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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e 님의 서재입니다.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탱e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6.05 18:19
최근연재일 :
2020.07.14 18:5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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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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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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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일상, 그리고 고양이 (2)

DUMMY

신우는 그대로 던전으로 직행했다.


이제 자주 멍 때리는, 성격 좋고 어딘가 허술한 청년 신우는 없었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기다란 창을 제 몸처럼 휘두르는, 무자비한 도살자가 있을 뿐이었다.


던전은 여전히 어두웠고, 조용했으며,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3개월 전과 바뀐 게 없었다.


“그래서 문제지.”


신우는 여전히 적들을 좁은 길목으로 유인해 사냥했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2층과 3층을 오가잖아.”


신우는 오크의 머리통에 처박힌 망치 날을 회수하면서 투덜거렸다.


“던전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 전부 리셋되는 게 말이 되냐고!”


신우가 이 세상을 게임이 아니라고 느낀 것 중 가장 큰 게 이거다.


던전을 나가는 순간, 던전이 리셋된다는 것.


마치 생명체가 자신의 몸을 수복하는 것처럼.


그가 만든 게임에서도 지상은 있었다.


그러나 게임 속 지상은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애초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있는 거라곤 플레이어 전용의 작은 공간과 상점이 전부였으니까.


전용 공간은 그냥 몬스터가 스폰되지 않는 공간이었을 뿐이고, 상점도 카탈로그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일회용이었다.

때문에 게임 속 지상은 지상이라기보다는 0층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던전과 동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지상으로 나갔다고 던전이 리셋되지도 않는다.


던전이 리셋되는 경우는 단 하나.


캐릭터가 죽음을 경험했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지상은 던전과 완전히 다른 별개의 공간이었고, 리셋도 매우 흔했다.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면 시체가 사라지고, 던전 지형이 바뀌며, 죽었던 몬스터가 살아 움직였다.


“그것뿐이면 투덜대지도 않지.”


더 큰 문제는 난이도였다.


처음 2층에서 오크 부락을 발견했을 때, 신우는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2층에서 랜덤 인카우터가 발생할 확률도 적지만, 그렇게 나타난 게 고블린 소굴이나 코볼트 부족 따위가 아니라 오크 부락이라니.

최소한 4층이나 5층에서나 볼법한 놈들이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이 미친 난이도. 패치를 요구한다!”


그건 운이 좋은 거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2층에서 생성되는 랜덤 인카우터는 평균 2개에서 3개.

3층으로 내려가면 곱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나타난다.

쉬운 것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은 3층부터 놀 성채가 나타나서 기절할 뻔했다.

농담 아니라 그날 죽는 줄 알았다.


“그만! 좀! 나오라고!”


그렇기에 신우는 여전히 좁은 길목을 찾고, 적을 유인해서 싸우고 있었다.


3개월째.


여전히.


“하아, 하아...!”


신우는 적들을 피해 계단 위로 피신했다.

오크들이 물량으로 벽을 쌓고, 켄타우로스들이 멀리서 화살을 쏴재끼며, 사선에선 곤충이나 파충류 몬스터들이 벽을 타고 덮쳐왔다. 두 팔 달린 인간으로서 버틸 만한 물량이 아니었다.


그렇게 신우는 오늘도 3층 공략에 실패했다.


“경험치도 벌었고, 아이템도 얻었잖아? 그 점을 위안삼자고.”


신우는 억지로 입꼬리를 당겼다.


“새로운 기능도 확인했고. 이거 잘만 이용하면 다음 층으로 금방 넘어갈 걸?”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그가 확인한 기능은 그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도약시켜줄 수 있었다.

다음 층을 맛만 보는 게 아니라 모든 몬스터를 몰살시킨 후, 다음 층을 노려볼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러나 그 다음층은?

그 다음층의 다음층은?

다음층의 다음층의 다음층은?


지금 고전하고 있는 게 3층인데, 앞으로 수십 층이 더 남았는데, 그 나머지는 어떻게?


“.......”


던전에 떨어진 지 3개월이 지났고,

꾸준히 던전에 내려갔으며,

그만큼 착실하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던전은 위험했고,


신우는 혼자였다.


아무리 이 던전 위에 잘 구축된 사회가 있고,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홀로 던전에 내려와야 했다.


이렇게 변해버린 던전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던전 위에도 대화할 사람 하나 없이 좁은 공간과 상점 몇 개가 전부였더라면, 그래서 던전을 클리어할 때까지 던전 속에서 살아야 했었다면, 정신의 어느 부분이 망가지거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거라고 반쯤 확신하고 있으니까.


사람이란 나약한 존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때는 너무나도 약하다.


인간은 다차원적이고, 꼭 페르소나 같은 정신이론을 내밀지 않더라도 인간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건 일반적이다.

살인자의 자식사랑 같은 극단적인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사람이 상황이나 경우, 대상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흔한 모습이다.

상사를 대하는 태도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가 같을 수는 없으니까.


신우도 같았다.

그는 지상에서 허술하고 바보같은 동네 청년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이곳에선 다르다.


날카롭고, 다혈질이며, 무자비하다.


만약 지상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살기 위해 분노하고 분노하여 무자비한 스탠스를 유지해야 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인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변해버린, 혹은 뭔가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거다.

그것이 감정이든, 얼굴이든, 그 무엇이든.


“하아....”


그러나 그 반대급부가 이런 난이도라니.

신우는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애매한 묘정을 지으며,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쏴아아아아.


던전 밖을 나오니 성벽의 동그란 하늘 아래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우산 없는데.”


신우는 아이템을 꽉꽉 눌러담아 빵빵하게 찬 배낭을 머리 위로 올렸다. 성벽에 올라 순찰병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성벽 밖으로 내려갔다. 두피에서 주르륵 빗물이 흘러내린다.

머리칼을 쥐어짜자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


배낭을 다시 등에 멨다.


멍하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은 휑했다. 올 때는 길 좌우로 빼곡했던 좌판도 모두 접혔다. 그저 간간히 마차가 지나다닐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돈 한두 푼 내고 마차를 얻어탔을 것이다.

발품을 팔거나 바지런히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음으로.


그러나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비가 오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앞길에 대한 막막함 때문일 수도 있었다.


신우는 그저 멍하니, 땅만 보며 걸었다.


그때였다.


끼익.


시야에 마차의 바퀴 하나가 들어왔다.


신우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앞에 선 건, 호박마차였다.


“왜 그렇게 세상 다 산 표정으로 걷고있냐?”

“......?”

“말하는 고양이 처음보냐?”

“...떼껄룩?”



# 3



펠리드는 고양이다.


수인이나 고양이 인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고양이.


다만 일반적인 고양이는 아니다.


대부분의 펠리드는 패밀리어다.

그들은 은신에 능하고 주술과 특정 마법에 대한 적성이 높다. 때문에 주인의 손과 눈이 되어 정보를 수집하거나 주술이나 마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간혹, 아주 드문 일이지만 패밀리어가 주인보다 강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펠리드는 보통 주인보다 오래 살거나, 버림받거나, 주인의 목을 뜯어버리고 세상에 나온다.


신우는 전용 방석에 앉은 고양이를 쳐다봤다.


혹시...?


그루밍하던 고양이는 혀를 내밀다 한쪽 눈을 뜨고 흘겼다.


“숙녀를 그렇게 쳐다보는 건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아, 미안.”


지난 3개월간 다종족에 의한 다문화를 경험한 신우가 냉큼 사과하며 고개를 돌렸다.


호박마차는 진짜 호박처럼 생겼다.

외부도 그랬지만,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호박의 속을 파낸듯한 내부 아래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보통의 마차라면 의자가 위치할 공간에는 고급스러운 기둥과 상자, 넓은 판들이 놀이기구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캣타워인 모양이었다.

중앙에는 각종 보석과 금으로 장식된 보라색 방석 위에 고양이가 앉았다.


이곳 그 어디에도 사람의 편의를 위한 공간은 없어 보였다.


이 고양이의 출신성분을 의심한 것은 그런 맥락이었다.


신우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문을 바라봤다.


마차는 빗길을 뚫고 움직이고 있었다.


호박마차는 말 같은 우마가 끌지 않았다. 호박에 앞뒤로 바퀴가 달려 내연기관이라도 있는 듯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생김새도 마차라기보다는 자동차에 가까웠다.


“핥짝. 핥짝.”

“.......”


마차 안은 조용했다.

고양이의 그루밍소리가 들릴 정도로.


신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왜 나를 태웠어?’

‘아니야. 그건 좀 이상해.’

‘그럼, 네 주인이 나를 부른 거야? 아니면 네가 날...?’

‘고양이한테 너라고 말해도 되나?’

‘아니 그 전에, 쟤한테 주인이 없으면 어떡해? 주인을 죽이고 나왔으면? 저거, 사람 죽인 고양이라는 거잖아!’


신우가 멍한 표정 아래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렀을 때, 펠리드가 말했다.


“안녕? 난 네리.”

“...아, 안녕. 난 신우야. 김신우.”


신우는 어색하게 인사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통성명을 안 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네리?”

“왜 부르냐?”

“혹시 나를 태운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글쎄....”


네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얼굴에서 약간의 흥미와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그냥 불쌍해서?”

“......불쌍?”


신우는 해괴한 것이라도 들은 얼굴이 되었다.


“그렇잖아. 이렇게 비가 오는데 인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니까, 뭔가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안타까워 보이기도 하고.”

“.......”


신우는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이런 스토리는 ‘아무나 데려가시오’라고 적힌 상자 속에서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가 씻겨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본인이 비 맞는 새끼고양이라니.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좀 흥미롭기도 하고.”


네리가 신우의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동공을 좁힌 채 관찰하고, 냄새를 맡고, 손끝을 핥았다.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며 체취를 묻히다가, 마지막에는 무릎에 앞다리를 걸치고 꾹꾹이를 시전했다.

신우는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고양이를 보며 물었다.


“뭐가?”

“흠... 그걸 모르겠어.”


네리는 신우의 허벅지 위로 폴짝 올라섰다. 네 다리를 모으고 앉아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리고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신우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외형은 고양이지만, 성인 여성이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성숙하고 약간은 나른한 듯한, 퇴폐미 가득한 목소리 때문에 더욱 그랬다.


“뭔가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데, 뭐 때문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신우는 냄새를 맡는 바보같은 짓을 하진 않았다.

이 펠리드가 말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각을 뜻하는 게 아닌 건 분명했다.


네리는 몇 번이고 그르릉거리더니 허벅지에서 내려와 방석 위에서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데려가는 거냐.”

“데려가? 어디로?”

“어디긴. 내 저택이지.”

“...네 저택?”


신우가 얼빵하게 물었을 때였다.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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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상, 그리고 고양이 (6) +5 20.06.22 406 32 13쪽
18 일상, 그리고 고양이 (5) +4 20.06.21 416 36 14쪽
17 일상, 그리고 고양이 (4) +4 20.06.20 410 33 12쪽
16 일상, 그리고 고양이 (3) +3 20.06.19 431 34 12쪽
» 일상, 그리고 고양이 (2) +2 20.06.18 468 29 12쪽
14 일상, 그리고 고양이 (1) +1 20.06.17 485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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