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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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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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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고이스트

DUMMY

예상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 결국 나는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았다. 하숙집을 얻어 숙식을 해결했고, 근처에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었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를 바꿔 가족과의 연을 끊었다. 손에 쥔 거 하나 없는,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난 열심히 노력했다.


모든 건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하고 남는 모든 시간을 글에 쏟았다. 사실 글을 다시 쓰게 됐을 때는 우선 사과를 하고, 처음 글을 썼을 때처럼 한 편씩 올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순간 내 몸에서 제일 많이 망가진 부분이 바로 머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까닭이다. 다친 머리는 어떻게 회복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첫 날에는 책상에 앉아 8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줄거리를 모두 구상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문장 한 줄을 채 쓰지 못했던 탓이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썼던 글을 읽고 단순한 오탈자를 고치는 것 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속 이러면 어쩌지?'

'지금까지 난 뭘 위해 노력한 걸까?'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건데?'

'만약 평생 상태가 이대로라면.. 대체 난 뭘 위해 살려고 노력한 거지?'


걱정이 됐다가, 슬펐다가, 화가 났다가, 마지막엔 씁쓸함만이 남았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노력한 끝에 느리게나마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복잡한 마음을 어느 정도 떨쳐냈을 땐 또다시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냥 완결을 낸 다음 한 번에 올려야겠다.'


가까스로 글에 대한 방향성을 잡았을 때 어느덧 나는 30대 중반에 다다른 나이가 되어 있었다. 마음은 여전히 20대 중반에 머물러 있는데, 몸과 얼굴은 늙어 누구에게나 아저씨라 불릴 나이가 된 것이다.


덕분에 원래 없던 힘과 체력은 더 나빠졌다. 일을 하고, 하루에 3~4시간 정도 글을 쓰고 나면 완전히 퍼져 버릴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젊었을 때 했던 게임도 하기가 어려웠다.


콘솔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맘 먹고 모은 돈을 털어 중고로 구입했지만 패드를 잡고 게임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힘에 부쳤다. 남는 시간에 즐길 수 취미를 찾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모바일 게임에 빠졌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간단함에 이끌렸던 것이다. 하지만 끝이 없는 경쟁과 과금 유도, 각종 버그와 통수의 업데이트로 인해 결국 국산 모바일 게임은 할 게 못 된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퍼블리싱 계약으로 국내에 들어온 해외 모바일 게임에 시선이 갔다. 개중에는 스토리 위주에 경쟁 요소가 아예 없는 게임도 있었다. 나는 해외 모바일 게임에 금방 빠졌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예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게임 캐릭터의 설정, 외모, 성격, 인생관, 일화 같은 걸 알아보는 게 좋았다. 나는 그렇게 취향이란 걸 찾아가기 시작했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찾기 위해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가입하게 됐다. 게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었지만, 그보다는 게임에 관한 얘기를 하거나 만화, 그림, 웃긴 얘기들이 주로 올라왔다.


제사보다 젯밥에 끌린 격이었지만 나는 금방 커뮤니티에 빠졌다. 적어도 글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괴로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모바일 게임만큼 인터넷 커뮤니티에 재미가 붙었을 무렵 갑작스레 반일 운동이 일어났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300만 명 이상 학살한 공산주의 국가들에게는 화를 내기는커녕 찬양하면서 오로지 일본만 붙잡고 늘어지는 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과 달리 공산주의 국가들은 전쟁 이후에도 이런저런 사건 사고들로 수없이 한국에 피해를 끼쳤고, 그로 인해 사람들도 많이 죽었지만 그런 사실들은 모두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더욱 이상한 건 일본 게임과 장난감에 월급을 넘어 통장을 갖다 바칠 정도로 게임과 문화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단체로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돌변해 일본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때마침 엄청난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분위기와는 달리 일본 모바일 게임은 여전히 잘 나갔고, 새로 발매된 일본 게임 역시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했다.


나만 이상한 걸까? 태어났을 때부터 원래 잘못된 인간이라 정신병에 걸린 걸까? 이젠 인터넷조차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커뮤니티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보와 만화, 웃긴 얘기는 더 이상 찾기 어려웠다.


찬양과 비난, 아군 아니면 적, 오로지 흑백 선전의 정치글만 존재했다. 나는 결국 적으로 판정받았다. 위안부 할머니 같은 화냥년들을 주목받게 해줬으므로 단체에서 착취하는 것은 괜찮다는 내용의 글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댓글을 달면서 생긴 일이었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를 표하자 글의 작성자는 나에게 애비 X진 한남 X끼 재기해! 라며 알아듣기 어려운 욕을 했다. 거기에 미처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난 사이트에서 차단당했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충격을 먹은 건 아버지의 욕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괜찮았다. 평소에도 욕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인터넷에 부모님에게 미안하단 글과 함께 사연이 올라와도 남들처럼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아무도 내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은 데다 사이트에서 칼같이 차단당한 거였다. 분명 게임의 정보를 알기 위해 가입했던 거였고, 그 댓글을 달기 전까지는 아무런 제제도 없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결국 난 인터넷 커뮤니티를 끊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상한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스쿨 존에선 운전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심지어 멈춰있는 차에 어린애가 달려와 피할 수 없는 사고가 나도 무조건 운전자의 책임이라는 법이 시행됐다.


반면 아동 성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고, 클럽에서 마약 판매 및 성매매를 알선하고, 텔레그램을 이용해 직접 미성년자를 집단 강간하고 그 모습을 같이 시청한 진짜 범죄자들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대체 뭐가 어찌되는 걸까?

무섭다.

너무 무섭다.


가족, 인터넷, 사회 그 어디에서도 내 존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난 필요 없는 인간이었던 걸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열심히 살았다. 살려고 노력했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살았던 걸까.


예전에 삼촌이, 여자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돈과 권력이 있으면 골프채로 사람을 때려 죽여도 살인죄가 아닌 세상이었다. 모바일 게임으로 인해 조금씩이나마 쌓였던 삶의 의욕은 완전히 사라졌다. 살려준 의사와 간호사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심장마비 때 죽었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았다.





**********






사람 자체가 싫어졌기에 나는 정말 필요할 때 말고는 되도록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괴물처럼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관계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역시 정신병이 다 낫지 않은 걸까?


다행히 내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일을 하고, 돈만 내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끊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외면하면서 나는 삶에 의욕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내 하루는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오로지 글을 완성시키는 것만 바라보고 살았다. 내게 남은 삶의 버팀목은 그거 하나 뿐이었다.




********




끝났다!


불혹의 나이를 조금 넘겼을 무렵, 결국 난 해내고야 말았다. 정신병을 얻은 이후 단 한 편의 글도 올리지 않고 완결까지 홀로 나아간 것이다.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정독해 읽은 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웹소설 연재 사이트에 지금까지 써온 글을 모두 올렸다. 정상적으로 조회수가 올라가는 모습을 끝으로 나는 노트북을 껐다.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긴 터라 독자들의 반응은 보지 않았다.


'죽기 전에 여행 정도는 가보고 싶었는데.'


나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간 모은 돈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30 중반쯤 됐을 무렵, 중국발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해외여행 대부분이 막혔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르면서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해 끝도 없이 강력해졌고 이렇다 할 치료제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다른 종류의 중국발 전염병이 또다시 발생했다. 당연하게도 가까이 붙어 있는 한국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국내 여행조차 금지되어 이유 없이는 사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도록 군대와 경찰이 방호복을 입고 이동을 막는 중이었다.


'인간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라..'


아무리 인터넷과 뉴스를 끊고 살아도 일을 하다 보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이나 전염병의 소식 정도는 알게 됐다. 전염병이 처음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감염자는 10억을 넘어섰고, 그중 1억 명 가까이 사망했다.


발병지인 중국의 공식적인 집계는 여전히 없는 데다 낙후된 나라들도 통계가 엉망인 건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무증상 감염자에, 급사한 시체는 원인도 알아보지 않고 바로 화장해버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세계가 후퇴하다 못해 인간이 멸망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만 해도 임금은 동결되다 못해 계속 주저앉았고, 물가는 끝도 없이 올랐다. 유일한 낙이었던 모바일 게임 역시 폐지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30세 이후에도 미혼인 한국 남자들에 한정해서 특별 부가세와 독신세가 부과됐고, 40세 이하는 언제든 군대에서 징집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된 상황이었다.


나는 나이를 초과하고 정규직도 아닌 데다 재산도 없어 해당 사항에 걸리지 않았지만, 군대에서 멀쩡한 사람은 물론 장애인까지 가리지 않고 많은 수의 남자들을 다시 강제로 데려가는 바람에 사회는 크게 혼란에 빠졌다.


반면 여자들은 아무 일을 안 해도 매달 최저 생활비를 나라에서 지원받았다. 거기다 여자는 남자를 칼로 찔러 죽여도 강간하려 했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무죄였다.


전염병 때문에 해외로 도망칠 수도 없었던 터라 젊은 한국 남자들의 자살율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결국 여자들의 숫자는 남자보다 많아졌고, 그들이 100프로에 가까운 투표율을 보이면서 한국은 하나의 당만 있는 독재 국가로 완벽하게 거듭났따.


'뭐, 어찌되든 나랑은 상관 없지.'


한국의 상황이 연일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다 할 인간관계도 없는 데다 있던 가족의 연마저 끊은 나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할 일도 힘겨웠던 삶을 끝내는 것만 남은 상태였다.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말고 조용히 마무리하자.'


나는 미리 구비해둔 텐트와 커다란 비닐, 테이프, 번개탄 등을 챙긴 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인근의 야산으로 올라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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