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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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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6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1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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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1권 (49)

DUMMY

사지 달려 있고 생채기는 없고 안색에 혈기가 돌아 다행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그동안 보내놓은 게 있어 태연하게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괜찮나요?"

"멀쩡해. 너는?"

"괜찮죠."


라며 예의상 한 말을 하연은 귀담아 듣지 않은 채 내 주위를 맴돌았다. 묘한 생김새를 나에게서 느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나도 찔리는 감이 없지 않았다.


"두건은 뭐야?"

"치장품이죠."

"그럴 리가."

"신경 쓰지 마세요."


라데르나 사리나 님은 속였으나 하연은 못 속였다. 제 아무리 어색할 두건이라도 오지랖이 넓지 않고서는 이에 대해 아는 척하기가 껄끄러울 것이었다.

하연은 접근해서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들춰봐도 되니?"

"그러세요."


결국 포기한 심정으로 하연에게 숨기려고 했던 뒤통수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치장품이라는 변명이 마냥 변명이지만은 않았다. 거의 도려낸 듯한 흉터였기에 살점과 함께 머리카락 째로 날라갔으니 아문 살 위에는 맨들맨들한 살 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흉년이 되어 제대로 재생하기까지는 내년 쯤일 거라 예상한다.


"어떻게 된 거야?"

"호되게 당해버렸죠."

"살 수 있는 상처였어?"

"저도 살 수 있었는지 몰랐는데요."

"의외네."

"레인저 출신으로서 아는 건 없나요?"

"레인저 출신으로서 널 이렇게 만들 실력자는 없다는 거에 인생을 걸고 싶었어."'

"레인저는 아닌가요?"

"봐야 알겠지. 일단 아닐 거야."


살수사냥꾼들이 레인저가 아니라는 심증이 늘어났다. 소거법의 한 갈래만 줄어든 거라 영향은 적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하연에게 시키는 건 무리일 테고, 내가 스스로 알아보는 게 올바를 것이었다.


"그리고 저, 사리나를 찾았어요."

"알아. 이 파티에 네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 알고 들어온 건 아니지?"

"우연이죠, 우연."

"웬만한 웹드라마보다 작위적으로 보이는데?"

"결백하다는 걸 알려드릴 방도는 없어요."

"네가 하는 말은 믿어야지. 괜히 전재산을 써가면서까지 보낼 필요는 없었겠지."

"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골똘히 생각했다. 하연이 나를 보고 등장했다는 말은 오늘까지 사리나 님의 행방을 추적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우연으로 이 파티에 온 것이지만 하연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사리나 님의 평소의 행방을 추적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점을 묵인하는 건 무리였다.


"누나는 사리나의 실체를 알았나요?"

"······."


그저 응시만 하던 하연이었다. 사려 깊은 표정이 드러나 가벼운 사항이 아니라는 표시를 강력히 전달해주고 있었다.


"넌 사리나라는 인간을 왜 찾으려고 한 건데? 단순히 예전의 은인을 찾고 싶어서? 아니면 그 밖의 이유가 있어?"


사리나 님과 내가 같이 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하연에게는 바로 이해가 안 될 부분이었다. 특별한 이유라고는 1차원적인 것밖에 없어서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한 눈에 반했거든요."

"······."


다시금 그 표정으로 돌아갔다. 곤란해하는 정도는 올라갔다. 그렇게 마음에만 말을 담고 있으면 내가 알 수단이 전무했다. 힌트 없는 퍼즐에 답답했다.


"무슨 일인데요?"

"넌 내 얘기를 듣고도 믿을 자신이 있는 거지?"

"···사리나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 맞죠?"

"그래서 묻는 거야. 너의 환상을 깨뜨릴 수 있다고 신신당부하는 거야."

"제가 판단할 테니 말해주세요."


하연은 기어코 입을 열었다. 한 글자라도 잘못 듣지 않게 전신을 집중하였다.


"사리나의 행방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해봤자 1주일 전,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결심했었기 때문이지. 편파적인 해석을 네가 믿을까봐 미행으로 따라 붙기로 한 거야."

"1주일을 가지고 제가 화낼 수 없죠."

"오래 걸렸어. 광범위한 대륙에 육박하는 국가에서 사리나라는 한 사람을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지. 특히 군 관계자라면 보통 일은 아니야.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있었거든? 적어도 여정을 떠나기 전에 떠올렸던 계획들은 모조리 실패했어. 그동안 40여곳의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그걸로는 부족했어."

"원하시는대로 보상해드릴게요."

"네 성의대로 줘. 자금 자체는 그리 부족한 게 아니거든. 그리고 죽다 살아온 애에게 받고 싶진 않아."


임무를 수행했어도 저 정도로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비록 살수사냥꾼들과의 마찰이 있었다만 그걸 떠나서 나보다 하연이 고생했다고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과감한 방법을 썼지."

"어떤 방법이요?"

"네가 사리나를 만났다는 성에서 경비 한 명을 고문했어."

"잘못 들은 거 아니죠?"

"고문했어."

"아니네요."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어서 식은땀이 흘렸다. 인도적 차원 따위 나도 개나 줘버린 후라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리나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고 싶었지. 다행히 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 특별히 마차를 이용한 걸 알 수 있었어. 성내의 기록을 뒤져보고 올바른 진술이었다는 걸 밝혔지."

"그렇게 차근차근 행방을 유추했군요."

"문제는 그것도 세 번째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었지."

"원점인가요?"

"원점은 아니었어. 어디론가 사라졌다기보다 그곳이 종점일 거란 예상으로 끝까지 뒤져보았지."

"그래서 찾은 건가요?"

"그래서 사리나를 찾긴 했지."


뜸을 들이고 이어 말했다.


"거기가 어디였는 줄 알아?"

"전 모르죠."

"우리가, 이 세계로 넘어온 곳."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마지막 말을 기점으로 흥미를 넘어서 흥분의 단계로 넘어가려는 중이었다. 애써 아닌 척 웃음기를 짓고 있었지만 쓴웃음으로 하연의 말에 반응했다.


"사리나 님이 그 관계자라는 건가요?"

"있다고 해서 무조건 관계자, 주모자, 용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 하는 장면을 내가 목겨하진 못했으니까. 유력하다고, 말하고 싶어."

"참, 혼란스럽네요."


내가 평소에 나를 이 세계를 보낸 이에 대해,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줄지 전혀 고민을 안 하고 있었다. 만약에라도 만날 일이 없을 거며 찾으려는 시늉조차 안 했다.

그것, 소환이란 출생처럼 은인도 원수도 아닌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인생이 잘 되거나 못 되거나 소환이나 출생 탓을 할 수 없으니까. 빈말로 날 태어나게 해줘서, 이 세계로 오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면, 전혀 인과관계와는 관련 없이 책임이나 선망의 대상이 딱히 없어서 하는 헛소리겠다.

아무나 날 이 세계로 데려왔다고 말한다면 살짝 호기심에 발을 담그는 정도에서 그쳤을 터였다. 그러나 사리나 님이 소환사라고 하면 말이 달랐다. 소환사가 사리나 님인 게 문제인 게 아니다. 사리나 님이 소환사인 게 문제였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이고 전체주의적으로 하는 소환이란 행위가 문제 될 수 없는 건 아니다마는, 중립적인 성향에서 사리나 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저 중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역적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아직 확정은 아닌 거죠?"

"아마도."

"지금 사리나 님은 뭐하고 계시나요."

"어느새 님을 붙였네."

"그러네요."


님은 생각 속에서만 쓰던 문어체였다. 구어체로는 님이 어색하니까 안 쓰고 있었지만 이 때는 혼란스러워 착각되었다.


"물어볼 수는 있겠어?"


하연이 내 상태를 의심하는 게 적절했다. 매우 불편한 상황이기에 아무쪼록 신뢰를 삼기란 무리가 있었다.


"야간 타임에 물어볼게요."

"맞다면."

"맞으면, 맞는 거죠.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지켜보고는 있을게."

"오늘부터 돌아올 건가요."

"네 하기 나름이야."


왔던 창문으로 나가 손수 닫고 사라져주는 하연이었다. 많은 짐을 맡긴 것은 맞지만, 그 많은 짐을 들어주는 쪽도 진성이었다. 어디에 아낌없는 배려의 원천이 있는 건지 하연은 개성 자체가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남이 돌봐줘야 내 인생의 사춘기가 끝나는 걸까,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




야간 행사 시작에 앞서 집사들이 돌아다니면서 각 방에 무언가를 전달해주었다. 소리만 들려 나한테도 올까, 하다가 바로 발소리가 내 방문을 향해 가까워졌었다.

그들이 건네준 것이란 무작위의 무도회 가면이었다. 눈만 가리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는 안 물어봤다. 그렇게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지는 않았다.

가면 무도회임을 알리는 초석이었다. 내가 받은 가면을 설명하자면 빨간색과 자주색이 강렬하게 섞여있는 뾰족한 가면이었다. 쓰고 거울을 바라보면 내 눈에는 가면보다 그 사이에 담긴 갈색 눈동자가 잘 보였다.

가는 길에 무리 지어서 가는 일행들이 보였다. 가면 무도회의 정의를 망각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떻게 구성을 짜든 오류나 허점은 있을 것이었지만, 성의가 없었다. 아니면, 낡은 관습이니까 형식만 갖추면 된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라데르가 상대적으로 늦게 오기만을 바랬다. 반대로 말하면, 사리나 님이 라데르보다 먼저 회장에 오기를 바랬다. 하연에게 각오한 대로 사리나 님에게 제대로 물으려면 맨투맨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했다.

나를 비롯한 피소환자들의 존재는 알다만 사회 전반이 소환이라는 술법에 대해 문외한인 편이다. 내가 할 질문은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기존의 사고방식의 틀을 깨버릴 수 있는 섬세한 사항이기에 누설을 금물이었다.

바실리스크보다 훨씬 큰 문을 열고 들어간 무도회장은 2층으로 된 홀이었다. 2층이 1층을 보는 관객석 같이 되어 있어 2층은 없다시피했다. 1층에 웬만한 기재들이 다 있었다.

주간의 뷔페보다 다과회 풍이 진해진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밟기 무서운 선명한 무늬의 바닥에 향긋하게 풍겨오는 와인잔들의 행렬에 무도회는 뒷전으로, 또 먹고 마시는 파티였다.

그래도 무용을 하러 온 몇 명도 있었다. 주간에 볼 수 없었던 옷매무새에 갈아입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의도된 게 보이는 중앙에서의 듀엣은 관종 같아 보여도 피날레를 장식하면 예의로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일단 사리나 님을 찾아다녔다. 1층의 구석구석을 뒤져보고 혹여나 옆방이 따로 있는지 열리는 문을 확인해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1층은 전멸이었다.

올라간 2층은 1층보다 얌전해서 찾으러 다닐 건덕지가 없었다. 슬그머니 사람들의 생김새를 확인하는 게 다였다.

구석진 곳에 의자에 앉아있는 부자연스러운 사람을 발견했다.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어 사리나 님인지 판별할 수 있었다.

사리나 님이 맞았다. 정말 가면이 쓸모가 없었다. 제 기능을 못하는 탓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거라 욕은 안 한다.


"사리나 님?"

"왔어?"


기다리고 있었던 사리나 님은 미리 의자를 옆에 대기시키고 있었다. 2개나 배치되어 있어서 아마 라데르까지 생각한 듯했다.


"혼자 먼저 왔어?"

"조용히 왔죠. 라데르는 무도회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요."

"밑에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안 먹으세요?"

"배불러."

"그런가요."


라데르라서 오래 시간을 끌어줄 것 같다마는 그 시간만에 거사를 치르려는 게 힘들었다. 타이밍만 잘 잡으면 될 줄 알았지만, 그래서는 영원히 못하리라 나를 불신했다. 무계획으로 온 게 자랑이 아니었다.


"춤 출 줄 알아?"

"춘 적 한 번도 없어요."

"나도 못 춰. 배우려고 해도 의지는 없지."

"왜 배울까요."

"돈 벌려고?"

"왠지 저희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요. 블루드를 쓰는 입장에서 다른 기술들이 의미가 없어보이긴 하잖아요?"

"그건 그래. 블루드로 오만가지를 다 해낼 수 있잖아."


즉석에서 계획적인 걸 이끌어내는 걸 바라지 않았다. 얻어걸릴 방도가 찾아보기 위해서는 틈이란 틈을 고려해보았다.

위 대화 같은 경우에도, 억지로 끼워맞춰서 블루드 얘기에서 내가 피소환자라는 얘기로 전환하는 식으로 하려면 할 수 있었다.

단지 때가 늦었었다. 그게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


"테즈는 전장에 계속 서고 있어?"

"어, 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의도대로 흘러갔다. 살수가 아니라는 걸 숨겨야 하는 걸 거짓말은 기본이었다.


"매일 그런 곳에 서 있다가 이런 곳에 있는 게 꿈 같죠."

"그렇구나."


간접적으로 사리나 님은 전장에 안 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연의 정보를 토대로 보자면 신빙성이 생겼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살수라고 해서 내 진짜 직업을 숨긴 채 사리나 님의 정체를 밝히려고 드는 게 옳은 일인가. 합리적으로는 내 직업을 숨겨도 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내가 품고 있는 연심도 진짜라서 어떻게 합리를 주장하기란 불가했다. 이번만은 본 힘을 다해서 진정성을 추구하도록 했다.


"아니에요. 전 전장에 서진 않고 있죠. 그보다 더 악독한 일을 맡고 있어요."



"살수인 거지?"



기어이 말하기도 전에 사리나 님은 내 대답을 가로챘다. 설마 알 리는 없을 거라고 간과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늘상 웃고 있는 인상이라지만, 저 미소가 나를 갖고 놀았다는 음흉한 미소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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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권 (8) 20.08.15 73 0 12쪽
65 2권 (7) 20.08.12 65 0 12쪽
64 2권 (6) 20.08.11 81 0 11쪽
63 2권 (5) 20.08.10 63 0 11쪽
62 2권 (4) 20.08.08 51 0 12쪽
61 2권 (3) 20.08.07 46 0 12쪽
60 2권 (2) 20.08.05 64 0 14쪽
59 2권 (1) 20.08.03 46 0 13쪽
58 1권 (58) 完 20.07.31 43 0 27쪽
57 1권 (57) 20.07.29 87 0 16쪽
56 1권 (56) 20.07.28 69 0 14쪽
55 1권 (55) 20.07.26 63 0 12쪽
54 1권 (54) 20.07.25 45 0 14쪽
53 1권 (53) 20.07.23 40 0 13쪽
52 1권 (52) 20.07.21 32 0 14쪽
51 1권 (51) 20.07.20 50 0 13쪽
50 1권 (50) 20.07.18 51 0 13쪽
» 1권 (49) 20.07.16 63 0 14쪽
48 1권 (48) 20.07.15 64 0 13쪽
47 1권 (47) 20.07.14 6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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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권 (45) 20.07.11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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