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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26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8.17 18:00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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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권 (10)

DUMMY

8월 4일


오늘자 새벽에야 무덤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밤이라 블루드가 눈에 띌지 몰라도 인적이 없을 때가 적기였다. 작디작은 수레를 발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니면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쓰던 방법을 활용할 생각이었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에 지쳐 졸도할 게 분명했다.

다만, 새벽 동안 옮기느라고 잠을 못 잤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해가 져버린 후였다. 이것만 적고 또 자야겠다.




8월 5일


그동안 몰랐긴 했는데 의외로 내가 고성에 살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없다. 레네는 소문을 안 내는 게 당연할 테고, 설령 물어올지라도 나의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아는 이가 없었다. 거짓말이라도 완벽한 거짓말이 아니라 조금만 눈여겨서 직접 찾아보기만 해도 들통날 거짓말이다.

나한테 그만큼이나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편하기도 하다. 나한테 관심을 가져다 준다는 게 보통 녀석들이 아니라서 문제인지라 이제 레네 하나면 만족하고 있다. 하마터면 그 관심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기도 했는데. 내가 관종이 아니라 연명할 수 있는 것 같다.




8월 6일


쓸 게 없지만, 잠시 푸념을 하자면 벌써 일기만으로 한 권 분량을 달성하고 있다. 내가 써봤던 레포트들도 이 정도의 분량을 아닐 테다. 하기야 전문지식이 응축된 글보다는 잡다한 사설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8월 7일


진짜 쓸 게 없지만, 이젠 하루를 빼먹으면 아쉬우므로.




8월 8일


용케 무소식인 거 보면 희소식인 거 같긴 하다. 내가 이 말을 써서 추후에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긴 하다. 그래도 이사의 기운 때문인지 그 애가 있는 가구가 조용한 게 참 보기 좋다. 멋대로 또 대단한 사람을 죽이지 말라지.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비교하자면 나는 그래도 마을 단위로 재앙을 일으킬 만큼의 말썽은 안 부렸다. 오히려 이득이 되는 쪽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당당하지 못할 부분이다.




8월 9일


그러나 무소식이라 일기에 적은 순간부터 이변이 시작되었다. 일기에 적은 게 인과관계는 아닐 터다. 그렇다고 내 탓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나비효과의 문제라서 상관은 없겠다.

일의 시작은 사이비 경찰 조직이 없어진 후부터였다. 비록 비리가 있긴 했어도 그게 범죄를 억제하는 역할은 했었는지 아무쪼록 요상한 범죄행각에 관한 소문조차 없었다.

사흘 전에 발생했다고 소문을 들었다. 누군가 집안을 싹 털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범인은 알아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발은 안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몰랐을 때는 나도 불안은 안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불안해 하는 것은 그 마을과 관련된 데쟈뷰 때문이다. 설마 또 내가 범인으로 몰릴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다. 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긴 하다. 전면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도축장주도 알듯이 내가 온 지 1달이 넘게 흘렀기에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해줄 수 있겠다.

레네도 있다. 어지간해서는 나의 믿음직한 증인들은 존재하고 있기에 내가 몰릴 일은 없다.

그렇지만, 변함없이 불안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사이비 조직을 말살했기에 일어난 나비효과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서 두렵다. 역겨운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을지언정 제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그들이 죽어서 후에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 끝까지 그들의 망령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필요하긴 해도 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엄연히 그들은 태생부터 잘못된 것인지 중간부터 악해졌는지 모른다. 그래도 블루드를 배워왔다는 건 어느 정도 큰 뜻을 품었다는 것일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만행을 저지르기 위해서 배워온 것일 수도 있겠다.

블루드를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이 치안을 대신 담당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현재로는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불안감의 표출은 곧 누가 구원해줬으면 하는 바램이겠다. 그저 구원을 바랄 뿐이지 구원을 할 자주적인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려는 속셈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상황에서 두렵지 않다고 해서 영웅이라 자칭하고 나설 생각은 없다. 그건 자만이다. 심각한 자만이다. 내게 과연 어떠한 권리가 있다고. 도둑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심판하거나 재판을 할 권리는 없다. 일반 시민에서 지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나.

시대를 앞선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건 지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걸로 우등과 열등을 가리는 건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간 내가 받은 지식들이 이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적당히 어딜 가서든 활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식을 주입받은 것이지, 여기에 와서는 무용지물이 된 지식인 걸 내 분수는 여기의 어느 누구하고 다른 게 없다.

가만히 본다고 해서 방관자는 아니다. 모든 시민의 표본을 따라하는 것이지 이게 잘못된 길은 아니다.




8월 11일


이틀 전의 말을 번복하기에는 사태는 생각보다 빨리 발전되었다. 절도에 두려움을 떨고 있을 때를 기회 삼아서 다시 한 번 더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공범의 소행이라고 알 길은 없었다. 범행수범이 절도에 뭔 상관이며 이 구닥다리 시대의 보안이란 시원찮아서 블루드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막 먹으면 나도 절도를 하겠다.

굳이 말하자면 유일한 단서는 블루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블루드를 쓰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아닌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아니, 블루드를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건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블루드가 범행에 사용되었다는 정황이 안 나왔으므로 그리 급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관련되어있다고 치면 어찌 나설 구실이라도 생기겠지만 일반인들의 선에서 정리될 수 있다면 난 마저 구경하련다.




8월 10일


뜬금없이 이런 흉흉한 때에 레네가 고성으로 찾아왔다. 왠지 최근에 일어나는 절도에 관한 이야기나 할 줄 알았다.


"제 집에 놀러오실래요?"


뜬금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나 상황이나 이해가 안 되었다. 본인 입에서는 딱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행동거지가 일치해 보였다. 눈빛이 그거였다. 딱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는 축 쳐진 눈빛. 안색 자체가 그 증거였다.

대낮에 고성에 있다는 것 자체가 휴근이란 소리라서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해봤자 귀찮아서 안 간다는 것 정도. 그런데, 그리 귀찮지도 않아서 레네의 뜻대로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위치를 모른다고 속이는 건 덤이었다. 알고 있기는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실제로 그 안의 현관조차 밟는 것은 상상도 안 해봤다. 이 일이 있기 이전까지만 해도 레네는 집의 위치를 비밀 엄수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아무리 친해도 허락 전까지는 무단 침입이다.

현관부터 남다른 리모델링이었다. 창문으로 봤던 환상의 광경이 그대로 있었다.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캔버스와 액자들의 집합이었다.

불안하긴 하다. 하나라도 떨어지면 도미노처럼 벽에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가만 보면 무게감이 느껴져 벽이 버티지 못하고 기울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나저나 그림의 숲인 것은 알겠고 조금 일상적인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부엌이나 이런저런 등의 요소는 갖추어져 있었다. 독거인데 2층 집이라, 보통은 낭비가 여겨져야 하는데 그림들로 장식한 걸 보면 이마저도 부족해 보인다.


"하나 가져가도 좋아요. 자리가 남지 않아서요."


떨이처분하듯 막 명화들을 추천해주었다. 자리가 남지 않았단 말대로 바닥에 정말 쓰러진 도미노처럼 방치된 캔버스들이 모여있었다. 그것만 해도 벌써 방 끝에서 끝까지 1열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 창작 욕구를 또 다시 엿볼 수 있었다.

애써 고르라고 해서 고르긴 해도 마지못해 고른 거라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내가 미술에 잠재력이 있어 이게 뭐가 대단한 건지도 알지도 못하기에 그렇다. 아무렴 가져가더라도 내가 걸 데를 만들어야 하므로 더 처치곤란이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기묘한 명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술에 식견이 없다고 해도 투박한 지식만은 있어 한층 더 놀랐다.

무려 증기 기관차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면서 나는 이 시대가 산업시대인 줄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문명 발전에 따른 당연한 산물인 줄 알았던 게 여긴 아무리 잡아도 르네상스였기에 산업시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석탄이라도 있었으면 군이 먼저 이용해먹을 생각을 했었겠다.

철도도 하나 안 깔린 시대에서 증기 기관차를 어떻게 아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말이 차를 끌어줄 줄 아는 시대인데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탈하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둔다면 말이 없어도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냥 여기서 그만두었다. 어쩌면 내가 미래의 다 빈치가 될 몸을 영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분도 화가이기도 했으니까 못할 것은 없겠다.

그러나 아예 블루드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명실상부한 인재일 것을 하필 블루드가 발목을 잡긴 하고 있다. 내 전망으로도 블루드는 크나큰 경쟁력이 될 게 뻔하기에 진정한 만능이려면 블루드도 함께 가미되어야 하긴 하다.

혹시나 물어봐도 여전히 레네는 블루드는 기피하는 중이다. 이제 와서는 내가 가르쳐주려는 욕구보다는 차라리 안 배우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한다. 전망으로 필요하다고 했으면서, 레네한테는 그다지 필요없다고 본다. 배우는 과정 자체가 마조히즘이라 추천하지도 않고 본업에 도움이 되긴 하련지도 의문이다.

블루드 이전에 천부적인 재능을 싹쓸이한 몸이기에 과연. 못 배울 건 없어도 뭐든 해봐야 재능을 알 수 있기에 막상 배우면 나보다 잘 쓸 수 있을지 누가 알겠나.


잠깐. 레네의 집이 절도 유력 후보일 수도 있겠다. 굳이 재화가 될 만한 걸 뒤질 필요없이 천부적인 재능의 화가가 있는 집이 있는데 창문으로만 봐도 절도 대상이 수두룩한 걸 내가 도둑이라면 훔쳐갈 작전을 안 세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레네의 집부터 시작하지 않은 게 이상하긴 하다. 뭐, 타 자택들에 비해서 현관이나 창문들에 잠금 장치가 있긴 해도 그걸 두려워해서는 도둑이 아니지 않을까.

가뜩이나 홀로 사는 집에 무단 침입으로 인한 범죄에 노출된 적이 있기에 그게 안심이

이런 걱정을 할 바가 아니라 차라리 내가 사전에 예방시켜주면 되는 거 아닌가. 이기적이다. 타인은 나 몰라라 해도 한 명뿐인 지인이 범죄 유력 후보라는 걸 안 이상 움직인다는 게 정의롭지는 못하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악한 것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까. 이제와서 정의 운운하는 것도 웃기다. 벌써 모호한 일만 몇 번이나 저질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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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권 (51) 20.07.20 4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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