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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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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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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8.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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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권 (13)

DUMMY

9월 8일


파쿠르에 블루드를 접목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게 바보다. 조금 더 파쿠르를 쉽게 하도록 블루드를 써도 되겠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파쿠르 지형을 블루드로 만드는 편이 내 역량을 키우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될 듯했다. 그리고 이대로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추적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제 아무리 연습해도 벽타기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면 안 되는 영역이 안 되니까 일부러 클라이밍을 고성 벽에다 만들어 놓고 해보는 중이다. 꽤 성공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용성이 있을지는 미묘하다. 꽤 비파괴적인 실전에서는 쓸만하겠지만 벽을 넘으려면 벽을 부수는 방법도 있기는 해도, 내가 못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통과할 만한 구멍을 금방 낼 수는 없다.

레네의 그림에 후기를 남기자면 지극히 상상도에 가깝다. 저번에는 고성을 자신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그렸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말 그대로 상상의 장소였다. 자그마치 초현실주의로 파란색 계열의 물감이 많이 쓰인 걸 보자면 블루드로 이루어져 있는 성을 그린 것 같았다.

한 1만 명이 모이면 만들 수는 있을 성이다. 그것도 부유성이라니 거리감을 표현한 자그마한 도시들을 보자면 대략 비행기급의 고도는 올라가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또 하늘이다. 하늘을 꽤나 좋아하는 모양인데 과연 데려갈 수 있다면 비행기라도 태워주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비행기가 될 수는 없을 테다. 그 정도로 블루드를 발전시키면 비행기보다는 선인이 먼저 될 것이다.




9월 9일


얼떨결에 이사 온 그 애랑 만났다. 별 말은 안 했다. 그냥 만났다는 사실만 있는 날이다. 그다지 유쾌한 것 같지는 않다. 예전 같은 사제 관계도 아니고 그저 남인 상태에서 애 쪽도 희망적인 이유로 이사 온 것은 아닐 테니까. 동정은 가지 않는다. 화도 차오르지 않는다. 원상복구가 된 지는 오래 되었으니까 말이다. 모든 게 레네 덕분이 크긴 하다.

오늘의 본론은 레네다. 레네가 그림을 완성시키면서 물어보았다.


"블루드라는 건 상시 유지를 못 시키나요?"


유지할 수 없는 이유는 정신력이라느니 방출량이라느니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내가 블루드를 창시한 것도 아니며 어린 애들한테서 야매 방식으로 배운 거라 그렇다 할 틀이 있는 지식도 없다.

블루드의 작동 방식 자체가 여전히 미제다. 내가 쓰면서도 내 어디에서 블루드가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게 전신이라 할지라도 이런 푸른색 물체가 내 몸속에 있다면 현대 과학들이 다 부정당하는 결론이다. 의심해야 한다면 의심하겠지만, 의심한다고 한들 내가 알 방도는 없다.

한 번 블루드를 개통하고 나니 쓸 수 있다는 확신은 있어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게 참 간단하다. 내가 생각하는 무엇을, 내가 생각하는 어디에, 내가 생각하는 어떻게로, 그냥 육하원칙만 구구절절 나열만 해도 발동을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무리한 요구라면 발동이 되다가도 끊긴다.

그러나 끊기는 것에 부작용은 없다. 과부하라면 하드웨어 상의 손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부작용이 없다. 최적화로 일부러 내가 낼 수 있는 출력으로만 내는 건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에는 의지의 개입이 없다는 거다.

아무렴 집중을 해서 애를 써봐도 누가 한계를 정해놓은 듯이 그 이상으로 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웃기게도 누가 한계를 매일 늘려놓는 것 같이 조금씩 용량이 많아지곤 있다. 해봤자 10ml 부피 정도라고 본다.

상시 유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는 아무래도 내 의지와 직결되는 듯하다, 란 소리를 했어야 했지만 일기에나마 적는다. 어떻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걸 내일에라도 다시 만난다면 해야겠다.

그런데, 상시 유지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는 건 블루드를 배울 마음이 생겼다는 건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지만 배워도 부작용이 없는 기술이라면 언제든지 허용 가능인 편이다. 그래도 뜻은 확고할 듯한 느낌이다.




9월 10일


마을의 분위기 자체가 돌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보안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다. 물론 보안관을 타이르는 건 어리석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까지 하자는 건 솔직히 어느 시대에서든 난제로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사람이 살인을 벌이지 않을 심리를 모두가 가지게 한다는 건 모두가 평등하거나 모두가 희망차거나 상관이 없는 거다. 언제나 특이점은 존재하기 때문에 살인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나는 레네의 집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레네도 거치대를 고성에서 다시 옮겼다. 소강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보안관의 지시에 응해줘야 한다.

일단 레네도 아니다. 알리바이라고 하기에는 뭐해도 순수한 그림쟁이가 남을 살해할 만큼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엄연히 심증이긴 해도 레네가 벌였다고 한다면 살인을 어떻게 벌일 수 있을까.

사체의 상태는 확인해 본 결과로는 둔기에 맞아 죽은 상태였다. 머리에 강타되어서 상처가 잘은 안 보여도 한 번에 뚝배기를 깨버린다는 어마어마한 괴력은 흔히 존재할 리 없을 거다. 한 여러 번 가격했을 터다. 여러 번 가격할 때 피해자는 제정신은 아니었겠다. 한 번의 타격으로 최소한 자세를 잃었을 터니 그 뒤에 제대로 확인 사살한 셈이다.

적어도 블루드는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건 블루드는 아닐 것이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 애도 효율적인 걸 중시한다면 멋대로 즉살시킬 수 있는 걸 여러 번 가격해서 죽이진 않겠다. 애초에 이 피해자가 그 애한테 어떤 원한을 샀는지도 모르겠고.

설마 미쳤다고 여기에까지 와서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단순 쾌락을 위해서 저지르는 살인이란 건 내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그런 싸이코패스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것일까. 만나본 적도 없는 허구의 인물이라고만 느껴진다. 그 애가 그렇다고 단정짓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금자를 죽이는 것은 구실이라도 있었다. 이 촌극에 구실이란 게 있나. 충동적인 살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CCTV 하나 없는 게 아쉽다. 목격자라도 정확히 있었으면 몰랐을 걸. 오늘에선 해결이 될 것 같지가 않다.




9월 11일


여전히 확산되는 공포에 은근히 영향력도 큰 것 같다.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임시로 휴업하는 가게는 늘어난다.

그나마 사이비 경찰 조직이야말로 치안에 효과적이긴 했던가. 솔직히 감탄할 만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정보를 수집해서 심판하는 겸으로 재산을 독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우러러 볼 만은 하다. 단지 왜 그리 타락했는가, 혹은 천성이 그랬는지가 의문이지 그들의 실력에 있어서는 내가 의심할 처지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건 암수라는 방법으로 허를 찌른 것뿐이지 정면에서 맞붙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몰살시켰다고 해서 내가 성취감 따위를 느끼는 건 아니고 오로지 의문들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었으면 이런 범죄는 일어났을까. 그거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하자면 아닐 거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 조직들이 원하는 건 오히려 범죄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방향일 테니 예방은 순순히 주민들의 자의에 맡기는 일이다.

다만, 그건 있겠다. 이미 일으킨 사람들, 추후에도 유력한 잠재적 범죄자들에게는 족쇄가 사라진 사태였다. 사이비 경찰 조직을 내가 몰살시킨 후에 그 범죄자도 죄를 뇌우치기보다는 해방감에 물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새로 탄생하는 범죄자보다는 족쇄가 풀린 범죄자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구금되었을 때 미리 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따지자면 나도 충동적으로 그 조직을 몰살시킨 거다.

도대체 정의란 여기에서 어느 쪽에 있는가. 있기는 한 걸까. 없으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고고한 개념을 만들 수는 있는 것인가. 정의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에 의존하여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가. 꼭 올바른 정의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게 아니라지만 도리라는 것도 있지 않나. 설령 이곳에 그런 도리를 범국민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다 해도.

마냥 잠재적 범죄자를 진짜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건 마녀사냥이며 확실한 증거도 없다. 그리고 난 잠재적 범죄자들 중에 어떤 인물이 있는지도 모른다. 몰살시키기만 했지 그 이상의 정보는 나한테 있지도 않다. 다시 한 번 감옥을 탐방하는 게 나한테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9월 12일


전혀 단서가 없다. 무슨 장부나 문서라도 있을 줄 알았던 장소에는 그런 건 없었다. 그러면, 오로지 머리로만 모든 걸 다스렸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역시 못 믿겠다.

아무래도 두 가지다. 문서가 있는 장소가 원래 여기가 아니었거나, 웬만하면 하기 싫은 추측이지만 잔당이 다 소각시켰다거나. 다 소멸되진 않았다. 그래도 일부 물건들은 남아있으나 전부 사적인 물건이거나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정보는 없었다. 청소를 해도 주요 문서만 쏙쏙 처리했다는 추측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난 진즉에 위험에 처했어야 했다. 결과론으로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내가 몰살시킨 그 일원들이 잔당 없는 전부라고 생각하기는 이르고, 정보력 차원에서 방콕을 하는 조직도 아닐 테고 분명히 부재중이었던 잔당도 있을 것이었다.

내가 아예 신경을 못 쓴 게 아니고 신경을 써도 못 잡으니까. 조직에게서 탈출하여 고성에 돌아오고나서도 오랫동안 두려웠었다. 또 그 놈들의 손아귀에 내가 놀아날지, 아니면 복수귀의 손에 내일이 없어질지.

블루드 집단이 블루드 사용자를 두려워할까. 아니면, 적들이 나의 전력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사실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진지한 소리는 여기까지-


저런 진지한 소리를 하게 된 계기란 재탐방한 사실도 있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블루드를 발전시킬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젓가락이다. 내가 상상한 만큼의 용량을 만족 못하면 구현조차 실행이 안 되는 것을 착안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고 레네의 의견이었다. 딱히 이런 블루드의 성격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블루드도 성장하는 재능 같은 거죠? 젓가락의 개수로 단계를 파악하면 안 되나요?"


그간 블루드에 대해서 내 자신을 과신한 게 있었다. 오늘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석탑 같은 걸 상상하면서 시도해보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터라 과신만큼 실망도 하는 중이었다.

젓가락이면, 적당한 단위다. 급한 마음에서는 벽돌 단위로 하고 싶긴 하나 성장치를 확인하자면 젓가락의 부피가 적당하다. 70개 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개수지만, 젓가락의 크기 자체를 늘리면 되는 거라 상관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미숙하다는 걸 느낀다. 똑같은 젓가락을 만들면서 정작 젓가락의 세세한 부분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개선할 사항이다.

갈수록 레네에게 갚아야 할 은혜만 쌓이고 있다. 생활면으로나 블루드에서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으로는 역시 창의력이 제일인 것 같다. 내가 비록 블루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라도 레네는 내가 본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위인에 버금가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불공평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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