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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나라 님의 서재입니다.

복사 초능력자가 마물을 상대하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한별나라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5
최근연재일 :
2020.05.2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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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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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화 과거를 바꿀 때.

DUMMY

2월 25일 밤.


최강두는 심란함을 감추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있었다. 20대 때 잠시 피웠던 담배가 간절히 생각나는 밤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며칠간의 기억들. 전생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아이들과 섞이는 일은 힘이 들었다. 아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던 자신은 영영 사라진 것만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을 거니던 중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빠. 안자고 뭐해?”


그 정체는 바로, 한사라. 그 얼굴은 그 아름답던 마물 여장군과 비견될 만하다. 순간 그 망할 마물을 떠올린 최강두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내가 방해했어?”


“아냐. 짜증나는 ‘것’이 잠깐 떠올라서 말야.”


“휴우. 누가 또 오빠를 짜증나게 했어. 그렇다고 사고 치면 안 되는 거 알지?”


“무슨 사고?”


“그 일진 패거리들 두르려 패 준거 말이야. 기억 안나?”


아 하며 입을 벌리는 최강두.

한사라가 말하는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지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녀석들로 엄청나게 싸가지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중학생 때에 한창 주먹으로 유명했던 최강두에게 시비를 걸어오던 녀석들.

다만 크게 한 번 싸움을 벌이던 당시 원장 할아버지에게까지 피해가 미치자 고등학교에 와서는 적당히 참아주고 있었다.

녀석들도 최강두의 태도에 곧 질렸는지 서로 터치를 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놈들이 한사라가 최강두의 고아원 동생인 것을 알고 찾아가려 한 적이 있었다.

놈들은 최강두와 같이 지낸다는 여자를 해코지 하려고 찾아간 한사라가 엄청 예쁘고 부모도 없단 사실을 알자마자 계획을 바꿔 험한 짓을 하려고 했다.


‘이 개자식들이.’


최강두는 우연치 않게 그 정보를 접했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참지 않았다. 놈들을 찾아가 모두 두들겨 패 버리고는 놈들을 협박했다.


그 일 이후, 당연히 최강두는 폭력을 저지른 벌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일진 놈들도 그간의 행적이 파헤쳐져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됐는데.’


최강두는 어릴 때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놈들을 잔뜩 혼내준 것을 후회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 고작 그 정도로 감히 자신의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괴롭히려 한 것을 제대로 보복하지 못했단 후회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놈들의 약점을 잡아 두고두고 괴롭혀 줄 자신이 있었다.


“아냐.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들은 발생하지 않게 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이지? 믿는다. 오빠.”


한사라는 그 사실을 몰랐다. 단순히 최강두가 일진들의 행동이 싫어서 싸움을 벌린 줄로 알고 있다.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죄책감에 최강두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거다.


한사라의 얼굴은 화는 내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걱정이 듬뿍 담겨 있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온지라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항상 주위 사람을 먼저 챙기려고 하는 아이였다.


최강두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 귀여운 아이의 머리를 한껏 쓰다듬었다.


“오빠! 나 이제 어린아이 아니라니까. 나보다 한 살 많으면서 이런 건 어디서 배워 가지구.”


“꼬맹이야. 너는. 영원한 꼬맹이. 알겠어?”


한사라는 그 말에 약이 올랐는지 입이 앞으로 툭 튀어 나오며 항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도 그랬지만 40살의 영혼이 들어있는 최강두에게는 한사라는 정말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생에는 죽었지만, 이젠 아냐.’


최강두의 얼굴은 무거워진다.

그 분위기를 느꼈을까? 한사라도 덩달아 무거워지고 있다.


결국 혼자서 생각을 마친 최강두는 어느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어디가 오빠?”


“잠깐 산책 좀 다녀올게. 그러니까 먼저 들어가.”


“나도 같이 가줄까?”


“아니!”


크게 소리치는 최강두. 그 말투에서 단호함이 느껴진다. 한사라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냥 들어가 있어.”


“치, 알았어. 오빠.”


한사라의 눈에 지금까지 알던 오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 날카로운 기색을 부정하고 싶어 일부러 투정부리듯 말해본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사라는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


고아원은 한적한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물에 의해 파괴되기 전에도 꽤 한적한 곳이어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컴컴한 어둠 속, 최강두는 가만히 앉아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다.


“슬슬 시간인가.”


전생의 2월 15일.


달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다.

이 날은 고아원 식구들 모두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다.

바로 마물들의 습격이 있던 바로 그 날짜였다.


쌀쌀한 겨울 한파가 강하게 고아원을 강타하고 있는 지금이라서 그런지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고아원 사람들이 죽는 일은 없다 이젠.’


고아원 사람들은 당시 최강두에게 있어선 최고의 장소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세상은 각팍했다.

마물들에 의해 여러 나라가 망한 상황에서 고아들은 넘쳐나기 마련.

최강두는 지금보다 10년도 더 전에 부모님을 잃고 거리를 떠돌았다.


돌봐줄 사람?

친척도 없고 마물들 때문에 한창 난리난 세상에서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한창 거리를 맴돌며 구걸을 하고 있을 때 그림자가 앞을 가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헐렁한 옷차림에 양손에 아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 돌아보던 노인.

바로 원장 할아버지였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머리숱이 더 검고 힘도 좋아보였지만 단 한 가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그 이타심만은 여전했다.


“나와 함께 갈 테냐?”


“어디로요?”


“친구들이 있는 곳에.”


친구란 말에 혹한 최강두는 고개를 끄덕였따.


그렇게 따라서 온 장소가 바로 천국 고아원이다.

고아원을 운용하는 원장 할아버지는 자신이 젊을 때 모았던 돈으로 아이들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세상이 바뀐 만큼 인심도 각박해져갔다.

생색이다 뭐다 해도 감사하게 기부를 하던 기업들이 하나, 둘, 기부를 끊었다. 덕분에 천국고아원에 들어오는 후원금은 빠듯하기만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것과도 비교 못 할 따스함이 있었다.


“안녕 오빠.”


“반가워!”


아이들의 웃음.


“오늘 축구 한 판 할까?”


수많은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


“어이쿠. 거기는 올라가지 말거라!”


“죄송해요. 할아버지.”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까지.


행복.


고아원에 들어와 그 단어를 다시 떠올리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소중한 장소를, 행복한 장소를 망친 원흉이 오늘에서야 등장한다.


‘빌어먹을 마물의 문.’


일명, 포탈 또는 던전이라 불리는 출입문이다. 마물들은 이 곳을 통해 현세로 진입을 하게 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곧 생겨날 마물의 문을 통해 F급 마물들이 등장한다.

전생하기 전에 온전한 자신이었다면 손가락을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도 끝나는 수준의 마물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론, 그 마물들은 F급으로 일반 남성이라면 대항해 볼 만한 수준이었다.


아이들이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도망은 칠 수 있던 수준이었다.


“하필 이 늦은 시간이란 것이 문제였지.”


불행이라면 고아원에는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이미 늦은 밤이라 다들 잠에 들었을 시간이란 것이다.

아이들은 강제로 달콤한 꿈에서 깨자마자 마주친 마물들에게 크나큰 공포를 느끼며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그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최강두의 눈이 붉게 빛이 난다.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있던 최강두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검게 만들어지는 둥근 원. 그 안은 검은 연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주위로는 일렁이는 투명한 막이 포탈을 보호하고 있다.


“마물의 문. 오랜만이다.”


그 색은 흰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A급부터 시작해 까지 나타나는 마물의 문은 어두울수록 더욱 강력한 문이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마물의 문이란 뜻.


그 문을 증오스럽게 쳐다보며 최강두의 손이 재빨리 움직인다.


띠리리리.


-네. 마물의 문 관리소입니다.


“마물의 문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시죠?


“여기는..”


최강두는 서둘러 주소를 읊는다.


담담한 음성.


전화를 받는 직원은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물의 문을 제보할 때 덜덜 떨기 마련이다.

그러나 들리는 앳된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장난전화는 안 되는 거 알죠? 거기에는 지금 마물의 문 신호가 거의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허위 신고이면 고소 들어갑니다.


직원은 장난 전화가 아닌가 싶어 말을 한다. 직원의 말이 맞긴 하다.

마치, 자연상태에 방사능 물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마물의 문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세상 어디에서나 조금씩 측정된다.

그렇다고 강두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너무 담담했군.’


최강두도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물의 문이 나타났을 때 이토록 무덤덤하지 않다.


“장난 아닙니다. 바로 와 주시죠. 만약 여기에 마물의 문이 열렸고, 당신이 전화 받은 기록이 있는데 오지 않는다면 누구 책임일 거 같습니까?”


진지하기 그지없는 말.

직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저희 실시간으로 감시하는데 아무리 봐도 거기에는..


“F급으로 보입니다. 신호가 작아서 발견이 안된 건 아닐까 싶은데요.”


-휴. 알겠어요. 정말 거짓이 아니길 빌죠. 아니라면 관리소 측에서 소송이라도 할 것이니까요.


뚝.


최강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시점에서는 마물의 문이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당연히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 기술의 발전이 따르지 못해 아주 작은 마물의 문은 발견하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관리소 쪽에서도 무슨 말인지 알아먹었을 테니 인원을 보내줄 터였다.


물론, 미리 원장 할아버지나 아이들을 대피시켜놓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겠지만 과연 그것을 믿을까?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 관리소에 연락을 하고 마물들이 고아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며칠 사이의 시간은 그 준비를 모두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시간이었다.


쿠르륵.


‘놈들을 죽인다.’


포탈 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회귀한 후 처음 보는 마물.


작은 키에 단검을 든 고블린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고블린과는 다른 사실은 눈에 눈동자가 없이 흰색 그자체였으며 몸도 초록색이 아닌 검은색이다.

더구나 그놈들의 등이 꿈틀거리며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어서 무언가에 침식당했딴 것을 알 수 있다.


“덤벼라 이 새끼들아.”


최강두의 손에는 어느새 목검이 잡혀 있었다. 비록 내공을 사용할 수 없어 무인들만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꽤 높은 수준까지 무기술을 연마했다.

전생에서는 방어계열 초능력을 익혔기에 시너지는 상당했다. 다만 지금은 그 힘이 없는 것이 문제.

그렇다고 고작 이 따위 마물에 겁을 먹냐고?

최강두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 할 수 있다.


크룩?


고블린은 포탈에서 뛰쳐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최강두를 보며 물음표를 짓는다. 아무런 힘이 없어보이는 물체가 도망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최강두의 목검이 놈을 향해 내려쳐지고 있었기 때문.

다가오는 목검에 마물이 본능적으로 옆으로 점프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퍼걱!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고통에 울부짖는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무언가에 감염되어 버린 고블린은 아픔을 토해낼 만한 감정이 없었다.


크아악!


다만 분노란 감정은 남아 있었다. 갑자기 공격해온 인간을 향해 칼을 든 손을 뻗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손이 이미 목검에 부셔진 손이란 것이 고블린의 최후를 결정지었다. 최강두의 목검이 위로 곧게 뻗더니 마물을 향해 내려쳐졌다.


파삭!


통쾌한 소리와 함께 마물은 쓰러진다.


“후우. 대충 만들긴 했는데 썩 좋지는 않네.”


목검은 주위에 있던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지 한 번의 싸움으로 금이 가 있었다. 고블린의 머리가 생각보다 야들야들하지 않았다.


잠깐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하는 사이 적은 불어나 있었다.

대충 보아도 10마리는 되어 보이는 적들.

그놈들의 손에 들린 작은 단검들이 구름에서 벗어난 달빛에 반짝이고 있다.


‘지금 저 많은 수는 한꺼번에 이길 수 없다.’


최강두는 말을 하며 뒤로 풀쩍 뛰었다. 손에서는 이미 목검을 놓아버린 채였다.

냉정한 판단이다.

맞설 수는 있지만 괜한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데다 목검도 부실했다.

뒤도 안돌아보고 달리는 최강두를 마물들이 쫓아온다.


누군가 경험이 있으면 손쉽게 상대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지금 혹여나 저 작은 단검에 스치기만 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쪽으로 와라.’


최강두는 너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이게 최선의 방식이다.


크르륵


캬악


서로 대화하듯이 하며 다가오는 마물 고블린들.

놈들은 곧 흔적을 놓쳤는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최강두는 서둘러 미리 봐 둔 나무 뒤에 숨었다.


그들 중 하나가 최강두가 숨은 곳으로 오기 시작한다.


‘좀 더 가까이 와라.’


매서로운 눈으로 놈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그것을 밟았다.


파박!


고블린은 갑작스레 자신의 발을 누군가 잡는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최강두가 미리 준비해 둔 로프가 고블린의 발을 낚아 채 올린 것이다.

함정이 걸린 고블린들은 딱 최강두의 눈과 마주칠 정도의 높이, 이 놈들이 등장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딱 썰기 좋게끔 만들어 놓은 덕분이다.


최강두는 그놈의 목을 미리 준비한 식칼로 따 버렸다.

놈이 소리지르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 이미 목에서 피가 새어 나와 성대로 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2마리.”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최강두의 몸은 숲 사이를 가르기 시작한다. 지난 며칠간 추위에 고생하며 만들어둔 함정들이다.

강력한 초능력자가 되기 전, 혹시 몰라 익혀두었던 함정 설치 방법들이 지금에 와서야 빛을 발하고 있다.


“3마리.”


이번에는 물을 채워 놓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놈에게 다가간다. 꼬르륵 거리며 한 번 가라앉을 때마다 물을 왕창 삼키고 있다.


최강두는 놈의 머리를 발로 슬며시 눌러 버렸다.


파닥파닥.


놈의 팔이 강두의 발 이곳 저곳을 할퀴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눌러 버린다.


꼬르륵.


놈은 마지막 공기 방울을 올려 보낸 채 밑으로 가라앉았다.


크라락!

쿠루루!


여러 곳에서 함정에 걸렸는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당황과 고통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이곳저곳 위험이 있음을 알리는 꼴이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그 목소리가 하나같이 희열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최강두는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은 목을 그어주기만 하면 죽을 정도로 약하지만, 곧 등장할 ‘그 놈’ 만큼은 만만히 보면 안 된다.


“5마리.”


또 다른 고블린의 목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발이 고리에 걸린 채 위로 올라가 있던 녀석은 단검을 떨어뜨린 채 피가 나오는 목구멍을 잡아 누르지만 그게 될 리가 없다.


놈은 곧 차갑게 식어간다.


“6마리.”


“7마리.”


죽일수록 짙어져가는 피 냄새.

손에 들린 식칼이 이미 피에 절어 날이 뭉툭해 지고 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은 없다. 아직 대신할 건 많았다. 고블린들의 손에 들렸던 칼들을 이미 챙겨두었는지라 칼이 모자랄 일은 없었다.


“8마리.”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마리의 마물이 죽었다.


크라라라락!


그 때, 지금까지의 마물들의 날카로운 소리와 다른 중후한 음성이 숲 속을 울려 퍼진다.


‘놈이다!’


전생에는 고블린조차도 괴물로 느껴졌다.

다만, 고블린들도 저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몇몇 도망치던 아이들과 원장 할아버지들은 고블린이 아닌 놈에게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인원이라 해 봤자 최강두를 단 하나.

최강두는 살아 있단 사실에 항상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갔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지.’


최강두는 나무 위에 숨어 천천히 다가오는 놈을 쳐다본다.


고블린과 닮은 외모였지만 일반 고블린의 2.5배나 커 보이는 덩치는 2m는 돼 보였고, 무기도 단검이 아닌 도끼 두 자루를 각각 손에 들고 있었다.


‘전생의 그 놈이 맞아.’


저 놈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꼴사납게 도망치기만 했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몸이 떨려왔다.


‘아직 놈에게 힘 싸움으로는 안 되겠네.’


지난 며칠간 나름대로 근육을 단련했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는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놈은 눈을 이쪽저쪽 옮기면서 감히 자신들을 사냥하는 적을 찾고 있다.


최강두는 허리춤에서 잘 갈아놓은 단검 두 개를 꺼냈다. 저 놈을 상대하기 위해 직접 혼신을 다해 갈아둔 것이다.


몬스터가 등장하고 변한 게 또 하나 있다면 무기를 구하기 쉽다는 것. 이 정도 단검은 물론 무기를 일반인들도 집 안에 한 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많은 양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식칼을 먼저 쓴 것이다.


크라라락!


놈은 연신 찾았지만 능숙한 사냥꾼인 최강두를 발견할 리는 만무.

결국 참지 못한 놈이 검을 들더니 옆에서 허리 숙여 따르고 있던 마물 고블린 하나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크룩크룩.


놈이 콧바람으로 거친 숨을 뱉어내는 게 많이 흥분했단 것을 알 수가 있다.


크루룩.

크륵.


놈의 곁에는 아직 붙어 있던 2마리의 고블린이 두려움에 휩싸여 떨고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고블린이라 해 봤자 놈을 포함한 3마리뿐.


‘아직, 덮치면 안 돼.’


최강두는 참았다. 최고의 기회가 발견되기를. 놈은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최강두가 올라서 있던 나무 바로 밑까지 다가왔다.


‘지금 덮칠까?’


날카로운 단검을 들고 놈을 습격하기 위해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놈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습격한다.’


이제는 물러설 수가 없다. 놈과 그 옆에 있던 2마리의 고블린 마물로 등을 돌린다.


풀썩!


최강두는 그대로 밑으로 뛰어내린다. 양손에 하나씩 마물들이 들었던 그 단검을 들고는 커다란 마물을 향해 검을 찍었다.


다만, 놈의 감각이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마물은 자신의 감각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마물은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단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마물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것이 마물의 생과 사를 갈라놓은 판단이 되었다.


퍼석!

푹!


시원하게 뚫리는 감각.

그러나 그것은 ‘놈’이 아닌 다른 두 마리의 고블린들.


‘위험하다!’


최강두는 기껏 갈아두었던 단검에서 황급히 손을 놓고 뒤로 몸을 굴렀다.


서걱!


피가 사방으로 튀며 최강두의 몸을 검게 물들였다.


최강두의 피가 아니었다.

단검이 뚫렸던 고블린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다.

놈의 공격은 최강두 대신 고블린들을 썰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압도적인 힘에도 최강두는 겁을 먹지 않았다.

도리어 고양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죽을 뻔 했단 사실에 흥분한 마물,


마물에게 원한이 있는 최강두.


“그래. 한 판 붙자. 새꺄.”


최강두는 방금 전까지 고블린이 들고 있던 단검을 잡고는 강하게 쥐었다.


‘오늘을 더 이상 괴로운 과거가 아니게 만들겠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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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천국? 천국고아원? 20.05.12 290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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