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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dang 님의 서재입니다.

높은 장원의 군주 (Lord Of High Manor)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Takadang
작품등록일 :
2023.04.02 14:27
최근연재일 :
2024.05.19 18:21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14,299
추천수 :
491
글자수 :
632,754

작성
24.0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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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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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99화 살린 오리드(1)

DUMMY

렌실로어의 경계 가장 서쪽. 산길의 고갯마루에 위치한 마브엔 관문 요새에서 서쪽을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면 베스-디나스로 향하는 두 갈래의 길이 나오게 된다.


두 갈래의 길 중 북서쪽의 길은 유령거미의 숲이라고 불리며 베스-디나스로 빠르게 가는 지름길이긴 하지만, 숲속에 도사리는 거대한 거미들과 숲을 배회하며 다니는 트롤, 그리고 숲을 지나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을 노리고 숲에 머무는 고블린들까지 있어 늘 흉흉한 소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그렇듯 위험이 늘 뒤따르는 유령거미 숲을 지나간다면 며칠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마브엔 관문 요새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갈래의 길 중 위험한 지름길이라는 유혹을 이겨내고 숲을 멀리 돌아 안전한 길로 베스-디나스를 향해간다.


어두운 숲속의 길. 주위엔 짙은 안개가 피어있다. 그리고 길 위엔 고개를 숙이고 터덜거리는 느린 걸음으로 숲길을 걷고 있는 말과 그 말 위에 타고 있는 기사가 있다.


찌푸린 미간으로 한 짝을 벗어 놓은 건틀릿을 안장 위에 얹어두고 두통에 고통 받는 듯 눈 주위를 손끝으로 누르며 가끔은 타고 있는 말의 목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어으으... 마브엔에서 너무 마신 것 같구나···. 맥주는 이게 문제야···. 너는 괜찮으냐? 레스카."


-푸륵, 푸륵-


짧은 한숨을 두 번 내뱉으며 레스카가 레벤에게 대답했다.


"그래도 맛은 좋았지. 오늘의 이 머리 아픔도 다시 마브엔의 명물인 그 맥주맛을 볼 수 있다면 감내할만해."


-푸르르르륵-


"그래. 미안하구나. 같은 숙취로 고생하는 처지에 넌 나까지 태우고 가야 하니.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마브엔에서 나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레벤이 레스카의 갈기를 쓸어 넘기며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후우우. 그나저나 이 길로 지나는 건 꽤 오랜만이구나. 부디 오늘 같이 숙취로 고생하는 날에는 아무런 일 없이 넘어갔으면 하는데."


레벤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새 몇 마리가 수풀 속에서 날아오르다 건든 수풀의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엔 여전히 해가 한창 떠 있을 오후의 시간임에도 숲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막아내는 빽빽히 자라나 있는 높은 키의 나무들로 인해 스산함이 감돈다. 그늘진 곳이 많다보니 붉은색의 버섯들이 눈에 잘 띄였다.


유령거미 숲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으스스함. 공포라는 단어까진 아니더라도 유령과 거미라는 두 단어가 가져다주는 어딘가 꺼림칙한 불쾌감이 느껴지는 숲의 길은, 베스-디나스로 향하는 길 중에 가장 사람이 적은 길일 것이다.


실제로도 숲의 깊은 곳에는 작은 고양이의 크기에서부터 곰의 크기. 그리고 그보다 큰 트롤의 크기까지 자라는 거대한 거미들이 많이 살고 있어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지만, 가장 해가 많이 드는 숲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간다면 숲의 주인인 유령거미들과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길을 잃은 불운한 여행자들과 거미줄의 채집을 위해 숲의 깊은 곳까지 가는 거미줄 채집가들의 말이 숲의 주변을 다니는 상인들의 입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어 지금은 유령거미 숲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성미 급한 상인들은 자신이 나르는 상품을 지켜줄 모험가를 고용해 숲을 지나가기도 하고, 모험가 길드에서 마수의 소재를 얻기 위한 수렵 의뢰, 약초의 채집 등 다양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찾은 모험가들은 여전히 유령거미 숲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경쟁 없이 질 좋은 버섯을 따가기 위해 숲에 오는 마을 사람,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큰소리로 허세를 부리고 홀로 늦은 시간에 유령거미 숲에 들어가는 어느 작은 마을의 젊은 사냥꾼까지. 제아무리 검고 어두운 숲이라도 이처럼 다양한 이유를 한두 개씩 가지고 숲을 향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유령거미 숲이었다.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 건가... 길 위가 휑하구나."


레벤이 멀리 뒤따라오는 이가 없나 몸을 돌려 보기도 하고 안장 위에서 몸을 높게 일으켜 목을 주욱 길게 뻗어 앞을 보아도 주변에 그 어떤 사람 혹은 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바싹 마른 낙엽이 갈라지며 내는 소리에 레스카의 귀가 쫑긋거리긴 했지만, 숲의 길을 따라 꽤 오랜 시간을 숙취로 고통받는 레스카의 느린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레벤이 잠시 레스카를 멈추게 한 뒤, 안장에서 내려와 안장의 옆에 달린 가방에서 물이 들어 있는 가죽 물주머니를 레스카와 나누어 마시고 있을 때였다.


짐승의 발소리가 레벤의 귓가에 들려왔다. 일정한 주기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소리가 숲의 안쪽에서 계속해서 들려왔다.


"거기 누가 있습니까?"


허리에 찬 칼집 쪽으로 손을 가져가며 레벤이 몸을 돌려 수풀이 우거진 숲 쪽을 향해 외쳤다.


레벤의 목소리가 고요한 숲에 퍼져 나간다. 멀리 검은 형체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지만 짙게 피어있는 안개 속 긴 나뭇가지와 높게 자란 덤불에 가려 그 형체의 정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잠시 멈춘 발소리, 그리고는 정체를 알수없는 발소리의 주인은 자신이 들은 목소리에 반응하듯 점점 레벤을 향해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를 내었다.


'이런. 안개가 너무 짙어 잘 보이지 않는군. 냄새가 안 나는 걸 보니, 트롤은 아닐 것 같은데.'


레벤이 다가오는 소리의 방향을 보며 검을 뽑아 겨눴다.


"오... 귀에 익은 목소리! 레벤 경이신가?"


"어? 이 목소리는..."


레벤의 귀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빠르게 다가온 그림자의 형체가 안개를 뚫고 그 모습을 보였다.


"핫하하! 이런 곳에서 다시 보다니! 겨우 하루만이니 그리 반갑지는 않으려나?"


주위에 피어나 있는 안개의 색보다 하얀 말을 타고 모습을 보인 기사가 투구를 벗어 거의 백발에 가까운 금발의 머리카락을 보이고, 한 손으로 투구를 감싸들고 레벤에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투구에 묻어있는 흙과 부서진 낙엽의 가루가 묻은 거미줄을 확인한 기사는 그제서야 다급히 자신의 갑옷과 타고 있는 말의 마갑 곳곳에 묻어있는 거미줄을 손으로 훑어 치워냈다.


"아닙니다. 베스-디나스의 토너먼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보다 일찍 오리드 자작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며 레벤이 다가오는 기사에게 답했다.


레벤이 웃음 지으며 인사를 한 오리드 자작이라고 부르는 귀족의 모습은 그 이름에 걸맞게 아주 단정했다. 금을 넣어 섬세하게 세공된 갑옷과 무늬와 장식이 화려한 투구 안에 정리되어 있던 머리와 매일 면도를 해 수염이 없는 매끈한 턱선 덕분에 말끔하게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살린 오리드(Sallin Orid). 자신을 그랜드 토너먼트에 참가 하기 위해 베스-디나스로 향하고 있는 왕국 구석의 자작가의 가주라고 소개한 뒤, 지난밤 마브엔 관문 요새에서 레벤과 함께 늦은 밤까지 서로의 마상창 경기에서의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맥주가 담긴 잔을 부딪쳤던 흔하다면 흔한 여행자의 인연으로 레벤이 알게 된 인물의 이름이다.


"그런데 살린님은 곧장 베스-디나스로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른 아침에 요새를 나서시는 걸 보고 저는 오후가 되서야 길을 떠났기에 길에서 자작님을 만날 거라곤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하하....그게...숲의 길이 너무 비잉 돌아서 가는 거 같아서, 숲을 가로질러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길을 잃고 지금까지 숲을 헤맸다는 말이군...) 아, 그렇군요."


"아주 조금 길을 헤맸네."


"예..."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어 숲에도 더 어두운 그림자들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레벤과 살린은 길옆의 그나마 달빛이 들어오는 적당한 곳에 하룻밤을 머물고 갈 자리를 만들었다.


불을 붙이는 데는 살린이 품속에서 꺼낸 마도구가 쓰였다.


한 손에 잡히는 네모난 모양의 상자에서 붉은색으로 빛을 내며 달궈진 작은 구체가 나와, 쌓아 놓은 나뭇가지들의 한가운데 뭉쳐놓은 불쏘시개 낙엽 위에 놓이자, 이내 작은 불꽃이 피어나며 모아둔 나뭇가지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앉아서 어젯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나누고 있었다.


"아까 그 마도구는 편리해 보이는군요 살린님."


"아? 이거 말인가? 최근 귀족들 사이에서 향을 피워 그 이름을 맞추는 놀이가 유행이라서 사게 된 물건인데, 모닥불을 피우는 용도로도 아주 쓸만하더군."


살린이 허리춤에 있던 불꽃을 내는 마도구를 다시 꺼내 레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떤가? 나의 그리슐라(Grishula)가 잡아 온 메추라기의 맛이?"


"맛이 좋습니다. 방금 막 잡아 온 거라 그런지 마을의 식당에서 먹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손에든 작은 새의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삼킨 레벤이 살린에게 대답했다.


두 사람이 화톳불에 쓰일 나뭇가지와 그 주위에 쌓을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울 무렵 숲의 어둠 속 하늘 위에서 작은 갈색 점박이의 메추라기가 떨어졌다.


갑자기 마른 나뭇잎 위에 떨어진 메추라기의 소리에 놀란 레벤에게 살린이 다가와 자신이 길들인 청록매(Teal Falcon)가 한 일이라고 했다.


죽어있는 메추라기를 보며 어리둥절해 있는 레벤에게 숲의 하늘을 향해 '그리슐라, 이제 그만하고 돌아와라.'라고 큰 소리로 외친 뒤 살린의 손등을 향해 날아와 앉은 자신의 매를 소개해 주었다.


"손님이 있는 걸 아는 영리한 아이라네."


손 위에 앉은 작은 청록빛의 매를 어루만지며 살린이 말했다.


쇠오리의 눈 주변의 색인 청록색의 깃털 색을 가진 매인 청록매는 매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의 매로 그 다른 이름이 '한 뼘 매'일 정도로 작은 맹금류이다.


다른 매와는 달리 특이한 색의 깃털과 주인을 잘 따르는 영리함으로 에스테타 왕국에서는 귀족들이 기르는 매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매이다.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매번 따로 구해서 먹이는 게 힘들어 함께 나가서 작은 새와 토끼를 사냥하다 보니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방금처럼 사냥감을 잡아 오게 됐네."


"말씀대로 아주 영리한 매군요."


"자네의 술친구인 저 아이에 못지않게 내겐 좋은 친구일세."


지난밤 자리를 옮겨 시원한 바람을 쐬며 술을 마시자는 살린의 말에 맥주가 가득 든 통을 요새의 안뜰에 마련된 자리로 가져가며 자리에 합류해 무지막지한 기세로 맥주를 마셔대던 레스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린이 말했다.


"그래도 자작님의 그리슐라처럼 이렇게 맛 좋은 고기를 먹게 해주진 않습니다."


혹시나 레스카가 들을까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레벤이 말했다.


"흐흠. 그렇게 칭찬해 주니 주인으로서 내가 대신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네. 그리고 이건 그에 따른 선물로 주지."


살린이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레벤에게 내밀었다.


뜻밖의 선물이라 레벤이 잠시 멈칫하며 손을 뻗길 망설이자, 살린이 다시 한번 가볍게 미소 지으며 레벤의 손위에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레벤이 살린에게서 받은 작은 주머니에서는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묶어 놓은 끈이 꽉 조여져 있음에도 꽃향기와 같이 달콤하고 산뜻한 향은 아니었지만 혀 아래 침이 고이게 하는 그런 고소한 견과의 향과 불에 구운 채소의 향이 느껴지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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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10화 그랜드 토너먼트(9) 24.03.30 2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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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8화 그랜드 토너먼트(7) 24.03.16 29 3 12쪽
107 107화 그랜드 토너먼트(6) 24.03.09 3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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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3화 그랜드 토너먼트(2) 24.02.10 34 2 12쪽
102 102화 그랜드 토너먼트(1) 24.02.03 42 3 12쪽
101 101화 살린 오리드(3) 24.01.27 37 3 11쪽
100 100화 살린 오리드(2) +2 24.01.20 40 3 12쪽
» 99화 살린 오리드(1) 24.01.13 4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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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마브엔 관문 요새(1) 23.12.30 44 3 11쪽
96 96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3) 23.12.24 46 3 11쪽
95 95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2) 23.12.20 42 3 11쪽
94 94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1) 23.12.17 43 3 12쪽
93 93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4) 23.12.13 42 3 11쪽
92 92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3) 23.12.10 42 3 11쪽
91 91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2) 23.12.06 4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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