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63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10 22:54
조회
324
추천
2
글자
11쪽

4. 중간고사 레퀴엠 (1)

DUMMY

“니 목소리 하난 겁나 좋다 야.”

“우와아아악!!!!”

“뭘 그렇게 놀라 형 잠 다 깨워놓고...”


모니터 불빛 아래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무언가. 정전기로 바싹 바싹 일어난 얇은 머리카락들이 정처를 잃고 헤매이는데 그걸 손가락으로 무성의하게 넘겨버리며 자세를 고쳐앉은 상대의 얼굴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재량?"


재량이었다.


"형. 붙여 임마."

"여기서 뭐해?!"


여전히 확성기라도 단 듯 커져버린 목소리의 데시벨은 내려갈 생각도 없이 어두운 써클방을 왕왕 채웠다.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은 재량이 인상을 쓴 채로 반박한다.


"그러는 니는 뭐하는데."

"으... 음악감상?"

"으... 음악감상 좋아하시네. 집으로 꺼져"

"설마 여기서..."


호진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고보니 첫날과는 달리 하나 둘 늘어난 가전제품들이 희미한 모니터불빛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누렇게 때가 탄 것 같은 일인용 냉장고. 귀퉁이가 찌그러진 밥솥. 언뜻보면 누더기같은 이부자리를 이루는 담요. 구석의 에어컨까지. 아무리 한수가 숙식이 가능하게끔 개조하겠다는 투로 말을 하긴 했어도 실제로 숙식을 하다니. 호진의 경악은 이윽고 걱정으로 이어졌다.


"씻는 건 어쩐대...?"


혼잣말이었지만 재량은 친히 대꾸해줬다.


"조금만 걸어가면 학교인데 뭐가 걱정이야."


그리고나서 체감상 몇분여 될듯한 꽤 긴 시간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만 봤다. 재량이 허벅지를 득득 긁다가 몸을 일으킬 때까지.


"다 누가 사줬어?"


기지개를 펴는 재량을 따라 시선을 올린 호진이 여전히 반말로 물었다. 무슨 말이냐는 듯 돌아다보는 재량의 눈빛이 잠이 덜깬건지 화가 난건지 알 수 없게 날이 서 있다. 그러다 아 소리를 내더니 주위의 가전제품과 이부자리를 둘러보며 대답한다.


"주워왔지 누가 사주긴 뭘 사주냐. 아, 에어컨은 한수가 가져왔어."


그러더니 피시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소문으로는 생양아치라더니 어디 갈 데 없는 거지였구나 더 형이라고는 못 부르겟는걸 싶어서 호진이 관심을 꺼버리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방금 전까지 들은 녹음물의 파일명이 'yesterday-가녹음 해놓고가라 구호진'이었으므로 호진은 누나가 직접 말하는듯한 환청을 들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호진이 뭐하려는 건지 눈치챈 재량이 눈을 길게 늘어뜨리며 다시 이부자리위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는다. 눈을 감으며 턱을 괸다. 하여간 참 좋은 목소리야, 내가 뽑았지만.




"하여간 참 좋은 놈이야, 너는."


양수지의 칭찬에도 오훈이 마냥 기분좋게 웃을 수 만은 없었던 이유는 양수지가 꺼이꺼이 울면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꺼멓게 번진 화장을 당황한 오훈이 내민 휴지로 벅벅 닦아내리면서도 양수지는 다시 넌 좋은 놈이라고 세상에서 제일 착한 놈이라고 대답하면서 또 방울방울 눈물을 폭포수처럼 떨구었다.


"오랜만에 술 먹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넌 진짜 세상에서 제에일 멋있는 놈이야..."

"그래 그럼 나랑 사귈래?"

"오훈이 널 누가 데려갈지 참 복받은 여편네여..."

"그래 그럼 나랑 결혼할래?"

"결혼하면 축가는 내가 꼭 불러줄거야. 태양의 웨딩드레스."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게 낫지 진짜..."


오훈이 한숨을 쉬는 맞은편 테이블에 거의 엎어질 듯 말 듯한 양수지가 노래를 읊조린다. 니가 입은 웨딩드레스 에이 니가 입은 웨딩드뤠스?! 내가 아니잖아?? 웨딩드뤠스 에에 니가 입은 웨딩드레에에스 호오 노오


저런 취객이 찾아오는 결혼식이라면 안 하는 게 낫지. 오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양수지가 아까 엎지른 술안주그릇을 바로 세웠다. 양수지의 술버릇이 이모양이라는 걸 알아서 줄곧 양수지가 술이라도 마시자고 하는 날엔 병원에서 회식이 있다고 뻥치고 도망쳤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 걱정되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부모가 없는 재량이고 부모가 두짝씩이나 있는 구남매고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젊은 청춘들이 여물기도 전에 저렇게 어른들한테 상처받고 괜찮은 척하고 있는데 자기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있으면서 관여는 못할 망정 그 가해자인 부모들한테 관리를 강요받으며 정작 하는 일이라곤 키보드를 두드려 시험문제를 만들어내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하소연하던 초반의 술주정같은 그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역시 양수지는 교사를 그만둘까. 오훈은 고민한다. 그녀는 정말 교사를 그만두고 싶긴 한걸까. 아니면 단지 현실속의 교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는 걸까. 후자겠지.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교사에 대한 동경이 분명히 존재했던 학생이었다. 이윽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테이블 위에 기어코 철푸덕 엎어지자마자 오훈은 생각을 접는다. 이 화상을 얼른 치워야지.




더블링까지 끝낸 호진이 딱봐도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들쳐매며 일어선다. 재량이 호진이 가건 말건 이불 밖으로 팔만 쭈욱 빼어서 흔들어보인다. 저걸 인사랍시고 하는 건가? 어이없어하던 호진이 갑자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냉장고쪽으로 어그적 걸어간다. 요란하게 엔진소리를 내는 냉장고 속은 과간이었다. 커다란 아이스크림 한 통. 유진이 먹다 남은 바나나우유. 누군가 한 입 먹고 남긴 호빵. 나머지는 전부 박카스였으므로.


"사람이 먹을만한 건 아예 안먹나보지. 하긴 사람같아야 말이지..."


냉장고에다 대고 말했더니 동굴처럼 웅웅 울리는 호진의 목소리가 그가 냉장고앞에 있음을 티내자마자 재량이 벌떡 일어선다.


"야 안돼 임마! 손대지마!"

"줘도 안먹네요..."


띠꺼운 표정으로 냉장고문을 닫아버린 호진이 써클방을, 아니 재량의 자취방이 되어버린 공간을 떠난다. 이제야 좀 조용히 쉴 수 있겠다 싶어 재량은 알람이 새벽 다섯시에 맞추어져있는지 재차 확인한 후 냉장고문을 열었다. 그대로다. 호빵. 하얀 표면이 양수지같다. 쌤. 오늘 왜 안왔어요. 중얼거리다가 이불로 뛰어든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 하나 더. 아 왜 걔가 떠오르고 난리, 안구 버렸다며 에비에비 눈꺼풀을 비벼대던 재량이 곧 베개의 품에서 정신을 잃는다.




기말고사다. 단언컨대 중간고사에 비하면 방심할 수 없는 순간이다. 말하자면 검증되지 않은 실력끼리 맞부딪쳐서 결과를 내고마는, 서로의 데이터가 하나도 없이 이루어지는 싸움이 중간고사인 반면 기말고사는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중간고사는 실험전, 기말고사는 전략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수는 후자에 강했다. 그러므로 한수가 한시름 놓는 것도 용인해줄 만 한 일이다. 샤프를 톡 톡 두드려 샤프심을 샤프입으로 빼내었다가 눈을 굴리며 본인의 입으로 샤프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다보면 몇 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다들 답 맞춰본다고 난리가 난 와중에 한수가 하고 있는 것은 다음 과목을 위한 공부도 마음의 준비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가사외우기였다. 대회가 코 앞인 까닭이지, 친구들이 제 시험지를 당연하다는 듯 가져가서 공유하며 답지라도 되는 양 본인들의 답지를 매기고 있었기 때문은 딱히 아니었다. 한수에겐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으므로.


한 층 아래의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뭇 다르다. 호진은 책상에 엎어져서 코까지 골고 있었다. 공부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던 미래의 꿈나무가 이렇게 지쳐나가떨어진 것을 전우의 낙오를 쳐다보기라도 하는 듯 혀를 끌끌 차던 호진의 친구들 중 하나가, 어제 새벽까지 붙잡혀서 잔소리들었다더니. 하고 호진의 숱많고 결이 나쁜 머리카락을 대형견다루듯 슥슥 쓸어넘겨준다. 종이 친다. 불빛에 도망가는 집벌레들처럼 화다닥 아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리고 다른 교실에서 유진은.


“김유진.”


당당히 결석 중.


“김유진 아직 안왔어? 뭐하는 거야. 유진이 연락처 아는 애들 없어?”


대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담임인 미술선생의 짙은 색 입술이 찌부러진다. 학생기록부에 있는 전화번호로는 어디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전교에서 노는 것도 아니었고 평소에 애살있게 굴었던 것도 아닌 유진이라는 학생에게 하루를 다 허비할만큼 선생질에 열정이 있질 않았던 그녀는 곧 그냥 유진을 포기한다. 빈 책상은 하루종일 시험지더미만 그 위로 쌓은 채, 쓸쓸히 그 누구의 방문도 없이 홀로 남는다.




양수지는 터무니없이 바빴다. 시험시간마다 찾아와서 답이 두 개아니냐고 혹은 문제에 오점이 있다고 따지는 학생들과 인쇄잘못된 파본을 이제야 가지고 온 담당선생들이며 오류걸려서 열리지도 않는 시험파일이며 정신없이 양수지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넣는 것만 같았다. 기어이 과부하가 걸려서 폭발할 때 즈음마다 종이 쳐서 안정이 되었다가, 또 과부하가 걸렸다가를 반복했다. 점심시간 즈음에야 비로소 숨을 돌린 양수지에게 카톡 메시지가 도착한다. 카톡창을 열기도 전에 보이는 부재중 통화수 수어개.


바빠?


오훈이다.


약올리냐


고 답장했더니 거의 그 답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니가 저번에 말한 애 이름이 김유진인가 맞지?


수지의 눈썹이 오르내린다. 맞는데 왜? 생각만하며 손가락도 놀리지 않고 멍하니 메시지를 쳐다보며 식당으로 향하는 양수지에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한다.


걔 오늘 우리 병원 입원했어.


“뭐?!”


육성으로 꽥 소리친 양수지가 주위도 살피지 않고 뛰기 시작한다. 아까 벗어난 교무실로. 화장을 곱게 고치고 있던 미술교사가 돌아보기도 전에 양수지가 헉헉 대며 외치듯 묻는다.


“오늘 유진이 결석했어요?!”

“네? 아.. 유진이? 아 네 뭐 근데 걔 원래 자주 결석하고 지각하고 그래서...”

“입원했다는데요?”

“네?”

“입원했다는데 원래 어디 아프던 애에요?!”

“아니 그게... 저도 잘 모... 르겠...”


양수지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머릿 속은 지난번 스치듯 들었던 체육선생의 말로 가득찼다. 담임이 그러니까 애들까지 동조해서 공공연한 왕따되고. 그러다 겨울인가? 자살소동 일어나서 병원 실려가고... 거기까지 떠오르자 양수지는 오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다가 실려와 하룻밤 내내 끙끙 앓았던 유진 옆으로 사색이 된 표정의 클럽사장이 시험기간이라고 안한다는 애를 자기가 억지로 시켜서 이렇게 된거라고 난리다. 막상 병원복을 입고 멀쩡하게 엄마가 깍아준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유진은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사장님. 저 원래 자주 아파요. 신경쓰지마요.”


그래도 기어이 어떻게든 보상해주겠다고 유진의 어머니에게 울상을 지어보이던 클럽 사장에게 유진과 유진모는 바나나우유 한박스로 타협을 봤다.


“저 사장 등에...”

“응. 나도 봤어, 엄마. 신혼일 때 사별했다더라.”

“바나나우유 보답으로 부적이나 하나 지어줘야겠구나.”


여전히 사장의 뒷모습을 쫓는 듯한 시선으로 유진이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8:35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8:49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문학도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6. 환청메아리 (3) +1 15.03.23 279 2 12쪽
17 6. 환청메아리 (2) 15.03.19 196 1 12쪽
16 6. 환청메아리 (1) +1 15.03.18 432 2 12쪽
15 5. 중복된 어제 (3) 15.03.17 336 2 10쪽
14 5. 중복된 어제 (2) 15.03.16 201 2 11쪽
13 5. 중복된 어제 (1) +1 15.03.12 344 2 14쪽
12 4. 중간고사 레퀴엠 (3) +1 15.03.11 338 3 13쪽
11 4. 중간고사 레퀴엠 (2) +1 15.03.10 368 2 12쪽
» 4. 중간고사 레퀴엠 (1) +2 15.03.10 325 2 11쪽
9 3. 구씨네 어제 (3) +1 15.03.09 334 2 11쪽
8 3. 구씨네 어제 (2) 15.03.09 428 2 16쪽
7 3. 구씨네 어제 (1) +1 15.03.09 385 2 10쪽
6 2. 오디션 사기극 (3) +2 15.03.07 392 3 13쪽
5 2. 오디션 사기극 (2) +2 15.03.07 274 3 10쪽
4 2. 오디션 사기극 (1) +1 15.03.07 213 3 10쪽
3 1. 소네트 18 (3) +1 15.03.06 441 5 7쪽
2 1. 소네트 18 (2) 15.03.06 424 4 12쪽
1 1. 소네트 18 (1) +1 15.03.06 654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