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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44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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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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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고이스트

DUMMY

잠에서 깨 눈을 뜨자 짙은 어둠이 반겼다. 잠시 멍하니 있다 팔을 뻗어 근처에 있는 핸드폰을 찾았다. 손에 잡힌 핸드폰으로 곧장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막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문득 전날 오후 2시쯤에 잠이 들었던 게 생각났다.


'14시간쯤 잔 건가?'


더 이상 졸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베개 옆에 둔 다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깊은 밤으로 인해 온통 거무스름한 게 꼭 자신의 상황을 나타내는 듯이 보였다.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둔지도 몇 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한 거라곤 먹고, 자고, 싼 게 다였다. 가끔 도시락을 사러 편의점에 가거나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이 돈을 보내라며 닦달하지 않았다면 밖에 나가는 일은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른다.


활동량이 줄고 식욕도 없어진 까닭에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사면 대략 3, 4일 동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화장실에서 모두 토하곤 해서 식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하지만 월세를 포함한 이런저런 요금과 각종 세금들, 키워준 보답이랍시고 부모님이 가져가는 금액, 거기에 더해 직장을 막 다닐 무렵 비슷한 시기에 여대에 들어간 동생의 용돈까지.


한 달마다 빠져나가는 돈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지금처럼 통장에 있는 돈과 보증금을 빼먹는 삶은 오래가지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귀찮다.'


잠깐 걱정이 들었지만 고민은 금방 사라졌다. 어차피 지금 상황이라면 일을 해도 남는 게 없었다. 한 푼도 모으지 못하고 고통만 받을 거라면 그냥 이대로 버틸 때까지 버티다 죽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지금은 삶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어째서 나만 놔두고 간 거야?'

'함께 갔으면 좋았을 텐데.'

'보고 싶다. 니가 너무 보고 싶어...'


지금처럼 침대에 누워 무기력하게 있으면 예전에 사귀었던 첫사랑이 떠올랐다. 당시도 힘든 점은 있었지만 무척 행복했고, 미래를 그리며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음에도 그녀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줄지 않은 채였다.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처음 며칠간은 예전에 다하지 못했던 슬픔과 그리움에 잠겨 홀로 매일 눈물을 흘렸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눈물만 나지 않을 뿐, 괴로움은 여전히 남아 가슴 한 켠을 꾹꾹 찔러댔다.


가만히 있어도 괴롭고, 뭔가를 하면 더 괴로울 상황의 연속에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자 인터넷 연재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리됐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우연히 고등학생 때의 버릇이 나온게 아닐까 싶을 뿐.


'오늘은 뭘 읽지?'


우울한 기분이 몰려오자 나는 습관처럼 누운 자세 그대로 근처에 있던 핸드폰을 집에 들었다.


인터넷 연재소설은 핸드폰에 앱을 깔고, 결제만 하면 그 자리에서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난 매일매일 소설을 탐독했다. 그것은 게임과 유럽 축구 이후 오랜만에 알게 된 새로운 세상이었다.


학생 때처럼 소설 속의 세계를 보고 있다 보면 현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일어나 있는 시간은 모두 글을 읽는데 썼다. 인기가 있는 소설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시간도 삭제되듯이 사라지곤 했다.


처음엔 그런 흐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완결된 소설만 봤지만, 최근엔 더이상 볼 게 없어 연재중이던 글들도 손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갈수록 읽을 만한 소설은 찾기가 힘들었다. 계속 읽다 보니 취향이란 게 생겼기 때문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 글들은 아무리 잘 쓰고 인기가 좋아도 손이 가지 않았다. 소설에 몰입하고, 공감하고, 흥미를 갖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입맛이 고급이 될수록 먹을 만한 음식이 줄어드는 현상과 비슷했다.


'큰일이네.'


이는 하루 종일 글을 읽으며 현실을 잊고 시간을 보내던 내게 중대한 문제였다. 웹 소설은 이제 막 파이가 커져 나가는 시기라 사이트 규모도, 숫자도 무척 적었다. 지금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딱히 읽고 싶은 글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한 번 써볼까?'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웹 소설은 접근성이 쉬워서 그런지 만만해 보였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직장 생활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할만해 보였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고, 그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글이라도 남기고 죽자. 그럼 몇 명 정도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걸 알아주겠지.'


나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ㅄ 새끼 글 진짜 못쓰네 그만하고 걍 나가 뒤져라


글을 5편 가량 올렸을 때 첫 악플이 달렸다. 사실 악플이라 하기에도 뭐했다. 그만큼 못썼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죽으라는 댓글을 보고도 화보다는 부끄러움이 먼저 몰려왔다.


처음 쓴 글을 자평하자면 초등학생 일기만도 못했다. 맨 땅에 글쓰기는 그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쓴 글이 자식처럼 느껴지고 미안한 감정까지 생겨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계속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




'내가 1위라니!'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 어려웠다. 내가 쓴 글이 사이트 연재 부분에서 1위를 달성했던 것이다! 엄청나게 기뻤다. 너무나도 기뻐 황홀할 지경이었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유료로 쓴 터라 바닥을 보이던 금전 상황도 꽤나 달라졌다.


돈이 한 달에 300만 원 넘게 들어온 것이다. 이 돈이면 당장 나가 죽지 않아도 됐다. 아니,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강탈 당한 후에도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관심 있던 게임기와 게임까지 살 수 있었다. 그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는 너무 기뻤다.

심장이 계속 벌렁벌렁 거릴 정도로 기뻤다.

그 상태가 일주일 넘게 계속됐다.


그동안 나는 1, 2위를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1위든 2위든 엄청 높은 순위라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기뻤다. 그러다 하루 내내 1위를 했을 때는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됐다! 됐어!

이대로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 성공!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몰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짜릿한 기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올라갔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미웠던 세상마저 갑자기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고 며칠 뒤, 나는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던 중 도끼로 머리를 정확히 반쪽 내는 듯한 아픔을 맛봤다. 어찌나 아픈지 손발과 함께 온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과 콧물 땀을 끝도 없이 흘려댔다.


'뭐, 뭐였지?'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 돼서야 고통은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엄청 당황했지만 무섭기도 하고, 지금의 생활이 깨지는 것도 무서워 그냥 넘어갔다.


'어라? 글이 갑자기 잘 써진다!?'


고통을 겪은 이후 삶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한 편에 평균 8~10시간씩 걸리던 글이 불과 1시간 만에 다 써진 것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각이 예민해지면서 음식 맛이 엄청나게 선명하게 다가왔고, 하루에 2~3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뇌 속이 마치 컴퓨터의 코어처럼 분할돼 돌아가면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하루가 마치 이틀처럼 길게 느껴졌고, 힘이 끝도 없이 솟구치면서 잊은 줄 알았던 성욕까지 마구 들끓었다. 넘치는 성욕을 풀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운동하고, 남는 시간에는 글을 썼다.


난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이 지금까지 잘못됐던 걸 바로잡고 있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잘나가던 글의 내용은 점차 이상해지는 걸 넘어 산으로 가고 있었다.


당연히 독자들의 반응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다며 합리화했다. 넷상의 독자들은 많았지만 현실에서 나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tv에서 나오는 모든 방송이 나를 대상으로 한 것만 같았다.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등 보고 있기만 해도 언어를 습득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 천재 소리도 자주 들었다. 그러니 지금 상태가 정상이고, 그동안 살아온 삶이 이상했던 거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잠식하자 순식간에 어릴 적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거기서 깨달은 확고한 사실은 부모님이 나를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모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자식, 그게 나란 사람의 본질이란 걸 깨달았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졌다.

너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꺽꺽 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한 손으로는 목을, 남은 한 손으로는 심장 부근을 부여잡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거기까지 상태가 진행됐을 때 귓속으로 누군가 부르는 환청이 들려왔다.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따스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아! 이 세상은 그저 놀이에 불과했구나!

고통 속에서 나는 신보다 더한 개념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끝으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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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고이스트 20.09.14 32 1 10쪽
8 에고이스트 20.09.14 31 1 11쪽
» 에고이스트 20.09.14 31 2 10쪽
6 에고이스트 20.09.14 39 1 10쪽
5 에고이스트 20.09.14 37 1 10쪽
4 에고이스트 20.09.14 33 1 13쪽
3 에고이스트 +1 20.09.14 4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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