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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e 님의 서재입니다.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탱e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6.05 18:19
최근연재일 :
2020.07.14 18:5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8,548
추천수 :
1,147
글자수 :
184,933

작성
20.07.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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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층 (6)

DUMMY

그건 10cm내외의 작은 인형이었다.


사람 형태의 그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 동물 같기도 했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무엇 같기도 했다.


그것은 털과 비늘이 공존했고, 피부와 가죽이 뒤섞였으며, 깃털이 역방향으로 났고, 날개와 지느러미가 대칭을 이루었다.

보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정도로 괴상한 외형이었다.


네리는 인형을 공중에 띄웠다.

허공에서 지푸라기 몇 줌을 꺼내 인형 아래를 받치고 주술로 푸른색 불을 피웠다.

그리고 지푸라기에 불을 붙였다.


푸른 불은 순식간에 지푸라기와 인형을 집어삼켰다.

지푸라기는 순식간에 퍼렇게 타올라 잿가루로 변했지만.

인형은 멀쩡했다.


주술의 문외한인 에드린이 그 장면에서 알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불에 타지 않는 인형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


오오오오오오오...


그러나 뭔가 느낄 수 있었다.

저 인형을 중심으로 뭔가 끌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형이 그것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을.


순간, 인형이 비틀렸다.


공간이 단절된 것처럼 인형이 잘리고, 단절된 공간을 어설프게 이어붙인 것처럼 발 아래 머리가 자랐다.

안과 밖이 뒤섞이고, 얼굴이 거대하게 부풀어오르고, 팔과 다리는 말라 비틀어진다.


그리고.


“......!”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인형은 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더 이상 어떤 괴기함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섬뜩하지도 않았다.

그저, 못생긴 인형이었다.


“드디어 끝났네.”


네리가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폈다.

지금까지 펼쳐진 모습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던 에드린이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쳐다봤다.


“......끝난 거야?”

“그럼 안 끝났겠냐?”


네리는 푸른 불이 사라지고 땅에 떨어진 인형을 회수했다.


“아슬아슬하긴 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인형이 감당할 수 있는 액의 양을 넘겼을 거다.”


에드린은 네리가 인형을 다시 허공으로 수납하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나도 모르지.”

“뭐?”

“신우가 설명하지 않았냐? 액이란 건 보이지 않는 거라고. 이것도 같다. 언제,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

“물론 그걸 유도하고 조절하는 게 주술사의 일이지만.”

“대체 뭔 소리야?”


그래서 액이 찾아와도 조절할 수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말에 에드린이 눈을 찌푸리자 신우가 한소리 했다.


“원래 주술사가 하는 말 중 반은 헛소리야. 그냥 신경 꺼.”


신우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액을 쫓는 과정을 거친 탓인지 주변의 귀기가 사라져있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온갖 뼈들이 널려있긴 했지만, 이것만 치우면 4층에서 쉬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별로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좀 쉴까?”


네리가 긍정을 표시했다.


“당분간은 이 주변에 귀기가 끼지도 않을 테니 좋은 생각이다.”


에드린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겠지.”

“좋아. 그럼 준비하자.”


에드린이 주변의 뼈를 치우고 네리가 허공에서 나무토막을 꺼내 불을 피울 동안, 신우는 배를 채울만한 것을 준비했다.


급하게 내려온 던전이라 가져온 게 별 거 없었다.

기껏해야 감자, 여관에서 몰래 가져온 우유, 심심할 때 먹으려고 쟁여두었던 주전부리가 전부였다.


“수프나 해먹지 뭐.”


무쇠팬에 자작하게 물을 올린 뒤 소금과 감자를 넣고 나무를 적당히 쪼개어 뚜껑으로 덮어놨다.

그런데 막 불을 피운 터라 불길이 세게 올라와 뚜껑까지 태워 먹을 기세였다.

한참이나 팬을 잡고 씨름한 끝에 적당히 익은 감자를 수저로 으깨고, 버터를 한 스푼 넣은 뒤 약한 불에서 곱게 섞었다.

그 후 끓는 우유를 조금씩 부어주며 적당한 농도를 맞췄다.


그렇게 감자 수프를 준비한 뒤 육포를 적당히 분배했다.


일행은 불쏘시개를 만들고 남은 나무토막을 주워 불가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기껏해야 감자 수프에 장기 보존용으로 만들어 나무껍질같은 육포가 전부였다.

그러나 따끈한 수프가 몸을 녹이고, 짭짤한 육포가 입맛을 돌게 했기 때문일까?

팬 바닥을 긁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 모자른가?”


신우는 배낭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과일절임이었다.


뇌가 저릴 정도로 단 과일이 들어가자 머리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단번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신우는 복숭아를 하나 집어먹다가 문득, 풀어진 얼굴로 설탕에 절인 과일을 먹는 네리를 봤다.


고양이는 단맛을 못 느끼지 않나?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거, 달아?”

“...그럼 달지, 안 다냐?”


네리는 복숭아를 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신우가 신기하다는 듯이 네리를 쳐다볼 때, 에드린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뭐가?”

“상황이 급해서 일단 움직였지만. 말하는 해골이 있다고 확신했잖아. 어떻게 안 거냐고.”


네리가 힐끔 신우를 올려봤다.


“나도 궁금하다. 다른 방에 있는 네임드 몬스터도 말하는 해골이라고 확신한 이유가 있는 거냐?”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으니까.”


네리는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이곳만의 규칙인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마도.”


에드린이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만약 다른 네임드 몬스터가 있었다면?”

“뭐, 이 맴버라면 도망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신우는 턱을 긁적이며 뒷말을 줄였다.

즉, 다른 네임드를 만나면 알아서 도망치라는 말이었다.

에드린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자 신우는 억지로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그나저나 너 아공간 마법 쓸 줄 알았어?”


식사를 마치고 몸을 정돈하고 있던 네리가 코웃음을 쳤다.


“전이술 마스터가 아공간 하나 못 다루겠냐?”

“그럼 지금까지 왜 배낭 보관을 안 해준거야?”

“말 안했잖냐.”

“.......”


신우는 입을 벌렸다가, 아무 말 없이 배낭을 정리하여 네리에게 내밀었다.

네리는 아공간을 열어 배낭을 넣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4층 네임드는 한 종류였냐?”

“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바뀌는데, 보통 한 번 등장한 녀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긴 하지.”

“보통? 방금 보통이라고 했어?”


절인 과일을 씹던 에드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지금까지 말하는 해골만 나온 건 우연이었다는 거야? 만약 다른 녀석이 나왔으면 어떡하려고?”

“아, 그건 방에 들어가자마자 알 수 있어.”

“어떻게?”

“그야 네임드 몬스터가 아니면 보스 몬스터일텐데.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 애초에 스켈레톤이 쫙 깔려있지도 않을 거야.”


에드린은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에 할 말을 잃었다.

네리가 대신 물었다.


“보스 몬스터? 지금 4층에 보스 몬스터가 나온다는 거냐?”

“응.”


신우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낮은 확률로 돌연변이처럼 탄생하는 게 네임드 몬스터라면, 보스 몬스터는 그 해당 층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층의 모든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층의 주인.

때문에 미궁의 심층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그 보스 몬스터가 4층에 나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


보스 몬스터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에드린의 경악은 말로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넌 대체....”


보스 몬스터에 대해서 듣기만 했을 뿐 본 적 없는 네리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4층에서 본 네임드 몬스터는 뭐가 있냐?”

“글세....”


신우는 턱을 문지르며 기억을 되새겼다.

지금까지 그가 4층에 내려온 적은 꽤 있었다.

다만 네임드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만반의 상태로 내려온 적은 별로 없었고, 실제로 시도한 끝에 성공한 것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다만, 네임드 몬스터를 파악한 건 꽤 되었다.


“주로 말하는 해골이 나왔고.”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건 말하는 해골이었다.

수많은 스켈레톤을 다루는 몬스터.

대신 스켈레톤 개개인은 약하고, 그 본체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약했다.

때문에 접근은 어려워도,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켈레톤 나이트도 몇 번 봤고.”


스켈레톤 나이트는 단순히 스켈레톤의 상위개체가 아니다.

종이 다르다.

스켈레톤이 고양이라면 스켈레톤 나이트는 고양잇과 동물인 호랑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차이가 극심했다.

다만, 외형은 비슷했다.


“스펙터도 몇 번 봤어. 그땐 스켈레톤 대신 망령이 나오더라.”


망령이란 물리와 비물리로 나뉘는 언데드 계열 중 비물리 계열의 스켈레톤 같은 녀석이다.

그리고 스펙터는 스켈레톤 나이트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녀석이다.


“스켈레톤 말고 좀비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땐 시취가 너무 역해서 포기했어.”


네리가 반응한 건 그때였다.


“4층에서 좀비라고 했냐?”

“그래.”

“그렇담 리치일 수도 있지 않냐?”

“그렇겠지?”

“리치라면 말하는 해골이랑 다르게 마법을 쓰지 않냐?”

“그렇...지?”


신우가 떨떠름하게 대답했을 때였다.

충격에서 벗어난 에드린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방금 리치라고 했지.”

“어? 어.”

“그 금목걸이에 금띠 차고, 열 손가락에 마법 걸린 금반지를 끼고 다니는 그 리치를 말하는 거 맞지?”

“어... 모든 리치가 그렇지는 않는데....”


신우가 덧붙였으나 에드린은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만약 네임드로 리치가 나오면?”

“마법 걸린 금반지만 열 개!”

“희귀 마법서!”

“금목걸이에 금띠!”

“그것도 최소 세 마리 이상!”


오히려 네리랑 쿵짝이 맞아 김칫국 마시기 바빴다.

신우는 대화를 좀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리치, 나온다 해도 못 잡지 않을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잡을 수 있다고!”


신우는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말하는 해골이야 우리랑 상성이 맞아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리치는 그게 아니잖아.”


말하는 해골과 리치는 모두 강령술로 언데드를 부린다.


다른 점은 말하는 해골은 능력치가 강령술에 몰빵되어 수천이나 되는 스켈레톤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대신 몸이 종잇장인데 반해.


리치는 스켈레톤보다 수준이 낮은 좀비를 백 단위밖에 다루지 않는 대신, 그 외의 능력이 뛰어났다.

대표적으로 마법이 있었고, 라이프 베슬을 이용한 부활도 있었다.

신우가 그 사실을 일깨워주자 둘은 기가 죽었다.


“희귀 마법서....”

“금반지. 금목걸이. 금띠....”


신우는 분위기를 좀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본래 그는 던전과 지상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얼굴을 한다.

던전에서는 무자비함과 냉정함으로 정신을 무장했기 때문인지, 그 반동으로 지상에서는 나사가 두 개쯤 풀려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일행이 생겼기 때문일까?

이분법적인 페르소나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긴장이 풀어지면 실수가 일어날 확률로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는 그것을 경계했다.


“지금은 그것보단 여기 있을 보스 몬스터를 걱정해야할 것 같은데.”


효과는 적절했다.

둘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네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

“말하는 해골이 주저리주저리하잖아. 주인, 조지여. 하면서.”

“확실히 그랬긴 했는데....”


이번엔 에드린이 물었다.


“확실한 거야?”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신우의 말은 그렇기에 긴장하라는 의미였고, 둘은 알아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무장을 마친 후 다음 방으로 들어갔을 때.


“시체가 되어 일어나라!”


일행은 볼 수 있었다.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집채만한 화염구 수십 개가 덮쳐오는 것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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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동료모집 (3) +6 20.06.28 364 3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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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동료모집 (1) +5 20.06.26 387 3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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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상, 그리고 고양이 (8) +3 20.06.24 377 30 11쪽
20 일상, 그리고 고양이 (7) +4 20.06.23 421 33 14쪽
19 일상, 그리고 고양이 (6) +5 20.06.22 405 32 13쪽
18 일상, 그리고 고양이 (5) +4 20.06.21 415 3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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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상, 그리고 고양이 (3) +3 20.06.19 431 34 12쪽
15 일상, 그리고 고양이 (2) +2 20.06.18 466 29 12쪽
14 일상, 그리고 고양이 (1) +1 20.06.17 484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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