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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영문학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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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05 10:05
최근연재일 :
2015.03.23 23:1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6,360
추천수 :
46
글자수 :
94,142

작성
15.03.09 21:28
조회
384
추천
2
글자
10쪽

3. 구씨네 어제 (1)

DUMMY

호진은 평소와 달리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까만 글씨는 알파벳이요 하얀 것은 종이인지라. 해석은 커녕 귀를 쫑긋 세우고 양수지와 강재량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대충 요약하건데 한수의 꼬임에 그 소문의 디제이라는 아이가 넘어왔다는 소식이었다. 대체 어떤 수로 꼬신거지? 호진의 머리가 한데 뒤엉키기 시작한다. 찰나의 계산 후에 결론이 났다. 도망가야지. 탁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아넣은 뒤 서둘러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는 호진에게 재량이 너 어디가냐고 물을 새도 없이 써클실문이 벌컥 열렸다. 재량도 수지도 처음보는 사람이 맹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서 있으니 어리둥절하다. 그것도 딱 봐서는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외모의 아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하얀 낯빛을 하고는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다.


“잘못왔나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누군데?”


재량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으나 재량의 의도는 활자 그대로의 궁금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어투에 순간 움찔한 소녀가 스스로 납득한 듯 써클실로 들어선다.


“아 니가 강재량인가보네.”

“언제봤다고 반말을 찍찍”


그래도 눈에 익은 체육복을 입은 걸 보니 같은 학교인 것 같은데 영 어디서건 본 적 없던 인물인지라 강재량이 눈을 가로로 좁혀뜬다. 동시에 상대를 위아래로 훑으며 생각한다. 뭐야 이 못생긴 남자애도 아닌 여자애도 아닌 이상한 건. 그러건 말건 소녀는 다른 사람을 위아래로 훑으며 생각한다. 뭐야 이 낯익은 건. 그건 아까 나가려다 결국 못나가고 중간에 우뚝 선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호진이었다.


“뭐하냐 넌.”

“누.”

“너 뭐 공부한다더니 여기서 뻘짓하고 다녔니?”

“나...”


고사리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덩치가 그 두배는 되어보이는 상대에게 들이대는데 그게 위협이 되기는 한 건지 뒷목께를 쓸어내리며 쩔쩔매는 호진은 그 와중에도 유진에게 키를 맞춰준다고 허리를 바싹 굽혔다. 도망가려면 애저녁에 일찌감치 갔어야하는 건데. 속으로 후회하면서.


“아는 사이야?”


양수지가 당연한 질문을 하고,


“우리 누나에요.”

“김유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유진이 그제서야 통성명을 했다. 작고 귀여워보이는 외모여도 당차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였다. 헐렁헐렁한 여름체육복이 유진이 써클실을 누비며 살피는 반경에 따라 날개처럼 퍼럭였다. 쟤가 김유진이구나. 드디어 써클에 여자부원이 생겼어. 하고 좋아하고 있는 건 고문선생 양수지. 쟤가 그 천재DJ 김유진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여자였다고?! 하고 충격에 빠져있는 건 강재량. 곧 충격에서 벗어나 뭐 실력만 좋으면 됐지 싸가지 없어도. 하고 스스로 납득한 재량이 호진에게 다른 질문을 한다.


“근데 너 구씨잖아.”

“맞음.”


호진이 유진의 뽈뽈거림을 눈으로 좇으며 귀찮다는 듯 끄덕였다. 재량이 질문을 심화시킨다.


“왜 쟨 김유진이래.”

“그게.”


적절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써클실문이 또 한 번 벌컥 열렸다. 문을 연 상대가 누군지 단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이번엔.


“좀 들어주지?”


제 키보다도 훨씬 높은 상자를 들고 등장한 자가 고개를 빼꼼 옆으로 기우니 익숙한 한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고 서있지 말고.”


약간 썩은 표정으로 상자를 받아든 재량이 입을 삐죽이며 바닥에 그걸 놓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상자를 찢어 열었더니 그 속에는 단 한 가지 아이템만이 들어있었다. 바나나우유. 갑자기 어디선가 호진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마를 짚고 그럼 그렇지! 중얼거리는 호진은 자신의 누이가 어떻게 꼬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확답을 얻었다.




그새 자리를 잡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클릭질을 하고 있는 유진의 입에는 손톱보다는 좁지만 긴 빨대가 물렸다. 그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은 한수는 반쯤은 넋이 나갔다. 드문 드문 이런 이퀄 어떻게 주는 거야? 혹은 이 소스는 어디서 가져온거야? 하고 물으면 유진은 한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나나우유를 머금은 입으로 대충 대답했다. 이거 누르고 이거 누르면 이 효과 나오고, 소스는 내가 직접 녹음할 때도 있고 프리쉐어사이트가서 받아올 때도 있는데 주소보내줄까? 하고 별 감흥없이 말하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품이 큰 체육복이 유진을 잡아먹은 듯한 모양새인데 겉모습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반팔 소매를 접어올리며 유진이 물었다.


“근데 어떤 곡 하고 싶은데?”


모두가 대답이 없자,


“어디 내려고?”


다시 물었지만 또 다시 대답이 없자,


“세상에. 이렇게 아무 계획도 없으면서 나더러 가입하라고 한거야?”


하고는 바나나우유 단지를 모니터 옆에 살포시 놓는다. 호진은 시선을 회피하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왔다갔다 문 옆을 배회한다.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기세좋게 쏘아붙이듯 말한 유진은 그 와중에 수지에게 선생님더러 한 얘기는 아니라고 변명을 하고는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사실 목표가 없는 건 아닌데...”


한수가 말했다.


“뭔데?”


유진이 턱을 괸채로 물었다. 물론 김유진이라는 애를 꼬셔오자고 제안한 건 자기자신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유진이라는 아이의 태도가 마냥 마음에 들지 않던 재량이 한수의 팔뚝을 잡으며 슬쩍 귓속말한다. 야, 그냥 내보내. 한수가 픽 웃는다.


“우리가 돈이 좀 필요해서.”

“왜 뭐하게?”

“집 살거야. 작업실 겸.”

“여기가 니 작업실인 줄?”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는데. 안돼, 이 퀄리티로는.”

“하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양수지의 심정이 묘해진다. 옆에 있던 재량이 슬쩍 눈치를 살피다 대신,


“야 말 가려서해.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임마.”


하고 쏘아붙였지만 ‘이 정도면’이라는 말에 자신의 비밀장소나 다름없던 독서실같은 창고실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양수지가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정색을 하며 가방을 어깨에 맨다.


“어디 가시게요?”

“집에.”


데려다 드린다고 벌떡 일어나 외투를 걸쳐입고 함께 나서는 재량의 커다란 등허리가 사라지고 나서 유진이 한 마디 한다.


“쟤 되게 티난다.”


나도 어디 좀 갔다 올게 하고 나서는 호진의 뒤로 한 박자 늦게 한수가 유진에게 그게 뭔 소리냐고 묻는다. 유진은 대답 대신 문도 안닫고 나가버리는 호진의 뒷통수에다가 야 구호진!!! 꼬리가 길다?!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발랑 열린 문으로 호진의 커다란 등이 움찔 했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게 보인다. 묵묵히 마우스로 작업물을 클릭하던 유진에게 조용히 있던 한수가 묻는다.


“동생이랑 사이 안좋아봐?”

“왜?”

“아니, 남같아 보여서...”

“새엄마라는 여자가 우리가 붙어다니면 그걸 좀 아니꼬아하거든. 그래서 일부러 저러는 거야. 신경쓰지마.”


한수의 시선이 모니터로 옮는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포물선이 음악파일의 소리에 따라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다.




수지가 헬스클럽을 끊어서 다닌다고 했더니 오훈은 웃어댔었다. 너 자전거도 포기해, 운전면허도 포기해, 이젠 헬스클럽이냐며 가볍게 놀렸다. 대판 싸웠다. 그러고 난 다음 날이었으니 재량이 왜 이 쪽길로 가시냐고 집으로 가는 쪽은 가로수길 아니냐고 물어봤자 양수지는 헬스클럽으로 가는 길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해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자에게 놀림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쌤.”

“으응.”


어떻게 잡는 목표마다 다 이렇게 접게되는 걸까.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젖어있는 양수지의 귀에 재량이 궁시렁거리듯 하는 말이 들릴 턱이 없었다.


“-래서, 한수랑 같이 살려구요.”


변성기가 지나 허스키하다못해 날이 빼죽빼죽하게 선 목소리가 기어이 양수지의 귀에 들어선 게 그 때였다. 뭐?! 너무 놀라 목소리도 내지 않고 숨소리만 헉 낸 양수지의 얼굴에 재량이 더욱 당황한다. 이제껏 그렇구나, 그래, 그랬구나, 하더니 갑자기 변한 양수지의 반응 때문이다.


“왜?!”

“아까 말씀드렸...”

“못 들었어!!!”


너무 당당하게 못 들었다고 하니 재량이 자기 말에 양수지가 귀를 안 기울였었다는 사실은 뒤로 한 채, 당황하며 다시 설명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미국으로 유학가라고 아버지가 그랬대요.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한수 그 새끼 어디가 좀 꼬였잖아요. 도벽있는 것도 그렇고. 암튼 그래서 앞에서는 간다 그래놓고 저더러는 상금버는 족족 모으고 있는데 그걸로 변호사 고용해서 아버지 엿먹이고 독립할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뭐랬는데?”

“아버지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고. 잘해드리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충격을 먹을까. 양수지는 생각한다. 자퇴까지한 생양아치 강재량이 전교일이등을 다투는 박한수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조언을 하다니. 재량은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방해하면 저도 고소하겠대요. 쌩또라이가.”


재량이 우뚝 발걸음을 멈춘다. 그래서, 하고 말을 이었다.


“같이 살기로 했어요.”


원인이랑 결과에 인과관계가 전혀 안 맞는 것 같은데? 양수지가 저도 발걸음을 멈춘 채로 강재량을 슬쩍 올려다본다. 그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읽은 재량이,


“상금 같이 모으자고. 대신 아버지 엿은 먹이지 말라고. 그랬어요.”


라며 이제껏 없던 맑은 표정으로 웃는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아이였다니. 양수지는 재량에 대한 평가를 매일 매일 새로이 하는 것 같았다. 연이어 약간 들뜬 목소리.


“잘했죠?”


오늘의 발견은 강재량의 때묻지않은 천진난만함.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4 07:09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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