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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dang 님의 서재입니다.

높은 장원의 군주 (Lord Of High Manor)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Takadang
작품등록일 :
2023.04.02 14:27
최근연재일 :
2024.05.19 18:21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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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2,754

작성
23.04.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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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화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뜨다

DUMMY

바람이 불어오는 고원. 길게 자란 풀들 사이로 지나다니는 바람 소리만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 바람들이 잠시 쉬어 멈춰가는 언덕 위의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 아래 잠이 든 듯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누군가가 있다.


백색의 로브를 걸친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몇 번의 작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누워있던 그가 잠에서 깬 듯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어디지···? 왜 내가 밖에······."


얼굴을 비추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자신이 잠들기 전에 한 행동을 뒤집어 생각해보고 있었다.


"어제 분명 잠들기 전. 그랜드 월드에서 나가 여왕을 잡고···. 잠들었는데···. 분명 내 침대에···."


낯선 주변의 모습에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전에 몸을 일으켰을 때 무게감이 느껴졌던 자신의 양손을 향해 시선을 옮겨갔다.


두꺼운 철판을 덧대어 만든 투박한 기사의 장갑이 아닌,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조차 거스르지 않게 마디마다 나뉘어 아름다운 무늬의 작은 금속판을 이어서 만든 정교한 구조의 작은 보석들로 장식된 화려한 은빛의 건틀릿이었다.


정교하게 세공된 무늬를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는 듯도 했다.


손을 앞뒤로 뒤집어 보며 손등 부위의 큰 푸른색의 보석을 본 남자가 무엇인가 떠오른 듯 홀로 말했다.


"이건 분명··· 나안의 건틀릿인데···. 이게 왜 내 손에···."


고개를 떨궈 자신이 입고 있는 옷가지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남자가 있던 나무의 반대편에서 다른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내며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깨어나셨군요. 그라벨님."


자신을 부르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익숙한 이름이기도 했기에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다. 뒤돌아본 그곳에는 은백색의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투구를 든 푸른 빛이 약간 감도는 흑발의 여기사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남자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어어?!! 너는···. 이리스!?! 그리고 내가 그라벨?"


남자의 머릿속이 혼란했다. 눈앞에 서 있는 여기사의 정체는 이리스. 남자가 어제까지도 플레이했던 온라인 게임인 그랜드 월드 온라인에서의 동료 NPC였다. 비슷하거나 닮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랜드 월드에서의 NPC 영입은 같은 시대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지금 눈앞의 사람이 자신이 '이리스'라고 부르며 게임 내에서 수많은 모험을 함께한 동료임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그랜드 월드의 NPC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어 죽기도 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NPC들과 사용자들이 상호작용하여 호감도를 끌어내서 관련된 정보를 모으고 퀘스트를 수행하기도 하며 오롯이 자신만의 동료로 영입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동료인 영입 NPC와의 관계와 그에 깃드는 애정은 다른 게임과는 확연한 차이를 내는 것이 그랜드 월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리스를 동료로 영입하기 위해 들인 노력, 그리고 그 후 함께한 시간이 남자의 머리를 스쳐 가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기사가 이리스임을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게임 속의 캐릭터였지만 낯선 장소에서 만난 이리스의 존재가 작은 안도감을 주었다.


"이리스? 이리스가 맞아?"


틀릴 가능성은 없었지만, 확실을 기하기 위해 남자가 여기사에게 물어봤다.


"네. 그라벨님의 기사 이리스 본 레우테른(Iris Von Reutern) 입니다."


새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묻는 그라벨의 질문에 이리스가 대답했다.


"내가 그라벨 이라고?"


"네 그라벨님."


분명 그라벨은 그랜드 월드 온라인에서의 자기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머릿속이 어지럽고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주위의 모습이 익숙지 않은데, 이리스 너도 이곳에서 깨어난 거지?"


나무의 근처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라벨이 이리스에게 물었다.


"네, 그라벨님이 눈뜨시기 얼마 전에 저도···."


"그럼 이곳에서 깨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제가 기억하는 건···. 나가들의 여왕인 샤디티라시를 그라벨님과 처치한 후, 나가들의 영역을 벗어난 뒤 근처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허름한 주점 위층의 숙소에서 잠이 든 뒤 깨어나니 이곳이었습니다."


이리스가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기억해내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해가며 그라벨의 물음에 답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도 비슷해(나도 그곳에서 게임을 종료하고 잠이 들었으니)."


기억이 일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게임상에서의 기억이 아닌 게임을 끈 이후의 기억이 문제였다.


분명히 게임을 끄고 잠을 자러 갔거나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게임을 끄고 외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그라벨이라는 게임 속의 캐릭터를 조작한 게임 밖에서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가 누구지? 이름, 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라벨이라는 이름은 자신이 조작하며 플레이하던 게임 속의 캐릭터라는 정보는 있다. 그리고 그랜드 월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에 대한 기억은 온전한듯했다. 게임 밖의 현실에서의 상식에 해당하는 지식 또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결여된 것은 단 하나 '나는 누구인가'였다.


철학적인 자신에 대한 되물음과 고찰 따위가 아닌 게임 캐릭터를 조작하며 플레이하던 인물의 기억이 칼로 도려낸 듯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고통스러워할 때쯤 이리스가 다시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생각난 게 있습니다."


"응? 뭔데?"


"어제 그 마을의 주점에서 계속 그 검을 꺼내어 보셨습니다. 마침내 손에 넣었다고 계속 바라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어? 아···. 이거 말이구나"


그라벨이 로브에 반쯤 가려진 허리에 찬 검집을 바라보았다.


소드 오브 이스트 엔드(Sword Of East End)라는 이름의 그랜드 월드 온라인에서의 몇 안 되는 최고 등급의 아이템. 획득에 요구되는 정보와 재화가 많고, 최종적으로 검을 드롭하는 몬스터인 샤디티라시라는 이름의 나가 여왕의 위치가 무작위로 바뀌기도 하며, 추적 실패 시엔 다시 정보를 모아 추적을 재개해야 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아이템에 걸맞은 게임 내 최상의 획득 난이도의 아이템이었다.


"하하하. 그래 어제는 정말 운이 좋았지."


이리스 덕분에 그라벨의 긴장이 풀렸다. 복잡하게 생각하던 고민들이 정리됐다.


가장 먼저 확신한 건 지금 두 사람이 깨어난 이곳은 꿈도 아니고, 다른 게임 속의 세상도 아니다 였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풀 냄새와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감촉이 더더욱 그 생각을 견고하게 다져주었다.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해. 그나저나 내가 그랜드 월드에서의 내 캐릭터인 그라벨이라는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네···.'


여전히 그라벨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들처럼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본래 게임 밖의 기억들과 그랜드 월드에서의 그라벨의 지식이 섞인 채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법 계열의 직업이었던 그라벨의 기억에서 기원하는 마법의 기초이론과 마법진의 구축, 그리고 몸속에 흐르는 마나의 배분과 흐름의 조절. 게임에서는 설정상의 지식이었던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자리를 찾아가며 정리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 정보들이 서로 자리를 잡고 구분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번 시험해볼까?'


그라벨이 머릿속을 정리한 후 홀로 중얼거리며 손바닥 위에 푸른색의 마법진이 모습을 보였다 사라졌다. 그라벨의 몸 주변에도 희미한 오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한참을 자신의 머릿속에 이론을 실험하던 중 그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란 그라벨이 이리스에게 말했다.


"미안. 잠시 정리할 생각들이 있어서, 너무 집중한듯해."


"아닙니다. 예전에도 가끔 생각에 잠기시는 걸 봐왔기에, 그러는 동안 그라벨님을 지키는 것이 제 사명이니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에서 도중에 공략사이트를 보기 위해 캐릭터를 세워두고 자리를 비운 것이 이리스의 기억에 그렇게 남은듯했다.


"그럼 일단 장비품 외에 뭐가 있나 보자."


그라벨의 말에 이리스가 자신의 망토 속에 가려진 작은 가방과 벨트에 달린 주머니를 뒤적인 뒤 그라벨에게 알린 품목은 회복의 엘릭서 8개, 휴대용 식량 주머니 2개, 물주머니, 마법 스크롤 3개였다. 그라벨도 자신의 로브 속의 주머니와 허리춤의 작은 가방을 뒤적였다.


"금화 주머니에···. 대충 30개 정도인가?"


그라벨 역시 그리 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마나의 포션 2개, 회복의 엘릭서 3개, 휴대용 식량과 물. 그리고 어제 나가 여왕의 땅에서 획득한 반지와 귀걸이 몇 점이 있었다.


"일반적인 보통의 온라인 게임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라벨이 홀로 작게 내뱉은 말이 의미한 것은 그랜드 월드 온라인에서의 인벤토리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랜드 월드 온라인에서의 인벤토리 시스템은 동시대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차원 수납이라던가, 무한의 가방 따위의 허무맹랑한 시스템은 구현하지 않았다. 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허공에 손을 뻗어 물건 따위를 꺼내는 행위를 조롱하고 비난했다.


그래서 그랜드 월드의 모든 아이템은 무게와 부피가 존재 했으며 이에 따라 그런 아이템을 저장할 가방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고 캐릭터가 들고 이동하는 무게와 부피의 한계가 있는 게임이었기에. 전투를 행할 때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작은 가방과 가벼운 무게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아~. 수만 시간을 들여 모은 내 보물들은 이제 없는 건가······."


그라벨이 지난 몇 년간 그랜드 월드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며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그 와중에 신기했던 건 게임에 관련된 기억은 그 어떤 기억보다 선명하다는 점이었다.


처음 그라벨이라는 캐릭터를 생성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너무나도 명확한 대에 비해서 그 긴 몇 년간의 시간 동안의 게임 밖 세계 속에서의 그라벨이라는 캐릭터를 조작한 현실의 자신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짙은 먹구름 속에 갇힌 듯 전혀 떠올려낼 수 없었다.


"있습니다 그라벨님. 공중장원의 보물고에 안전하게 있을 것입니다."


이리스의 말에 그라벨의 눈이 번뜩였다. 여태껏 쓰러뜨린 몬스터와 어떤 아이템을 얻었고, 또 어떤 귀한 보물을 구했는지 그 과정만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던 순간에 이리스의 말에 떠올린 건 그렇게 힘들게 얻은 재보들이 최종적으로 머무는 장소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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