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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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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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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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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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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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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4. 중간고사 레퀴엠 (2)

DUMMY

양수지가 실소를 터뜨린다.


“신병?”


스피커 너머로 오훈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차트 기록 내에 그렇게 적혀있는 건 아니었지만 간호사들에게 물어봤더니 빼도 박도 못할 모계쪽 내력이라고.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거야 포도당 주사 맞춰서 기력이나 회복시켜주는 거였는데 그렇게 며칠 입원해서 쉬고 나면 또 괜찮아졌다가도 갑자기 쓰러져서 오는 단골 환자랬다. 오훈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너 얘 성인인 거 알고 있었어?]

“어?”

[얘 20살이야.]

“어?”


그러고보니 언뜻 체육선생이 그 때 일 년 꿇었다고도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너무 흘려들어서인가 오훈의 입으로 들으니 어째 더. 양수지는 통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놀란 얼굴로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




생년월일 란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오훈이 차트를 덮는다. 클럽에서 실려왔다길래 뭐하는 날라린가 했더니 별 문제없구만. 나이도 성인이고. 오훈과 친하게 지냈던 간호사는 불쌍한 아이라고 유진을 정의내렸다. 학교를 다닐만하면 쓰러지고 또 쓰러져서 본의아니게 일 년을 그렇게 꿇은, 그 때문인지 체구도 체력도 남들보다 떨어지는 그 아이에게 영 마음이 쓰이고 쓰여서, 그냥 검정고시를 쳐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었는데 유진이 그 때 맛없는 병원밥을 진수성찬이라도 되는 양 퍼먹으면서 말했단다. 그럴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우리 동생이 입학했거든요. 하고 웃으면서. 그 동생이란 게 떨어져 사는 존재란 걸 알게 된 건 잦았던 입원기간 동안 몇 번 찾아왔던 호진과 그 호진을 쫓아와 억지로 끌고 가던 아버지란 사람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럴까봐 안그래도 신신당부해놨어요.”

“뭘요?”

“이제 유진이도 성인이 되었으니까, 아버지 찾아오시더라도 함부로 병실 알려주지 말라고요.”


간호사는 그럼 나머지 차트 작성 하러가야된다고 오훈의 손에서 유진의 기록을 마저 가져갔다. 조금 후에 오훈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기획실로 다시 이동하는 와중에 헐레벌떡 뛰는 재량과 스쳤지만 병원에서 뛰시면 안된다고 말 한마디 내뱉을 새도 없이 지나갔기에 그게 재량인지 뭐시깽이인지 판단하지도 못했다.




숨이 턱까지 막혀 헥헥대면서도 병실 밖에서 왔다 갔다 거리며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주저앉아버린 재량이 이마에 땀을 닦은 뒤 숨을 고른다. 몇 번 오르내린 가슴이 안정을 되찾을 때쯤 다시 조심스레 문을 노크해본다. 들어오라는 소리에 연 문 안 쪽에는 침대가 두 개 나란히 놓여있다. 한 쪽엔 유진이, 보조침대에는 유진의 어머니가, 반대편 침대는 비었다.


“어? 뭐야?”


사과를 깎던 유진모가 유진의 의아한 목소리에 병실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그 뭐?”


허리춤을 방황하며 둘 곳 없어하던 손이 공중에 머물렀다가 머리를 긁적인다. 밖에서 무슨 말을 할 지 생각하고 들어올 걸 그랬다, 싶어 재량이 눈을 굴리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유진모가 풀어준다.


“병문안 왔니?”


옆에 앉으라고 자리를 터주며 한 명이 는 만큼 사과를 하나 더 깎아내리는 유진의 어머니는 유진을 많이 닮았지만 조금 더 가늘고 여성스럽다. 그 옆으로 주뼛주뼛 재량이 자리를 잡는다.


“어떻게 알았어?”

“뭘?”

“나 입원한 거.”

“수지쌤이 카톡돌렸어.”

“헐? 선생님은 어케 아시고?!”

“내가 아냐.”


접시에 톡 떨어진 사과가 빛깔이 고운데 재량이 집어먹을 생각은 않고 이리 저리 눈치만 살핀다. 유진의 모가 학생 먹으라고 어깨를 두드려도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빈손으로 와서 죄송하다고 자꾸만 몸을 좁히는 재량은 편의점 유니폼을 갈아입을 정신도 없었던 것 같다.


“한수랑 호진이랑 못온다던데. 근데 선생님은 오실거래.”

“그래, 뭐 별 일 아니니까. 쌤도 안오셔도 되는데.”

“뭐 별 일이 아냐!”


재량이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믹싱도 안해놓고 무책임하게 아프면 안되지 대회가 당장 코앞인데”


본의아니게 구박까지 하는 재량의 머릿 속은 사실 이성적일 수가 없었다. 병원 문을 들어설때부터 생각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공간, 익숙한 풍경. 지긋지긋하게 봐왔던 하얀 가운들과 번호표로 줄세워진 환자들의 소움과 전자음소리. 어머니의 제사 이후로 또 다시 오게 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남의 마음이 심난한 걸 알기나 하는지 유진이 한껏 짜증난 표정으로 대꾸한다.


“오늘 퇴원한다니까 그러네.”

“퇴원하고 연락해. 끝날때까지 쪼울거니까.”

“나 니랑 카톡도 모르는 사인데?”

“카톡 없어. 문자해.”


유진의 손을 끌어잡아다 말랑한 손바닥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숫자가 빼뚤빼뚤하다. 재량이 꾸벅 유진모에게 인사를 하고 엉거주춤한 폼으로 거의 뒷걸음질치다시피해서 병실을 빠져나간다. 선반 위 휴대폰에다 손바닥위에 적힌 번호를 옮겨누르는 유진에게 유진의 모가 묘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 아이...”

“알아, 엄마.”

“말 안해줄거니?”

“뭐하러 해. 엄마 걱정 안하고 성불 하시게 좀 처신 잘하고 살아. 오죽하면 어머니가 졸졸 따라다니냐. 이런 말 듣고 누가 기분 좋아하겠어?”


유진이 우걱 우걱 사과를 씹어먹으며 덧붙인다.


“부활동에서까지 따돌림당하는 건 사양이야.”




강재량이 박카스를 들이키다말고 컥컥 댄다.


“여자친구야?”

“아니라니까!”


교대를 조금 늦게 해주는 대신 시급을 무려 만원이나 받기로 해놓고도 강재량 너는 나한테 빚진거라고 실실댄 예의 그 오전 알바생이 유니폼을 벗으며 카운터에서 빠져나온다. 그 순간, 백날 시계기능만 되는 줄 알았던 재량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재량의 표정이 슬쩍 풀리는 순간, 알바생이 또 쪼갠다.


“여자친구야?”

“아 아니라고!!!”


재량이 악악거리는 소리를 내건 말건 알바생은 건들거리는 폼으로 벌써 편의점을 벗어났다. [나 퇴원함. 파일 메일로 보내놓을게 대회날까지 토할 정도로 연습해.] 다시 한번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재량이 꾹꾹 버튼을 누른다. [별로면 보자.] 살벌한 내용이었다. [안 별로면 보자ㅡㅡ] 살벌한 답장이다. 재량은 눈썹을 꿈틀였다. 여자친구는 누구집 개이름이냐. 친구도 글쎄요다.




시험 치는 날은 누구에게는 일찍 마쳐서 좋은 날이고, 누구에게는 학교를 일찍 끝내고 가봤자 또 해야할 공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다. 한수에게는 좀 달랐다. 시험 치는 날은 공부와 관계없이 스트레스와 싸우는 날이다. 시험전야엔 잘 조절하다가도 시험 당일만되면 머리가 아픈 게 그 까닭이다. 방 안까지 날라다준 가정부 아주머니의 간식도 마다하고 책상에 이마를 박고 있던 손가락이 허공을 맴돈다. 귀에 꽂인 이어폰에서는 리듬이 흘러나온다. 공중에 있던 손가락이 책상으로 점프한다. 토독, 토독 두드리는 손가락에 맞춰 한수의 입술이 조용히 랩을 되뇌인다. 모니터는 유진이 보낸 메일이 떠올라있다.


[제목 : 숨돌릴 틈 드림


공부 꼴보기도 싫을 때 눌러봐.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노래로 들릴 듯.


첨부파일 : final_yesterday.mp3]


정말이었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시원하게 식는다.




호진은 전의 그 재량과의 접점이후로 오늘 오후 처음으로 써클방을 찾아갔다. 공부하느라 바쁜 한수도 아픈 유진도 당분간 오지 않을 그 공간은 이제야 딱 적절한 크기의 아지트가 되었다. 여기서 시간을 좀 떼워야지 생각하는 호진에겐 학원스케쥴따윈 오늘은 안중에 없었다. 학원 한 번 빼먹었다고 집에서 새벽까지 벌어졌던 그 술병과 함께하는 잔소리 파티가 뭐 대수일까. 그건 결코 호진에게 다시는 학원을 빼먹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따위가 되어줄 수 없었다. 누나가 아픈데 나는 찾아가지도 못하지. 찾아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험은 망했지. 호진은 울고 싶었다.


“그래가지고 무슨 유학을 간다고 그래?”


강재량만 없었으면 이 아지트가 조금 더 여유로웠을 텐데. 호진이 아쉬운 마음에 눈을 흘기니 이불 속에서 부스스거리며 일어난 그가 픽 웃는다.


“뭘 째려 째리긴.”


대꾸도 없는 호진이 스피커음량을 확 높인다. 으아악 소리를 내며 귀를 틀어막은 재량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듯 묻는다.


“귀먹었냐?!”


호진이 중얼거린다. 안 들렸다.


“뭐?”


호진이 뒤돌아보며 외친다.


“마킹 밀려서 했다고 씨발!!! 니같으면 유학이고 자시고 기분이 나겠냐?!”


재량이 얼음이라도 끼얹은 듯 얌전해진다. 냉정해진 눈으로 살피니 호진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엔 짙어보이는 외모로도 단정하고 깔끔하게 다니는 놈인데 오늘따라 다크서클하며 정리안된 머리카락이며 어젯밤 한 숨도 못잤음을 피력하는 평소보다 2g 더한 버릇없음이며 모든 게 호진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답지않은 위로를 한답시고 건넨 재량의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니한텐 그렇겠지, 학교도 안 다니면서. 그동안 쏟아부은 학원비 시간 노력 이딴게 다 이 하나로 평가내려지는 건데 고작 몇십점짜리 점수만 받게되면 나는. 그동안 한 건 그냥. 다. 으이씨 안그래도 영어 제일 신경썼는데...”


얼굴을 감싸다가 그대로 엎어져 책상에 이마를 쿵 박아버린 호진의 등이 쓸데없이 넓다. 저런 듬직해보이는 몸으로 잘도 초딩같이 구는구나 생각하며 재량이 그 어깨를 주물럭거려준다. 하기사 생각해보건데 반에 한 두명은 꼭 시험 전에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가 시험 끝난다고 그게 풀리는 게 아니라 자살해야한다느니 죽어버려야겠다느니 하는 극적인 결론을 내리곤 했었다. 하지만 딱히 비관적인 애처럼 보이지 않던 호진이 이러니 좀 당황스러운 건 사실. 재량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른다. 그러다가,


“누난 좀 어떻던데...?”


그 말에 어깨를 주무르던 재량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간다.


“...뭐 멀쩡하던데?”


악 소리를 내면서도 징징거림을 멈추지 않는 호진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재량은 병실에서 본 유진의 건강히 혈색이 돌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다 앗!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약간 촉촉해진 눈으로 뒤돌아본 호진이 뭐냐고 깐죽대기에 그걸 밀어내고 자리에 앉는다.


“메일 확인하랬는데 깜빡했어.”


당장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쳐나간다. 수백건의 스팸 메일 사이로 눈에 띄는 제목. [성질 급한 양반 보시오.] 클릭 한 번에 페이지가 바뀐다.


[ㅡㅡ


첨부파일 : final_yesterday.mp3]


내용은 저 찍찍 그인 눈 이모티콘이 다였다. 그래도 별 기분나쁜 것도 없이 파일을 클릭한 재량이 집중해서 음악을 듣다가 몸을 일으켜 구석으로 걸어간다. 벽에 머리를 대고 주저앉은 채 중얼중얼거린다. 랩핑을 하는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그 사이로 웃는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그 와중에 재량의 빈 자리를 차고 앉은 호진이 제 아이디를 넣어본다. 역시나. 유진은 호진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제목. [동생 보셈]


[보긴 뭘봐? 땅 그만파라 오늘이 마지막도 아닌데.


첨부파일 : 고1 필수암기정리파일.hwp]


호진이 클릭한 파일이 열린다. 소년의 눈 앞엔 내일 당장 쳐야할 과목 리스트와 족집게선생이 정리했다는 예상문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쩌, 쩔어.”


신기있는 누나 둔 것도 나쁘지않지? 하고 씩 웃는 쪼끄만 누나 얼굴이 환영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약간 울컥한 마음으로 호진이 문제를 읽어내리는데 음악파일은 그새 끝이 나서 다시 재생되고 있다. 어느덧 재량의 목소리가 커진다. 무의식적으로 호진의 목소리도 커진다. 써클방은 정체모를 랩핑의 소리와 시험문제를 읊는 소리가 겹쳐 시끌시끌해진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8:44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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