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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dang 님의 서재입니다.

높은 장원의 군주 (Lord Of High Manor)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Takadang
작품등록일 :
2023.04.02 14:27
최근연재일 :
2024.05.19 18:21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14,298
추천수 :
491
글자수 :
632,754

작성
23.11.19 18:30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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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6화 방랑기사 레벤(4)

DUMMY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어두운 숲을 밝히는 불의 일렁임과 불똥이 튀는 소리, 차게 식은 지면의 냄새, 숲속에서 들려오는 나뭇잎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화톳불 옆에 모여 앉은 사람들과 드로코 한명. 레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술과 함께 먹을 훈제된 토끼의 고기를 리브가 작은 나뭇조각으로 만든 평평한 도마 위에 올리고 손에든 작은 나이프로 썰어내어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타임, 로즈메리, 소금 그리고 제 비장의 비법인 말린 양파 가루와 검은 호두열매 가루로 양념한 토끼고기입니다. 드셔보세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리브가 고기를 받아 든 레벤이 입가로 가져가는 고기 조각을 바라보며 그 맛에 대한 감상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오오오! 솜씨가 좋구만! 맛이 아주 좋아. 베스-디나스로 돌아가거든 가게를 내보는 걸 권해주고 싶은 맛이야."


레벤이 한입 베어 문 고기 조각을 입안에서 음미한 뒤 큰 소리의 감탄사와 함께 리브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맛이 좋다르 리브."


레벤의 찬사를 뒤따라 니아의 칭찬이 리브에게로 향한다. 이어지는 그라벨과 이리스 그리고 디알라의 감사 인사와 칭찬이 훈제된 토끼의 살을 발라내는 리브의 손놀림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20마리나 있으니 맘껏 드세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웃음으로 리브가 화톳불의 곁에 둘러앉은 이들에게 말했다.


"흐하하. 이거 오늘도 즐거운 밤이 될 것 같군."


레벤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맛 좋은 음식과 술이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기쁨을 내보였다.


"어제 잠들어서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니아 녀석이 아침부터 리브를 닥달해서 오늘 길을 가는 내내 그 닐즈라는 병사가 야영지로 돌아온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지금 이 시간까지 계속 기사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 니아?"


"벼...별루? 그렇게 많이 기다려지는 건 아니다르."


니아가 입가를 씰룩이며 케인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넌 진짜 거짓말하는 방법을 좀 배워야 해 니아."


"후하하. 별것 아닌 이야기에 관심을 그리 가져줘서 고맙네. 기대가 크다니 오늘도 어제에 이어 듣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내용을 들려줘야 할텐데... 흐음. 적어도 이 토끼고기 값 만큼은 해야겠지!"


레벤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손에는 리브가 잘라내어 건네준 토끼의 넓적다리의 끝을 쥐고, 다른 손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잔을 들고 입에 가져다 댄 잔 속의 내용물을 단숨에 들이킨 뒤 주위에 앉아 토끼고기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이들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이빨이 훤히 보이는 미소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닐즈라는 이름의 병사가 야영지에 돌아온 이후,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내가 머물러본 그 어떤 야영지보다 소란스러웠어. 말릴 틈도 없이 닐즈는 다른 병사들에게 스트리고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이내 야영지안에 머무르고 있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지. 이어서 시간이 조금 지나 정찰을 다녀온 다른 병사들에게까지 스트리고이라는 괴물의 이름이 전해지고 난 뒤엔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안 좋아졌지."


"실례가 아니라면 질문 하나를 해도 될까요?


레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모닥불의 먼 곳에 나무에 기대어 앉아 조용히 레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라벨이 물었다.


"스트리고이가 그렇게나 무서운 괴물인가요?"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놈에 대해 자세히는 몰라서 말입니다. 대신 그날 산속의 야영지에서 병사들이 저에게 해준 말을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


레벤이 그라벨을 향해 자세를 고쳐 앉은 뒤 대화를 이어갔다.


"채카의 외곽에서 소 두마리를 키우는 더그(Dugg)라는 병사가 저에게 해줬던 말을 다시 하자면, 검은 구름이 가득 낀 어두운 날의 새벽에 스트리고이를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네발로 기어다니며 그림자 속에 숨어 검은 형체의 괴물이 힘없이 생명을 다한 소를 입에 물고 더그를 경계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주 잠시, 짧은 시간을 스트리고이와 마주했다고 했습니다."


"더그는 그 괴물과 마주한 순간 자신이 키우던 두 마리의 소중 한마리인 벳시를 물고 있는 건 언젠가 숲에서 돌아온 사냥꾼들에게 허세 섞인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스트리고이임을 알 수 있었다고, 그때의 소름끼치는 기억을 아직도 생생히 다시 느낄 수 있다면서 제게 설명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더그 외에도 몇몇 사냥꾼들이 줄지어 저에게 달려와서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는 여덟 명의 벌목꾼이 스트리고이에게 당해 핏자국과 살점 몇 조각만을 숲에 남기고 사라졌다고도 하고, 버섯을 따러 간 사촌이 스트리고이에게 잡아먹혔다고 하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렌실로어의 사람들에게는 스트리고이의 이름은 고블린이나 스크레그, 트롤 뭐 이런 것들보다는 훨씬 더 두려운 존재임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답이 너무 길었나요? 흐하하"


긴 장문의 대답을 마친 레벤이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말을 맺었다.


"아닙니다. 충분한 대답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인사를 받을 만한 일도 아닙니다. 그럼, 야영지에서 해가 진 후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네. 들려주십시오. 저도 니아 만큼이나 기사님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여전히 존대하는 정중한 말투였지만 작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말을 더해 그라벨이 레벤에게 말했다.


"커흠!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요~? 그리고 말솜씨가 워낙 없다 보니 제가 여기 앉아 있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은 여느 주점의 음유시인처럼 세련되고 빼어난 솜씨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성과 도시 그리고 마을과 요새를 건너다니며 주인을 찾은 떠돌이 기사의 모험담을 듣는 자리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루 만에 자신감을 잃으신 건가요. 기사님?"


"그런 건 아니야. 허흠흠! 연습이···. 연습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지."


목을 가다듬은 레벤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오후는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의 하소연을 듣느라 순식간에 지나갔지, 스트리고이가 돌아다니는 산속에서 밤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며 한시라도 빨리 산에서 내려가자고 하는 게 그들의 공통된 외침이었어... 그나마 그중에 용기 있던 병사는 우리는 수가 많고 튼튼한 창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는 병사도 있긴 있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군."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레벤이 리브의 물음에 되물었다.


"음...그래도 병사들의 말에 따라 산에서 내려갔을 것 같진 않은데..."


"흐흐흐. 그건 당연하지. 아무리 떠돌이 기사래도 마물의 위협에 도망치지는 않으니까."


"어떻게든 병사들을 진정 시킨 뒤 스트리고이를 퇴치하러 야영지 밖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셨으려나요?"


"확신이 없는 말투로 그 끝이 흐려지는 목소리의 리브가 말했다.


"그래. 생각보다 쉽게 진정시킬 수 있었어. 마음속 용기를 지피는 연설도 아니고 찰락거리는 동전들을 손에 쥐여준 것도 아니었지. 그럼 무엇이었겠나, 내 되묻지 않고 바로 답을 알려주겠네."


말을 잠시 멈춘 레벤이 자신의 손에 들린 술잔을 다른 손의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바로 이놈을 병사들에게 나눠줬지. 천 마디의 말보다 가슴속을 뜨겁게 지펴주고, 바로 쓸 수 없는 차가운 금화나 은화보다는 제아무리 나중에 주머니가 허전할지라도 뱃속은 따듯하게 해주고 마음속 어둠을 걷어주는 게 바로 이놈인데···. 적당히만 마시면 전장에서 이것만큼 효과적인 놈도 없거든."


가리키던 손가락의 끝으로 잔의 겉을 몇 번 두드린 뒤 들고 있던 잔을 입가로 가져가려 했지만 잔이 이미 비었다는 것을 눈치챈 레벤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병사들을 진정시켰다는 건 리브 자네가 맞췄군, 하지만 그날 나와 채카의 병사들은 스트리고이를 찾아 나서진 않았어. 해가 져가고 있었기도 했고, 산 어딘가에 있는 마물을 찾아 나설 용기를 불어넣어 줄 만큼의 술은 실어 오진 않았기 때문이지."


"으음···. 그랬군요. 해가 진 뒤의 산은 산길에 훤한 사냥꾼에게도 위험하니까요."


리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병사들은 산속 어딘가에 있는 마물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내고, 닐즈는 다시 활을 쥐어 잡았고 더그는 다시 창을 들어 올릴 수 있었어. 그리고 생각보단 빠르게 그 무기들을 사용하게 됐지."


레벤이 그날 밤의 기억을 다시 되살리려 모닥불의 불똥이 어두운 밤하늘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렇게 밤은 깊어지고, 어수선하던 야영지의 기운도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라앉았고, 유일한 불평은 갑옷 사이를 파고드는 시린 바람이 주는 추위 외에는 없었어. 눈도 내리지 않은 이른 겨울이었는데도 그때는 유난히 추웠던 것 같군."


"산은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밤에는 불에 달군 돌을 몇 개씩 품속에 넣어도 몸이 떨리게 되더라구요."


리브와 레벤 사이에 위치한 모닥불에 가까이 다가온 케인이 조용히 술이 담긴 나무통을 내려놓으며 멀리 떨어져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디알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작은 끼릭 소리와 함께 나무통의 마개를 열고 빈 잔을 들고 슬며시 다가온 리브와 레벤 두 사람의 잔을 채워 주었다.


"흐흠! 그래서 나는 병사들에게 산속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괴물에 대한 걱정은 날아 오지도 않는 화살을 막으려 방패를 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지."


"흐으.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뭐, 그래서 다행히 병사들은 다시금 고용한 밤의 야영지에 어울리는 바람 없는 날의 호수의 표면과 같은 평온한 상태로 돌아갔지. 어떤가? 방금 그 문장은 음유시인들의 말과 비슷했지?"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레벤이 뒤늦은 대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리브와 케인의 모습을 본 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흠흠. 그리고 병사들에게 나누어준 술을 조금은 남겨둘걸...이라고 후회하며 다가오는 다음 날의 행동을 계획하려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두고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스트리고이가 나타났냐르!!"


"아......야!! 니아~!"


갑작스러운 니아의 외치는 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리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뒤로 넘어질 뻔한 리브가 놀란 가슴을 감싸며 니아에게 소리쳤다.


"시시시시. 리브는 겁쟁이다르."


"하하하! 유쾌한 드로코로구만. 그래 니아가 바로 맞췄네."


레벤이 크게 웃으며 니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바뀌어 다시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밤은 검은 구름에 달빛도 가려져 야영지에 어둠만이 가득했지···.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여기 이 드로코 친구가 말한 스트리고이였네.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빛나는 섬뜩한 눈,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누른 듯한 모양새의 뭉개진 코와 털이 나 있는 쭈글쭈글한 큰귀···. 크기는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커서 그만큼의 힘도 갖추었는지, 괴물은 순식간에 야영지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오더니 병사 한 명의 목을 잡아 부러뜨린 뒤 힘없이 축 늘어진 병사를 들고 다시 야영지의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아마···. 이름이···. 그래, 이제 생각나네 론드(Rond). 론드였어. 채카의 성벽 밖에서 나무통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던 것 같네...."


"안타깝게도 그날 그렇게 괴물의 손에 목숨을 잃었지. 그렇게 론드가 죽었네. 살았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 눈앞에서 목이 꺾이는 걸 봤기도 했지만, 괴물이 모습을 감춘 어둠 속에서 살점이 뜯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었거든."


그때의 기억이 생각난 듯 레벤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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