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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dang 님의 서재입니다.

높은 장원의 군주 (Lord Of High Manor)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Takadang
작품등록일 :
2023.04.02 14:27
최근연재일 :
2024.05.19 18:21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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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8
추천수 :
491
글자수 :
632,754

작성
24.0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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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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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3화 그랜드 토너먼트(2)

DUMMY

'보인다!'


주위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푸륵 거리며 숨을 마시고 뱉는 레스카의 숨소리, 관객들의 소리, 자신의 심장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아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감각이 레벤의 전신을 감쌌다.


맑아진 의식이 전신에 퍼져 나간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둘라드의 모습에 그가 들고 있는 방패의 아래 작은 틈이 레벤의 눈에 포착되었다.


미세한 들썩임 사이에 아주 작은 틈. 투구 속에서 눈을 번뜩이며 크게 뜬 레벤이 몸을 좀 더 돌려 오른손에 쥔 랜스를 길게 찔러 넣었다.


'내 랜스가 먼저 닿는다!'


-콰작-


"끄어억!"


부러져 흩날리는 랜스의 파편들, 금속을 때리는 묵직한 충격음과 말의 울음소리. 그리고 둘라드가 짧게 내뱉은 소리와 함께 그가 올라 있던 말에서 떨어졌다.


둘라드의 방패를 스치고 몸통의 한쪽 구석에 직격한 레벤의 예리한 공격에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철갑의 기사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둘라드 역시도 의지 없는 쇳덩이 성벽처럼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레벤이 방패를 높이 들어 올려 머리를 가리자, 아주 잠깐 달리는 말 위에서 어찌할지 망설였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었다.


'방패 채 밀어서 떨어뜨려 주지.'라고 생각하고 고민을 마친 둘라드의 렌스는 레벤의 방패를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랜스에 되돌아오는 퉁기는 힘이 느껴지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잠시, 자신의 렌스가 닿자 레벤이 그대로 자신의 방패를 내려놓으며 그대로 렌스의 끝을 흘려내는 것을 둘라드가 놀란 눈으로 보았다. 둘라드의 몸통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기울어 지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달려가며 멀어지는 말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하! 이겼구나 레스카! 우리의 승리다!"


투구의 바이저를 올리며 뒤돌아본 레벤이 환한 미소와 함께 긴장이 풀려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거세고 굵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과 같은 박수 소리가 경기장 안을 가득 메웠다.


"저 거구가 나가떨어지다니!"


"멋지다! 보라 꽃의 기사!"


"기사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관객석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박수와 환호가 들려오고, 관객석의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한 객석에서는 경기를 관람하던 귀족들이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우아한 박수 소리와 함께 승리의 고양감에 몸이 가벼워져 경기장을 돌며 관객들이 보내온 응원과 승리를 축하함에 화답하는 레스카와 레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길게 펼쳐 턱을 들어 올린 자세로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박수갈채를 온몸으로 음미한다.


승리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만찬. 이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이에게도 양보하기 싫은 극상의 기쁨,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술보다 좋은 그 맛을 느끼며 레벤이 소리쳤다.


"그래! 이 기분이었어. 내가 영원히 느끼고 싶은 승리자가 받는 환호! 열광하는 관객들의 목소리!"





<디베르테>



베스-디나스의 외곽 신시가지. 축제의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거리. 음유시인이 손끝으로 연주하는 리라 소리가 들려오고, 고기를 굽는 연기가 자욱한 식당과 큼직한 과일을 손에 쥐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소리치는 상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도시의 거리는 늘 시끄럽고 붐비는 장소이지만, 그랜드 토너먼트가 열린 이 시기에는 조금 더 평소와는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다.


기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종기사 혹은 하인, 수행원들이 그들을 상징하는 문장이 그려진 깃발과 방패를 들고 왕국 내 이곳저곳에서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베스-디나스에 모여든다.


신시가지의 구석에 위치한 한 주점 건물. 건물의 입구에는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주점의 입구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과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곧게 뻗은 장검, 끝이 묵직한 메이스, 폭이 넓고 거대한 날의 바디쉬를 들고 있는 기사. 그들의 무기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같은 문장이 그려진 소매가 없는 서코트를 입고 있었다.


밝은 노란색으로 그린 성문을 상징하는 문장 위에 높은 성벽을 상징하는 문장이 합쳐진 카빌가의 문장이었다.


카빌 가문의 기사들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지키고 있는 주점의 안에는 두 사람이 대화 중이다.


큰 테이블의 한쪽 끝자리에 앉아 앞에 앉아있는 대화 중인 상대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짙은 적갈색 머리의 남자.

카빌가의 문장이 금색의 실로 수 놓인 붉은색의 타바드를 입고 황금으로 만든 술잔을 손에 들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아르드 카빌(Ard Kavil)이다.


사자굴의 남쪽, 웨일드의 사자. 카로브디프의 주인인 카빌가의 가장 어린 넷째 아들로 태어난 이 고귀한 태생의 남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교육과 관리 덕분인지 생김새와 몸가짐에 의젓함과 고상함이 보인다.


급하게 마련된 아르드 카빌의 거처인 주점의 내부에는 허름한 바닥을 가리기 위한 모피로 만든 탄자가 주점의 바닥에 깔려있었다. 주점의 홀에 배어 있는 음식과 술 냄새를 가리기 위한 향을 태운 향로가 주점의 여러 곳에 놓여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내고 있어 주점의 내부는 시야를 가리는 흐릿한 공기로 가득했다.


"디베르테(Deverte). 곡검의 광인. 내가 너를 이곳 베스-디나스까지 데려온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네... 네... 자..자..잘 알고 있습니다."


아르드와 마주 앉아 있는 디베르테라는 이름의 남자가 더듬는 말투로 답했다. 빠르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쉼 없이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경계하는 머리와 움찔거리며 몸을 비트는 기괴한 몸짓을 하는 디베르테의 모습을 아르드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디베르테의 외모는 귀족으로서 살아온 아르드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외형이었다. 듬성듬성 빠져있는 머리, 길이도 일정치 않게 자라있고 얼굴 곳곳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손. 홀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디베르테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그의 외모 중 유일하게 아르드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인 건 푸르고 투명한 디베르테의 눈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이따금 그 움직임을 멈추고 멍하게 초점을 잃고 있는 디베르테의 눈에는 그나마 아르드의 시선이 조금 머물렀었다.


"그래. 비싸게 낸 만큼 그 값을 해줘야지. 그래도 사람을 죽이라고는 안 할 거니까, 그것만큼은 신경 써 줘야 해. 바나스 놈들의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이 죽으면 너무 시끄러워지거든."


"예.예.예.예... 사람은 안 죽인다. 사람은 안 죽인다. 히히히. 잘 알겠습니다. 레아벨라(Rheabella)가 많이 아쉬워하고 있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그..그만큼 더 많이 사랑 해주면 되니까요."


섬뜩한 미소로 웃으며 디베르테가 답했다. 그리고 아르드가 레아벨라에 대해 묻기도 전에 그가 테이블 위로 올려 놓은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다이아몬드, 수많은 보석들이 박혀있는 과도하게 화려한 짧은 곡검의 검집에 얼굴을 비비며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듯한 디베르테의 행동으로 레아벨라의 정체가 그의 곡검임을 알 수 있었다.


"흠. 우선은 돈값을 해내는지 시험 삼아 간단한 일을 하나 내주지. 내 다음 상대가 나첼(Nachel)가의 남작인데, 그 보잘것없는 남작놈의 말을 죽여 주면 돼. 이왕이면 목을 잘라 그놈 침대 안에 놓아두고 오면 더 좋고."


"나..나..나첼 남작의 말. 목을 잘라 침대 안에.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르드가 내린 지시를 들은 디베르테가 품에 안고 있던 검집을 내려놓으며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한 큰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나첼 놈. 고작 작은 마을 하나 영지로 가지고 있는 남작 주제에, 내가 이번 토너먼트에 참가하니 말을 내게 팔라고 했는데···."


'저의 오랜 친구를 팔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저도 이번 그랜드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되어서요. 이 녀석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아르드의 머릿속에 자신의 제안에 거절을 표하는 나첼 남작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역한 음식을 목구멍 뒤로 넘긴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손톱이 깊게 파고들 정도로 세게 쥐었다.


"어울리는 주인을 못 만나는 말은 그만큼의 가치가 없지.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해 보라고 디베르테.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는 제안자의 전언을 잘 전해주고 와."


"헤헤헤헤. 네..네.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디베르테가 한쪽 볼을 테이블 위에 붙인 채로 크게 뜬 푸른 눈동자로 아르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동안 할 일은 많아. 너무 한 가지 방법만으로 상대를 떨어뜨려 버리면 안되니···. 독을 타도 되고, 귓가에 몇 마디 말을 내 대신 전해 줄 일도 생길 테고. 음···. 팔이나 다리 정도는 티 안 나게 상하게 해도 되겠지? 핫하하."


아르드가 웃으며 어느새 품에서 꺼낸 작은 꽃이 수 놓인 수건으로 자신의 소중한 레아벨라가 담겨있는 검집을 닦고 있는 드베르테를 보며 말했다.


"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걸 선물로 주지."


아르드가 입고 있는 타바드의 옷깃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낸 뒤, 그 안에서 작은 구체 두 개를 꺼내 디베르테가 앉아있는 자리로 걸어가 그 앞에 내려놓았다.


"이...이게 뭔가요?"


디베르테가 눈앞에 놓인 흰색의 구슬을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끝으로 건드리면서 턱은 테이블 위에 괴어 놓은 채로 눈만을 움직여 높게 치켜뜨며 아르드에게 물었다.


"사탕이다. 하지만 재료가 아주 특별하지. 론델라 섬의 설탕과 파고스족의 신성한 나무인 로터스 나무 열매의 즙을 섞어 만든 거야. 두 개를 주었으니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먹으면 되겠네, 크흐흐."


아르드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디베르테에게 말했다. '애인과 나눠 먹으라'라는 자신의 말과 함께 조소를 섞어 보내면서 디베르테가 보일 반응이 궁금한 듯 자리에 다시 앉아 물끄러미 웃음 주름이 잡힌 눈으로 마주 앉아 있는 푸른 눈의 남자를 보았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레아벨라가 좋아하겠습니다. 레아벨라는 아주 좋아할 거예요. 히히히히."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하던 디베르테의 목소리가 점점 소리를 높여가더니 주점의 홀 안에는 그의 섬찟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까득-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작은 흰색의 사탕을 집어 디베르테의 입속으로 들어간 사탕이 깨지는 소리를 냈다.


"오흐으으음! 달아요! 이렇게 달콤한 맛은 처음입니다."


입속을 저릿하게 만드는 단맛에 디베르테의 눈이 크게 뜨이며 입안에 남아 있는 단맛을 찾아내기 위해 바쁘게 이리저리 혀를 굴리고 있었다.


"흐흠. 돈이 있어도 맛볼 수 없는 맛이니까, 그 맛을 잘 기억해 둬. 하하하하. 아니지, 아니야. 아직 한 알 더 남아있지. 내가 방금 레아벨라의 몫으로 준 걸 먹으면 또 한 번 맛볼 수 있을 거야."


아르드가 흐트러진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디베르테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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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화 그랜드 토너먼트(10) +2 24.04.07 31 3 12쪽
110 110화 그랜드 토너먼트(9) 24.03.30 26 3 12쪽
109 109화 그랜드 토너먼트(8) 24.03.23 28 3 13쪽
108 108화 그랜드 토너먼트(7) 24.03.16 29 3 12쪽
107 107화 그랜드 토너먼트(6) 24.03.09 32 3 11쪽
106 106화 그랜드 토너먼트(5) 24.03.02 33 3 12쪽
105 105화 그랜드 토너먼트(4) 24.02.24 34 3 12쪽
104 104화 그랜드 토너먼트(3) 24.02.17 36 3 13쪽
» 103화 그랜드 토너먼트(2) 24.02.10 35 2 12쪽
102 102화 그랜드 토너먼트(1) 24.02.03 42 3 12쪽
101 101화 살린 오리드(3) 24.01.27 37 3 11쪽
100 100화 살린 오리드(2) +2 24.01.20 41 3 12쪽
99 99화 살린 오리드(1) 24.01.13 45 3 12쪽
98 98화 마브엔 관문 요새(2) 24.01.06 45 2 11쪽
97 97화 마브엔 관문 요새(1) 23.12.30 44 3 11쪽
96 96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3) 23.12.24 46 3 11쪽
95 95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2) 23.12.20 42 3 11쪽
94 94화 니아의 새로운 무기(1) 23.12.17 44 3 12쪽
93 93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4) 23.12.13 43 3 11쪽
92 92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3) 23.12.10 42 3 11쪽
91 91화 알투스 보어 사냥 의뢰(2) 23.12.06 4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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