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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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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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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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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고이스트

DUMMY

중학교 시절 내내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반에서 2등, 전교 5등까지가 내 최고 성적이었다. 그걸로는 한껏 높아진 부모님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전교 5등 안에 든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줬는데 난 거기에 끼지 못했다.


늘 실망하고 화만 내던 부모님은 내가 더 이상 공부에 가망이 없다고 여겼는지 혼내는 걸 그만뒀다. 덕분에 자신들은 1등이 전혀 아니면서 언제나 1등만을 강요하던 끝없는 잔소리 또한 자연스레 사라졌다.


대신 부모님은 아직 어린 여동생에게 애정을 주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혼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무관심이 되려 엄청나게 고맙고 기쁠 정도였다.


덕분에 난 생전 처음으로 친구들을 따라 PC방에 갈 수 있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유행하던 게임을 접했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금방 게임의 매력에 빠졌다.


단순히 생각만해도 행복해질 만큼, 난 게임이 좋아졌다.




*******









게임을 알게 된 뒤로 더 이상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게임 생각만 했고, 친구들과 pc방에 갈 수 있는 주말만 기다렸다. 친구들이 가지 않을 때는 혼자서라도 pc방에 갔다. 그 덕에 게임 실력은 나날이 좋아졌다.


반대로 성적은 수직낙하했고,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고등학교 시절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모두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그래서 내 고등학교 성적은 1학년 때가 제일 좋았고, 3학년이 됐을 땐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처음부터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리던 미래는,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 일을 하며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거였다. 당연히 큰 돈을 내야하는 대학 진학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래서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도 나는 판타지나 무협 소설만 줄창 읽어댔다. 3학년이 되어서도 애들이 수능 공부할 때 취업 자료를 몇 번 살펴보기만 했을 뿐,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갑갑한 학교와 불편한 집을 벗어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남들은 다 망했다고, 정신 못 차렸다고 할만한 고등학교 생활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제일 행복한 시기였다. 그도 그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안 했던 것이다. 오히려 열심히 살고자 마음을 굳게 먹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인생이란 것도 한 번 살아볼 만한데?'

'어떻게든 게임만 계속할 수 있다면 행복할 거야.'

'늙으면 어차피 죽을 텐데 자살하는 건 좀 아깝네.'


이 모든 변화가 게임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게임만 할 수 있다면 미래가 어찌 되던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듯 목표했던 삶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던 도중 이변이 생긴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 방학에 돌입하면서였다.


"예? 제가 대학에 갈 수 있다고요?"


보충 수업에 앞서 학생들은 한 명씩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 시간을 가졌는데, 그러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개판인 내 성적을 보고도 대학 진학을 권했던 것이다.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전 똥통 대학교는 갈 생각도 없고 그럴 돈도 없어요."


깜짝 놀라긴 했지만 난 내 주제를 잘 알았고,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도 강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대학을 가고 싶었으면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포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취급했다.


내 생각과 달리 선생님은 농담 같은 걸 한 게 아니었다. 성적에 맞춰 진짜로 대학 입시를 준비해왔고, 그걸 바탕으로 천천히 설득해나갔다. 나는 선생님의 진지한 말씀에 점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전형이 있어? 우리 학교랑 자매결연도 맺고? 거기에 국립대??'


국립대면 사립대에 비해서 등록금이 훨씬 낮았다. 가능한 집에서 멀리 벗어나고자 하는 나에게 지방은 오히려 이점이었다. 선생님은 면접만 잘 준비하고, 수능에서 두 과목만 5등급 이내에 들면 합격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가능성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엄청나게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학자금 대출을 무조건 받아야만 했다.


그런 리스크까지 안고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긴 시간 동안 하기 싫은 공부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난 고민 끝에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여겼다.


"대학 안 간다고 했다며?"

"..네, 그런데요?"

"미쳤어? 그걸 왜 혼자 멋대로 결정해!!!"


며칠 뒤 보충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크게 화를 냈다. 사실 아버지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차에, 아버지의 호통이 이어졌다.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간다고? 창피해서 정말! 내가 그 정도 돈도 없는 줄 알아!?"


혼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내는 이유를 깨달았다. 반에서 대학을 안 가는 게 나 뿐인 것과 돈이 없다는 것, 두 가지 모두 남의 시선을 끔찍이 중시하는 아버지에겐 치명적인 오점이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나에게 대학을 강요한 건 본인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호적 파이고 싶지 않으면 대학 가!"


순간 호적에서 파이면 엄청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민 끝에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돈 문제만 아니라면 한 번쯤은 대학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까닭이다. 대학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생각보다 컸다.


목표가 생긴 나는 남은 반 학기 동안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고, 평균 3등급을 받아 선생님이 추천했던 대학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결국 내 고등학교 생활은 노력에 비해 운이 정말 좋았던 걸로 마무리됐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까지 마친 뒤에,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대학으로 향했다.





******





부풀었던 만큼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매일 술판이 벌어졌으며 그 술로 인해 문제가 터졌다. 그런 와중에 선배가 부르면 어떻게든 재깍재깍 달려 나가야 했다. 더욱 끔찍한 건 선배들에겐 맞아도 반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못하는 술을 강제로 마시는 것도 힘겨웠고, 부조리한 폭력에 순응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오는 연락을 모두 무시했다. 순식간에 아싸가 됐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학을 계속 다닐 마음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내가 들어간 학과는 공대 계열이었지만 취업에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졸업한 선배들도 대부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구하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마음에 맞지도 않고 미래도 불분명한 대학 생활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이 떠났음에도 대학을 바로 그만두지 않은 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내가 입주한 기숙사는 좁은 공간에 이층 침대 두 개와 책상 4개, 옷장 2개가 놓인 게 끝인 4인실이었는데 모두 다른 학과에 3학년 둘과 1학년 둘로 구성되어 있었다. 까칠한 사람도 없는 데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까지 있어 우린 금방 친해졌다.


"아, 박진성 알아요. 아인트 호벤에 있잖아요."

"푸하하하! 뭐라는 거야, 맨유에 간 지가 언젠데."

"와~ 몇 년전 얘길 하는 건데?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기숙사 멤버들은 게임만큼 축구도 좋아했다. 월드컵 때 말고는 축구를 본 적이 없던 나는 그들을 폭소하게 만들며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걸 드러냈다. 무척 창피했지만 함께 축구를 본 뒤로 그런 마음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보게 된 유럽 축구는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새로운 세계였다. 당시 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이자, 국가 대표의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던 박진성이 맨유 소속으로 한창 활약할 때라 더 쉽게 빠져들었다.


거기에 축구 게임까지 배우면서 나는 단숨에 축구가 게임 다음으로 좋아졌다. 기숙사 멤버들과 같이 게임 리그를 본 뒤 게임을 하고, 주말 밤에는 치킨을 먹으며 유럽 축구를 봤다. 나에겐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았던 삶이었다.


그런 생활 때문에 마음이 떠났어도 곧바로 대학을 그만두지 못했다. 오히려 등록금을 낸 1학년까지는 다녀야겠다고 결심할 정도였다. 즐겁게 기숙사 생활을 만끽하는 사이, 훨씬 더 행복한 일이 생겼다. 생전 처음으로 여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FPS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으로 알게 된 유저 중 하나였는데, 채팅을 하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린 금방 친해졌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꽤나 많이 알게 됐을 때 밥 한 번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가니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나타났다. 순진하게 생긴 외모에 큰 눈이 무척이나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몇 차례 만남을 더 가지면서 호감이 커진 나는 사귀자 말했고, 그녀가 고백을 받아주면서 우린 연인 사이가 됐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면서 나는 게임과 축구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걷다 서로의 눈을 마주쳤을 때, 싱긋 웃으며 수줍게 '오빠~'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길 잘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길 잘했다.

대학에 오길 잘했다.

고백하길 잘했다.


나는 이 순간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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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고이스트 20.09.14 3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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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이스트 20.09.14 37 1 10쪽
4 에고이스트 20.09.14 3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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