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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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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43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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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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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고이스트

DUMMY

미용실 사건을 겪으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집안 얘기를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강제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누구에게도 부부 싸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실수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있었던 외출은 어느샌가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낮에는 어머니에게 밤에는 아버지에게 맞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제 막 4살이 된 작은 내 몸으로는 부모님의 계속되는 매질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살아가려면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예 눈앞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부모님이 필요한 건 나 혼자뿐이었다. 서글픈 현실 앞에 나는 무기력했고,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잠식당한 채 살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무시무시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색 물을 그릇에 담아 내 앞에 가져왔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독약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TV에서 그걸 마시고 사람이 죽는 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어찌됐던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좁은 아파트에서 도망갈 공간은 없었다. 거부하는 나를 잡아챈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꽉 붙잡아 안았고, 강제로 입을 벌려 독약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이걸 마시면 곧 죽는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겁이 났다. 그래서 몸부림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눈과 코, 입까지 독약이 한가득 묻었을 때, 나는 격렬한 발버둥 끝에 어머니의 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삶의 희망을 붙잡은 난 곧장 일어나 정신없이 내달렸다. 곧바로 단단하고 서늘한 무언가 내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대로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뇌를 지배하고 있던 터라 거칠게 없었다.


나는 가로막고 있는 걸 순식간에 타고 올랐다. 그리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힘껏 점프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 바람이 전신을 휘감았고,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을 맛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난 격렬한 아픔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정확히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병실의 침대에 누운 상태였다. 내가 깨어난 것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아버지와 의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애가 한약이 먹기 싫어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고, 아파트가 2층인데다가 비를 막기 위해 설치된 자전거 보관소 지붕 위로 떨어져서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몸에 좋은 거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됐다 말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맞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나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도 부모님은 날 혼내거나 때리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팔 말고도 온몸을 다친 탓에 나는 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환경과 낯선 사람들로 인해 겁을 먹은 것도 잠시, 나는 병원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옆 침대에서 팔에 대바늘을 꽂고 있던 있던 할머니께서 굉장히 예뻐해 주신 데다, 담당하던 간호사 누나도 잘 챙겨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맨날 때리던 부모님도 없었고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느날 밤 문득 잠에서 깬 순간, 난 생애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다.


병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을 청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날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빌었다.





*****************





'또 기절했었나 보네.'


끔찍한 고통을 겪다 어느샌가 의식을 잃고, 생생한 꿈을 꾼 다음 붉은 천장을 보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영원히 아파야 하는 걸까? 대체 언제까지 아파야 하는 거지?'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꿈에서 깨어난 뒤에 생각을 하는 거였다. 이것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이기도 했다.


'이 정도 고통이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거야.'

'그런데 왜 죽지 않는 거지?'

'역시 이미 죽은 걸까?'


여전히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생전의 기본 상식이 점차 떠오르고 있었다. 그 상식에 따르면 이 정도의 고통을 반복해서 겪고도 멀쩡하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피처럼 붉은 천장이 있는 공간 역시 상식 밖의 장소였다. 명확한 단서 하나 없는, 그저 추론에 불과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미 죽은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영혼만 남은 건가?'


영혼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천국과 지옥의 개념도 알게 됐다. 어쩌면 이곳은 지옥이 아닐까? 지금까지 겪은 일과 장소를 보면 얼추 맞아 떨어졌다.


'그냥 상상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거였나?'

'여기가 지옥이 맞다면 나는 왜 온 걸까?'

'대체 뭘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개념에서는 살아생전 큰 죄를 저지른 사람만 지옥에 가고, 착하게 산 사람들은 천국으로 간다 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생각이 맞는다면 아무래도 나는 살던 중에 큰 죄를 저지른 모양이었다.


'답답하네. 뭘 알아야 반성이라도 할 텐데.'


그렇지만 이 모든 건 그저 생각과 상상에 불과했다. 자신이 누군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아직 모르니까. 마치 짙은 어둠 속에 감춰진 것처럼 나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만 했다.


이런 내게 남아 있는 희망은 꿈의 내용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 정도였다. 꿈속의 주인공은 날이 갈수록 나이를 먹고 자랐으며, 경험 또한 다채로워졌다.


게다가 꿈만큼은 잊지 않고 경험하듯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보니, 나는 어느새부턴가 꿈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아이의 인생을 계속 꿈으로 꿀 리 없다고 여기기도 했다.


'...근데 행복했던 기억은 아예 없는 건가?'


암울한 건 기절할 때마다 꾸는 꿈의 대부분이 불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넘치는 생동감은 나에게 당시의 기분과 경험을 똑같이 겪게 했고, 깨어나서도 괴로운 감정을 맛보게 만들었다. 그 탓에 몸과 마음이 번갈아가며 고통스러웠다.


'꿈에서도 아파야 하다니, 이것도 벌 일까?'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고통이 서서히 몰려왔다.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짧은 의문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행복한 순간은 짧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린 나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다친 일로 인해 부모님의 부부 싸움은 더욱 심각해져 있었다. 그 탓에 밤이 훨씬 무서워졌다.


반대로 낮은 조금씩 좋아졌다. 팔이 부러진 상태라 맞지도 않았고, 그 시간 동안 어머니께서 비디오를 빌려 틀어줬기 때문이다. 처음 보게 된 애니메이션 '용 구슬'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하루 종일 그 비디오만 반복해서 봤다.


보고 또 보고, 대여 기간이 다 되면 가게에 가서 똑같은 걸 빌려와서 계속 봤다. 다른 건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비디오에만 빠져 있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헛되이 쓴다고 여겨 혼냈고, 그럼에도 똑같은 걸 빌려오자 결국 다시 매를 들었다. 나는 팔이 채 다 낫기도 전에 파리채에 맞았다.


얻어 맞고도 같은 편을 빌려올, 하지 말라는 걸 할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물론 그렇게 혼난 뒤 곧바로 이사를 가면서 그럴 기회도 영영 사라졌다.


새로운 집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불행했다. 방이 하나였기에 모두 모여서 잠을 자야 했기 때문이다. 부부 싸움은 더욱 극렬해졌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는 수시로 깨워져 누굴 따라갈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았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싫었다. 그래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다. 두 분은 그런 나를 사이에 놓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시 싸워댔다. 내가 뒤통수에 재떨이를 맞아 쓰러져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마치 지옥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에 있을 때가 생각난 건 그때였다. '어떻게 해야 다시 거길 갈 수 있지? 그래, 다치면 되겠구나!' 다음날 낮에 나는 길가에 숨어 있다가 달려오던 차에 뛰어들었다.


그때 죽지 않았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초등학교 근처라 차가 천천히 달렸고, 운전하던 아저씨가 뛰쳐나온 나를 발견하자마자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치여서 날아간 터라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내가 몸에서 나는 피를 보고 깜짝 놀라 엉엉 울었을 정도로 엄청나게 흘렀다. 아저씨는 피투성이가 된 나를 수건으로 감싸 안고 차에 태운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내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저씨에게 죄송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잘못했다고, 내 잘못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그 뒤 눈을 떴을 땐 원했던 대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하지만 병원도 달랐고, 당연히 잘해줬던 할머니와 간호사 모두 없었다. 부모님을 안 보는 건 좋았지만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던 아저씨에게 너무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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