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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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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41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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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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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에고이스트

DUMMY

내가 빈털터리가 됐다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서울에서 여대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동생의 원룸 보증금은 내 돈이라는 사실이었다. 때마침 동생이 집에 와서 자고 간다는 걸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동생에게 돈을 돌려받을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생전 해보지도 않은 마중까지 나갔다. 시간이 흐른 동안 동생의 외모가 많이 변해 못 알아봤지만, 동생이 먼저 날 알아보면서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집으로 가는 동안 돈 얘기를 꺼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동생이 먼저 쉬지 않고 떠들었기 때문이다.


"X발 거지 같아! 오빠, 취업하기 진짜 어려운 거 알아? 뽑지도 않을 거면서 면접 보는데 어찌나 X랄을 하는지 면접관 새끼들 다 죽이고 싶다니깐? 서류 통과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짜증 나 죽겠어!"

"이래서 대책 없이 대학을 졸업하면 안 되는 건데! 집에 돈이 없대서 어쩔 수 없이 졸업했지 뭐람? 우리 아빠 너무 무능력한 거 같아. 아, 왜 우리 집은 가난한 걸까? 유학 좀 보내주지.."


내가 알기론 여동생은 to가 빠져 운 좋게 여대에 붙었을 뿐, 고등학교 때나 대학에서나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 따라서 전공도 취업과는 거리가 먼 비인기 학과에 들어갔다.


동생은 그런 학과를 알바 한 번 하지 않고 1년에 2천씩 넘게 쓰며 4년을 다녀 졸업했다. 그랬으면서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유학까지 바라고 있었다. 원하는대로 유학을 다녀왔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텐데 동생은 그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만 하는 여동생이 점점 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예감은 들어 맞았다.


"X라이 면접관 새끼들 뭔 말만 하면 군대, 군대하면서 남자만 뽑고! 어차피 편한 캠프 수준이면서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동생의 말에 순간 인터넷과 기사로 봤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떠올랐다.


지뢰에 발목 잘리고, 훈련을 하다 손가락 잘리고, 포탄 오발로 인한 전신 화상에 셀 수도 없는 사망과 자살, 총기난사 등등. 모두 편한 캠프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익 판정을 받은 뒤 줄곧 현역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죄다 X신 새끼들이면서, 내가 걔네들보다 못한 게 뭔데?"


동생은 마치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금도 쉴새 없이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한국 남자들을 까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급히 끼어들었다.


"있잖아, 취업이 그렇게 안 되면 일단 알바라도 하는 게 어때?"

"알바 따위를 왜 해! 그러다 취업 기회 놓치면 오빠가 책임질 거야? 월 400씩 줄 거 아니면 입 닥쳐!"


화내는 동생을 보며 그간 내게 용돈을 받으면서도 고마워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동생에겐 터무니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게 벌고 아둥바둥 아끼면서 마련한 그 돈이, 너무나도 하찮았던 탓이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충격적인 진실에 마음이 꺾인 나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달란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어차피 동생에게서 돈을 받으려면 방을 빼야 했다. 분위기를 보아보니 곧 죽어도 서울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동생은 이후로도 한참을 더 떠들었다. 남친의 집안이 어쩌고저쩌고, 장남이지만 결혼해도 애는 절대 안 낳을 거라는 둥, 집은 시부모님이 당연히 해줘야 하지만 죽어도 같이 살지는 않을 거라는 둥. 동생은 인생의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취업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떠들고, 남자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주제에 남자친구는 있는 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예전 고등학교 때 여선생이 떠올랐다.


그 선생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결혼을 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이대로 보낼 수 없어서 몰래 결혼식장을 찾아가 하객처럼 위장한 뒤 축의금도 내지 않고 결혼식을 보고 뷔페까지 먹었다는 걸 마치 자랑처럼 얘기했었다.


당시 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건 범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당시 반의 여자아이들은 모두 로맨틱하다며 부러워했다. 역시 내가 잘못된 걸까? 내가 정신병자라 이 사회에 맞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딴생각을 하며 걷는 걸 눈치챘는지 동생은 나를 비난의 타겟으로 삼았다.


"오빠! 오빠도 정신 차리고 빨리 돈 벌어! 무슨 정신병이야 쪽팔리게! 내가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오빠가 있다는 얘기를 못해! 벌써 나이도 서른이 넘었잖아!"


말을 마친 동생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그 모습에 난 죽든 살든 가족과 연을 확실히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그냥 모든 게 끔찍하고 싫었다.





*********





나는 저녁을 대충 먹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며 힘겨움을 알렸지만, 앞으로의 계획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지 들리지 않았다.


'그냥 자살할까?'


빈털터리, 심장마비와 4년이 넘는 정신병 이력, 비만,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까지. 시간이 흐르며 내게 주어진 것은 이게 다였다. 어떻게든 희망을 갖고 삶을 이어 나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살 이유가 하나도 없네.'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비극적으로 죽은 뒤로 결혼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게임과 축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힘겨운 인생을 계속 살게 할 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썼던 글은 어떻게 된 거지?'


생각이 꼬리를 물던 중 문득 예전에 썼던 글에 신경이 미쳤다. 정신이 완전히 나갔을 때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살았던 느낌이라 기억도 명확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느끼며 나는 핸드폰 앱을 통해 썼던 글을 찾았다.


'아....'


내가 썼던 글은 사이트 관리자에 의해 강제로 내려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이 나가면서 이상하게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사이트를 이유없이 비방까지 했기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흔적들이 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게 아닌데..'


글에 달린 성난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는데 너무나도 슬펐다. 독자들의 기대를 본의 아니게 배반한 것도,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도, 자식 같이 소중히 여기던 글을 망친 것도. 모두 슬프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든 글은 완성하고 죽자.'


이대로 두면 내 글은 영원히 형편없는 채로 끝나 버릴 터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도록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글로 완성하고 싶었다. 더 이상 인생에 미련은 없었지만 글만큼은 후회와 아쉬움만을 남긴 채 퇴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목표가 생긴 나는 다시 삶의 끈을 붙잡았다. 동생은 취업자리가 하나도 없다 했지만 힘들고 보수가 적은 곳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곳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수명을 돈과 바꾸는 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럴만한 체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조금만 걸어도 헉헉대는 내 몸 상태를 보면 채용될지도 의문이었다.


따라서 내가 알아본 건 파트타임이었다. 한 달 월세와 밥값, 교통비, 핸드폰 요금을 해결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조금의 금액이라도 남기는 게 목표였다. 겸사겸사 집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여기가 좋겠다.'


내가 고른 일자리는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박스를 나르는 대가로 일당 4만 원을 받는 물류직이었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근처에서 살 수 있는 하숙집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본 뒤 고심 끝에 선택했다.


'4시간 정도는 일할 수 있겠지? 주에 5일이라.. 그럼 달에 80 정도 버는 건가. 대충 20만 원 정도는 남겠는데? 좀 쪼들리면 단기 알바라도 알아보면 되겠지.'


계획대로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돈이 필요했다. 나는 집 근처의 알바 자리를 알아보는 한 편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다음 날부터 조깅도 꾸준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 달, 딱 한 달만 참자.'


그렇게 다짐을 하자 자연스레 집을 떠나는 장면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단지 상상에 불과했지만 어쩐지 조금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아주 작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








계획은 좋았지만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혔다. 내 몸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안 좋았던 것이다. 어릴 적 충치 때문에 왼쪽 어금니를 금으로 씌웠는데, 의사의 실력이 좋지 않았는지 자주 빠지다 못해 결국 뿌리가 모두 썩어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게 됐다. 한 푼도 없는 까닭에 부모님이 모든 비용을 내준 건 좋았지만, 그 금액만큼 욕을 먹어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치과에 간 날은 고통스러운데다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돈을 버는 일도, 조깅도 모두 지지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내겐 허리 디스크 초기 증상과 위가 망가져 만성적인 소화 불량까지 찾아왔다.


망가진 침대에 오랜 시간 잠을, 그것도 밥과 고기를 많이 먹고 바로 자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다행히 수술까진 가지 않았지만 난 디스크를 고치기 위해 약물과 물리 치료, 그리고 자세교정 및 스트레칭까지 병행해야 했다.


소화 불량으로 인해 죽과 삶은 양배추만 먹으며 많은 치료를 받아서 그런지 나는 그냥 걷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래서인지 맥없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팔이 골절됐고, 그 팔이 나을 즘엔 문지방에 찧어 오른쪽 새끼발톱이 빠지는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는 하품만 해도 턱이 빠졌고, 심한 비염 증세와 더불어 피부에는 곰팡이까지 증식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다치며 돈이 계속 나가자 부모님은 날 마구 비난했다.


나는 당장에라도 죽고 싶어졌다. 내가 희생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내 걱정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까? 그런 생각에 원망만이 가득 찼다.


그런 끔찍한 삶이 6개월 넘게 이어졌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하는데만 전념했다. 그런데도 몸은 완벽하게 낫지 않았다. 가족에게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회복은 더없이 느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 상태는 계속 나쁘기만 했다.


결국 내가 간신히 몸을 추스른 다음, 목표한 대로 돈을 벌어 집을 도망치듯 탈출했을 때는 1년이란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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