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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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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8.2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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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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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권 (14)

DUMMY

9월 13일


확인해 본 바로는 젓가락 반 개, 어림 잡아서 30ml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 만으로는 측정 불가능하고 계속 해봐야되긴 하다. 아무래도 젓가락들의 부피들이 균등하지 않고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까 자세한 조정 능력도 같이 키우면서 말이다.




9월 14일


도대체 어떻게 잡아드리는 건지 모르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잡아드렸다고 한다. 오늘 갓 나온 소문이지만 레네의 집에까지 구두로 전달되었다. 직업은 아닐 테지만 떠들고 다니는 게 본성인 사람이 있나 보다.

그러므로 궁금해졌다. 과연 잡아드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한 취조는 보안관 쪽에서 할 터라 대면하는 일은 무리일 거란 생각으로 그곳으로 찾아갔다.

살인 용의자는 하필 그 애의 아버지였다.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거늘 갑자기 이렇게 마을 전체의 스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어보지도 못했으니 이유란 모른다. 이유를 모르기에 더욱 갑갑하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의 관점은 그의 가정에 있었다. 그가 스스로 벌을 받는 것은 내가 뭐라 할 처지는 못 된다.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고 판명이 나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부인과 자식은? 보안관에게 물어본 바로는 혈육에게는 딱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치란 건 아무래도 벌을 말하는 것일 텐데, 이는 사회적인 방관에 가깝다고 본다. 최소한 공범이라는 증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의 부인과 자식은 무고하게 피해를 입는 셈이 된다.

특히나 그 애는 어떨까. 실제로 살인을 저질러 본 입장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죄 잡혀들어갔다면 무슨 심정일까. 아무래도 변수가 허다하다. 지금의 심정을 이해하기 이전에 수금자를 죽이고 모른 척 한 순간부터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고 이해가 되겠나.

그래도 문제라는 것은 인식이 된다. 적어도 좋은 쪽으로의 발전은 아닐 거다.




9월 15일


각자 자숙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조금 위험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다시 그 훈련소로 가보려고 한다. 입대는 아니고 미확인 거수자로서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들키지 않아야겠지만 말이다.

이유는 식인 행위라고 판단한 가죽 벗기기의 의의를 깨우치기 위해서다. 조금 더 뜻을 크게 했으면 훈련소 자체를 박살내서 모든 인원들을 풀어버리고 싶지만 그만한 담력은 나한테 없다.

세상에 그딴 등신 같은 곳에 들어가서 엿같은 기분을 겪지 않을 사람 없다지만 그래도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터다. 실제로 동기 중에 있긴 했다. 여기서 탈영해서 추적당하는 일보다는 죽기살기로 훈련이나 열심히 받고 출세할 희망이나 그려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럴까. 훈련소만 다치면 사람 가죽을 벗기겠나. 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훈련소를 혼자서 박살낸다고 치자. 물론 그것도 난 거의 무리라고 본다. 조직 하나를 암살로 다 처리했다고 해서 훈련소까지 그러리라 못 믿는다. 군대에서부터일 블루드의 출신상 소장 정도면 나는 햇병아리로 보지 않을까 두렵다. 일반인 대 일반인과 일반인 대 군인은 정신력부터가 다르다. 고작 현역과 본업의 차이는 확실히 있다.

정말 기적적으로 내가 이겼을 때 그들을 해방시켜준다고 하자. 훈련소가 박살났다는 소식이 위에 전해지겠다. 가뜩이나 전쟁 중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비상이나 다름없다. 군대는 기강이다. 괜히 이런 일을 방치할 리는 없다. 똑똑히 우리가 피를 볼 일이 발생한다. 이런 시대에 민간 물의는 나발이고 깽판 치려고 할 게 훤히 보인다.

나나 구해준 사람들이나 다 죽는 거다.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살아남는 것이고, 어쨌든 내가 그들을 구원해준 게 아니라 또 다른 지옥으로 이끄는 게 되는 거니까.

절대 구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죽이지 않는다. 하물며 그냥 1명이 탈영하기만 했는데 결국에는 쫓아오지도 않았지 않나. 위 두 개를 철칙으로 내일부터 나선다. 잠시 동안은 일기와 안녕이다. 일기까지 짐으로 가져갈 공간도 없다. 갔다와서 적으면 되겠지.

참고로 레네에게는 이번에도 도움을 받는다. 귀한 지도를 나에게 빌려준다. 내 계획을 제대로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설마 위법행위를 저지른다는 걸 전제로 빌려주는 건 아닐 거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서 내가 부담스럽다.

꼭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돌아와야 한다.




9월 20일


좀, 많이 내용이 많다. 뭐라는 건가. 손이 꼬였다. 피곤한데, 적지 않으면 내일 잊을 것 같고, 하여튼 일기를 안 가져간 내 잘못이다. 한참 정리해도 쓰려고 하니 막막해진다.

우선은 여행이야기부터. 여행에 걸린 시간은 4일 반. 이동이 대부분이었고,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서 막 쳐들어가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내가 탈영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조금 주변에 장애물이 많아졌다. 나름대로 이 시대의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벽이 약간 높아지기도 했고 그 위에 뾰족한 창 같은 걸 달아놓긴 했다. 사실 그 창이라는 게 억지로 돌무더기 사이에 쑤셔넣은 형식이라 주먹으로 날아갈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참호 무력화가 내 목적은 아니라 관두었다.

그래봤자 참호 정도를 강화한 정도였다. 탈영에서는 들켜도 도주만 빠르다면 상관이 없었지만 잠입은 들키기조차 허용이 안 되어야 하는데, 정작 나를 발견해야 할 경계들은 빈틈이 많았다. 뭔가 순찰이란 걸 하는 걸 보질 못했다. 대대적으로 고작 4달 전의 일이라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4달이면 충분히 마음이 느슨해질 만하다. 참호 쌓는데 고생도 많았겠다.

하도 대충 쌓아서 그런지 굳이 블루드를 써도 되지 않았다. 아, 물론 너무 대충 쌓아서 맨손으로 올라가는 건 버거웠다. 무너질 뻔해서. 정녕 전문가는 오지 않았나. 내가 편해서 오히려 좋은 결과였다.

밤 중의 해체실은 이상하리만치 경계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늘 갓 해놓은 듯한 살가죽이 존재했다. 당연히 사람의 것이었다. 그렇겠다. 가죽이 된 이상 사람의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것일 거였다.

그리고 살가죽만 있는 게 아니었다. 커다란 깔때기가 꽂혀 있는 큰 유리병이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액체도 없었지만 에상은 갔다. 사람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액체란 땀 등의 노폐물 아니면 피 밖에 없겠다. 노폐물을 굳이 깔때기까지 써서 뽑을 리는 없고, 순전히 피를 원하는 거였겠다.

살가죽과 피, 연관성을 바로 찾진 못했다. 살가죽은 의료 부족? 피는 흡혈귀? 헌혈이라기에는 유리병 따위로는 쉽게 부패되는데?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기껏 힘겹게 의문의 창고에까지 가보았지만 접근은 어려웠다. 그래도 창고는 경계가 있었고 열쇠가 필요해서 무작정 돌파하는 건 무리였다. 타협했다. 가봐도 의미가 없을 여지가 많다고.

따라서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염탐만 했다. 작은 통풍구로 본 창고 안은 예상대로 살가죽과 피가 빼곡히 차 있었다. 그래봤자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친절하게 어디에 쓰인다고 메모가 적혀 있으면 모를 터였다.

별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괜히 긴장만 해서 땀만 흘려 빨리 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뭔가 퀘퀘한 도시보다는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땀이 기분 나쁜 땀이 아니라 참을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오래 걸어서 발에 물집이 잡힌 것은 공기와 상관없는 생리현상이었다.

그러나 발에 물집이 잡혔다고 해서 도시의 상황은 전혀 좋지 못했다. 언제나 세상은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건 도저히 그런 개념으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물집 잡힌 발로 안 뛰어가기가 힘들었다.

역대 최악의 사건이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보안관이 죽었다. 나쁘지 않은 인물이기는커녕 믿음직한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죽었다. 어째서 그런 사람이 죽었지, 라고 한탄하진 않는다. 이게 운명같은 사고라면 몰라도 나를 비롯해서 전부 사고로 보고 있지 않고 있다.

이틀 전이었다고 한다. 목격자는 없고 딱히 사고를 일으킨 사람도 없다. 그저 남은 것은 돌에 머리를 세게 맞았다는 사인뿐이었다. 명백히 암살이었다. 목적도 모를 암살.

이번에도 심증만이 남았다. 보복을 위한 암살이란 것으로. 그렇다고 해도 보복을 위한 암살이라 함은 공개적으로 딱 2명뿐이었다.

절도범과 그 애의 아버지. 너무 적은 용의자라 비난의 화살은 단숨에 날이 세워졌다. 가장 유력한 것은 현재진행형인 그 애의 아버지였다.

나야 안 했다. 치사한 방법이다. 그리고 여태까지도 그 애의 아버지는 살인 용의자였다. 괜히 살인자로 누명을 씌웠다고 복수를 했다는 프레임도 있겠지만 그것도 치사한 거다. 결국에는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살인사건의 진상이나 보안관의 죽음이나.

혹시나 싶어 몰래 그 애가 범인일 거라는 추측도 치사한 거다. 몰아세우기도 적당히가 있는 법이다. 전례가 있으면 다 범죄자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사이비 조직에게서 해방된 사람들도 잠재적 범죄자라고 지껄였던 나도 치사하긴 마찬가지다. 그걸 위해서 보안관이 등장한 것이었다만, 도리어 보안관이 죽음을 당한 것은 꽤나 큰 충격이다.

보안관을 죽인 사람을 찾기보다는 보안관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게 나을 지경이다. 이 혼란한 마녀재판을 끝내기보다 마녀재판을 중재할 인물이 필요하다. 그게 가령 내가 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고, 과연 이 마을에 저 보안관 말고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사이비 경찰 조직의 실태가 옳았던 건가. 그들이 있었으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까. 모든 일이 후회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론 후회하는 일이란 없다.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신세를 지고 있다고 자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다지 이 마을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각심이 하나라도 없는 듯하다. 나랑 상관없지도 않고 고성 또한 이 마을의 요소 중 하나이면서 누구나 들릴 수 있는 영역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내가 보기엔 아직 고성이란 장소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 내가 살고 있다고는 해도 레네 말고 누가 알고 있겠나. 절도범이었던 그 사람은 알아도 웬만해서는 모른다고 하는 게 옳은 것 같다. 고성의 존재감처럼 내 마을에 향한 마음도 옅다고 할 수 있겠다.

난 나를 고성의 주인이라 여기지 않는다. 잠시 임시로 빌린 거다. 빌려준 사람은 없지만. 언젠가 제대로 지방관리 체제가 개정된다면 이 고성은 결국에는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그런 변명으로 곳곳을 다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1명에서 이걸 어떻게 청소하냐.

하지만, 언젠가 올 관리분이 온다면 그리 반갑게 여기진 않을 거다. 본래는 주인이 없어야 할 자리에 노숙자가 한 명 들어와 사는 것이니 어쩔 수 있겠나. 그러고 보면, 그 때쯤이면 레네의 그림들도 다 같이 내가 빼야하는 거 아닌가? 언젠가의 얘기지만 골치아프다.

사실 가장 골치 아픈 건 역시 보안관 문제다. 벌써 차세대라는 것도 웃기긴 하다. 아니면, 이대로 차세대가 나오지 않을지 잠깐 동안은 낙천적으로 있으려고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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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권 (56) 20.07.28 6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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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1권 (48) 20.07.15 64 0 13쪽
47 1권 (47) 20.07.14 6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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