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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4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14 15:15
조회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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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47)

DUMMY

"별로 감흥이 없는 주제냐. 하기야 그랬다면 이런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겠지."

"이런 자리요? 이런 자리란 게 어떤 자리를 말하는 거죠?"


전혀 본질을 알 수 없는 파티의 의의를 물어볼 여지가 생겼다.


"아니 보이는 몇몇 관계자도 있지만, 대부분 군 간부들이 모여 있지."

"아는 사람도 있겠군요."

"아직은 없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새에 죽어서 못 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

"불길한 말이네요."

"나도 정은 있다. 초대장을 못 받아서 못 온 것일 수도 있겠지."


갑자기 궁금해지긴 했다. 내가 나오고 나서 내 분대는 어떤 상태일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수제자라고 하기에는 내가 대충 가르쳤다만 실력 면에서는 급사할 수준은 아니었다. 만나서 다시 만난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은 채로 살아있었주면 한결 내 기분이 좋아질 것이었다.


"교관···."


늘 똑같았던 호칭을 부르려니 어색했다. 라데르는 그대로다만 나는 시간이 흘러 재빠르게 계급이 올랐기에 동등한 위치라 해도 무방했다.

라데르는 내 교관일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진 상태였다. 교관이라 부르는 건 내가 거부감이 들었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날?"

"네."

"라데르라고 불러라."


생각보다 융통성이 짙은 라데르였다.


"뒤에 존칭을 붙일까요?"

"네가 네 입으로 요를 쓰는 게 친근해서라고 하지 않았었냐?"


어쩌다가 나온 변명같은 진심인 말은 세월 속에서 까먹어버렸었다. 앞으로 라데르와 인연이 있을 줄 몰랐기에 그랬었다.

그걸 라데르가 이 때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며 나한테 다시 깨우쳐준 게 고마웠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네가 내 유일한 훈련병인 걸 어떡하냐."


이 세계에서 내가 남의 기억 속에 자리잡아져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현듯 스쳐가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여 막무가내로 생활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개벽 정도로 내가 단숨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짝 자기중심이기만 했던 사고방식이 일부분만 타인의 비중을 넣어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부셔진 조각이 뇌에 박힌 형상처럼 바로는 유효하지 않은 복선을 깔고 있었다.


"라데르라고 부를게요."

"나도 테즈라고 부르지."


테즈라고 불리는 것도 신선했다. 새로 내 이름을 받은 그 때처럼 색다른 느낌이었다. 따지자면 마지막으로 테즈라는 이름이 불린 것은 마겐노하로 떠나기 직전이었겠다. 분대원들이 배웅했을 때였다. 그래서 잘 사리라고 미련있는 에측을 한 셈이었다.


"바다 것들은 좋아하냐."

"바다 것들이란 게 뭐죠?"

"먹는 거 말이다."


해물이 바다 것들이었다.


"싫어하진 않죠."

"먹고 있지만 영양가가 있는지는 모르겠군."

"바실리스크가 못 먹는 음식이 따로 있나요?"

"우리도 독은 걸린다."

"그렇겠죠."

"못 먹는 거라 하면, 동족이다."

"저희도 마찬가지니까요."

"먹고 싶지 않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면 먹을 건가요?"

"고민해 봐야겠지."

"전 굶어죽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네가 그런다면 나도 굶어죽을 일이 없다."


진짜 영양가 없는 만담이었다. 그러니까 편안히 임할 수가 있었다. 진지하게 지능이란 걸 내려놓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큼 낙원이 따로 없었다. 이쯤되면 나이를 방불케 하는 친구인 게 틀림없었다.


"블루드는 익숙해졌냐."

"익숙해진 건 오래되었죠."

"딱 봐도 오만해 보이는군."

"그런가요?"

"오만한 실력이면 오만해도 좋다. 가급적이면 안 하면 좋겠다. 심하게 피 보는 일도 있을 거 아니냐."


그 말대로 파티에 오기 직전에 봉변을 당한 적이 있어 찔렸다. 이를 본 라데르는 한마디를 더했다.


"블루드로는 오만할지 몰라도, 언변에서는 속이 잘 드러나는 게 여전하군."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말을 라데르가 했었나요."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난 아니었다."


내가 알려주자면 그 말을 뤼펠이 했었다. 그런데, 라데르도 동감하고 있었다는 게 남들에게도 만만하게 보인다는 말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사리나란 녀석은 잘 찾고 있냐."


이건 더욱 상할 수밖에. 언제 사리나 님을 짝사랑한다고 내가 발설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라데르가 감만으로 판별했다는 뜻인데, 당황해서 입에 음식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무슨, 어떻게, 언제부터요?"

"여전히 찾고 있는 거군."


콧방귀를 끼며 기고만장한 라데르에게 항복했다. 알 테지만, 있는 족족 다 말하기로 했다.


"네, 찾고 있어요."

"찾을 수 있긴 한 거냐."

"아니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고 있죠."

"군 간부라도 일개 병사일 뿐이지 군 간부끼리 아는 것도 힘든 게 사실이지. 그래도 말이다,"


한 입을 입에 넣으려다가 말고 라데르는 설명에 충실했다.


"이름은 그래서 중요하다. 소문이나 구전이라도 쉽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테즈라는 네 이름이 전장에 섰던 적이 있는 이상 몇 명을 죽였는지는 같이 보고 있던 적이나 아군이나 잘 기억하고 있을 테지. 네가 죽인 것을 네가 모른다고 하다만 의외로 여려 명의 진술이 합쳐지면 적당한 값에 도달하긴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총 121명의 적을 죽여왔다."

"그렇군요."

"사리나란 녀석은, 그런 게 없다."

"소문이 없는 것 정도면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단지 소문만 없는 것이 아니다. 사리나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어···?"

"네가 초면이었듯 나도 초면이었다. 얼마 없는 휴먼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도 있다. 그럼 휴먼이라면 전장에서 오히려 눈에 띄었을 수 있었다, 아군으로 말이지. 하물며 그 장교한테 물어보았더니 사리나란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하더군. 성내를 돌아다니던 이상한 휴먼을 그 때 보긴 했었는데, 그게 사리나란 이름인 걸 이제 알았다고 했다. 무려 행정 장교인 그 년이 말이지."


이게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래선 마치 내가 유령을 돼버린 듯했다. 그러나 진짜 유령은 아니었다. 라데르도 목격하고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뤼펠도 그랬었으니 이상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리나 님이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리 개인정보를 숨길 수밖에 없는 신분이라고는 살 수말고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니까 다른 사항도 있을 게 분명헀다. 나는 사리나 님이 살수라고 생각 안하는 편이었다.

어떤 인사 정보도 제대로 공개된 게 없으며 심지어 사람들의 눈에도 그다지 밟히지 않은 존재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지. 그런 사람이 왜 하필 나한테 접근을 하였는가.

의심을 어느새 모든 게 의도였다는 것으로 진화했다. 내가 첫 눈에 반한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사리나 님과의 만남은 아마 사리나 님의 계략이었다고 고려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계략이었다고 치면 사리나 님이 말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을까. 고향이 남사르라는 것부터 부정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생각을 그만두고 싶었다. 알고 있던 정보를 되뇌어서 일일이 진위여부를 가리는 행위는 시간낭비였다. 상상에서 나온 말은 묻어두었다.


"곤란하네요."

"냄새가 진하게 난다."

"음모론이 있나요?"

"그건 아니다. 네가 찾는다고 해서 말이지. 지양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래도 찾고 싶어요."

"네가 무사할 자신이 있으면 그래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사이에 조그만한 충고만 해둔다."


아무리 그래도 사리나 님과 살수사냥꾼과 연관 짓는 것은 무리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살수사냥꾼들이라 다른 게 나에게 치명상을 입히리란 주의심조차 없었다. 충고는 고마우나 마음만 받기로 했다.


"그럼, 찾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

"찾는다면요?"

"그것도 안 정하고 찾고 있었냐."


계획에 전혀 없던 사항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심히 중대했다. 찾기 위함이 다라면 행동 개시를 하는 나에게 당위성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원하던 사리나 님을 찾아서 내가 하려는 일이란 무엇일지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었다.

짝사랑이라면 그대로 만나서 고백해버리는 게 올바른 선택인가, 차인다면 그것대로 허무하게 끝나는 게 아닐까, 조금 뜸을 들여서 기회가 될 때 고백하는 게 낫지 않을까.

치밀하고 세밀한 척했으면서 실상은 엉망진창인 결과물이 예고된 계획이었다. 괜히 하연을 보냈다는 자괴감이 들어 정신을 놓아버렸다.


"성장한 건 신장과 전투력뿐이었냐. 시간을 속일 수 없지."


해봤자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불과한 미미한 시기라 거대한 성장은 있을 수 없었다. 여전히 미숙하다고 변명거리를 삼을 수 있는 어린 나이에서 나올 수 있는 흔한 실수였다.

나이대에 어울리는 짓이라고 인정했다면 결코 내 나이대가 아니었다. 살수사냥꾼들에게서 받은 머리 뒤의 흉터보다도, 어지간한 치욕보다 굴욕적이라 오감으로 느껴질 정도로 달아올랐다.


"그 때 가서 생각할 건데요."


괜히 도도한 답변을 해도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자각하고 있어서 의미란 없었다.


"만능인 답은 하지 마라."


이쯤에서 또 다른 만능으로 반격을 해보았다.


"라데르는 애인 있었나요."

"나 말이냐?"

"예."

"없었다."

"사귀고 싶었던 사람도 없나요?"

"없지는 않았다."

"어떻게 됐나요?"

"입역한 이후로 생각을 접었다."

"···괜찮나요?"

"욕심을 버려서 그다지 걱정할 것도 없다. 언젠가 생긴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거다."

"그거 훌륭하네요···."


물었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물러났다. 말로 이기려 드는 것은 접는 게 나았다. 약점을 찌르는 게 핵심이긴 하다만, 저런 핵심이면 양심적으로 찌르고 싶지 않았다.


"귀중한 시간을 내주신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나와 라데르도 그렇고, 파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을 중단하고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단순히 불려놓고 자유시간만 갖게하는 그런 파티의 면모는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파티 개최자의 종족적 특징이 매우 거슬렸다. 켄타우르스이긴 했는데, 뤼펠 같은 켄타우르스가 아니었다.

그들의 세계에도 인체 비율이란 게 개성이었다. 하체가 워낙 큰 비중이었던 것이었다. 뤼펠은 상체도 근육이 잡혀 있어 썩 좋은 비율이었던 것에 비해, 저 개최자는 과할 정도로 하체가 컸다.

아니, 하체가 큰 게 아니라 반대로 상체가 심하게 작은 것일 수도 있었다. 말이기 때문에 하체 근육이 많이 이용될 테니 상체를 키워야 하체 비율이 맞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죠. 저는 '가조핀센트 아르캄판'이라 합니다."


초대장에 이름도 안 적어놓은 사람이 알 사람은 알 거라는 게 아니꼬았다. 모르면 역적이라도 되는 건지 라데르를 통해 확인했다.


"알아요?"

"알려주면 알았지."


다행히 라데르도 동지였다. 별로 무서운 게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초대장을 받고 오신 분들에게 하나도 가릴 것 없이 감사를 표합니다. 저희의 '연무제'의 오후 일정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라데르를 만나서 헛되지 않았다. 못 만났다면 그대로 귀중한 시간을 날려보낸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본부가 악질이었다.


"성대한 축제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아니라고 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미 즐기시고 계신다면 더 즐기실 수 있도록 하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집사가 디저트가 담긴 거대한 접시를 카트에 끌며 왔다. 각 접시에는 장식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놓여 있었다. 이 시대에는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부를까 기대했지만 아무도 말하는 이는 없었다.

얼핏 봐도 초대장 수에 맞춰놓은 아이스크림의 개수였다.


"제비뽑기입니다."


운이 좋으면 공짜라는 점에서 대단히 설렜다. 보상을 말하기도 전에 침을 삼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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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권 (51) 20.07.20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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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권 (49) 20.07.16 61 0 14쪽
48 1권 (48) 20.07.15 6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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