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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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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45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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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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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에고이스트

DUMMY

나는 절망적인 삶을 진득하게 맛봤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정말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도 내 감정은 변하지 않았고,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새롭게 쓴 글도 순조롭게 풀렸고, 돈이나 건강 때문에 아쉽거나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중국발 전염병에 의해 세상이 위험해지기 전까지 이대로만 쭉 흘러 가길 바랄 정도였다.


'어라? 왜 전염병이 안 나타나지?'


이상을 알아챈 건 그쯤이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시기가 지났는데도 세상은 평화로웠다. 몇 달이 지나도 해외여행이 막히고,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두려워하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기억으로 이득 본 걸 생각하면 단순한 꿈이 절대 아닌데.. 어떻게 된 걸까?'


물론 병이 없는 세상이 훨씬 더 좋은게 당연했다. 따라서 난 생긴 의문을 굳이 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최근 잠자리에서 아내가 꺼낸 질문에 대해 생각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했다.


"오빠, 우리 아이는 언제 가져요?"

"그게 말이지.. 좀 더 시간을 줄래?"

"치, 누가 보면 자기가 임신하는 줄 알겠네."

"하하하, 알잖아. 우리집 환경이 안 좋단거. 그래서 그런지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어렵게 느껴져."


사실 결혼은 해도 자식은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겪었던 미래가 너무 암울하기도 했고, 자란 가정 환경도 절망적이었던 까닭이다. 나에겐 두 가지 이유 모두 돈과 상관없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건 알지만, 우린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평생 아이 없이 살 생각이에요?"

"글쎄... 그런 건 아닌데."

"아이 참, 오빠가 그러니까 꼭 내가 아이 갖고 싶어서 안달난 거 같잖아요."

"하하하."


나는 웃으며 삐진 척 돌아눕는 아내를 팔로 감싸 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포근한 살 내음이 불안에 휩쌓였던 내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문득 이대로 전염병만 퍼지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알았어, 우리 앞으로 아이를 갖도록 노력해보자."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난 항상 널 닮은 딸이 있었으면 싶었어."

"킥킥, 벌써 딸 바보가 된 거 같아."


우리 부부는 그날부터 아이를 위해 준비했다. 임신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어떤 부모가 되는 게 좋을지 알아보고 배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아내가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나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치 않은 방 안에 홀로 있었다. 피처럼 붉은 벽면이 가장 먼저 보였다.


-꿈은 달콤했나?-


의식을 되찾기 무섭게 콧수염의 말이 뇌리에 울려 퍼졌다.


"아..."


그러는 동시에 지옥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게 꿈이었다고? 정말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믿을 수 없도록 잔인한 운명이 진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꿈과 현실의 기준은 명확하게 다가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듯한 상실감에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발악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가능할 뿐, 움직이는 건 아무리 애를 써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혀를 깨물거나 머리를 바닥에 힘껏 내리치고 싶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나? 그게 큰 착각이란 걸 알게 해주지-


콧수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것도 없던 방 안 중앙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내 목숨보다 소중한, 바로 내 아내였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내게 그녀가 물었다.


"...오, 오빠? 대체 여긴 어디에요?"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방 안의 기괴한 모습에 겁이 났는지 살짝 질린 얼굴이었다. 그래도 나를 발견하고는 살짝 안심한 표정을 보였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끔찍한 미래가 다가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예상은 정확했다.


지금까지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고통을 받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 아내라는 점이었다. 지구상에 있었던 모든 고문 방법을 나열했다는 콧수염의 설명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오빠! 아악!! 살려 줘!"

"싫어! 그만!! 제발 그만.."

"아아아악! 아파!! 너무 아파!!!"

"도와줘!! 가만히 있지 말고 구해달라고!!!"


나는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 살아나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몸을 움직일 수도, 심지어 눈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 어떤 바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라고, 외면하려 애써도 아내의 비명 한 번에 결심은 와르르 무너졌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지하고, 무력했으며 무능했다. 언제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내는 여전히 내 눈 앞에서 도살당하고 있었다.





*****




아이가 태어났다.


응애~ 응애~


소원했던 대로 딸이었다. 쭈글쭈글한 얼굴과 조막만 한 손, 발을 보며 나는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힘겨움에 핼쑥해진 아내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에 기쁨은 배가 됐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



괴물들에게 아내와 아이가 찢긴다.

반으로 갈라진 아내가 쓰러지고, 아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활한 두 사람이 다시금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가 서라운드처럼 내 귓가에 울려 퍼진다.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시선을 돌릴 수도 없다. 나는 무기력하게 그 모습들을 보고, 또 봐야만 했다. 반대로 꿈에선 하나된 가족의 충만한 행복을 누렸다. 끔찍하고, 참혹하고, 절망적인 시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됐다.


나는 언제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식이 있었던 날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스쿨존에서 장난을 친다며 튀어나온 아이를 급히 피하다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던 차와 충돌,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이 모두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허망했다. 촉법소년이니, 무슨무슨 법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마당에 되돌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나는 슬픔과 공허함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뒤따라갔다.




******




그러지 못했다. 그 어떤 방법을 시도해도 마치 우주의 기운이 돕는 것처럼 나는 끝내 살아났다. 지속된 시도 끝에 결국 난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정상이라 말해도 퇴원할 수 없었다.


지옥에선 두 사람의 시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꿈을 꾸기 전까지, 난 두 사람의 사고 당시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두 공간 모두에서 어마어마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콧수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눈 앞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병원 독방에 갇혀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 있었던 터라 방 안을 둘러보곤 바로 알아챘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콧수염이 다음 단계라고 했던 거 같은데?'


침대에 걸터 앉아 잠시 생각해봤지만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 꿈인 걸까? 어찌됐든 상관없지, 이젠 그만 편해지고 싶어.'


마침 가장 졸음이 몰려올 새벽 3시가 막 지난 시점이었다. 숨겨 놨던 신발끈을 꺼내며 나는 문으로 향했다.




******




다음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가 추가되었다. 정확한 명칭은 기저질환 합병증이었다. 전염병에 감염됐고, 과거 정신병 이력을 갖고 있던 30대 중반 남자의 죽음은 그렇게 끝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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