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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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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52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06 21:11
조회
440
추천
5
글자
7쪽

1. 소네트 18 (3)

DUMMY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죄를 짓고 살지 않았는데 최근들어 두 번이나 경찰서를 방문해야했던 양수지의 얼굴에는 당혹감보다도 어이가 가출한 빛이 가득했다. 자신의 제자가 두 명이나 철제의자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걸 보는 입장이 썩 유쾌할리 없다. 딱히 큰 피해를 줬던 건 아니지만 두 아이의 싸움 때문에 예정되었던 공연이 진행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격리조치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줄곧 피곤에 찌든 표정인 경찰이, 양수지에게 신상을 물어보고나서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보호자로 온 그녀와 한수, 재량을 보내주었다.


아직도 너새끼가 강아지니 내새끼가 송아지니 티격태격하고 있는 아이들의 껍데기만 길쭉하니 자란 뒷모습을 보며 따라걷던 양수지가 우뚝 멈춰서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정말 선생따위 되는 게 아니었어. 생각해보건데 고등학생일 때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동경한 그 시점에서 동경으로 그냥 그쳤어야 했다. 살면서 어른들도 때로는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는 게 당연한데 선생이 그러면 친구들은 얄짤없이 비난을 했었다. 지금은 그 비난의 대상이 자신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암담하다. 대체 왜 나는 그 때 전공을.


“썜, 안와요?” “선생님, 안오세요?”


영어교육학과로 선택했을까.


돌아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을 보고도 선뜻 발걸음을 재차 옮기지 못하던 양수지의 몸이 홱 돈다. 가느다랗고 길다란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와중에 양수지의 눈에 퇴근하고 온 모양새인 오훈이 비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 여기서 뭐하냐?”

“그러는 넌?”

“나 이제 집가지...”


시간은 오후 열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야근했었냐고 물어보는 양수지의 곁으로 어느덧 다가온 재량이 툭 던지듯 쌤 남친이에요? 하고 묻는다.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어서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양수지가 아니라고 지나가듯 말하는데 그런 수지의 표정과 재량의 양아치스러움을 스캔하듯 읽어낸 오훈이 씩 웃는다.


“니가 재량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는데.”

“쟤 얘기를요? 왜요?”


오훈이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그 때 재량의 배가 꼬르르르르르륵 소리를 낸다. 황급히 배를 움켜잡은 재량의 얼굴이 벌겋게 변한다. 오훈이 묻는다.


“아직 밥 안먹었어?”

“그게...”

“넌 애 밥 안먹이고 뭐했냐?”


양수지가 욱 하는 걸 보고 웃어버린 오훈이 시계를 잠시 봤다가 지금 문을 연 식당이 있으려나 생각하며 컴컴한 하늘을 잠시 쳐다봤다가 다시 재량에게로 시선을 돌이켰다.


“가자. 형이 밥사준다.”


됐다고 그러지말라고 말리는 양수지의 팔을 밀어내며 오훈이 재량의 어깨를 툭 두드리고는 바로 옆에 막 세워둔 제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그걸 보고 살짝 당황한 강재량이 뭐씹은 표정이 되길래 오훈이 묻는다.


“싫어?”


재량이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재량은 저 멀리 전봇대에 기대어 선 채 이 쪽을 보기만 하고 다가올 생각이 없어보이는 한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굶주린 배를 쓰다듬었다가 약간 망설이며 말했다.


“쟤도 뭐 안먹었을건데...”


양수지는 얼척이 없다. 아까까지 너죽어라 나살아라 싸워대더니 갑자기 무슨 의리가 발동해서 챙겨주는건가 싶다. 그런 사정을 알리 없는 오훈이 그래 그럼 쟤도 불러오라고 고갯짓한다.




메뉴는 편의점 라면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은 한 마디 말과 국물 한방울 없이 맛있게 스티로폼 그릇을 비워냈다. 그러는 동안 양수지는 오훈에게 왜이러냐는 짜증을 부렸고 그게 고맙다는 소리인 줄 당연히 알아들은 오훈은 내가 니 밥을 사줬냐 애들 밥을 사줬지 하고 받아쳤다.


“근데 너희 진짜 왜 싸웠니?”


수지의 물음에 재량이 눈을 가로로 길게 늘어뜨리며 한수를 본다. 한수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저는 잘못한 것 없는데요. 말은 안했지만 얼굴과 반듯한 자세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재량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아니 진짜 몰랐거든요, 저 새끼가 엠씨신의인지.”

“뭐?”

“신의라고 힙플에서 요즘 핫하게 뜨는 래퍼가 있었는데 그게 저 새끼였을 줄은 상상도... 평소에 내가 얼마나 좋아하던... 그런데 그게 저새끼였다니...”


재량이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듯한 투로 말했다. 뭔소리하는 거야. 눈썹을 움찔거리며 이게 소위 말하는 세대차이라는 건가 생각하는 수지의 옆으로 가만히 있던 한수가 코웃음을 치더니 한 마디 쏘아붙인다.


“그렇다고 배틀 중에 갑자기 껴드냐? 다 이긴 판이었는데.”

“거따대고 응수한 게 누군데 그래.”

“아 솔직히 원래 하던 애보다 니가 더 나았거든.”

“앵간히 고맙네.”

“그래봐야 발음 개구려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개구린 건 니 얼굴이야. 양서류 씨발아.”


또 다시 시작된 너강아지 나강아지 싸움에 이젠 말릴 기력도 없는 양수지 옆으로 오훈만이 모든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뭔데 웃냐? 하고 쳐다보는 양수지에게 오훈이 여전히 웃으며 설명한다.


“얼마전에 주최된 프리스타일배틀. 최종전이 오늘이었다더니 그거였나보네.”

“프리스타일? 그 뭐 랩하는 머시깽이 말하는거야?”

“그래 그 머시깽이. 한순간의 순발력과 시적 감각과 유머까지 겸비해야하는 걸로 니가 알고 있는 게 그 머시깽이라면 그거 맞아.”


순간 정적이 감돈다. 라면그릇을 정리하던 한수이 한껏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오훈쪽을 보고 있다. 재량이 주뼛거리며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냥 좀 관심이 있거든.”


오훈은 그냥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떡하냐 상금 놓쳐서. 삼백만원인가?”

“세금떼고 이백칠십이요.”


한수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걸로 어떻게든 작업실 겸 연습실 같은거 빌리려고 했는데. 이 화상 때문에 아오...”

“그래?”


눈썹을 들어올려보인 오훈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조언한다.


“학교에 써클부같은 거 만들어달라고 그래. 그럼 거기서 작업하고 연습하면 되잖아.”


이 때다.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

이 작은 조언 하나에 순간 한수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재량의 심장은 제 옆 친구의 의욕에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었다. 와중에 양수지만이 기분나쁜 예감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은 뒷목을 차가운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 탓에 어깨를 타고 가방이 흐른다. 기울어진 책이 펼쳐지고 페이지 한 구석의 시구절이 흐릿한 조명아래 비추인다.


불명의 시편 속에서 그대 시간에 동화되나니.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인간이 숨을 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이 시는 살고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So long live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힙합이라는 이름의 시가 살아 영문학도들에게 생명을 주리.


셰익스피어-소네트18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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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7:44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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