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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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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66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07 21:13
조회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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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2. 오디션 사기극 (2)

DUMMY

양수지는 교장실에 불려가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사람들은 선생이라는 직업이 방학에 꿀빨고 순수한 학생들과 교실에서 하하호호할 수 있는 꿈의 직장같은 건 줄 알고 있지만 사실 그래봐야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사회생활을 감내해야하는 직업군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갑은 교장이요 선생은 을신세일 뿐. 당연히 교장의 귀에 그 포스터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주동자인 두 아이가 다 자신의 반아이들이라니. 질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교장실 문을 몇 번 노크하는 양수지의 머리는 방금 만든 변명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에야 양수지는 그게 쓸데없는 노력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교장실에는 두 골칫거리뿐만이 아니라 몇시간 전쯤에 보았던 짙은 인상의 남자아이가 하나 더 앉아있다가 양수지가 들어오는 소리에 휙 돌아봤다.


교장은 들떠있었다. 경쟁률이 치열한 학문관련 써클의 창설과 그 사실을 방송사가 인터뷰하러 온다는 사실에. 숨막히는 교장실을 빠져나오는데 재량이 한수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며 야 잘했다 임마 한다. 한수가 어깨를 으쓱인다. 형이 방송사에 찌른거에요? 묻는 호진의 형이라는 호칭에 한수가 움찔한다. 정말 내가 형이니? 한수의 질문에 호진은 대답대신 얼굴근육을 유려하게 움직이며 무언의 욕을 쏟아부었다. 헐. 저러는데 내가 형이라고? 한수가 호진이 아닌 재량에게 물었다. 재량은 호진이 한수에게는 존대를 쓰고 저에게는 처음 만났던 음악실에서부터 반말을 찍찍 썼다는 사실에 빈정이 상해있었기 때문에 호진의 질문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뒤로 진이 빠진 양수지가 그새 하루는 더 늙어버린 버석버석한 뺨을 손으로 쓸어내리는데 앞에 열 발자국 쯤은 더 나아간 아이들이 그럼 부실은 어디로 할까나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소리를 듣다가 문득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할렐루야. 퇴근할 시간.




도둑맞은 자전거 대신 양수지에게는 오훈이 있었다. 운전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강제 카풀을 시킨지 며칠 째 오훈은 별 불만의 소리도 없었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메고 출발! 을 기세좋게 외치는 양수지에게조차 오훈은 사람좋게 웃었다. 며칠간 일어난 다이나믹한 얘기를 듣고도 오훈은 그럴수도 있다면서 핸들을 꺽었다. 양수지는 물흐르는듯 순탄하게만 전개되는 이 모든 것에 자신이 발담그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냥 불안하기만 했다.


“애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 말 옛날에 그 꼰대주임쌤 입버릇이잖아.”

“그랬나?”

“니가 제일 싫어했던.”

“그랬나...”

“그랬어.”


하기야 양수지는 정작 아이들의 성적이나 그로 인해 영향이 끼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부분보다도 그 결과로 인해 평가절하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 꼰대와 비슷해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양수지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갑자기 어색해져버린 차 안 분위기 속에서 정적을 깬 건 오훈이었다.


“걱정하지마. 원래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보지.”


창문틀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보던 양수지가 눈에 익은 창 밖 풍경이 보일 때 즈음 넌지시 물었다.


“넌 그대론것 같은데.”

“나?”


오훈은 차를 멈춰세웠다.


“나도 사실 점점 썩어가.”

“어딜봐서?”

“요즘은 야근이 힘들어. 몸이 안따라주는 것 같애.”


양수지는 내리면서 야 나이탓하지말고 운동을 해 하고 말하고선 멀어져가는 오훈의 차를 한참 쳐다보다가 돌아서 걸으며 생각했다. 운동 시작할까봐.




그래서 오훈더러 운전면허따는 건 좀 뒤로 미루고 이제부터 자신은 걷는 운동을 하겠노라 하고 선포했던 건 양수지가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타입에 춤치이기까지 해서 그렇다고 춤을 배우러 다닐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시지의 답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휴대폰을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은 양수지가 집중하듯 시선을 좁히며 교장실문을 노려본다. 교장의 기대와는 달리 방송사의 대대적인 취재는 없었지만 동네신문 한 구석에 실릴 인터뷰를 위해 교장은 몇 십 분전쯤 머리에 기름을 열심히 바르고 양치까지 했다. 양수지는 기자가 묻는 형식적인 질문에 이런 저런 살을 붙여가며 결과적으로 다 자신이 잘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을 교장의 얼굴이 투명하지도 않은 교장실문을 뚫고 선명히 보이는 듯 했다. 아마도 며칠간은 계속 기분이 좋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선생님.”

“어?!”


화들짝 놀란 양수지의 앞으로 방금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한수가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어색하게 웃는다.


“저 다름이 아니라 부실을 어디로 정해야할지 선생님께 여쭈려고 왔는데요...”

“그걸 왜 나한테 묻.”


니. 양수지의 눈이 깜빡인다. 설마 얘네.


“선생님이 고문선생님이시잖아요.”


아니 대체.


“그런 걸 왜 당사자한테는 안 물어보고 정해?”


한수가 양수지를 따라하듯 눈을 깜빡깜빡거린다.


“교장선생님과 다 얘기가 되신 줄로 알았는데요.”


뭔 소리야. 당황한 양수지가 적당한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평소 눈치가 없다고 생각하곤 했던 체육선생이 효자손으로 벽을 탁 탁 두드리며 다가오더니 한수가 있건 말건 아랑곳않고 쩌렁쩌렁 말했다.


“양샘! 학생 한 명 자퇴한다면서?”




재량이는 정말 그럴 셈일까. 그러고보니 며칠전부터 출석부 중 강재량의 칸만 작대기로 난도질이 되어있었다. 양수지는 죄여오듯 아파오는 머리를 꾹 꾹 눌러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뒷문으로 빠져나가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하교하는 아이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게 기분이 멜랑꼴리하다. 낙엽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넘어간다는 나잇대의 아이들이 성적 얘기, 아이돌 얘기, 학교 얘기, 집 얘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까르르 라는 의성어보다는 으헉헉 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소리를 내며 웃고 있다. 연이어 넌 커서 뭘 하고 싶냐는 질문 대신 무슨 과 생각중이냐는 질문을 한다. 양수지는 발걸음을 일부러 빨리 한다. 성적에 맞춰서, 대충 미래가 보장될 것 같은, 그런 결론을 내는 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녀는 분명 동년배였을 십년전 즈음의 소녀를 떠올릴 게 분명했기에.


싱그러운 이파리를 뽐내는 가로수들이 마주보고 줄선 길은 참 낯설다. 가방에서 꺼낸 휴대폰으로 웹툰이나 읽고 있던 양수지가 문득 고개를 든 건 그 골목길을 중간 쯤 지났을 때였다. 집중하느라 깊게 패인 양수지의 눈썹 사이가 툭 하고 천재질의 무언가에 부딪쳤을 때. 양수지는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


“쌤.”


강재량이 있었다.


“같이 가요. 저도 같은 방향인데.”


씩 웃는 강재량의 표정을 멍하니 보던 양수지가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같은 버스 탔었나.


“근데 너 왜 버스 안타고?”

“돈 다 써서요. 내일 알바비 타니까 뭐 오늘까지만 버티면 돼요.”


바지주머니에 설렁설렁 손을 꽂아넣고 수지의 곁에 서 걸으며 재량이 슥 가로수를 흘긴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잔영이 빠르게 모습을 감춘다. 꽤 찰나였지만 그림자가 코트를 입은 게 확인된다. 이 초여름에? 재량이 의아스럽게 한 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별로 변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수지에게 도로 묻는다.


“아 근데 쌤은요?”

“어?”

“쌤은 왜 버스 안타요.”

“나 이제 운동하려고.”

“왜요? 날씬한데.”

“머리 좀 비우고 싶어서.”

“요새 힘들어요?”


양수지가 우뚝 멈춰선다. 그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던 재량도 함께 멈춘다. 시원한 바람이 일순 두 사람을 휩쓸고 지나간다. 둘 다 척추를 편다. 그녀는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 대신 말수가 준다. 양수지가 몸을 편 채로 채로 다시 오른쪽발부터 내딛을 때, 눈치를 보던 재량도 발을 옮긴다.


“넌 안 힘드니.”


양수지가 긴 텀을 두고서야 입을 열고 한 말은 그게 다였다. 재량은 어깨를 으쓱 들어보이곤,


“우유배달은 오히려 좀 시원해서 좋아요, 새벽에. 그 경찰아저씨가 소개해준 보호소도 에어컨도 틀어주고. 진짜 좋아요. 곧 나와야할 것 같지만...”

“왜?”

“가출청소년만 보호하는 곳이래요. 전 딱히 가출을 한 게 아니라 해당사항이 안된다고 굳이 갈거면 고아원으로 옮겨야한다는데 거기도 제 나이를 받아줄지 어떨지 모른다고...”


하고는 묵묵하게 또 걷는다. 양수지는 생각이 많아진다. 답지 않게 영 기운이 없는 재량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는다.


“저 쌤.”

“응?”

“저 써클 계속 다녀도 되요?”

“어? 뭔 소리야.”

“저 이제 학생도 뭣도 아니게 될텐데...”


말끝을 흐리는 강재량 대신, 양수지가 기세좋게 말했다.


“안될 게 뭐니? 어차피 너네가 만든 건데.”


강재량은 얼굴이 확 폈다. 진짜죠? 하고 씩 웃는 무쌍커풀의 길다란 눈이 나무랄 데 없이 어리다. 양수지는 끄덕이면서도 속이 엉킨다. 괜히 다른 선생이 고문선생을 맡기라도 하면 강재량의 저 표정은 절망으로 치달을까. 안그래도 양수지가 알기로 교무실에서 강재량의 평판은 바닥인데. 여기저기서 쫓겨난 이 아이가 써클부에서조차 쫓겨난다면... 생각이 실타래처럼 꼬여 답답해진 때에 가로수길의 끝에 다다랐다. 강재량이, 저 반대편이에요, 하고는 꾸벅 인사한다. 그에게 손을 저어보이며 내일보자 하고 가볍게 웃어보인 양수지의 머릿 속은 한 가지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당분간만이라도 내가 맡는 게 낫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7:54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7:56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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