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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44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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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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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권 (51)

DUMMY

"테즈의 동료 맞지?"

"동료가 맞긴 하죠."


조력자와 동료가 엄연히 같다고는 할 수 없긴 했다. 그러나 그건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 핵심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여 긍정했다.


"들킨 거예요?"

"어, 들켰어."

"어떻게죠?"

"테즈가 내 뒤를 캤다는 것에서 추적자가 있다는 걸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내 덕분에 하연이 들켰다는 소리였다. 평소에는 누가 쫓는다는 의심을 안 하는 것은 알겠지만, 의심한 이상 추적을 어떻게든 잡아내려는 솜씨는 여간 장난 아니었다. 무려 하연을 잡아냈으니 말이다.

사리나 님의 블루드 수준이 궁금해졌다. 날 발현시킬 때 보여준 날개 말고는 그닥 아는 바가 없었다. 가르쳐 준 뤼펠도 결국에는 본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기초적인 것만 보여주었고, 라데르는 기초 중의 기초만 보여주었다. 그나마 사리나 님이 개방적이었다.


"그러니까, 따돌리지 못한 거죠?"

"내가 잡은 거야."


자랑스럽게 사리나 님은 얘기했다. 내가 성공한 실험체라고는 하나 사리나 님도 만만치 않을 듯했다. 살수사냥꾼들 같은 실력자를 본 적이 있기에 신빙성이 없지 않았다.


"덕분에 같이 방도 얻어먹고 고마웠어요."


자기는 즐겁다고 하는 사리나 님과 달리 하연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기색을 품었다. 포커 페이스에 가까운 기행이었다. 어떤 협박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건 잘못된 선택일 게 분명했다.


"이대로, 3인으로 가나요."

"한 명을 낙오시키는 건 쓸쓸하잖아?"

"그건 맞긴 한데요···."


맞기는 무슨, 나와 하연 둘 다 허락한 적은 없었다. 하연에게도 밝혔듯이 짝사랑 상대인 것을 하연이 과연 동참할지 의문이었다. 과반수는 반대를 하는데 압도적인 소수의 재량으로 찬성이 되었다.

계속 하연이 말없이 가만히 있던 것은 어떻게든 해보라는 표시였는지도 몰랐다. 극악의 상성인 하연과 사리나 님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써, 굳이 말하자면 혼자 가는 때보다 안 좋은 변수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을 더 추가해서, 이래선 데이트가 안 되었다. 어딘가로 나들이 가는 형식이 되어버려 진지함은 싹 사라져있었다.

이 상황에서 하연이 안타까움을 승화시켜줬다. 나 모르게 승마를 따로 배웠던 터라 나에게 사리나 님을 태워주게 하였다. 이쯤되면 조력자에서 동료로 승진시켜도 후회없을 공헌이었다. 무한한 신뢰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는 길은 순탄했다. 국경을 넘는 작업에 있어 땅굴을 파는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사리나 님이 아는 통행이 자유로운 루트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전쟁통이라도 불법무역이 존재해야 생계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표면으로는 적대시하고 있으나 암묵적으로 몰래 교류하고 있는 두 마을이 있었기에 마은 편히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가끔 드나드는 감사관들은 조심해야 했다. 무턱대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악랄한 종자들이라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하룻밤새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보니 몇 박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하연과 사리나 님이 같이 있는 방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귀를 대고 있었다.

도청은 효과가 없었다. 서로 강렬한 반응을 일으킬 조합일 것 같으면서도 하연이 미리 일찍 잚으로 발화를 무마하는 듯했다. 유난히 내 방보다 불이 일찍 꺼져서 그랬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살수사냥꾼들의 등장을 두려워한 탓인지 날이 갈수록 자는 시간을 줄어들었다. 아직까지도 벗어던지지 못한 두건을 의식할 때마다 전신무장을 준비하곤 했다. 오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욕심으로 배째는 것이 편할 텐데, 말처럼 그러리란 쉽지 않았다.

위안이 되는 부분은 하나 있었다. 함정이 아닌 이상 웬만해서 오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내가 받은 임무도 국내에서 해결 가능할 임무라, 만약 살수사냥꾼들이 나와 똑같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행선지에만 안 간다면 괜찮을 일이었다. 여러명이어도 전국민이 다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

남사르에 도착하기까지 한나절도 안 걸릴 때즘에야 사리나 님이 제안한 이 여정의 의의가 궁금했다. 이미 답을 알았지만 말이다.


"왜 가는 건가요?"

"내가 테즈를 연무제에 부른 이유를 찾으러 가는 거잖아?"

"그렇지만, 가면 안다는 소리를 할 거죠?"

"맞아."


하지만, 내가 거쳐갔던 도시이긴 하다만 하필 남사르일 것은 없었다. 설마 살수사냥꾼과 관련되어 있을 거란 불안한 느낌도 있었다. 사리나 님에겐 미안해도 수 틀리면 전신무장으로 여러명까지 생존시킨다는 보장은 없었다. 낯설지 않은 길에서 고삐를 단단히 잡고 긴장했다.


"뭐야."


의문을 품은 목소리는 하연이었다. 낯설지 않은 길이라고 했다만, 하연과 똑같은 말을 할 만큼 낯선 풍경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차마 길이라고 무색할 폐허가 있었다. 억지로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가 이 지역만 강타한 듯한 형상이 길을 끊고 배치되어 있었다. 나무는 제자리에 선 게 하나 있는데, 그것도 줄기가 덜렁덜렁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빈사상태였다. 돌과 흙은 말할 것도 없다.


"계속 가자."

"남사르로 가는 것 맞나요."

"지도는 잘못되지 않았어."


이미 지도에 나온 것과 다른 게 보인 이상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리나 님에게서 비장함이 보여 대꾸를 그만두었다. 네비게이터가 된 사리나 님의 지시를 따라서 내 말을 선두로 쭉 길을 재촉했다.

가도가도 폐허만이 있었다. 단번에 갈아엎다만 공사라고 하기에는 난잡하기만 했다. 전혀 사람이 했다고 믿기지 않은 풍경이라 자연 재해 말고는 이해가 안 되었다.

가는 길목만 그럴 거라고, 남사르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 왔어."

"뭐라고요?"

"여기가 남사르야."

"아닌 것 같은데요?"

"테즈가 왔을 때랑은 다를 거야. 기억 못하는 거잖아?"

"기억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의원한테서 들었거든."


희망마저 사라졌다. 관문 같은 게 있었을 구간이었지만, 내 신장을 훨씬 밑도는 잔해들만 깔려 있고 모조리 붕괴된 상태였다. 이것만 보자면 자연 재해로 볼 수 있었다.

문제는 남사르의 서구만 박살이 났다는 것이었다. 선택적 자연 재해인지 일정 구간만 나눈 채로 다 부서진 형태였다. 모래 뺏기처럼 누군가 구역을 지정한 듯 그 단면은 깔끔했다.


"왜 이렇게 된 거죠?"

"테즈가 한 거야."


그 자연 재해라는 게 나였다. 기억을 못하기에 과연 내가 맞는지는 의문이었다. 이대로 선동당하고 있다는 불신이 들어 사리나 님이라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요."

"바로 믿지는 않는 거네?"

"이러려는 이유가 없었어요."

"이유가 없더라도 결과가 있는 걸 어떻게 해?"

"누가, 가르쳐 줬습니까?"

"내가 현장에서 보고 있었다면 믿겠어?"

"네?"


한순간 어마어마한 비밀들이 내 머리를 강타해서 정리하기 바빴다. 얼마 없는 정보들이지만 어디 하나라도 불신한다면 모든 정보가 모순이 되어버리기에 어느 것이 거짓인지 판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사리나 님은 살수사냥꾼이 아니었다. 복면을 떠올렸지만 복면의 목소리는 사리나 님께 아니었다. 전신무장과 뿌리 혹은 사슬 안이라서 제대로 목소리가 안 들린 것도 있지만 비슷한 수준도 안 되었었다. 역시 불신하는 요소였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죠?"

"테즈가 구속된 채로 피 흘리고 있는 모습부터 보고 있었지."

"들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테즈는 모를 거야. 황폐해진 풍경이 시작된 곳이 구속되어 있었던 장소라는 걸. 그리고 한 번 죽었었다는 걸."

"죽었었다고요?"


우스갯소리로 로브에게 했던 죽다 살아났다는 게 진실인 줄 알았다.


"죽었다는 건 태평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살아있었다? 갑자기 모든 블루드를 해제하고 지혈도 그만둔 채 풀썩 쓰러지는 장면은 죽었다고 생각하려 했었어. 널 잡으러 왔던 사람들도 안심하고 구속을 풀었었지."

"실은 안 죽었죠."

"그 전에, 테즈의 몸에서 블루드가 용솟음쳤어. 아주 하늘 높이, 그래도 하늘을 뚫진 않아서 테즈의 몸에서 나온다는 게 각인이 되었었어."


그간 들어봤던 진술과는 규모가 달랐다. 하늘을 뚫을 수 있었다는 신화같은 이야기는 허풍으로만 들렸다.


"그럴 리가요."

"의식을 잃었을 때 나오는 자연현상이라고만 생각했었어. 그게 비약적으로 증폭된 것일 테고. 하지만 그냥 의식만을 잃은 게 아니었지."

"의식을 잃은 게 그냥 잃은 게 아니라는 말은 뭐지."


하연도 솔깃한 나머지 직접 대화에 합류했다.


"다시, 일어났어."

"······?"


나와 하연은 똑같이 좀비를 연상했을 거였다. 그런 느낌의 묘사를 하는 사리나 님의 말에 비슷한 공포심을 가졌다.


"평범하게 의식이 있는 것처럼 일어나서 널 상대하던 적들도 구속과 더불어 재차 공격을 퍼부었어. 보기만 해도 벌벌 떨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단칼에 끝내려는 식이었······었지."

"제가 뭘한 거죠."


흐려지는 말을 재촉했다. 뻔한 결말이라도 이 이야기에서 느린 것은 참기 힘들었다.


"정면으로 광범위한 블루드를 한 번 쐈어."

"한 번인가요."

"응. 한 번에 이렇게 된 거야."


재차 물었다.


"제가, 한 번에?"

"응···."

"사냥꾼들은요?"

"3명만 블루드에 쓸려나가 즉사했어 나머지는··· 살아있겠지. 바로 시야에서 없어져서 몰라. 만약 남아있었다면··· 한 방만으로는 안 끝났겠지."

"전 어떻게 되었나요."

"쏘고 나서 빛처럼 사라졌어. 그게 마겐노하로 복귀한 순간일 거야. 이후, 테즈를 찾는 데에만 3일을 소모했어. 마겐노하로 간 줄 몰랐었어."


로브에게서 언제 내가 내 방에 누워있었는지 듣지를 못했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바로 마겐노하에 간 게 아니라면 혹시나 다른 곳에도 비슷한 재앙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누난 몰랐죠?"

"얘를 찾았을 땐 국경을 넘은 적도 없었어."


대략적인 시간대는 정리가 되었다. 쓸모가 없긴 했다. 심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건 있지 않아도 되었다.


"잠깐 내릴게요."


말에서 내려와 근처에 아무 쓸만한 돌 같은 것에 앉으려고 했다. 어지러워서 그러려고 했다. 물리적으로 멀미 같은 건 아니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멀쩡할 것 같았던 돌도 앉으려고 하니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웬만한 가루 중에서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 게 또 내 손에 의해 붕괴되었다.

내 손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윤리적으로 가자면 이 이전에도 나의 행동에는 지적을 점이 많다. 생명에 경중을 따지지 않는 것은 좋다만, 그게 싸그리 차별 없이 죽인다는 의미로 발전되었고, 남의 목숨을 승진을 위한 희생양도 아닌 도구로 하찮게 보던 경향도 있었고, 충성심이 없음에도 가끔 들려오는 목숨 구걸에도 아랑곳 않고 기분따라 살생을 수도 없이 해온 몸이라, 이것만 해도 난 내세의 감옥에 갇혀도 석방당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몸이라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의식만 있었다면 불필요한 살생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는 극심한 후회였다.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사람으로서 의식을 잃으면 보통 죽었다고 자포자기하지 무의식이 알아서 사건을 해결해줄 거라는 괴상망측한 현상을 전제하진 않는다. 가령 살수사냥꾼들도 쓰러졌던 나를 보고서 상황 종료를 예고했겠지만 나도 모르는 터무니없는 괴물에 도시의 반과 요새 하나가 뚝딱 소멸되어버릴 거라는 경고를 했을 리가 없었다. 결코 방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자괴감이 드니?"


위로는 아니고, 이해를 하려는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라면 어쩌겠어요?"

"네 기분에서는 나도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걸. 대신 내 기분에서 할 일은 정해진 것 같아."

"뭔데요?"


평소 미적지근한 감성이라고 보던 하연이 눈빛이 매서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실험장이라는 곳, 본거지가 어디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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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권 (54) 20.07.25 44 0 14쪽
53 1권 (53) 20.07.23 39 0 13쪽
52 1권 (52) 20.07.21 3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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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권 (50) 20.07.18 51 0 13쪽
49 1권 (49) 20.07.16 6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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