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탱e 님의 서재입니다.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탱e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6.05 18:19
최근연재일 :
2020.07.14 18:5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8,560
추천수 :
1,147
글자수 :
184,933

작성
20.06.17 18:50
조회
484
추천
31
글자
11쪽

일상, 그리고 고양이 (1)

DUMMY

< 일상, 그리고 고양이 >



# 1



솜털같은 햇살이 코를 간지럽힌다.

보풀이 잔뜩 일어난 이불은 거칠거칠하지만, 나름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밀짚을 잔뜩 채운 침대는 과학적 공정을 거쳐 만든 침대만큼은 못하지만, 나름 푹신한 안락함을 제공했다.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따스함에 기분 좋게 웃으며 무언가를 끌어안았다.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기분 좋은 향기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을 잔뜩 끌어안고 주물렀다.


“짜부라지겠어, 새끼야! 그만 좀 해!”


고롱고롱거리는 머리통 위로 주먹이 떨어졌다.


“흐억!”


눈을 번쩍 떴다.


눈꺼풀 아래로 실거미가 주르륵 미끄러져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정신을 부여잡지 못하고 멀뚱멀뚱 두 눈을 끔뻑였다.

커다란 복숭아 하나가 눈앞에서 그 모습을 감췄다.


“아....”


신우는 옷을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여자는 그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듯 신경 쓰지 않다가 불쑥 물었다.


“뭘 꼬라봐?”

“아니, 예뻐서.”

“그래도 안 깎아줄 거야.”


여자는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태도로 그렇게 대답했다.

신우는 입술을 비쭉였다.


“쳇. 안 통하나.”

“왜, 이제는 돈이 간당간당해?”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신우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여자는 그의 사정 따윈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테이블 위 돈자루에서 동전을 꺼냈다. 그중 가장 상태가 좋은 놈으로 몇 개 골라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 후, 아무런 말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쌀쌀하네....”


신우가 닫힌 문을 보며 중얼거렸지만, 익숙한 태도였다.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꼼지락거리며 이불 속 온기를 더 느낀 후에 일어났다. 알몸 그대로 창가에 나섰다. 창문 밖으로 화창한 날씨 아래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날씨 좋구만.”


던전에 떨어진 지 어언 3개월.


이젠 이곳에서의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다.


신우는 느긋하게 옷을 입었다.


이불과 함께 말린 갈색 면티와 바지를 챙겨입고, 세탁해도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가죽갑옷을 뒤집어쓴다. 낑낑대며 옆구리에서 끈을 바짝 당겨 조인다.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견갑을 집어 겨드랑이와 팔오금에서 버클을 찬다.

무릎 보호대를 차고, 다른 쪽 무릎 보호대를 찾는다. 침대 밑, 밀짚 아래에서 놈을 찾아 밀짚을 대충 털어내고 버클을 채운다.

얇은 철판을 덧댄,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를 신고 지퍼를 채운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벨트를 매고, 포켓을 열어 종류별로 정리된 다트를 확인한다.


“독, 광란, 무기력, 수면. 오케이.”


배낭에서 꺼냈던 것들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고, 돈주머니를 넣은 뒤 주둥이를 꽉 묶어 뒤로 멨다.

마지막으로 베개 아래에 깔려있던 망치를 꺼내 허리춤에 끼워넣는다.


신우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으며 내려왔을 때는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마른 행주로 주석잔을 닦아 광을 내던 여관 주인이 신우를 힐끗 봤다.


“아침밥은 없네.”

“먹을 게 없다구요?”

“있기야 있지. 내가 말하는 건 투숙객에게 내어주는 공짜 아침을 말하는 거네. 점심은 돈을 내야지.”

“어휴, 여기가 무슨 돈귀신이 운영하는 곳입니까? 여관 주인이나 종업원이나 하나같이 돈만 밝히는 게....”

“흠.”


신우가 구시렁거렸지만, 여관 주인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신우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테이블에 앉아 빈 그릇을 대충 밀어내며 말했다.


“빵이랑 고기나 줘요. 우유 있으면 그것도. 야채도 있으면 주시고.”

“항상 주던대로 주면 되나?”

“네. 고기는 아주 바싹 익혀서요.”

“에드린! 고기 바싹 하나!”


여관 주인이 크게 소리치자 안쪽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좀 한 번에 시키면 안 되냐고!”


매번 있는 반응인 듯, 신우와 여관 주인 둘 다 태평했다.

신우는 어디서 행주 하나를 주워와 먹을 자리를 대충 닦기 시작했고, 여관 주인은 주석잔에 햇빛을 대어 볼 뿐이었다.

여관주인이 잔을 진열장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자네는 참 고기 먹을 줄을 몰라.”


신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자고로 고기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맛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짝 타서 쪼그라든 걸 먹다니. 그럴 거면 차라리 나무토막이나 씹어먹지 그런가?”

“갑자기 이렇게 뼈 때리기 있어요?”

“뼈를 때린다고? 그거 참 괜찮은 표현이구만.”

“아니 나도 예전엔 육즙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왜?”


여관주인의 물음에 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3개월 전, 던전에 처음 떨어졌을 때, 회까닥 돌아 고블린을 비롯한 던전의 몬스터를 씹어먹은 이후, 신우는 핏기가 있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거리는 거다.


진짜로 속이 안 좋아졌다.


신우는 조금 질린 얼굴로 손을 들었다.


“속이 안 좋아졌어요. 고기 취소. 그냥 우유나 줘요.”

“...에드린! 고기 취소!”

“꺄아아악!”


쿵쿵쿵쿵쿵쿵.


잔뜩 화난 발소리와 함께 주방에서 에드린이 나타났다.


에드린은 신우의 방에서 일어난 여자로 이 여관겸 음식점겸 주점의 종업원이었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신우의 목부터 졸랐다.


“너지! 죽어! 죽어!”

“켁켁켁켁.”


한편, 그 촌극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며 다른 주석잔을 닦던 여관 주인이 방금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네 오늘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목을 내준 대신 머리칼을 부여잡았다가 니킥을 얻어맞아 바닥에 구르던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쯤 무기가 완성된다고 했으니 찾으러 가야죠.”

“이제 다시 탐험을 시작하는 건가?”

“탐험이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걸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 2



신우는 여관 앞 계단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양방향으로 마차가 지나가도 될 만큼 널찍하고 쭉 뻗은 가도 너머, 성벽이 있었다.


성벽은 이상했다.

여기서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고, 반대로 높았다. 분지처럼 움푹 파인 곳에 지어졌는데도 위로 솟아있었다.

겉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는 해자 대신 온갖 건물들이 구역별로 줄지어 서 있었다.

계단도 외부로 나 있었다.


마치 성벽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모조리 밖으로 나와 있는 모양새였다.


당연했다.


저 성벽의 역할은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막는 것.


즉,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막는 용도였다.


저 성벽의 중심에 던전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타실라우?”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여관 앞을 지나는 마차의 짐칸에 얻어탔다.

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그러려니 했다.

여관 앞에 걸터앉아 있을 때와 같은 표정, 같은 포즈로 생각을 계속했다.


이 세계는 게임 속 세상이 아니었다.


그가 만든 게임과 달랐다.


게임 속, 그가 설정하고 기획한 지상은 외로운 곳이었다.

애초에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있는 거라곤 상점과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플레이어는 살기 위해, 혹은 전략적인 플레이를 위해 지상에 잠깐 방문할 뿐, 그 이상 특별히 무언가를 할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은....


“짐승 누린내가 좀 심하지? 무두질을 안 해서 그래. 강령술 연습하던 것들이라 상태가 안 좋아서, 무두질 해봐야 들어가는 품삯이 더 크겠거니 했거든. 그런데 냄새가 이렇게 심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삯이 얼마가 들어가든 무두질을 했을 텐데. 쯧. 지금 후회해봐야 뭐 하겠나? ...그런데 마차에 냄새가 배면 어떡하지?”


코볼트가 짐마차를 몰고.


“마법과 신비로운 비밀의 신, 시프 무나께서는 당신의 귀의를 환영해주실 겁니다.”

“베오그를 위하여!”

“당신은 베오그가 금하는 마법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for the Beogh!”

“그는 약탈자에, 저 던전 속 오크들의 신앙을 얻는 자입니다! 어째서 그런 자를 따르는 겁니까!”

“그러나 우리 오크의 신이시지.”

“.......”

“너희 귀쟁이들의 신이 없는 것과 달리.”

“......!”


엘프와 오크가 언성을 높이며.


“들어갈 수 없다.”

“아니, 나는 원래 입장 인원이었다고.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거....”

“들어갈 수 없다.”

“진짜로 잠깐 나온....”

“들어갈 수 없다.”

“.......”

“들어갈 수 없다.”


가고일이 문지기를 하고.


“나 힘 좋다. 나 많이 먹는다. 많이 먹기 위해 돈 번다.”

“그래, 알고 있으니까 가자고. 일이 밀렸어.”

“돈 안 주면 너 먹는다.”

“말아 드시든, 볶아 드시든 알아서 하시고. 지금은 좀 빨리 움직이자고.”

“안 말아 먹는다. 안 볶아 먹는다. 한입에 먹는다.”


오우거가 돈을 벌기 위해 공사판 노가다를 뛰는.


그런 곳이었다.


신우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멍하니 생각을 이어갔다.


오크, 엘프, 오우거, 코볼트, 가고일.


던전 속의 몬스터다.


그러나 동시에 플레이어가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이기도 했다.

또한, 지성체였고, 아인종이었다.

무리나 사회를 이뤄 생활할 수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게임에 파티 같은 개념은 없었다.

애초에 싱글 플레이 게임이다.

혼자 플레이하고,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NPC가 적인 게임에서 어떻게 파티를 꾸릴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 모든 종족이 지상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발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했다.

던전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놈들이 지상이라는 이유 하나로 웃으며 인사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일상처럼 익숙해졌지만.


“음?”


생각을 정리하고 주변을 돌아봤을 때, 그는 대장간 거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사방이 망치소리와 흥정하는 고함, 욕설 등으로 시끄러웠다. 땀내와 탄내가 진동했고, 후끈한 열기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육수처럼 흐를 정도였다.

화염 내성 스킬을 획득한 신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지만.


“어라?”


손에 창이 하나 들려있었다.

통짜 철로 만든 긴 창대 위에 주먹 두 개를 붙여놓은 듯 망치를 달고, 첨단 부분은 찌르기와 베기가 가능한 창날을 세웠다.

그것은 망치와 창의 혼종이었다.

신우가 안면을 튼 대장장이에게 부탁한 물건이었다.


“이걸 언제 주고갔지?”


신우는 머리를 굴렸다.

짐마차에서 내린 뒤 멍하니 있던 그에게 대장장이가 뭐라뭐라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내용은 대충 다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용도냐, 이 친구 넋이 나갔군, 나중에 와서 말해줘라, 정도였다. 대장장이는 쿨하게 창을 쥐여주고 돌아갔다.

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말해달라고 했으니까, 일단 먼저 실험해볼까?”


작가의말

폼롤러 발로 굴리다가 거하게 넘어졌습니다.

엉덩이가 아프네요.

당분간 하체운동은 바이바이입니다.

;p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4 20.07.22 244 0 -
공지 후원금... 정말 감사드립니다(7/7 수정) +4 20.06.27 180 0 -
공지 제목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8 20.06.16 524 0 -
33 4층 (6) +8 20.07.14 275 23 12쪽
32 4층 (5) +2 20.07.13 279 21 13쪽
31 4층 (4) +4 20.07.09 334 28 14쪽
30 4층 (3) +2 20.07.07 365 26 11쪽
29 4층 (2) +7 20.07.04 375 32 13쪽
28 4층 (1) +5 20.07.03 363 26 12쪽
27 동료모집 (5) - 1권 끝 - +6 20.06.30 397 27 13쪽
26 동료모집 (4) +11 20.06.29 364 37 12쪽
25 동료모집 (3) +6 20.06.28 365 36 14쪽
24 동료모집 (2) +7 20.06.27 378 30 12쪽
23 동료모집 (1) +5 20.06.26 387 35 13쪽
22 일상, 그리고 고양이 (9) +5 20.06.25 387 30 12쪽
21 일상, 그리고 고양이 (8) +3 20.06.24 378 30 11쪽
20 일상, 그리고 고양이 (7) +4 20.06.23 422 33 14쪽
19 일상, 그리고 고양이 (6) +5 20.06.22 406 32 13쪽
18 일상, 그리고 고양이 (5) +4 20.06.21 415 36 14쪽
17 일상, 그리고 고양이 (4) +4 20.06.20 410 33 12쪽
16 일상, 그리고 고양이 (3) +3 20.06.19 431 34 12쪽
15 일상, 그리고 고양이 (2) +2 20.06.18 467 29 12쪽
» 일상, 그리고 고양이 (1) +1 20.06.17 485 31 11쪽
13 만신전 (6) +2 20.06.16 481 32 14쪽
12 만신전 (5) +1 20.06.15 479 31 12쪽
11 만신전 (4) +4 20.06.14 486 32 12쪽
10 만신전 (3) +5 20.06.13 518 34 13쪽
9 만신전 (2) +6 20.06.12 591 31 12쪽
8 만신전 (1) +6 20.06.11 683 34 15쪽
7 1층 (3) +8 20.06.10 690 48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