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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e 님의 서재입니다.

탈출은 던전에게 실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탱e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6.05 18:19
최근연재일 :
2020.07.14 18:5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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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0
추천수 :
1,147
글자수 :
184,933

작성
20.06.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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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만신전 (5)

DUMMY

쾅!


그를 향해 스마이트가 떨어졌다.


“꾸이이이이이익!”


오크 사제였다.


도망치던 오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오크 사제는 신우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 쟤가 있었네.”


신우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체력이 올라간데다가 어빌리티 금강불괴를 얻은 것은 물론, 신성 저항 스킬까지 얻은 이상 스마이트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오크의 스마이트는 기본적으로 신성 속성이라 신성 저항에 의해 데미지가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펙업 했다지만 다굴 앞에 장사 없는 건 매한가지.


신우는 가장 위험한 적인 오크 사제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합!”


신우가 소리를 내지르며 오크 사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쯤, 오크 사제에 의해 정신을 차린 오크들이 눈깔을 뒤집으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꾸에에에에에엑!


“흥!”


신우는 코웃음쳤다.

오크 사제에 의해 광신 모드가 되어 두려움도 잊은 채 달려드는 모양이었지만, 스펙이 증가한 건 아니다.


신우는 앞길을 막는 오크들에게 할버드를 휘둘렀다.


창날에 맞은 놈은 몸뚱이가 잘려나갔고, 창대에 맞은 놈은 허공을 날았다.


몇 마리가 걸려도 똑같았다.


꾸에에에에엑!


그러나 광신 모드가 된 오크들은 팔이 잘려도, 다리가 날라가도, 갈비뼈가 박살 나 가슴팍이 우둘투둘하게 올라와도, 숨만 붙어 있으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가 질릴 장면이었다.


“흐입!”


신우도 마찬가지였다.

눈깔이 돌아간 오크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부랄이 오그라들고 똥꾸멍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나, 그래서 좋았다.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

이곳이 방심하면 안 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지각시켜줘서.

그래서 고마웠다.


“그러니까 이거나 쳐먹어!”


신우는 녹색 파도처럼 몰려드는 오크를 뚫어낸 끝에 오크 사제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 옆에 있던 오크 마법사도, 무리를 이끌던 오크 전사도 별다를 것 없었다.


단칼에 목이 떨어졌다.


“...뀌익.”


전의를 잃고 도망치는 마지막 오크를 쫓아 죽여버린 신우는 허공에 할버드를 휘둘러 피나 지방 따위를 털어내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뭘 잊어버린 것 같은데.”


분명 오크 전쟁군주도 죽였고, 남아있는 오크들도 처리했다.

이젠 저 계단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자꾸 뭔가 잊은 느낌이....


“꾸에에에에엑!”


그때, 한 무리의 오크들이 들이닥쳤다.


“아.”


그들은 신우가 오크 부락에 잡입하기 위해 따돌린, 오크 사제와 오크 전사가 포함된 무리였다.


신우를 찾다가 못 찾고 돌아온 듯했는데, 부락 내의 동족의 시체와 태연히 서 있는 신우를 보고 눈깔이 돌아간 모양이었다.

오크들은 분노를 토해내며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신우는 오크 무리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있었구나.”


신우도 그들에게 쌓인 게 많았다.


“지금까지 재미 봤지?”


처음 오크 스마이트를 얻어맞고 공포를 느끼게 한 것도 이 무리였고,

그를 쫓아 땅굴에 세 시간씩 숨어있게 한 것도 이 무리였다.

이놈들만 아니었다면, 그런 개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이젠 뒤질 시간이다!!”


도끼로 장작패듯 크게 휘둘러 오크 전사를 내리찍었다.


오크 전사가 무기로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날이 다 닳아버린 할버드가 오크 전사의 도끼를 부러트리며 머리통까지 쪼개버렸다.


“......!”

“......!”


당황해하는 오크 무리를 보며, 신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하하하! 하하하핫!”


# 8



만신전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최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 장소다.

신을 섬기고 안 섬기고의 차이가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종족 중 하나인 반신은 신을 믿을 수 없다는 패널티 하나만으로 못 써먹을 종족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어떤 종족을 선택해서, 어떤 신을 믿고, 어떻게 플레이할지 대강의 방향을 생각해둔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선택할 종족과 시너지가 좋은 신도 있고 아닌 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게임은 로그라이크 게임.

만신전에 생성되는 신의 제단도 랜덤으로 생성된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고생 끝에 만신전을 찾아도 원하는 신이 없어서 플레이가 꼬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단 하나의 신만큼은 만신전에 고정적으로 등장한다.


그게 바로 재난과 장난의 신, 로키다.


또 그 설정이 문제였다.


신우가 게임을 기획할 때, 로키는 그 원본이 되는 북유럽의 신 로키에게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로키는 다른 신들에게 장난이나 사기를 치고,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는 걸 즐겼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트러블은 대부분 로키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로키가 아니면 상황이 수습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로키는 대부분의 신이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만신전을 기획할 때도 다른 신들에게 사기를 쳤다는 설정으로, 다른 신들과 달리 만신전에 무조건 제단이 생성되도록 짜놨다.

때문에 만신전에 로키의 제단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은 없었다.


“.......”


신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던전의 이미지와 달랐다.

던전의 이미지가 자연생성된, 혹은 만들어진 동굴 같은 느낌인 반면, 돌로 만들어진 이 계단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처럼 너무 깔끔했다. 선도 반듯했고, 간격도 일정했다.


이 공간은 마치 통로 같았다.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통로 말이다.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있지만, 정말 밑으로 내려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갈 때의 중력이 느껴져서 감각이 어지러운, 그런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신우가 알지 못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신우는 이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했지만, 통로는 아니었다.

계단을 만들고, 계단을 이용하면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트리거를 설정했을 뿐, 계단의 통로 같은 건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당연히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신우는 계단을 이용할 때마다 영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좀 다른 생각을 해볼까.”


신우는 어빌리티에 대해 떠올렸다.


스킬이 기술이라면, 어빌리티는 재능이다.

어빌리티는 스킬보다 좀 더 상위의 능력이었다.

단적으로 스킬은 그 종류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지만, 어빌리티는 아니었다.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구입) 스킬과 달리 어빌리티는 선천적인 재능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하여 선천적(랜덤)으로 타고나거나, 특정 조건을 만족하거나, 아니면 꼼수에 가까운 트릭 플레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어빌리티 금강불괴가 대표적이었다.


사실, 금강불괴는 거인 전용 어빌리티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우거의 활력, 트롤의 재생력, 사이클롭스의 강골은 스킬로 구입할 수 있지만, 그 스킬로 어빌리티 금강불괴를 만드는 건 오우거, 트롤, 사이클롭스 등의 거인만이 가능했다.

인간인 신우가 금강불괴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숨겨진 기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던전을 가다는 숨겨진 기능이 굉장히 많은 게임이다.

커뮤니티 내에서는 그 기능을 얼마나 발견했으냐에 따라 고인물과 일반인이 갈렸다.


이 경우도 그랬다.


거인이 아닌 종족으로 금강불괴를 얻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활력, 재생력, 강골을 구입한다.

변신술과 거인화를 구입한다.

이때, 활력 등을 구입한 경험치와 동일한 수치로 변신술 등을 구입해야 한다.

스킬 구입의 기본값은 경험치 100.

그러나 종족 적성에 따라 스킬을 구입할 때 필요한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변신술 등의 비용이 더 비싸거나, 동일한 수치로 구입할 수 없는 종족의 경우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활력, 재생력, 강골이 적성 –3(3.4배)으로 동일하고, 변신술과 거인화는 각각 0(1배)이라 경험치를 더 주고 구입하는 방식으로 동일한 수치를 맞출 수 있다.

그 후, 해당 수치의 10배에 달하는 경험치를 ‘그냥’ 사용한다.

아무것도 구입하는 것 없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면 금강불괴를 얻을 수 있다.


거인이 활력, 재생력, 강골로 금강불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영감을 얻어 변신술과 거인화를 더하면 다른 종족도 금강불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 것부터.

본래의 경험치 값 이상을 주고 스킬을 살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고.

스킬 구입에 사용하는 경험치 값도 동일하게 맞춰야 했으며.

그 수치의 10배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그냥’ 사용해야 한다니?

사실상 플레이어가 알아내기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커뮤니티 아이디 ‘던가는운빨좆겜’이라는 아이디를 통해 커뮤니티에 알려지게 되었다.

‘던가는운빨좆겜’이라는 아이디가 개발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그땐 그랬지.”


하고 예전 생각에 피식 웃었을 때였다.


계단의 끝이 보였다.


신우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통로를 빠져나왔다.


“......!”


그곳은 만신전이었다.


까마득할 정도로 높고 완벽한 아치를 이루고 있는 돔형 천장 아래, 사람 셋이 안아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제단들이 존재했는데, 그 수가 정확히 열여섯이었다.


만신전은 고요했고, 그저 장엄했다.

특별한 뭔가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냄새도 없었다.

다만 거대한 건축물에 압도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이라 불리는 이들의 제단이 있기 때문인지, 신우는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호흡도 조심스러워졌다.

신우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만신전 바닥은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 타일 위로 붉은색 융단이 길게 가로질러 있었는데, 사이즈가 매우 거대했다. 타일 하나가 사람보다 크고, 융단의 폭이 타일 서너개를 덮었다.


신우는 거인국에 온 걸리버라도 된 심정으로 움직이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좌우론 다양한 제단들이 있었다.


브릴리언트컷으로 세공된 황금색 보석이 반짝이는 제단, 두 피뢰침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는 제단, 칠흑같은 어둠이 일렁이는 제단, 새하얀 쟁반이 있는 제단 등.

각각의 제단은 하나의 신을 뜻했다.


“.......”


신우의 귀밑으로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혔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노려봤고, 누군가는 그냥 봤으며, 누군가는 자애롭게 웃었다.

그런데 이 시선 하나하나에 물질적인 질량이 있어서, 시선의 주인들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시선이 압도적인 프레스로 변해 등을 내리눌렀다.

그냥 보고 있을 뿐인데도.


아마, 신이리라.


그러한 예상은 두 피뢰침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는 제단을 지나갈 때, 쿠르릉 하는 천둥소리를 들음으로써 확신으로 변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흐르는 땀의 양이 많아졌다.


그러나 결코 시선을 돌리거나, 다른 제단에 관심을 주거나 하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행위로 인해 생뚱맞은 신의 신도가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느낌이었다.

사소한 행위 하나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느낌.


한 번 신의 신도가 되면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고, 한 번 믿은 신을 배신하면 무시무시한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신우는 한 제단에서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다.


그건 오래된 광대의 제단이었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괴기스러운, 한쪽 눈이 부서진, 너무나도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어 부식된 광대 가면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런 제단이었다.


신우는 제단에 다가간 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제단에 손을 올렸다.


작가의말

 [ 만신전에 입장했습니다 ]

 [ 광대의 제단에 손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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