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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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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54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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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에고이스트

DUMMY

6학년이 됐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집에선 내가 공부를 잘하게 되고, 동생이 태어나면서 멈췄던 부부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집안보다 교회를 우선해서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에 짜증이 난 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두 분은 예전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악을 쓰며 싸웠다. 나는 밤마다 날아다니는 물건을 피해 동생을 보호하는데 애썼다. 동생이 울어도 두 분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내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게 종교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불똥은 나에게 튀었다.


할 말이 없어진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아버지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라고, 신을 믿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말했지만 내 성적은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반에서도 1등을 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나를 더 이상 교회에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날 볼 때마다 원수 대하듯 윽박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부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내 핑계를 댔을 뿐, 내가 공부를 잘하건 말건 처음부터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성적이 안 좋으면 혼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학년이 올라가며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지만 내 학교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반에서 상위권 정도의 성적이 되면서 선생님은 내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고, 대부분의 반 아이들은 여전히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집보단 학교가 나았다.


부모님이 안방에서 코미디 tv프로를 보며 크게 웃을 때,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저녁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30분에 걸쳐 설거지를 끝내고 tv 프로를 보러 안방으로 가자 두 분은 사이 좋게 공부하러 가라며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내 방으로 갔다. 방음이라곤 전혀 안 되는 낡은 집이라 그런지 방청객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벽을 넘어 생생하게 전해졌다. 부모님의 웃음소리 역시 유달리 크게 들렸다. 책상에 앉아 책을 폈지만 눈물이 흘러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집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폭력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내 삶은 힘들고 버거웠다. 그런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풀고자, 어느 날 나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장난감 가게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부모님에게 따로 용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6학년이 되면서 집안일을 돕는 대가로 한 달에 천 원씩 받아 모아둔 터라 수중엔 만 원에 가까운 돈이 있었다.


그 돈을 다 털어 장난감을 하나 샀다. 딱히 갖고 싶었던 물건은 아니었지만 돈을 모조리 쓰자 기분이 약간이나마 나아졌다. 그렇게 나아졌던 기분은 집에 도착해 장난감을 발견한 어머니에게 싸대기를 맞으면서 산산조각났다.


문제집 대신 장난감을 샀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하면서 받던 용돈이 끊겼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갑자기 머리가 크게 아파왔기 때문이다. 두통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커지면서 나는 밤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두통은 사라졌지만, 그 뒤로 난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볼 수 없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괜찮은데 유독 내 얼굴만 일그러져 보였던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무서운 나머지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





집에서 비교적 가까웠던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는 30분은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아침을 먹고 시간에 맞춰 갔었지만, 식사를 하던 중 아버지에게 숟가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뒤로는 그냥 새벽부터 일어나 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때린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밥을 먹기 직전에 하셨고, 내가 주방에 들어가 무언갈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하셨다. 라면을 끓여먹다 몇 번 크게 혼난 뒤로 나는 아침밥을 그냥 포기했다.


끼니를 거르고 많은 거리를 걸었기에 난 항상 배가 고팠다. 학교에 매점이 있긴 했지만 점심 무렵에 여는데다 돈이 한 푼도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공부하며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성적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기대치가 높은 부모님의 기준에도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는 되었다. 칭찬은 없었지만 혼나지도 않았고, 나는 그 사실에 만족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석식과 야간 자율학습을 강행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학교에 도서실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소설을 주로 선택했지만, 이후에는 개미, 삼국지, 드래곤 라자처럼 흥미에 따라 책을 읽었다.


공부를 하다 힘들면 책을 읽고, 좀 괜찮아졌다 싶음 다시 공부를 했다. 급식은 굉장히 맛이 없었지만 적어도 집에서 밥을 먹는 것보단 나았다.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도 생겼다.


나는 순조로운 학교 생활에 만족했다.





*********









중학교 생활을 잘 보내던 중 문제가 생겼다. 뜬금없이 발에 무좀이 생겼던 것이다. 초기에 단순히 간지러웠던 무좀은 순식간에 운동화가 진물과 피에 젖어 철퍽철퍽 소릴 낼 정도로 심각해졌다. 나는 무좀에 걸렸단 사실을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왜 무좀 같은 거에 걸렸을까? 쓰레빠 신을 때 냄새가 심하게 나면 어쩌지? 걸리면 또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나는 자책과 동시에 몹시 수치스러웠다. 집에서 발을 열심히 닦아 봤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결국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됐을 무렵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쓰레기처럼 더러운 새끼! 평소에 발을 제대로 안 닦아서 이렇게 된 거 아냐!"


아버지의 날선 폭언에 내 마음은 깨진 유리처럼 부서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대로 둘 순 없어, 아버지는 쉬는 날 나를 피부과에 데려갔다. 아버지는 거기서도 날 욕하기 바빴다. 애가 안 씻어서 무좀에 걸렸다, 혼을 내 달라면서. 하지만 피부과 의사의 말은 달랐다.


"이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옮은 거예요. 자연적으론 이렇게 걷지도 못할 만큼 강력한 무좀에 걸리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니라면서 납득하지 않고 끈질기게 내 잘못이라 우겼지만 의사의 지식 앞에선 소용 없었다. 사실 의사의 말이 맞았다. 나는 4살 때부터 무좀이 걸린 아버지의 발을 밟으며 꾸준히 안마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옮지 않았던 게 운이 좋았던 거지, 아버지의 무좀은 심한 수준이었고 언제든 남에게 옮길 수 있었다. 실제로 어머니도 몇 년 전 아버지에게 옮아 무좀에 걸렸었다. 자신은 그 어떤 문제 없다고 박박 우기는 아버지 때문에 뭐라 하지 못했을 뿐.


어쨌거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바르자 보름 뒤쯤엔 거짓말처럼 무좀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안마를 해드리지 않았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내 담임 선생님은 노처녀 국어 선생이었는데, 반 아이들에게 강제로 일기를 쓰게 했다. 대부분의 애들은 싫어했지만 제대로 쓰지 않으면 내신 점수를 깎는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나는 방학 숙제 말고는 일기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집안 얘기는 당연히 할 수 없었고, 친구들도 밥만 같이 먹는 수준이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갖고 있던 생각을 일기에 적었다. 의외로 일기 쓰기가 재밌어질 때쯤, 담임 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았다.


'너는 egoist구나.'


모르는 단어였다. 나는 영어 단어책을 펴 뜻을 찾았다. 그리고 뜻을 알게 되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기주의자라고...?'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나는 평생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항상 자신을 죽이고 부모님과 동생, 적어도 나보단 남을 위해 살았다고 여겼다. 그런 나를 담임 선생은 이기주의자라 평했다.


충격이 가시자 곧 활화산 같은 분노가 들끓었다. 나에 대해 하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지껄이는 선생님이 몹시 미웠다. 그래서 당장 다음날 교무실로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제가 왜 이기주의자예요?"


담임은 내게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교무실에서 쫓아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믿게 될 정도로, 역겹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담임은 복수하듯 내게 국어 내신 점수를 가장 낮게 주고, 꼬투리를 잡아 사사건건 매를 휘둘렀지만 난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무시했다.


결국 얼마 안 가 선생님도 날 포기하고는 무시해버렸다. 이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테스트에서 내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나왔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외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던 중 화물차에 치여 10m를 날아가 바로 뇌사 판정을 받았고,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와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한 아들의 가장이었던 삼촌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허무한 죽음처럼 장례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나중에 듣기로는 사망 직전 삼촌의 몸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 모습이 너무 흉한 나머지 빠르게 화장부터 치뤘다고 했다.


물론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당시의 나는 얼마 없는 삼촌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슬픔에 젖기 바빴다. 1년에 한 번 정도 만났던 삼촌은 내게 잘해줬던 유일한 친척이었다. 삼촌이 부모님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 적도 있었다.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한탄처럼 내뱉은 누군가의 말이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장례식에 모인 모두가 죽음에 대해 슬퍼했을 정도로 삼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쓸모라곤 하나도 없는 나보다 훨씬 필요한 존재였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나쁜 아이라 죽지 않고 사는 걸까?'

'삼촌에게 엄청 미안하다.'


자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죽고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영원히 멈춘 삼촌과 달리 내 시간은 조금씩이나마 계속 흘렀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 무렵 어머니가 나에게 삼촌에 대한 새소식을 전했다.


"삼촌이 가해자라고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 죽은 삼촌은 가해자로, 사람을 치어 죽인 화물차 운전기사는 피해자가 됐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운전기사는 뻔뻔하게 정신적 피해 운운하며 돈을 요구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사건의 전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화물차 연대 변호사가 찾아도 없던 가짜 증인을 내세워 삼촌이 화물차에 먼저 뛰어들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던 것이다. 변호사가 없어도 처벌을 받으리라 믿었던 외가쪽 친척들은 가만히 있다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증언 하나만으로 사람을 죽인 피해자와 죽은 가해자가 탄생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판결은 이미 내려진 뒤였다. 그걸 뒤집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를 써야만 했다.


항소를 하면서 이미 죽은 삼촌의 사건은 장장 1년이 넘도록 이어졌고, 변호사가 증거를 수집해 재판의 결과를 뒤집었을 땐 5천만 원이라는 수임료가 발생했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그제서야 뻔뻔하게 합의를 요구했다.


합의를 하지 않으면 빚더미에 앉는 데다, 법원에 돈을 내고 풀려날 수도 있어 외가 쪽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30대 젊은 가장이었던 삼촌의 목숨 값은 1억이었다. 그마저도 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나자 반으로 뚝 떨어졌다.


돈을 챙긴 변호사는 이 정도면 잘 풀린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남기고 떠났다. 항소하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은 터라 외가쪽 친척들은 슬퍼하지도, 화를 내지도 못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삼촌의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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