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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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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50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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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에고이스트

DUMMY

-일어나라-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극히 차갑고 무기질적인 목소리에 난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물론 그런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고통이 가슴 정중앙에서 느껴졌던 탓이다.


"으아아아아악!!!!!!"


세차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자 이상한 형체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퍼런 피부에 얼굴과 몸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그런 몸통에 커다란 외눈과 흐물거리는 촉수 같은 것들이 셀 수 없이 달린 끔찍한 모습이었다.


'괴, 괴물...'


지금까지 알던 지식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가슴의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젠장, 대체 뭐야?'


끔찍한 고통을 참으며 주변을 살피자, 괴물의 수많은 촉수 중 하나가 내 가슴을 찌른 뒤 공중으로 들어 올린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전처럼 아픔만 느껴질 뿐 피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의문을 떠올리기 무섭게 괴물은 마치 볼 일을 다 봤다는 듯, 커다란 몸통을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몸에 달린 촉수들도 크게 흔들리면서 찔린 가슴 부위가 찢어질 것 아팠다. 때문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통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괴물이 멈춰 섰다.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나는 땅으로 패대기 쳐졌다. 손에 잡힌 벌레를 땅바닥에 던지는 느낌의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크하아아악!"

"끄어억!!"

"아아악!"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다양한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덕분에 나는 이 지옥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뒤, 고통이 좀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추슬러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넓은 광장 같은 곳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물론 정확히 사람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흐릿하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인종도, 외모도 알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마치 영혼이란 단어를 재현하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역시 여긴 지옥인가 보네.'


살펴본 결과 내 모습도 딱히 다르진 않았다. 핏빛 세상에서의 끝없는 고통과 징그럽게 생긴 괴물, 영혼만 남은 사람들의 모습 등을 근거로 삼자 그동안의 가설은 확신이 됐다.


'근데 난 왜 지옥에 온 거지?'


문제는 자신이 어째서 지옥에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꿈이 현실의 삶이라 치면 줄곧 불행하기만 했을 뿐,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옥에 갈만한 짓은 안 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그간의 기억을 열심히 되새겨 봤지만 딱히 크게 죄를 지은 적은 없었다. 길에서 가만히 걷고만 있어도 날아오는 돌에 맞거나, 계속 사기나 이용만 당하면서 쉬지 않고 불행이 찾아왔던 삶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혹시 정신병에 걸린 뒤에 뭔가 했나? 그렇진 않을 텐데..'

'쓰러지고서 그대로 죽은 게 아닌가?'

'아니면 선악이나 죄의 기준이 사회의 통념이랑 다른 걸까?'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는 찰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나는 짜증을 참으며 주위를 살폈다.


'뭐가 이렇게 시끄.. 저, 저게 뭐야?'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광장 중앙 부근에 건축물이 보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발견 못한 게 신기할 정도로 거대했고,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기이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는 무슨 색인지 제대로 알기도 어려웠다. 보고만 있어도 차원이 다른 듯한 건축물에 압도된 탓인지 사람들의 말소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내 곧 침묵이 흘렀다. 광장에 흐르던 고요함이 깨진 건 건물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걸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 인물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광장에 있는 영혼들보단 선명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게 인중 부근에 멋들어진 콧수염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생전에는 남자였던 모양이다.


"제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여기가 어디죠?"

"살려주세요! 괴물이 날 이리로 끌고 왔어요!"


콧수염이 가까이 다가오자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질문을 마구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주위를 훑어 보기만 했다.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남자에게선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사람들은 곧 잠잠해졌다.


-한 번만 설명해 줄 테니 잘 듣도록!-


그의 음성이 뇌리로 직접 전달됐다. 쇳소리처럼 맑고 높은 게 특이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남성의 목소리였다. 주위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조용히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째, 너희들은 필요가 없는 인간들이다!-

-둘째, 그것은 은하를 다스리는 주인님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죄악이다!-

-셋째, 그러므로 이곳에서 그 죗값을 치른다!-


남자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영상이 재생됐다.




*****



수많은 은하 중 한 곳에 어떤 종족이 탄생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별과 우주에 구애되지 않을 정도로 강대했으며, 다른 종족을 공격해 흡수하는 것으로 지니고 있던 모든 걸 차지할 수 있는 능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오랜 세월 우주를 떠돌며 찬란한 문명을 깡그리 집어삼키고, 발전한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은하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은하마저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된 별들 중 하나가 바로 지구였다.


이제 막 문명의 꽃을 피우던 지구의 인류는 그들에게 있어서 미생물만도 못한 열등 종족이었다.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하찮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태도를 바꿔 지구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인간이 깊은 절망에 빠질 때 그들이 좋아하는 에너지가 나온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 에너지는 파괴와 정복만을 일삼던 종족에게 있어서 유일한 오락이자 별미였다.


다른 곳에서는 별의 운명이 끝자락에 가서야 찔금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지구의 인간들에게서 이미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지구의 은하에 자리를 잡았고,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연구했다.


그러다 마침내 알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보단 인간들 스스로가 불행하게 만들 때 보다 순도 높은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을. 수많은 문명을 흡수한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 환경 조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구를 점령한 종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살하지 마라

낙태하지 마라

남을 죽이지 마라

남이 때려도 사랑으로 대하라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념을 죽어도 굽히지 말고 다른 이에게 강요하라

그것이 이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는 행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불행하게 만드는 규정이었다.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포기하지 못하게 하고, 불행한 아이도 태어나게 됐다. 그리고 끔찍이 원망하는 상대에게 복수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없는 구원에 매달리며 인류는 스스로 불행해졌다.


종교의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이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가파르게 불행해졌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인간이 죽으면 환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긴 사람에겐 보다 좋은 조건으로, 평생을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린 사람에겐 보다 나쁜 조건으로 태어나게 했다.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소거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도 못하고, 할당량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자살한 사람들.


바로 이곳, 지옥에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앞 날은 절망이 가득 찬 처참한 운명만이 남아 있었다.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고, 절망 에너지를 마지막 한 톨까지 짜내어진 다음에야 소멸될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 이렇다 할 기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걸 왜 알려준 거지?'


스스로 물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더 깊은 절망을 주기 위해서.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울지도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에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따라와라-


침묵 속에서 콧수염의 명령이 뇌리로 울려 퍼졌다. 말에 어떤 강제력이라도 있는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저절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나왔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강대한 힘과 문명을 흡수하는 종족이 만들어서 그런지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넓어 보였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콧수염을 따라 기하학적인 모양의 통로를 걸었고, 얼마 안가 비석처럼 생긴 이상한 구조물 앞에서 멈춰 섰다.


콧수염이 다가가기 무섭게 비석에서 빛이 나면서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어떤 문명이 멸망한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장소에서도 여전히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자 나는 공포에 잠식됐다.


-다들 움직여!-


물론 콧수염이 바로 명령을 내려 그런 감정을 맛볼 여유는 없었다.


도착한 곳 바로 근처에는 삭막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건축물이 하나 있었는데, 우린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내부는 적어도 아까처럼 이해조차 되지 않는 수준은 아니었다. 바닥이나 벽의 재질을 처음 봐서 그렇지 입구의 공간도 넓고 방처럼 보이는 공간도 많았다.


-방마다 하나씩 들어가라-


콧수염의 명령에 따라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흩어져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없었던 까닭에 방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처럼 얇은 가닥들이 천장에서 끝도 없이 내려와 온몸을 덮으면서, 나는 마치 고치에 둘러 쌓인 기분이 됐다.


'아, 안 돼! 싫어! 더 이상은 싫다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는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바로 고통이 몰려왔다. 온몸에 있는 모든 수분이 피부를 통해 강제로 뽑히는 듯한 느낌을 수십 배로 농축시킨 것 같은, 직접 겪는 입장에서는 그걸로도 모자란 끔찍한 아픔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잔혹한 행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내 마음대로 비명을 지를 수도, 기절할 수도 없었다. 여과 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아픔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쭉 그랬던 것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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