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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51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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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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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권 (53)

DUMMY

소환소 안의 구조는 소환진 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 방에 준비물을 모아두는 창고를 제외하면 보금자리로는 절대 무리였다.

최소한의 불빛으로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회의는 시작되었다. 다만, 앉는 자리가 마땅치가 않았다.

돌바닥에 조각된 요상한 소환진의 부조에 그 위에 피를 뿌려대는 것인지 끈적하고 습하고, 벌레도 꼬였다. 이상하게 피비린내는 나질 앉았다. 소환술이 피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거란 가설이 가장 현명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묻기 전에 내가 남사르에서 저질렀던 일들이 일거수일투족 고발되었다. 내 의지로 한 일이 아니란 것도 착실하게 설명에 넣었다.

일단 사리나 님의 친구 격의 이 여자에 대해선 이름을 들을 수가 없었다. 편의상 의식복을 입고 있어서 '사제'라고 명명한다.


"듣고 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뭔데?"

"테즈로 왕성 일대를 묵사발 내고 싶은데?"

"매우 폭력적이네."

"폭력으로 되갚아야지. 생체 병기를 만들라고 한 건 그들이잖아."

"하지만, 테즈 입장도 생각해야지."

"농담이지, 혹시나 사고도 할 줄 모르는 병기가 맞았다면 난 그렇게 이용했다고. 그래도 뭔가 상상쯤은 해보고 싶단 말이지."

"그 다음은 있어?"

"뭐 없긴 하네. 일시적인 쾌감 말고는 없겠다."


이 때, 사제는 목소리를 긁었다. 하연은 이를 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담배를 하나?"

"오, 나이가 있으신가요?"

"묻지는 마."

"네."


친구라 해서 동연령이란 법은 없긴 하다. 그래도 사리나 님과 사제의 나이는 얼추 비슷하다는 정황이었다.


"그래서 부탁이나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긴 한 거야?"

"실험의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거 막연한 얘기잖아."

"무리겠지."

"말하는 자신도 잘 알잖아."


운 좋게 성공한 실험이 여전히 표본을 못 찾고 있는 데에서 내 부작용을 없앤다는 일조차 실험일 게 뻔했다.

어떤 천운을 바래야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건 사리나 님의 욕심이 컸다고 봤다. 과학이라는 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추구하는 게 맞다고는 하지만, 내 이성은 이 상태도 만족하고 있었기에 만류하는 쪽으로 기울였다.


"최대한 그렇게 안 되도록 할 거예요."

"널 쫓는 사람들은 어쩌려고??"

"빠른 시일 내에 죽여야죠."

"···나보다 어린데 살벌한 말을 하잖아···? 뭐, 그게 손쉽다면 손쉬운 방법이겠지. 저런 말까지 하는데 걱정해야 하나?"


사리나 님은 본연의 주장을 유지했다.


"확인된 건 빈사 상태일 때 일어난다는 게 전부일 거야. 어디까지나 우리가 실험에 성공이라고 단언한 것은 대량의 블루드를 몸 안에 삽입하고 테즈가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거였잖아. 그것만 따지고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한 사례를 들어서 테즈가 완전한 것일까?"

"그리 나오면 반박할 수 있을까 보냐. 도시를 날려버리는 무지막지한 블루드를 가벼이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 빈사 상태라는 조건만 붙지 않을 수 있겠지. ···그냥 당사자에게 묻는 편이 낫지 않아?"


그래서 대답해주었다.


"평소에 체감이 될 정도로 특이한 점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럼 더욱 문제점을 찾는데 애로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

"······."


해법으로의 가능성은 없다시피해서 사리나 님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어떻게 머리를 쥐어짜내려는 의지는 감돌지만 당사자인 나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을 확신했다.


"사리나."

"···왜?"

"넌 테즈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야, 무관한 사람들이 개죽음 당할 수 있어서 그러는 거야?"


괜히 이게 연인 테스트도 아닌 걸 자각하면서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거짓말탐지기라도 있었으면 바로 썼을 터였다. 눈치를 봐서 내가 앞에 있으니 전자를 택하는 일도 제법 확률이 있을 거라고 치밀한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재앙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 그게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애매하다."


전자가 될 수 있고 후자가 될 수 있는 중간쯤의 대답이었다. 게다가 애착이랄 것이 없는 건조한 대답이었다. 저게 사리나 님의 생각이라면 슬슬 짝사랑도 오래 남지 않을 거라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애정행각 따위를 벌이지 못할 일들만 잔뜩 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진 관계인 것을, 실험체로서의 본분이란 감정보다는 기능에 중점이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고는 했어? 부작용에 대해서?"

"그러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잖아."

"뭐든 우리에겐 불리하지."


멀뚱멀뚱히 듣다가 이해가 부족해서 물었다.


"왜죠? 저만 불리한 거 아닌가요?"

"근래 한숨 돌렸다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건 네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활약하고 있어서였지. 단 하나의 성공이라도 없었다면 언제까지 윗놈들 손아귀에서 닦달을 받았을지. ···근데, 모르긴 해. 창의적으로 사람 괴롭히는 놈들이라 보고를 하고 어떤 반응을 할진 몇 가지는 상상할 수 있어도, 더한 게 또 있을지."


연쇄로 궁금해진 게 또 있었다.


"성공한 실험체가 저밖에 없다는 건 나머지는 어떻게 된 거죠?"

"실패했다고 해서 전부 죽어서 실패한 건 아니야. 가망이 없어서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그냥 풀어주긴 해."

"그런 거였어?"

"인체를 장난감처럼 부리진 않아."


하연도 편견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실패가 그저 절망적인 선택지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때론 누군가에게는 소환된 것 자체가 절망적인 선택지일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세계가 옛날 세계과 별 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실패한 실험체였다면, 해봤자 다렌의 삶을 이어나갔을 거라는 편리한 방향으로 보았다.


"장난감으로 보진 않는데 말이지··· 내일 한 번 확인해볼까?'

"저요?"

"그래. 마취 상태에서도 똑같이 하늘로 용솟아치는 블루드를 발산하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난 어느 정도 수용했다마는 하연과 사리나 님은 각각 언짢아하고 당황했다.


"자살하려는 거냐?"

"들은 걸로 만족하면 안 돼?"

"내가 봐야 어느 정도인 걸 알 거 아니야? 마취라고 해서 우리를 죽이려고 들 것 같진 않을 거 같아서 말이지. 단지 블루드만 측정하려는 거야."

"생존 본능까지는 안 할 거란 추측이야?"

"적이 있었기에 의식이 없어도 인식을 제대로 했겠지만, 즉 어느 정도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토대로 몽환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원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거지."


내가 팔랑귀였던 것인지 듣고 보니 현혹되었다. 그 말대로 생존 본능에 의해서만 발동하는 걸 확인만 한다면 미지의 부작용을 걱정할 길이 덜어지는 것이었다. 하나의 최악의 길을 염두한다고 해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지만, 나에게도 얻는 것이 있는 제안이었다.


"도전해보죠."

"맡길 수 있는 거니?"

"마취조차 안 먹히면 가망이 없는 거죠."

"오늘 안에 준비를 끝내야하겠네!"


당사자가 허락한 것으로 더 이상의 시위는 없어야 하겠지만,


"안 돼."


하연은 꿋꿋했다. 사리나 님이 만류할 줄 알았더니 의외였다.


"할 건데요."

"다시 생각해주면 안 되니."

"다시 생각해도 똑같아요."


내 의지에 하연은 포기했다. 실험에 담긴 위험성과 변수는 충분히 여러 말들로 인지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더 이상 말릴 수단이 없었을 것이었다.


"잠들 정도로만 마취해 줘."

"그럴 거야."


사리나 님은 마지못해 본다는 듯이 찬동해주었다. 어쩌다가 사리나 님의 부탁에서 나와 사제와의 약속이 되어버린 건지 참 의아했다. 사실 그리 복잡한 사연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인 것을 내가 몰라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그래봤자 나도 백 번 듣기만 해서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모든 일들이 무의식에서 진행되기에 증인을 늘리는 게 최선이었다.




사제의 집에서 네 명이 함께 묵은 후, 날이 밝자마자 사제의 집도에 따라 실험장 건물로 이동했다. 밤새 딱히 아무런 일은 없었다. 이 날은 평온하게 다 피곤했기에 곯아 떨어져버렸었다.

마취라고 하여 현대의 의료기술을 생각해 주사기가 이용될 거라고 믿었었다. 혹은 입으로 밀어넣어 먹이든가 하는 등의 요법이 실행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코 밑에 풀을 갈아서 만든 가루약을 바르는 일이 전부였다.


"계속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저절로 정신을 잃게 되겠지."

"얼마나죠?"


말한 대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러자 아찔한 향기가 밀려오며 정신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었다.


"뭐, 웬만한 의식 없는 사람들도 적은 숨을 쉬다가도 마취에 취하기는 하지. 빠른 편이 좋잖아?"

"이거 센-"


한순간 정신이 나가떨어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은 체감 시간을 지내고 나서야 일어났다. 해봤자 3초였던 게 실제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었었다. 마취가 그냥 센 게 아니었다. 마취 당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기절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막상 깨어났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열심히 둘러봐야 방 밖에서 나를 지켜보는 얼굴들을 발견했다. 안전 거리였다. 말 그대로 용솟아치는 블루드가 있었기에 위해를 조심하려는 자세였다. 제안했던 사제 본인도 가까이 있는 짓은 극히 절제하는 것이었다.


"빈말은 아니어서 놀랐네. 몽롱한 것 빼고는 아무 이상 없지?"

"어땠나요?"

"방 안을 가득 메워서 실험장이 자칫하면 실험장이 아작날 수 있다고 걱정했어. 그래도 무해해서 다행이네."

"마취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어, 그건 그런데 말이지, 성공 시기에 비해서 증폭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졌어."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느껴지지만요."

"그럼 된 거겠지. 만사형통은 아니라도. 지금에서 흘려보낸 블루드를 적출시킬 수 있는 수단은 없어서 해결책은 없지."

"할 의사도 없었는데요."

"방도가 없으니 의사가 없어도 괜찮겠지."


건조한 결론을 내리고 이제 이 섬에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겼다. 누가 붙잡지 않는 이상 제 할 일인 살수의 임무를 수행하러 갈 채비나 하려 했었다. 벌써 12일이나 지나버린 마당에 임무표를 다시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모처럼 소환된 사람들이 이곳에 왔으니까 나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볼래?"


사리나 님이 못 미더운 표정으로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거면 이젠 그만두면 안 되겠니."

"사리사욕뿐만 아니라 문물의 이해를 위해서는 도움이 절실하니까."


전혀 이해하라고 지어낸 말이 아닌지라 속셈은 모르겠고, 아무튼 당분간은 섬에서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선전포고와 같았다. 있지도 않은 살수의 의지는 접어두고 사제의 집도에 한 번 더 어울려주기로 했다.

이젠 살수도 나에겐 흥미 밖이었다. 해도 안 해도 되는 방학 숙제처럼 전락한 허울 뿐인 자기만족의 명예에 감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더 재밌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다.

목적지는 실험장 건물 안이었다. 거리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단 하나의 자물쇠만으로 막혀 있는 허술한 보안만으로 잘 지켜진 곳이었다. 외진 곳이라 방 안에는 초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낮에 내려오는 햇빛이 자그마한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것밖에 우리의 눈을 도와주는 요소는 없었다.

뒤늦게 사리나 님이 가져온 등불로 제대로 된 탐방을 시작하였다.


"이것들, 우리 거 아니야?"


보자마자 하연은 알아차렸다. 직접 아무 물건을 집어보며 제대로 확신하는 듯했다. 그 실체를 나에게 건네주며까지 각인시켰다.

'우리'라는 것에서 이곳에 있는 나와 하연을 뜻하는 것 같았지만, 하연의 '우리'는 '피소환자들' 전체를 뜻했다.

이 수기의 초장에 적어놓았던 조언은 이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이들이 다 수거해가겠거니와 갖고 오면 시대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

모든 피소환자들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들, 웬만한 현대 문물들이 창고 안에 수두룩하게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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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권 (2) 20.08.05 6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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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권 (56) 20.07.28 69 0 14쪽
55 1권 (55) 20.07.26 63 0 12쪽
54 1권 (54) 20.07.25 45 0 14쪽
» 1권 (53) 20.07.23 40 0 13쪽
52 1권 (52) 20.07.21 31 0 14쪽
51 1권 (51) 20.07.20 50 0 13쪽
50 1권 (50) 20.07.18 51 0 13쪽
49 1권 (49) 20.07.16 62 0 14쪽
48 1권 (48) 20.07.15 6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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