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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e 님의 서재입니다.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탱e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6.05 18:19
최근연재일 :
2020.07.14 18:5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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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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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4,933

작성
20.06.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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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동료모집 (2)

DUMMY

***



바울은 꼼꼼히 탐험을 준비했다.


던전의 사랑을 받는 자?

불지옥 난이도?


그딴 소리를 믿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탐험을 꼼꼼히 준비하는 이유는, 그곳이 던전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까.


또한, 던전에 긴장 풀고 가는 사례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긴장 풀고 던전에 내려간 경험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황동으로 색을 입힌 +4강짜리 체인 메일을 벗었다.

이런 장난감 입고 내려갔다간 칼침 맞고 죽는다.


허리춤에 찬 드래고닉 소드도 풀었다.

분명 같은 무게의 금과 거래될 정도로 좋은 검이지만, 아직 손에 익지 않았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열서너살 쯤 된 아이가 물건을 가져왔다.

저번 탐험이 끝나고 수리를 맡긴 장비들이었다.


수고비로 동화 두 개를 주려다가 멈칫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동화를 하나 더 집었다.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감사합니다! 일 있으면 또 불러주세요!”


황송하다는 듯 크게 소리치고는 문도 조심스럽게 닫고 나간다.


동화 하나가 더 나갔다.

그러나 그 동화 하나로 녀석은 나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것이고, 남들에게 말할 일이 있다면 더 좋게 말할 것이다.


이게 다 이미지메이킹이고 홍보다.


실력 좋은 전사 바울.

운이 좋은 바울.

친절하고 젠틀한 바울.


그런 이름값들이 모이고 쌓여 후일 계획의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00번째 탐험은 나쁘지 않았다.


“신우라고 했던가?”


어제의 그 자리에서는 신우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대꾸하며 던전 참가를 신청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산을 마친 뒤였다.


기념비적인 100번째 던전 탐험.


그 던전 탐험에 던전의 사랑을 받는 자가 끼어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제 인스턴트 파티를 맺은 뒤, 도시 전역에 ‘던전의 사랑을 받는 자’와 ‘헬 모드’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어느 술집을 가도 그들 파티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고, 확대되었다.


어쩌면 이번 탐험이 끝난 뒤에 이명이 붙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화제가 된 탐험이 그의 100번째 탐험이었다.


“좋아. 정신 똑바로 잡고 해보자고.”


얇은 천 옷 위로 수리를 마친 가죽 갑옷을 입었다.

심장이나 고간 등 중요부위만 철판을 덧대고 나머지에는 여러 종류의 가죽을 겹쳤다. 덕분에 무게가 크게 줄었다.

다른 전사에 비해 부족한 힘 대신 빠른 움직임을 살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어깨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 무릎 보호대를 차고,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다.

하나같이 뾰족하거나 뭉뚝한 보철이 달렸다.

적을 꼭 무기로 공격할 필요는 없다.

적이 달려오는 운동에너지만 이용해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이 보호대 바깥에 달린 보철은 그런 용도였다.


허리에 벨트를 차고 검을 세 자루를 매달았다.

장검 하나와 소검 두 개.

장검은 클레이모어로 절삭력이 강화된 녀석이고, 소검 두 자루는 각각 화염과 독이 인첸트된 녀석이다.


마지막으로 투구를 쓰고, 건틀렛을 착용하고, 망토를 쥐었다.

황금빛을 내뿜는 망토였다.


새로 산 장비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 게 바로 이 망토다.


강화 아이템은 누군가 만드는 게 아니다.

던전 아래의 몬스터들이 갖고 있거나, 혹은 발견해서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다.

아우라가 흐르는 아이템은 대부분 그랬다.


던전에서 발굴한 아이템을 감정사에게 가져가면 성능을 증서로 써주는데, 이 아이템의 증서는 다음과 같았다.


[ +7 트롤 가죽 망토 ]

트롤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

트롤의 재생력이 담겨 있다.

트롤이 보면 기분이 좋진 않을 것이다.

- 방어력 : 13

- 자가 수복 : + 1

- 화염 저항 : + 1

- 냉기 저항 : + 1


물론 성능도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 이 찬란한 황금빛!


기념비적인 100번째 던전 탐험을 시작하는데 정말 딱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생각해봤다.


던전 탐험을 끝내고 성벽 위로 올랐을 때.

저물어가는 석양 아래에서 이 황금빛 망토가 빛난다면?

성벽 아래, 탐험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후일 호사가들이 이 탐험에 대해 말할 때, 누구도 그 장면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휙, 어깨에 망토를 두르고 방을 박차고 나섰다.


거리를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



네르미아는 가장 늦게 나타나 모든 일행이 모인 걸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다 모였냐. 그럼 간다.”


일행은 곧 네르미아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울은 일행을 확인했다.


자신과 루터를 포함해 전사만 네 명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활잡이였다.


‘보통 7명이면 전위 셋, 중위 둘, 후위 둘이 가장 이상적인데, 신우라는 저 녀석도 근접이라니까 이 조합은 전위 다섯, 중위 하나, 후위 하난가?’


비효율적인 파티 인선이지만,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긴 그 네르미아니까.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전위가 많은 게 좋겠지. 그리고 소문의 반의반만 사실이라도 3층 정도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3층이지?’


그건 지금까지 명성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한, 좀 더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3층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본인도 던전 탐험을 꽤 해봤던 걸로 아는데.’

‘왜 3층이 목표지?’

‘설마... 진짜?’

‘아냐. 그럴 리 없어.’

‘그건 그냥 헛소문이라고.’


탁.


계단이 끝나고 1층에 도착하자마자 네르미아는 신우와 뒤로 빠졌다.


“나랑 얘는 전에 말했던 것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끼어들지 않을 거다. 알고 있지?”


일행은 어제 파티를 맺을 때, 그런 내용에 동의를 했었다.


정확히는 이 탐험은 앞으로 던전을 같이 내려갈 동료를 찾기 위한 것이고,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전투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전리품 분배도 받지 않고.


일행은 가장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의했다.

고작 3층이었기에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야, 준비하자.”

“어? 아, 어어....”


네르미아가 왜 3층이라는 저층 토벌을 파티 목적으로 삼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 바울은 루터의 말에 뒤늦게 대답했다.

루터가 바울을 비웃었다.


“너 얼타냐?”

“얼타긴 무슨. 너나 제대로 해.”

“이 몸은 언제나 준비만반이지!”


루터가 거대한 대흉근에 힘을 잔뜩 줬다.


일행 모두 다수의 던전 탐험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들은 빠르게 포지션과 역할을 나누고, 전진을 시작했다.


전사가 넷이나 되었기에 포지션은 별 거 없었다.


가장 앞에서 루터가 길을 밝히고, 그 뒤를 바울과 다른 전사가 보조했으며, 뒤에서 활잡이와 전사가 같이 움직였다.


이동속도는 빨랐다.

루터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때문에 2선이었던 바울과 다른 전사는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발을 놀렸고, 덩달아 후미도 빨라졌다.


바울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겁쟁이 취급을 당할까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역시 그 자존심이 문제였다.


“코볼트 한 마리!”


전투는 1층답게 별 거 없었다.

활잡이가 활시위를 튕겼고,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코볼트 한 마리!”

“고블린이 마법봉을 들고 있다!”

“홉고블린 하나!”


이어진 전투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고블린 하나가 미확인 마법봉을 들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고블린이었다.

일행은 아이템 하나 얻었다고 좋아했다.


“.......”


하지만 바울은 뭔가 이상했다.

딱히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찜찜함이 느껴졌다.


‘아니야, 기분탓이겠지.’


바울은 괜히 신우를 노려봤다.

놈이 이곳을 지옥불 모드라고 불렀기에 위축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볼트의 가죽이 더 질기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또 고블린은 왜 이렇게 사나운 걸까.


바울은 불안했지만, 애써 기분탓이라고 생각했다.



2층.


“어? 오크부락이 있는데?”

“2층부터 오크부락? 재수도 없지. 아니지. 재수가 좋은 건가?”

“쉽게 생각하자고. 저기 털어서 금붙이가 나오면 재수 좋은 거고. 아니면 없는 거고.”

“좋지.”


그리고 이어진 전투.


“새꺄 좀, 떨어지라고!”


바울은 악착같이 달라붙는 오크의 턱을 어깨로 쳐올렸다.

어깨의 요철이 턱을 부셔놓았다.

그러나 오크는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광기로 얼룩진 눈깔을 번들거리며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결국 장검을 버리고 소검을 뽑았다.

랜덤한 중독을 일으키는 놈이었다.

소검으로 배때기를 쑤셨다.


신경독에 걸렸는지 오크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오크는 끝까지 그를 향해 달라붙었다.

숨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마지막 남은 오크의 머리통에서 화살이 돋아난 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허억..., 허억....”


바울은 숨을 몰아쉬었다.


일행 중 크게 다친 이는 없어 보였다.

아니, 어쩌면 다쳤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바울 본인도 왼쪽 팔뚝이 팅팅 부은 게 뼈에 금이 간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았으니까.


2층에서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치열한 전투였다.


바울은 팔이 회복될 시간을 벌기 위해 천천히 움막을 뒤졌다.


일행이 모든 움막을 뒤지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고, 황금은 없었다.


다시 포지션을 나누고, 길을 떠났다.


“씨발!”


옆에 있던 전사가 소리쳤다.

바울이 바라보자 그가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곳엔 다트가 하나 꽂혀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꽂혀있었어.”

“조심하자고.”


이전보다 느려진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안개다! 호흡 참고 방어!”


갑자기 생겨난 안개가 일행을 덮쳤다.

숙련된 탐험가답게 바울이 적절한 지시를 내렸고 안개를 곧 사라졌지만, 섬뜩한 순간이었다.


만약 독 안개였다면?

번개를 부르는 안개였다면?


일행은 더 느려진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


활잽이가 소리쳤다.

가장 앞에서 움직이던 루터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멈췄다.


“함정이야.”


활잡이가 루터가 밟으려는 장소에 돌을 던졌다. 돌이 바닥을 통과하며 환상을 지워냈다. 바닥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다.

구덩이 아래에는 빽빽한 창날이 위로 꽂혀 있었다.


일행은 한 명씩 주변을 경계하며 구덩이 옆으로 돌아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구덩이를 건넌 바울은 일행을 확인했다.

모두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루터가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멍청한 얼굴이 허옇게 질린 꼴을 보면서도 통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행은 머뭇거렸다.

어떤 말을 꺼내야하는데, 그걸 꺼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긴 침묵 끝에 바울이 입을 열었다.


“...여기 2층이야.”


허연 얼굴 네 개가 그를 쳐다봤다.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얼굴을 타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마, 자신의 얼굴도 같으리라.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알고 있다.


본인도 그러하니까.


그러나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


“3층까지 가야지.”


그는 오늘만큼 허영심 넘치는, 자존심 강한 자신의 성격이 좆같은 적이 없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그리고 3층.


“으어어어어어억!”

“여, 여긴 미친 곳이야!”

“살려줘!”

“미친 놈들아, 그냥 도망가면 어떡해! 막아! 막으라고!”



***



“내가 말했지 않냐?”


네리가 그 꼴을 보다가 말했다.


“원하는 수준의 파티원은 구하기 힘들다고.”


신우는 눈 앞의 장면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창을 쥐었다.


아무래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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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상, 그리고 고양이 (8) +3 20.06.24 378 30 11쪽
20 일상, 그리고 고양이 (7) +4 20.06.23 422 33 14쪽
19 일상, 그리고 고양이 (6) +5 20.06.22 405 32 13쪽
18 일상, 그리고 고양이 (5) +4 20.06.21 415 3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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