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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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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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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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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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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고이스트

DUMMY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에는 딱히 큰 사건이랄 게 없었다. 부모님께서 싸우는 걸 견디다 못해 탈주를 시도하다 걸렸고, 야밤에 밖에서 발가 벗겨진 채 아버지에게 비닐 호스로 얻어 맞아 저항의지를 완전히 잃은 것 말고는 무난하게 지냈다.


그러던 내 삶에 큰 변화가 온 건 나이가 7살이 된 뒤였다. 강제로 유치원이란 곳에 가게 됐던 것이다. 낮에 홀로 놀이터에서 놀았던 게 다인 나에게 있어 유치원은 무척이나 낯설고 새로운 곳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하교를 해야 했으며, 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아야 했다. 난 그런 유치원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며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아버지에게 얻어 맞았던 공포가 떠올랐다. 그래서 어떤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항상 구석에 쭈그려 앉아 멍하니 있곤 했다.


환하게 웃고 떠들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던 망가진 장난감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스스로 뭘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유치원에 다니는 건 괜찮아졌다. 적어도 집에 있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우 유치원에 적응했을 무렵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초등학생이 됐다.


그나마 다닐만 했던 유치원과는 달리 나는 첫 날부터 초등학교가 끔찍히도 싫어졌다. 시끄럽게 군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을 커다란 막대기로 때렸기 때문이다. 그 속엔 당연히 나도 있었다. 너무 아프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집과 학교, 모두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초등학생이 된 이후 나는 끊임없이 맞으며 살았다.


부모님에겐 구구단을 못 외운다고, 숙제를 안 했다고, 책을 안 읽는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머리를 제대로 못 감았다고, 알약을 잘 먹지 못한다고, 심지어는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거나 눈앞에서 한숨을 쉬었다는 이유로도 맞았다.


선생님에겐 문제를 못 풀었다고, 숙제를 안 해왔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산만하다고, 그냥 짜증 난다는 이유로 맞았다. 그것도 단순하게 때린 게 아니라 쓰레빠를 얼굴에 집어던져 코 뼈를 주저앉게 만들 정도로 가혹하게 때렸다.


이것만으로도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든데, 거기에 또래 아이들까지도 나를 만만히 보고 때리기 시작했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내가 남자 애들 싸움 서열 꼴등을 달성하면서 이번엔 여자 아이들까지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자그마한 내 몸은 멍과 할퀸 손톱 자국 투성이였다. 죽고 싶다는 생각과 충동이 하루하루 머릿속을 잠식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쉬는 시간에 한 번 학교에서 도망을 쳤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어마어마하게 얻어 터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쪽팔리게 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너덜너덜해진 내 몸과 마음은 죽고자하는 용기마저도 달아나게 만들었다.


매일매일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고, 변하지 않는 일상에 절망하며 잠에서 깼다.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





"X발!"


빌어먹을 붉은 천장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기분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봤자 변하는게 없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던 까닭이다. 이 정신 나간 공간은 어렸던 내가 커서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줄곧 그대로였다.


'대체 이 짓거리는 언제 끝나는 거지?'


어린 시절의 꿈을 꾸고, 이 공간에서 깨어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규칙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을 넘어 길 때는 한 달 내내 꿈만 꿨던 것이다.


어린 시절이 무척이나 암울하다는 점과 이 공간에서 깨어날 때는 반드시 고통을 겪는다는 점, 두 가지 요소 말고는 아직까지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 공간에서 나는 철저하게 무력하고, 무능하고, 무지했다.


'아, 하나 더 있긴 하네.'


생각하다 보니 확실한 사실 하나가 더 떠올랐다. 바로 고통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불에 타거나 물에 잠겨 숨을 못쉬는 원초적인 고통부터, 몸이 끝도 없이 녹아 내리거나 날카로운 것에 갈리는 아픔등등. 그간 겪은 것만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정확한 주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고통에 익숙해진다 싶으면 아픔의 종류가 바뀌곤 했다. 그렇기에 알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알게 되었다.


'젠장! 난 언제쯤 편해질 수 있는 거지?'


물론 그런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암울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꾸는 것도 싫고, 이 지옥같은 곳에서 고통을 겪는 것 또한 싫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안 돼.."


아무리 기다려도 악마의 유혹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고통이 서서히 몰려 들었다.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저항해봤지만 아픔은 점차 심해졌다. 커다란 바위에 온 몸이 깔려 뭉개지는 듯한, 끔찍한 느낌에 나는 결국 비명을 토해냈다.


"그마아아아아아악!!!!!"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걸까?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언제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대답 없는 질문을 뒤로 한 채, 내 마음은 다시금 절망에 잠식됐다.










********





끔찍했던 일상 중에 큰 변화가 생겼다. 3학년이 되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여동생이 태어났던 것이다. 갓 태어나 쭈글쭈글한 동생을 보고 있자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이제부터 넌 오빠가 되는 거야."

"네가 동생을 잘 보살펴 줘야 해."

"잘 할 거라 믿을게."


엄마의 당부와 함께 나는 오빠가 되었다.


책임감 때문일까? 난 그때부터 바뀌려 노력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까지 도왔다. 바쁘게 산 만큼 눈 깜짝할 사이 일주일이 지나가곤 했다.


노력은 나를 서서히 바꿔나갔다. 시험에서 처음으로 상위권에 들었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러자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폭력도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너무 기뻤다.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폭력이 사라진 데에 큰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좋은 자식이, 오빠가, 학생이 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하고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4학년 여름 무렵에 나는 전교 1등을 차지했다. 학교 대표로 과학 경시대회에 나가고, 거기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아침 조회 시간에 교육부 장관상과 도지사상까지 받았다.


교장에게 상을 받고 뒤돌아 운동장을 보자 선생들과 모든 아이들이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비난하고 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들까지 생겼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것만 같은, 그런 상황에 나는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서도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자 기쁨은 배가 됐다.


밤마다 눈물에 젖었던 내 베개는 더 이상 축축하지 않았다. 동생이 태어난 후로 난 행복해졌다 느꼈다. 그래서 그 행복을 누리고자 더 열심히 노력했다.


새벽 6시면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학교에 가서도 진지하게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 뒤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동생을 돌보며 집안 청소와 심부름을 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를 맡았고, 그 후에는 부모님에게 안마를 해드렸다. 부모님의 안마는 보통 1시간, 길게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따라서 안마가 끝난 뒤에는 몹시 지쳐 씻고 바로 잠을 자곤 했다.


조금도 쉬지 않고, 나는 기껏 잡은 행복을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행복은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집안일, 동생 돌보기, 부모님 안마로 인해 나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학교를 쉬는 일요일 또한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교회에 나가야만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지 못했을 때는 없었던 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교회에서 예배를 받고 어머니를 따라 전도나 봉사를 했다. 가혹한 일정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일요일이 제일 싫어졌다. 너무 피곤해서 월요일엔 늦잠을 자는 게 일상이 될 무렵, 어머니는 나를 주중 새벽 기도까지 나가게 했다.


난 종교가 정말정말정말 싫었다. 보이지도 않는 신을 믿으라 강요하는 것도, 용돈 한 푼 안주는 어머니가 교회에 많은 돈을 갖다 받치는 것도, 전도를 하며 신을 믿으면 나 같은 아들이 생긴다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어머니가 나를 소개하는 것까지. 그냥 모든 게 끔찍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학교와 과학 경시대회 모두 성적이 떨어졌다. 특히 과학 경시대회는 처참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망쳤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예전처럼 상을 받지 못하자 노력이 부족하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천재가 결코 아니었다. 한 번 스윽 본 것만으로 모든 걸 외우거나 이해하지도 못했고, 도리어 공부를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집에서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초등학교의 상황이 훨씬 더 안 좋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담임 또한 바뀌었는데, 전교생이 폭력배라 부르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별명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폭력배는 학기 첫날부터 시끄럽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을 모조리 팼다. 문제는 그 폭력배가 나만큼은 패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학생이란 이유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맞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맞아온 내가 봤을 때도 폭력배의 폭력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던 까닭이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한 번 때리면 반드시 피와 눈물을 봐야만 멈췄다.


그런 무시무시한 폭력이 매일 빠지지 않고 벌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해해 주던 아이들도 내가 특별 취급을 계속 받자 행동을 달리했다. 투명 인간처럼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애써 사귄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배에게 같이 때려달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계속 맞고 자라서 그런지 맞는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기도 했고, 끔찍한 폭력 또한 많이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폭력배는 내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주동자들을 불러 기절할 때까지 팼다. 애들은 내가 일렀다고 여겼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난 완벽하게 왕따가 됐다.


잠깐이나마 누렸던 행복은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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