 같단다. 그 나이에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고 또 받아주는 데가 어디가 있겠냐고, 어머니랑 알던 사이인 동네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아침에 우유배달하는 게 고작이랬다. 어쩌면 본인이 인상이 사나워서 다른 아르바이트가 안 구해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보다 본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강재량이 양수지는 갑자기 무척이나. 불쌍했다.


“자전거 그래서 훔쳐간거니?”


양수지는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벌겋게 국물만 남은 강재량의 라면그릇 위로 조개껍질 두 개가 둥둥 떠있다. 19살이면 아직 표류할 시기가 아닌데. 똑같은 나이였을 때의 양수지는 오훈과 매점에서 고래밥 하나를 둘이서 돈을 모아 사놓고는 고래밥쟁탈전을 벌였던 전적이 있었다. 갑자기 강재량에게 친구가 있긴 있었나 하는, 담임으로서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양수지가 부쩍 슬퍼지려 하기전에, 강재량이 대꾸하는 의지도 없어보일 정도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 게 그 때였다.


“그거 진짜 저 아니에요.”


국물을 호로록 마셔버린 강재량의 시선이 양수지를 흘깃거린다. 강재량의 사정을 듣기 전이었으면 저 날선 표정이 시비를 거는 거라고 해석했을 여지도 있었지만 불쌍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고나니 본인이 결백하다는 강재량의 주장이, 양수지는 그럴 듯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한참후에야 고개를 끄덕거린 양수지가,


“그래. 하기야 니가 그걸 훔쳤으면 뭐 그 자전거들 다 처분하고 어디 고시원이라도 들어갔겠지. 집없이 굴러다니기야 하겠니.”


하고 픽 웃더니 거의 비어가는 라면그릇으로 뜻없이 시선을 옮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근데 진짜 어떤 놈이지. 내 자전거 훔쳐간 놈. 재량이 멍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한수요.”


라면국물 위로 목적없이 흔들리던 조개껍질 두 개는 아까부터 입을 활짝 벌리고 있다.


“뭐?”


텅텅 빈 채로.




때로 태양은 너무 뜨겁게 쬐고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그의 금빛 얼굴은 흐려지기도 하여라.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되지 않고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그대가 지닌 미는 상실되지 않으리라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죽음도 뽐내지 못하리 그대가 자기 그늘 속에 방황한다고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rest in his shade


양수지의 눈은 책을 읽으나 집중할 수 없었다. 재량의 말을 백프로 믿는다거나 백프로 믿지않는다거나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한들 양수지에게 있어서 한수의 입지는 불변이었다. 믿음직한 반장, 무얼 시키기전에 이미 해놓는 아이, 아이들을 제어하는 리더쉽까지 있는. 그러니 더 고민이다. 데스크에서 머리채를 쥐어싸고 양수지가 끙끙소리를 낸다. 1학년때부터 온갖 상에 욕심을 내면서 개근상은 당연히 필수옵션으로 챙겨가던 한수였기 때문에, 결석할만한 이유같은 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수의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묵묵부답. 수지가 출석부에서 눈을 떼고 교실을 불러본다. 시선이 교실 끝 창가자리에 머문다. 어째 매일 결석해왔던 한 놈은 엎어져 자고 있기야하지만 출석을 했고. 이상한 하루구만. 생각하는 양수지는 이제 피곤할만한 강재량을 억지로 깨우진 않는다.


6교시가 끝날때쯤되어서야 강재량은 부시럭소리를 내며 일어나서는 어슬렁 어슬렁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교실을 누볐다. 딱히 지은 죄도 없는 아이들이 슬슬 피하며 길을 터줬다. 한 쪽 어깨에 걸치듯 멘 커다란 강재량의 가방은 점차 교실안에 흩뿌려져있던 강재량의 물품으로 채워졌다. 한 쪽만 남은 구멍 난 양말, 남의 걸상에 걸쳐진 헤진 와이셔츠, 사물함에 처박아둔 언제 빨았는지 기억안나는 초록색 체육복 등등. 그 중 가장 새것일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집어넣으며 강재량이 지퍼를 잠근다. 고개를 번쩍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잘있어, 얘들아. 나름 감정이라도 잡고 눈을 가늘게 가로로 늘어뜨리는데 그걸 바라보다 흠칫 한 아이들은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가는 게 반, 자율학습을 해야되서 얼른 책상 위 교과서에 고개를 처박는 게 나머지 반이었다.


학교는 푸르른 언덕 위에 좁은 자갈길과 아스팔트를 깐 길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하교하는 길은 항상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산을 운동화를 질질 끌어가며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강재량은 그랬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정문을 넘어서서 골목길로 들어서려하는 그 때까지만 해도 강재량은 앞으로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여부로 머리가 가득차 있었지, 담임을 비롯한 학급친구 중 그 어느 누구에 대한 안부따위를 궁금해할 처지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럴 여유도 없었다.


“너 진짜 그러다 큰 코 다쳐.”


누군가 메어놓은 자전거 옆에 주저앉아 펜치로 자전거체인을 끊으려 노력하는 한수의 뒷통수에다 대고 강재량이 툭 던지듯 말했다. 놀라지도 않은 한수가 펜치를 거두며 대꾸한다.


“갈 길 가.”

“왜 자꾸 편한 인생 망치려고 그러냐, 머리도 좋은 놈이.”

“가던 길 가라고.”

“왜, 안그럼 또 내가 한 짓이라고 우겨대려고?”

“그건.”


길을 터주듯 손짓까지 하던 한수가 그 말에 우뚝 손을 거둬들이고 재량과 눈을 마주한다. 뭐 임마. 하듯 살벌하게 눈을 맞부딪쳐오는 재량에게 한수가 중얼거린다.


“난 니가 선생님한테 말하려고 하는 줄 알았어.”

“뭘.”

“니가 봐온 것들.”

“재수없게 내가 가는 데마다 니가 있었던 거지.”

“내가 있는 데마다 니가 왔던 거지, 재수없게.”


한수의 손이 다시금 자전거를 흔들기 시작한다. 몇 번의 컷팅질 후에야 기어이 자전거는 쓰러지듯하다가 한수의 손에 붙들렸다.


“와. 이 새끼.”


재량이 심드렁한 얼굴로 감탄하는 척하더니, 인사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떠나는 한수의 등을 가만히 눈으로 쫓으며 궁시렁거린다.


“미안하단 말 끝까지 안하지.”


그러니 저도 모르게 그 길을 쫓았다. 사과를 받아낼 심산이었다기보다는, 시비를 걸 심산이었다기보다는, 혹은 정의감으로 무장해 또 자전거를 훔치면 잡아낼 심산이었다기보다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쫓았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아보이면서 자전거나 훔치고 사는 이 놈이 뭐하는 놈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옳겠다. 그리고 강재량은 곧 그 궁금증을 해결하게 된다.




한수의 부모님을 직접 뵙는 건 처음이었지만 명성대로 긴장이 절로 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선만 이리저리 흩어지듯 고정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양수지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한 줄 흘러내렸다. 한수의 아버지가 넥타이를 잡았다 놓으며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특별한 케어가 아닙니다, 선생님.”


한수의 어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가 여기로 한수를 보낸 건 다 이유가 있어요.”

“본인이 평범한 학교를 원했던 건데, 일탈이 심해지면 저로서는 강압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양수지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고 명확한 목소리로 한수의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한수를 전학보내야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조금 더 신경쓰겠습니다.”


한수의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와앉는 양수지의 몸이 젤리처럼 퍼진다. 휴 한숨을 내쉬고 시계를 봤더니 고작 십분이 지나있었다. 체감상 한시간은 지난 것 같았는데. 양수지가 휴대폰을 든다. 엄지로 메시지를 써보낸다.


한수야. 너 대체 어디니.


그 메시지 위로 한수에게서 한참 전쯤 왔던 장문의 텍스트가 보인다.


선생님, 저희 부모님이 조금 있으면 방문하실 것 같은데요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오늘 제가 결석한 사실은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내일부터는 지장없이 출석하겠습니다.


양수지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한수의 부모님은 이미 한수가 학교에 오지않았다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갔으리라는 것까지도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끝끝내 양수지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던 한수의 아버지의 눈은 한수와 똑같았다. 세월의 풍파에 주름에 뒤덮여 빛을 잃은 것만 빼면. 예를 다 갖추되 명확히 자신의 뜻을 전달하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가방을 어깨에 매고 퇴근할 준비를 하던 양수지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한 번 받은 적 있는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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