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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돌빼미
작품등록일 :
2016.08.05 15:38
최근연재일 :
2017.12.23 23:50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41,759
추천수 :
1,985
글자수 :
1,433,061

작성
17.04.21 02:05
조회
331
추천
6
글자
12쪽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5)

DUMMY

그 손길을 따라 작동을 시작한 총은 맹렬한 불꽃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레이첼의 폭주에 일행은 당황해했고 황급히 몸을 피했다. 레이첼이 연신 욕을 내뱉으면서 쏘아대는 총알은 정체불명의 인물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실험실의 컴퓨터로 향하고 있었고, 자신의 몸을 강타해오는 총알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컴퓨터는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평상시의 그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레이첼은 악을 질러대면서 분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이번에는 마음의 안식처였던 어머니를 잃었다. 레이첼은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던 두 사람을 잃었고, 그들에게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 죽은 자들의 세계로 건너가는 그 순간을 배웅하지 못했고, 그들의 마지막 체온을 느끼지도 못했었다.


깊은 절망과 슬픔이 레이첼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터져 나오는 분노와 증오가 그녀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유라곤 없는 실에 묶인 인형처럼 레이첼은 감정이라는 이름의 존재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컴퓨터를 향해 눈물을 흘려대고, 악을 지르는 레이첼은 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를 잡아먹은 녹색의 왕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운명이라는 존재에 대한 원망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현재 레이첼이 가장 원망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는 자기 자신이었다.


약점을 알아내는 것밖에는 그녀가 복수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녹색의 왕의 약점을 알아낸다고 한들 그 복수의 집행자는 윤성이나 로그가 될 것이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복수를 타인에게 넘겨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 레이첼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려고 하는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사람인지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추하고 이기적인 마음. 복수라는 이름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레이첼은 윤성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 났다. 녹색의 왕이 가진 약점은 이제 어느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레이첼.”


다정한 목소리가 폭주하는 그녀의 귀로 들어왔고, 무한히 샘솟는 그녀의 눈물샘을 더욱 자극해왔다. 그 목소리는 분노와 증오.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한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고, 그녀를 조종하는 실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해.”


따듯한 손길이 악착같이 총을 쥐고 있는 레이첼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온기로 인해서 레이첼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은 더욱 기세를 타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게 하고 있었다.


“우으으···. 우윽···. 우윽···.”


아직 그녀의 몸과 정신을 조종하려 드는 감정들은 그 따스함을 거부하려고 했다. 자신들이 조종하는 그녀는 아직 울분을 풀지 못했다. 그녀는 더욱 파괴적인 행동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이 인간의 몸과 정신에 남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복수라는 행위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미끼 삼아 분노와 증오. 절망과 슬픔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멈추면 안 된다고 더욱 파괴적인 행동을 해서 그녀가 가진 모든 감정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레이첼은 자신을 감싸주는 더욱 거대한 온기에 굴복하면서 자신을 꾀어내는 분노와 증오. 절망에게 등을 돌렸다.


윤성은 총알이 모두 비어버린 총의 방아쇠에서 아직도 손을 놓지 못하는 레이첼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속삭였다.


“···그만해.”


그리고 레이첼은 자신에게 온기를 주고 있는 윤성의 말을 따랐다.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을 뺐고, 총을 들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청량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진 레이첼의 울분을 토해내던 총은 아직도 남아있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절망을 안은 채로 희미한 연기만을 내뿜고 있었다.


“우으으으···.”


하지만 아직 슬픔만은 레이첼의 심장에 남아있었다. 이것만은, 이 감정만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자신을 이제까지 키워주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거대한 송곳이 되어 그녀의 심장에 박혀있었으니까.


“···울어. ···마음껏 울어.”


윤성의 속삭임에 레이첼은 윤성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내뱉으면 사라져 버릴까 봐 울지 못했었다. 분노와 증오. 그리고 절망을 연결고리로 삼아 이 감정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이 레이첼의 심장에서 떨어질 일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심장에 박힌 채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준 사랑만큼. 어머니를 사랑했던 마음만큼.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만큼. 이 슬픔은 그녀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엄마아아아!”


레이첼은 울부짖었다.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몸을 지탱해주는 따스한 윤성의 품 안에서 울부짖었다. 너무나 보고 싶은 잃어버린 대상을 떠올리면서.


거대한 울부짖음이 흐느낌으로 변화할 때까지 일행들은 레이첼을 기다려 주었다. 어느 누구도 그 시간 동안 입을 열지 않았고, 그녀가 진정이 될 때까지 고요함을 유지했다.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긴 할지라도 그녀가 느끼는 상실감과 허망함을 알 수는 없었기에 그저 침묵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자.”


레이첼이 아직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고 있었지만, 윤성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생존자들의 목숨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괜찮을까요?”


리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레이첼을 쓰다듬으면서 질문했고, 이에 윤성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윤성은 몸에 힘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레이첼을 들어 올려서 등에 업은 후에 말을 이었다.


“레이첼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무사히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을 거야.”


마이크가 물었다.


“그 녹색 뚱뚱이 때문에 그러세요?”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경험상 생체 병기라는 것들은 먹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더군.”


윤성의 대답을 들은 일행은 짐을 챙겨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처참한 실험실의 바깥으로 향했고, 자신의 등에서 흐느끼고 있는 레이첼의 슬픔을 느끼면서 윤성은 이따금 씩 스파크를 내뿜는 컴퓨터를 노려보았다. 그 꺼져버린 화면에 등장했던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해서 떠올리며 미세한 살기를 뿜어내었고, 레이첼을 비롯한 생존자들을 무사히 대피시킨 후에 자신이 끝마쳐야 할 일이 생긴 것만 같이 느껴졌다.


‘곧 만나게 될 거다. 그때는 저승에서도 잊지 못할 인사를 전해주도록 하지···!’


마음속으로 그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한 악의를 전달한 윤성은 그대로 등을 돌려 레이첼을 업은 채로 실험실을 나갔다. 이곳을 찾은 목적을 달성하진 못해서 아쉬움과 미련이 잔뜩 남아있었지만,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고 윤성은 생각했다. 이 지옥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되는 자와 대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자신이 어떤 존재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지 않고, 역겨움이 올라오긴 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을 토대로 녹색의 왕의 약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험실을 한 번 훑어본 윤성은 이 장소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괴물로 변모했던 검은 성벽의 그 장소와 너무나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자신이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운명을 조롱당했던 것을. 그리고 불같이 타올랐던 분노와 증오를. 윤성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한번 더 괴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는 실험실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발길을 돌렸다. 어서 이 추악한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윤성이 마지막으로 실험실을 벗어나고 일행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할 즈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음산한 실험실에 릭의 유령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유령은 윤성 일행이 빠져나간 곳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가 광기의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 목소리는 분명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리고 있었다.


소득이 없는 여정을 마무리한 윤성 일행은 서둘러 움직였고, 지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윤성 일행이 도착하자 로그가 가장 먼저 다가와 그들을 반겼고, 윤성은 한 손으로 레이첼을 지탱하면서 로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사히 그와 재회한 것을 축하했다.


윤성이 자리를 비우고 불안해하던 생존자들은 윤성이 도착한 것을 알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를 반겼고, 눈에 보일 정도로 안도하기 시작했다. 윤성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그들에겐 윤성이 마지막 희망이었고 그들의 버팀목이었다.


“어떤가? 그 괴물의 약점은 발견했나?”


어느샌가 유령처럼 그들에게 다가온 그레이가 레이첼의 상태를 살피면서 윤성에게 물었다. 윤성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레이 역시 비올라의 죽음에 분노하고 증오하고 있었기에 이 여정의 실패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거짓을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게 말이죠···.”


윤성은 잠시 뜸을 들이면서 그레이에게 실험실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녹색의 왕의 약점을 알아내려는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방해가 있었다는 것을 안 그레이는 잠시 동안 얼굴에 절망이 피어오르긴 했지만, 그게 윤성의 탓이 아닌 것을 알기에 그저 윤성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을 건넬 뿐이었다.


“수고했네···.”


그레이의 반응에 윤성은 미안함이 더욱 커졌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게 자네 탓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그곳에 간 덕분에 이 사태를 만들어 낸 녀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군.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확이야.”


그레이는 살기를 숨기지 않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누구든지 간에 곱게 죽음을 맞이하진 못할 거야.”

“···녀석을 추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레이는 레이첼을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자네 혼자만 보낼 수는 없지. 게다가 나 역시 녀석에게 잃은 것이 있으니까.”


그레이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받아내야겠어.”


그레이의 숨기지 않는 복수심에 윤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레이가 자신과 함께 정체불명의 인물을 추적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생체 병기들을 제외하면 그레이는 이 지옥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윤성은 그레이에게 함께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레이가 걱정돼서도 아니었고, 그레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왜 그러나?”


윤성의 표정을 통해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그레이가 질문했다. 그리고 윤성은 손을 들어 올리며 잠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다. 윤성은 귀를 기울였다. 그레이의 복수심을 듣고 나서 생각에 잠겨 있던 자신을 자극하던 그 소리를 추적했다. 그리고 다시금 그 소리를 들었다.


‘사각사각’ 거리는 마치 벽을 파는 것 같은 그 소리를.


작가의말

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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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9) 17.04.29 357 6 15쪽
149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8) 17.04.27 395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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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6) 17.04.22 351 6 13쪽
»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5) 17.04.21 332 6 12쪽
145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4) 17.04.19 287 5 12쪽
144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3) 17.04.15 327 5 12쪽
143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2) 17.04.13 301 5 12쪽
142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1) 17.04.11 330 5 12쪽
141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0) 17.04.09 351 6 12쪽
140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0) 17.04.06 346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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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8) 17.04.01 301 5 12쪽
137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7) 17.03.31 338 5 12쪽
136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6) 17.03.28 29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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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2) 17.03.18 513 6 11쪽
131 2부 감옥 도시 - 녹색의 왕 (1) 17.03.16 40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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