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겸손. 님의 서재입니다.

쾌적한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두별자리
작품등록일 :
2020.09.14 15:49
최근연재일 :
2020.09.14 16:0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52
추천수 :
20
글자수 :
76,493

작성
20.09.14 15:58
조회
32
추천
1
글자
10쪽

에고이스트

DUMMY

새로운 장소에 온 뒤로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아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었지만 체감상은 그랬다. 그동안 나는 이곳에 와서 많은 일을 겪었다.


첫날에 절망 에너지를 뽑힌 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겐 몸이 주어졌다. 다들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포함해 전체적인 몸통이 선명해졌던 것이다. 거기에 적응할 틈도 없이 비극이 시작됐다.


콧수염은 경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로를 죽이고 살아남는 자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마치 현생의 게임처럼 칼과 도끼, 창 같은 원시적인 무기가 폐허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 무기를 이용해 다른 이를 죽이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 한 명만 콧수염의 선택을 받아 다른 곳으로 갔다.


남은 사람들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도 모자라 다시 사상 교육과 고문을 받았고, 마지막 한 줌까지 절망 에너지도 뽑혔다. 끔찍한 고통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사람들의 인간성은 빠르게 마모됐다.


최후까지 살아남아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다.


살인 게임에 참가하면서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알지도 못하는 종족의 뜻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갇혀 끝도 없이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결국 버텨냈다. 살인 대신 죽음을 선택해 신념을 지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무언가 이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잠깐이나마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사람이 나 혼자인 건 아니었다. 적은 숫자였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살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 명 존재했다. 시간이 흘러 그런 사람들만 남게 되자 게임이 성립되지 않았다.


승자 없는 몇 번의 게임 끝에 콧수염의 최종 권고가 떨어졌다. 따라서 다들 이번이 마지막이란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기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마지막을 기다렸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걸까?'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자 그간 굴리지 못했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폐기 됐으면 좋겠는데.'


무엇보다 이제 그만 안식을 얻고 싶었다. 지금까지 배운 시스템에 의하면 환생을 해봤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는 인생을 살게 될 터였다. 거기에 비하면 영혼이 소멸하는 건 포상에 가까웠다.


'...그렇게는 안 되겠지?'


하지만 그저 희망일 뿐,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놔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는 동안, 마지막 게임은 결국 끝났고 예의 콧수염이 등장했다.


그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큭큭, 따라와라-


예전처럼 말 한마디에 몸의 제어권이 완전히 사라졌다. 처참한 기분으로 걷는 나와 달리 콧수염은 기분이 좋은지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한 게임의 방식이 뭔가 익숙하단 생각이 들지 않나?-

-최근 주인님들은 무척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인간은 무척 재밌어-


대부분은 외계 종족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지만, 간혹가다 처음 듣는 정보도 있었다. 어차피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콧수염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은 처음 보는 건물에 도착했다. 뭔가 살필 겨를도 없이 콧수염의 명령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이전처럼 방마다 차례대로 집어 넣어졌다.


-장담하지, 너희는 모두 후회하게 될 거다-


뇌리에 전해지는 콧수염의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정신을 차린 뒤 내가 부모님의 집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4년이란 시간이 지나 있었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나는 거울에 비치는 낯선 외모와 불어난 몸을 보며 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출렁거리는 뱃살과 턱살은 계속 그대로였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기억을 해보려 했지만, 마치 뇌가 시멘트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175에 55라는, 평범한 키에 마른 몸을 지니고 있던 청년이 아니라 육중한 몸을 지닌 돼지가 나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힘도 좋으시네.'


사실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밤이 되고 부모님이 거실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워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접었다. 환갑을 앞둔 지금까지도 술 먹고 깽판을 치며 싸울 정도니 두 분 모두 100살까지는 거뜬히 사실 것 같았다.


"너 때문에 애가 병신이 됐잖아! 창피해서 정말! 내가 밖에 나가서 자식 얘기를 못한다고!"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넌 한 번도 제대로 신경 쓴 적 없잖아!"

"그러니까 다 니 잘못 아냐! 종교에 빠졌을 때부터 애가 맛탱이가 간 거잖아! 그놈의 잘난 종교 때문에!"

"개소리하네! 니가 돈을 제대로 못 벌어서 애 돈을 다 뺏으니까 그렇게 된 거거든? 애비로써 부끄럽지도 않아?"

"뭐? 돈 받을 땐 지도 좋다 했으면서 내 탓만 해!? 니가 그러고도 애미야?"


하지만 싸움의 원인이 나라는 걸 알게 되자 마음이 참담해졌다. 더이상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곧장 침대로 가서 엎드려 누웠다. 몸이 무거워 그런지 매트릭스에서 스프링이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왜 그렇게 날 미워하는 거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대체 왜...'


서러운 마음 때문일까, 지난 4년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당시 난 심장 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기적적으로 발견되면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헛소리를 하면서 회복되는 즉시 정신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몇 달 동안 하루에 약을 50알 넘게 먹으면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감금되어 있었다.


내가 퇴원한 건 그 약이 효과를 발휘해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게 되고 하루종일 잠만 잘 무렵이었다. 실상은 입원비가 부담됐던 부모님이 빼낸 거지만, 어찌 됐든 덕분에 병동에서 나오게 됐다. 살았던 원룸은 이미 계약이 해지되어 물건도 모두 집으로 옮겨져 있었다.


따라서 나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집에서 살게 됐다. 하지만 장소가 병원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 생활이 바뀐 건 아니었다. 나는 매일 무지막지하게 많은 약을 먹었고, 독한 약을 이겨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밥과 고기를 찾아 마구 먹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멍하니 보냈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불어나던 살은 급격하게 늘어 났다. 내가 씻는 것마저도 버거워하자 부모님은 나를 끔찍하게 여겼다. 그렇게 약을 먹는 4년 동안 난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4년 뒤에 약을 끊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어떻게든 일해 돈을 벌었으면 싶은 부모님이 만류하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강제로 약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터였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결국 상태가 호전되거나 건강 문제가 아닌 그저 돈 때문에 약을 끊게 된 것이다.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더욱 슬퍼졌다.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자신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돈이나 다 쓰고 죽자.'


그렇다고 무턱대고 죽기엔 그동안 돈을 벌기만 하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처지가 너무 안타까웠다. 적어도 지금껏 번 돈은 다 쓴 다음 죽고 싶었다. 계획을 세운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








'어라? 이상하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은행에 간 보람도 없이 통장이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왜 돈이 하나도 없지?'


가족들에게 많이 뜯기긴 했지만 그동안 일하면서 모아둔 것과 10개월 동안 소설을 쓰면서 벌었던 돈, 그리고 돌려받은 원룸 보증금까지 합하면 꽤나 큰 금액이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통장에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진짜 몰카인가? 이럴 리가 없는데??'


현실을 부정해봤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는 그대로였다. 4년 동안 먹고 자느라 돈을 썼던 기억은 없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큰마음을 먹고 어머니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아, 그거? 동생 대학 자금이랑 보증금으로 다 썼어."

"그게 무슨...?"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부모님은 나에게 통장의 비밀번호를 물었다. 당시 나는 약에 흠뻑 취해 비몽사몽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부모님은 그걸 알려줬으니 써도 별문제 없다고 받아들였다.


젊은 날 힘겹게 일하며 모았던 돈은 그렇게 한순간에 증발했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 돈 묵혀둬서 뭐 할 건데? 4년 동안 너를 돌봐준 값이라 생각해."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모든 게 지독한 악몽이길 바라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쾌적한 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쾌적한 세계 +1 20.09.14 43 1 9쪽
16 쾌적한 세계 20.09.14 33 1 5쪽
15 에고이스트 20.09.14 26 1 8쪽
14 에고이스트 20.09.14 24 1 10쪽
13 에고이스트 20.09.14 27 1 9쪽
12 에고이스트 20.09.14 31 1 13쪽
11 에고이스트 20.09.14 28 1 12쪽
10 에고이스트 20.09.14 28 1 11쪽
» 에고이스트 20.09.14 33 1 10쪽
8 에고이스트 20.09.14 32 1 11쪽
7 에고이스트 20.09.14 31 2 10쪽
6 에고이스트 20.09.14 39 1 10쪽
5 에고이스트 20.09.14 37 1 10쪽
4 에고이스트 20.09.14 33 1 13쪽
3 에고이스트 +1 20.09.14 45 1 12쪽
2 에고이스트 20.09.14 63 2 10쪽
1 에고이스트 +1 20.09.14 100 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