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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37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2
조회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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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에고이스트

DUMMY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덮쳤다.


"으아아아아아악!!!!"


전신이 조각조각 찢어질 듯한 아픔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그러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뭐, 뭐야?'


가장 먼저 보인 건 피처럼 붉은 하늘이었다. 아니.. 천장인가? 잘 모르겠다. 햇빛도 없고, 형광등 같은 것도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색만큼은 뚜렷이 구분이 가능했다.


물론 이런 짧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고통은 계속됐고, 내 입은 의지와 상관없이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결국 나는 의문을 뒤로 한 채 더 이상 아프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아무리 울고 불며 애원해도 고통은 줄기차게 찾아왔다.


끝도 없는 아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밤만 되면 싸우셨다.


천둥과 지진이 동반한 것만 같은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오후가 되면 어머니께서는 막대 부분에 쇠가 들어 있는 파리채를 들고 와서 나를 때렸고, 또 혼냈다.


'너만 없었으면! 너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울면서 잘못했다고,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 존재 자체가 맞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2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는,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미처 아물지 않은 멍 위로 더 큰 멍 자국이 생기는, 힘겹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 때까지 덜덜 떨어야만 했던 어두운 밤이.


나에게는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느껴졌다.






*****






'....뭐지?'


마치 방금 경험한 것만 같은 생생한 기억에, 나는 정신을 차리는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냥 꿈인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서 뭐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쉽사리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방금의 기억을 꿈이라 생각한 건, 여전히 시야에 피처럼 붉은 천장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현실이 아니라면 이 끔찍한 공간에서 진작에 탈출했을 테니까.


게다가 이 공간을 단순히 환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붉은 천장을 보며 겪은 고통이 너무도 생생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주르륵 나며 오한이 들 정도로.


'...어라? 근데 언제 멈춘 거지? 그래서 기절했다 꿈을 꾼 건가? 지금은 아프지 않네. 혹시 완전히 끝났나?'


끔찍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무섭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하나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뭐하나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마음이 심란하고 갑갑했다. 짜증나는 기분을 풀기 위해 바닥에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끙... 아아악!.."


몸을 일으키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바닥에 뒤통수를 박았지만, 거기엔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남아 있는 고통이 훨씬 더 컸던 까닭이었다.


"으으으....."


어찌나 아픈지 이를 악물고 있는데도 제멋대로 신음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몸 역시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흘러 고통이 사그라들 때까지 버텼다.


'....당분간 움직이지 말자.'


고통은 잔재만으로도 끝장나게 아팠다. 너무나 두려워 움직이는 건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바닥에 누워 멍하니 피처럼 붉은 천장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야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어 꺼림직했지만, 계속 똑같은 풍경에 슬슬 상념이 몰려왔다.


'여긴 어딜까?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나는... 어라?'


물론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중대한 결함을 발견했던 것이다.


'내가 누구였더라?'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기억은 조금 전의 꿈밖에 없었다. 마치 뇌가 세척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하지만 내가 당황에 빠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겨우 가라앉았던 고통이 서서히 다시 몰려왔던 것이다.


'아, 안 돼... 그만!'


착각이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이번에도 내 소망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다 아픔이 임계점을 돌파한 순간, 생각할 자유마저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또다시 의지를 잃고 비명을 질렀다.





*******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이혼을 외치며 맨날 집안을 때려 부쉈지만, 가족이 아닌 남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함께 외출하면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좋은 남편을 둬서 좋겠어요~ 라고 했으며, 나에겐 좋은 아빠가 있어 좋겠구나~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그럴 때마다 기분이 매우 좋았는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렸고, 자연스레 밖에서만큼은 가족을 자상하게 챙기곤 했다.


집안과 밖의 괴리감으로 인해 많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어머니도 밖에서만큼은 파리채를 들지 않았던 터라 나는 점점 가족끼리 외출하는 시간이 좋아졌다.


다행히 아버지는 남에게 듣는 칭찬에 중독됐는지, 가족을 데리고 일요일마다 외출을 나갔다. 그리고 가던 중에 누군가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먹으러 간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돈까스가 맛이 없었다. 그래서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스프만 먹었고, 돈까스는 대부분 남기곤 했다.


아무리 3살짜리 어린아이라 해도 스프를 조금 먹고 배가 부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외식이 끝난 다음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배고프다고 보챘고, 어머니는 냉장고에 있는 멸치볶음에 밥을 비벼 내던지듯 주면서 나에게 화를 냈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밥을 먹는 걸 반복하던 중에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가난하게 자란 터라 고기를 먹어 버릇하지 않아 고기 자체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레스토랑에 가면 오징어 볶음밥을 시켰다.


반대로 풍족하게 자란 어머니는 돈까스처럼 저렴한 음식은 좋아하지 않아 함박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런데 꼭 내 음식으로는 좋아하지도 않는 돈까스를 시켰다.


마치 내가 마구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하는 것처럼. 돈까스를 좋아한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도 내 부모님은 외출 때마다 그런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외출할 때만큼은 어머니에게 맞지도 않았고, 무관심한 아버지도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또 돌아와서 두 분이 서로 싸우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떠올랐던 의문을 가슴에 묻고 항상 외출할 수 있는 일요일만을 기다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이 되자 우리 가족은 외출에 나섰다. 하지만 경로는 평소와 달랐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다듬기 위해 일찍 출발해 미용실에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파마를 하던 손님도 있던 데다, 겨우 자리에 앉은 어머니 또한 머리를 다듬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게다가 TV 역시 관심 없는 드라마만 계속 나왔기에 나는 지루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미용실 아줌마는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때부터 나는 아줌마와 계속 대화를 나눴다.


"아닌데요. 저희 부모님은 맨날 맨날 싸워요."

"정말!? 절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어쩌다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공통된 주제를 찾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아무튼 만고불변의 관심사인 남의 가정사를 들은 아줌마의 리액션은 굉장히 좋았다.


덕분에 나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매일같이 싸워댄 탓에 부부 싸움에 관한 얘기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나중에 아줌마는 박수를 치며 깔깔댈 정도로 즐거워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덕에 지루했던 어머니의 미용은 순식간에 끝났다. 아줌마는 너무 웃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 우리 가족을 배웅했다. 나는 그런 아줌마에게 손을 흔들고는 차에 탔다.


레스토랑에 가는 내내 누군가를 즐겁게 했다는 사실이 나를 굉장히 뿌듯하게 했다. 그래서 몰랐다. 차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아빠가 어딜 가는 거지?'


레스토랑 주차장에 차가 멈춘 뒤, 곧장 내린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우악스럽게 끌고 어디론가 향할 때도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럴 겨를이 없기도 했다.


도착한 곳이 화장실이란 걸 깨닫기 무섭게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번쩍-! 하고 별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맞아서 바닥에 쓰러졌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발이 배에 날아왔다.


화장실 바닥에 굼벵이처럼 쓰러진 나를 아버지는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뒤로 어둠이 찾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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