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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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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68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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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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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6쪽

3. 구씨네 어제 (2)

DUMMY

인터넷으로 대회를 검색하며 가장 상금이 높은 것과 가장 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것 위주로 리스트를 만든다. 위잉 위잉 돌아가는 본체소리와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바늘 소리만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그러다 바나나우유를 다 마시고 텅 빈 빨대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유진에게 한수가 문득 물었다.


“그럼 이제 엄마랑 살아?”

“응, 원래 딸은 친엄마랑 살아야돼.”

“왜?”

“글쎄. 옛날 말중에 근데 틀린 말 하나 없잖아.”


그게 유진과 호진이 성이 다른 이유라고 했다. 모든 건 돈으로 시작한다고, 태초에 돈이 있었다고 심각한 척 중얼거리며 유진은 웃었다. 원룸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이 전셋집으로 옮기고 그 집을 덜컥 사고 은행에 빚을 다 갚았을 때 즈음에는 이미 유진 부모님의 관계는 틈이 벌어져있었다. 먼 미래에 그런 날이 오면 소박하게 축하하며 지금의 행복이 두 배 세 배 열 배는 되어있을거라고 곧잘 상상하던 엄마 아빠의 얼굴도 생생했지만, 오히려 유진의 머릿 속에 조금 더 선명한 화질로 남아있는 기억은 어느 날 새 여자를 데려온 아빠와 그닥 놀라지도 않은 채로 이혼서류를 가져온 엄마, 두 사람의 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난 사랑이고 자시고 결혼이고 뭐시기고 안 믿어.”


순하게 생긴 얼굴이 그런 말을 하니 위화감이 든다고 생각하며 한수는 유진을 못봤던 세월동안 이 작은 몸이 겪었을 일들을 상상했다. 연락을 자주 해볼걸 그랬나, 후회도 해본다. 클릭질이 한 번 더 이어지고 유진은 외쳤다. 올 찾았다!




올 찾았다. 호진이 웃는다. 방구석에서 기어이 찾아낸 먼지덮힌 상자를 꺼내와 굽혔다 핀 허리가 뻐근하다고 허리를 주먹으로 두들기면서 나머지 한 쪽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얄팍하고 얇은 앨범 하나와 그 옆으로 어린 아기가 입을 법한 사이즈의 고운 한복이 두 벌 포개어져 있다. 하나는 여자아이용의 화려한 색깔, 하나는 남자아이용의 수려한 색깔. 이걸 어떻게 숨겨야하나 고민할 틈도 없이 호진은 서둘러 상자채로 박스테이프로 밀봉하고 집을 나간다. 만인에게 열려있는 호진의 방은 짐짝도 하나 없이 휑하다. 하물며 며칠 전 호진의 새엄마가 아무 말 없이 떼어버린 탓에 방문마저 없다. 있는 거라곤 침대와 쓸쓸한 책상. 저 나갔다 올게요, 외치는 호진의 걸걸한 목소리에 일찍 오라고 회답하는 목소리는 안방쪽에서 들렸다. 보통은 소통의 공간일 거실이 그 중간에 사람 하나 없이 존재한다. 그 곳에 흔히 자녀의 방 안에서나 만날 수 있는 컴퓨터가 맞춤제작된 서랍에 들어간 채로 자물쇠로 꽉 잠겨 있다. 구호진이 누나와 PC카톡이라도 하려다가 실패한 그 컴퓨터가.


그러니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유진이 호진이 가입한 영문학써클에 들어왔다는 말이 소문으로라도 그 여자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호진이고 호진의 아버지고 새벽까지 잡힌 채로 그녀의 술주정을 들어야할지도 몰랐다. 호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멈칫 걸음을 멈춘다. 눈을 감았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눈을 뜬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어. 처음 영문학과 딱히 관계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땐 당연히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누나가 오니 마음이 바람분 풍선처럼 들뜬다. 단지, 휴대폰마저 뺏긴 지 오래, 그보다 더 한 걸 뺏기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호진은 얌전히 새엄마가 시킨 대로 일찍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살짝 비뚤어진 상자를 고쳐안았다. 써클방으로 향하는 언덕이 호진에게는 가파르지 않았다.


이미 열린 써클방 문으로 불쑥 들어온 호진의 인기척으로, 유진과 한수가 나란히 돌아다보며 차례대로 왜 다시 왔어? 뭐 놓고 갔냐? 하고 딱히 반기지않는 투로 물었다. 호진이 내려놓은 상자를 본 유진의 눈이 순간 커진다.


“어?! 니가 들고 갔었어?”

“내가 들고간 게 아니라 엄마가 놓고 간 거지.”

“엄마가 엄청 찾았는데...”

“그럴 것 같아서 들고 왔어. 조금만 더 늦으면 아무래도...”

“아무래도?”


호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 여자가 불태워버릴 것 같았다는 말은 평생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한수가 묻는다.


“이게 뭔데?”

“우리 돌 때 입었던 한복이랑 동영상찍은 테잎이랑 사진집이랑...”


유진이 신나서 들춰보니 테이프에는 친절하게도 날짜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구씨였던 구유진의 돌잔치. 그리고 그 밑에는 그 후 몇 년쯤 후에 찍혔을 구호진의 돌잔치라는 제목의 테이프. 그걸 가방에 쑤셔넣어보려다 실패한 유진이 다시 상자를 소파 위에 툭 올려놓고 모니터 앞에 앉을 때 쯤에는 이미 한수가 호진에게 대회홍보용 찌라시를 보여준 뒤였다.


“오천만원?”

“세금 떼고 사천.”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안할래.”


좀 있음 토플 치는데 이번엔 성적을 꼭 잘 받아놔야 여유롭게 유학준비를 할 수 있단다. 유학이라. 아버지가 가라고 가라고 해도 안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상태인 한수가 호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언뜻 아버지에게 흘려들은 게 있어서 조언한다.


“너 토플이 문제가 아니야. 외국은 원래 특이한 입상 경력 하나쯤은 있어야 유리해.”

“그래요?”

“응. 영국 간다며? 성적만 높은 것보단 무난하면서 다른 것도 잘하는 게 나아.”


써클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상하게 한수의 말은 잘 따랐던 호진이 납득한다. 그리곤 대회장르가 뭐냐고 묻는다.


“장르무관. 그냥 청소년가요제같은 거야.”

“그럼 상금타면 나눠가져요?”

“당연히 내거지 무슨 소리야?”


크지도 않은 키로 벌떡 일어선 유진이 정색을 한다.


“나눌거야.”


그러건 말건 결론부터 말하는 한수에게 유진이 눈을 흘기자 한수가 평소와는 달리 부드럽게 웃는다.


“그걸로 음원내면 수익금은 다 몰아줄게. 대신 상금은 나누자.”


고민하다가 뭐 좋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앉는 유진을 보며 호진은 한수가 어떻게 유진을 바나나우유라는 아이템 하나로 꼬득였는지 그 과정이 눈 앞에 비디오로 실시간 재생되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양수지는 그 후로 헬스클럽다니기를 그만뒀다. 이틀 만에 트레이너가 추근덕대며 운동을 가르쳐준답시고 은근히 스킨쉽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자 함께 운동을 하던 아주머니들마저 저 총각이 아가씨에게 관심이 있네 없네 말을 지어내기 시작했고 며칠 후엔 헬스클럽 내에 양수지는 천하의 여우년이 되어있었다. 그 총각이란 자가 아주머니들 사이에 에어로빅 매력 킹왕짱남으로 통하고 있을 지 누가 알았겠어. 양수지는 마냥 억울했지만 반액 환불을 받고나서 싹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을 오훈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것도 그만뒀다. 그만두는 것 투성이인데 막상 정말 그만두고 싶은 선생 일은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다 다 그만두냐는 오훈의 말이 진짜처럼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싸운 마당에 오훈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었다. 대신 양수지는 다른 말상대를 찾았다.


“그래서요?”


강재량. 어느 날 혹시 허니버터칩 있나 싶어서 들린 편의점 카운터에 맨날 보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편의점 유니폼이 안 어울리는 아이인 이 청소년을 만나기위해 양수지는 매일을 들렀다. 그 때마다 재량은 꿍쳐놓은 허니버터칩을 양수지에게만 야금야금 팔았다. 양수지는 칩 봉지 하나에 하소연을 한마디씩 털어놓았다.


“그래서 교장이 이번엔 나더러 학교 벽화를 그리라는 거야.”

“헐. 벽화? 미술쌤한테 시키지 그런 걸 왜.”

“그러니까 내 말이! 미술쌤이 자기 사촌동생이라고 안 시키는”

“사촌동생이에요?”

“응으응.”


때마다 교내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놔 곤란해지기까지 하며 양수지는 매일 이 짧은 대화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연습은 잘 되어가?”

“시간이 있어야 연습을 하는데 말예요.”


얻어걸린 게 있다면 간간이 아이들이 써클활동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곧 1학기 기말고사가 시작된다고 애들이 좀비처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게 눈에 안 봐도 선했다. 사정은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쁘다고 투덜댔더니 강재량은 그렇게 양자 모두 비효율적이게 스트레스받는 걸 왜 만들어놨는지 모르겠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아이들은 그래서 학교 학원 과외 병행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유진조차 요즘은 작업에 공연에 공부까지 겹쳐서 다크서클이 쇄골까지 내려와있었으므로.


“저도 요즘은 바쁘니까요.”


재량은 이젠 투잡을 넘어선 쓰리잡을 감행하고 있다. 아침엔 우유를 돌리면서 아파트단지 내 주부들과 수다를 떨고 과일같은 걸 얻어먹고 점심 때 잠시 학교에 와서 한수 덕으로 급식을 몰래 얻어먹고 그 후 편의점에서 잠시 알바를 뛰고, 편의점이 끝나면 관공서알바를 한단다. 관공서알바면 꽤 괜찮다고 잘됐다고 잠시나마 생각한 양수지의 판단이, 재량이 관공서 청소알바라고 정정하자마자 산산조각난다. 어쨌든 그래서 가사 쓸 시간도 없다는 재량이 툴툴댄다. 이렇게 재량의 하소연턴까지 끝나자 양수지가 그럼 간다고 계산을 마저하고 허니버터칩을 가방에 쑤셔넣는다.


“이건요.”


계산해놓고 양수지가 가방에 넣지 않은 호빵 하나를 들어보이며 재량이 물었다. 수지는 슬쩍 웃으면서 턱끝으로 재량을 주억거리며 말했다.


“오늘도 힘내.”




말이야 시간이 있으면 연습을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비트조차 안 나온 상황에서 연습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유진이 그동안 작업해둔 걸 들려줘도 한수는 호락호락하게 OK사인을 내리질 않았다. 그래봤자 다 아마추언데 왜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하는 거냐고 묻는 호진에게 한수는 한마디만 했다.


“내 목표는 더 위야.”


한수의 손가락이 향한 천정을 봤다가 다시 시선을 떨어뜨린 호진이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입을 다물며 아까 물었던 문제나 다시 펴보인다. 모의고사 24번 문제 영어 지문이었다. 한수는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줄창 이어나가던 설명이 멈춰진 건 호진이 넋이 나간 얼굴로 첫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문장을 설명하고 있던 한수는 깨닫는다.


“못 따라오겠어?”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영어인데 제일 투자해야만 하는 시간이 많아서 더욱 더 싫어지는 바람에 영어지문의 첫 이니셜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호진은, 유진의 평가에 따르면 그냥 언어쪽에는 재능이 없었다.


“왜 굳이 영국을 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다음 곡을 클릭해보이며 유진이 스치듯 말했다. 이에 호진도 스치듯 중얼거린다.


“비틀즈의 나라...”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니. 유진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니 호진이 슬쩍 눈치를 보며 가방끈을 어깨에 걸친다. 어렸을 때부터 저 놈 노친네 취향은 알아줬어야한다고 갑자기 본인의 외장하드 파일을 뒤지던 유진의 뒤로 호진은 과외갈 준비나 하고 있다. 벌써 저녁이 다 되어 간다. 조금 후에 재생된 음악파일에 안경 너머 한수의 눈동자가 커다래진채로 흔들린다.


“Yesterday."


호진이 저 놈이 옛날에 만들어둔 기타코드 베껴서 만든 노래라서 쟤가 젤 좋아하는 노래제목 딴 거라며 부가적으로 설명하며 유진이 파스스 웃는다. 베이스로 깔린 기타선율이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이라 한수의 귀를 사로잡고, 금방 치고 들어오는 드럼과 피아노가 호진의 발을 붙든다.




“그래서 주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같은 거야, 알지.”


한수가 신이 나서 설명한다. 분배된 노래마디대로 각자 파트를 나눠 짜기로 했다. 보컬파트는 부재중인 호진과 유진이 알아서 짜주리라 철썩같이 믿고 스킵한다. 팔짱을 낀 채 끙 소리를 낸 재량이 눈을 가로로 길게 늘어뜨린다. 조금 후에 요새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재량은 우유배달할 때 입는 조끼를 벗는 것 조차 까먹은 채 당장 가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맞은 편에서 재량과 이마가 맞닿을 것 같은 틈을 두고 수학문제를 풀던 연습장에 연이어 가사를 써내려가는 한수는 오랜만에 하는 작업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거. 음악을 생산적인 취미로 평가받을 수 있던 어린시절에, 예체능따위는 하는 게 아니라는 강요섞인 평가도 없이,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 마이크를 잡고 놀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마구 적어내리다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직접 래핑을 하던 목소리가 커졌다. 그걸 가만히 들으며 멍하니 눈을 굴리던 재량이 제 노트로 시선을 다시 떨군다. 한수의 목소리가 잦아들때쯤 재량이 연습을 시작한다. 과거. 그리운 것들. 아버지가 계시던 시절 자체는 너무 옛날이라 그립지도 않지만 아버지의 존재자체는 그립고 부럽다. 어머니의 존재자체는 지금도 항상 옆에 있는 듯 부재에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지만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던 시절자체는 그립고 애달프다. 그런 감정들을 단어로 표현하여 술술 읊는 재량의 목소리를 뭔가에 홀린 듯 듣던 한수가 재량의 16마디가 끝날 때 쯤 결론을 지었다.


“오천만원 우리 거야.”


감정이 채 지워지지 않은 재량은 웃지도 않고 제 노트만 쳐다봤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라. 한수의 의도와는 달리 재량은 갑자기 한 풀 의욕이 꺾인 느낌이 들었다.


“바람 좀 쐬고 올...”


말끝을 흐리며 가녹음작업을 해놓겠다는 한수를 놓고 나오는 길에 재량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제야 제가 우유배달조끼를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걸 이제 벗어봐야 한 발 늦었다. 이미 언덕을 반쯔음은 내려간 상태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돌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운동화로 짓이기듯 느릿하게 걸어간다. 그러다가 툭 하고,


“뭐해. 앞 좀 봐.”


작고 포근한 것이 가슴 부근에 부딪쳤다싶어 시선을 슬쩍 옮기니 유진의 머리통이 보인다. 제 몸만한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들쳐매고 있다. 포근한 감촉은 유진이 교복 위로 겹쳐입은 듯한 체육복 때문인 것 같았다. 뭐하자는 패션이지?


“속으로 내 욕하지, 너.”


우와 귀신이네. 생각한 재량이 아니라며 씩 웃는데 유진이 잘됐다며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작은 손으로 가방을 열더니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며 한참을 가방 안을 뒤진다.


“들어봐.”


그 커다란 가방에서 꺼낸 게 손톱크기만한 하얀색 MP3플레이어였다. 인상만 쓰고 별 반응없는 재량 대신 손가락을 꼬물대며 이어폰 한 쪽을 쥔 유진이 재량의 왼쪽 귀에 그걸 끼워넣으려 한다. 뒤로 물러서며 피하려던 재량도 까치발까지 들며 제게 뭘 들려주려는 유진의 노력에 포기하고 등을 구부려 귀를 대준다. 몇 초간 방금 전까지 들었던 비트가 나오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타던 재량의 귀에 전주와 약간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는 Hook파트의 반주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눠낀 이어폰이 꽂힌 귀가 아닌 반대편 쪽 귀로 작게 읖조리는 듯 말하는 묘한 미성이.


“yesterday..."


한 번 반복된 멜로디 뒤엔 그걸 외운 재량의 입술도 달싹인다.


Yesterday.


마주친 눈동자 밑으로 같은 단어를 부른다. 동시에 유진의 길다랗게 처진 눈이 착하게 접혔다. 재량의 귀가 먼 순간. 대신 코 끝에 간질간질 좋은 향이 감돌기 시작한다. 몇 번 눈을 깜빡여보지만 들려오는 건 더 이상 없었다. 어제. 오늘. 내일. 초반에 들린 멜로디와 단어만이 재량의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어때? 쩔지 어!”


그러니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은 커녕 유진을 확 밀어내고 굳은 표정으로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어 건넬 수 밖에.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한 재량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언덕길을 내려간다.


“뭐야...”


하여간 첫인상부터 별로더니 맘에 안든다고 중얼거리며 유진은 가려던 써클방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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