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논문에 나온 대로 체조를 한 뒤 담을 따라 달렸다.
집 뒤에 있는 나무를 이용해 턱걸이와 거꾸로 매달려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도 같이했다.
매일 운동이 끝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정말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뛸 수 있고, 팔 운동을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었기에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운동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자 몸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때부터 연구 자료에 나온 대로 몸에 탄소 밀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상당량의 단백질이 필요했다.
냉장고에 보관된 고기를 해동해, 지방을 제거한 후 데쳐 먹고 있다.
문제는 저장된 고기가 급속도로 소비돼, 곧 바닥을 보일 거란 사실이다.
‘아무래도 고기를 더 주문해야겠어.’
조폭들이 근육량을 올리기 위해 닭가슴살과 달걀흰자를 먹으며 운동했던 것이 생각났다.
‘차라리 닭을 키울까?
그럼 매일 달걀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잖아?’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아버지의 후배뿐이다.
‘차라리 잘 됐어.’
이번 기회에 그 사람이 어느 쪽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닭 말고도 몇 가지 물건이 더 필요했다.
한참을 숙고 끝에 필요한 물건을 정하고 아버지가 알려 준 후배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필요한 것만 말해.
대화가 단도직입적이다.
“닭 300마리와 몸에 착용할 납과 주머니가 필요해요.”
“내일 오전에 도착할 거다.”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내가 아무리 숙고해 봐야 답은 알 수 없다.
‘내일 돼보면 알겠지.’
물건이 올지, 조폭이 올지.
* * *
다음날.
부릉부릉.
‘도착했나?’
집으로 뛰어와 2층으로 올라왔다.
그때 벨이 울렸다.
“주문하신 닭을 가지고 왔습니다.”
창문 옆에 놓인 망원경으로 정문을 바라보며 최대한 어른스럽게 말했다.
“문에서 닭을 풀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버튼을 눌러 대문에 달린 쪽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쪽문으로 들어와 닭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런 후 쪽문 옆에 뭔가 쌓았다.
‘저게 뭐지? 내가 주문한 건 아닌데?’
마지막으로 몇 개의 상자를 두고 가버렸다.
쪽문을 닫고 바로 뛰어가 쌓아둔 자루를 확인했다.
‘닭 사료네?’
300포대가 넘는 닭 사료가 쪽문 옆에 쌓여 있다.
‘사료까진 생각지 못했는데···.’
상자에는 납을 넣을 수 있는 조끼와 반바지, 허리띠와 조임 끈, 손목과 발목용 밴드 등이 여러 벌 들어 있다.
‘모두 성인 크기의 옷이네?’
조끼는 어깨 2개, 앞에 6개, 양옆 4개, 뒤에 6개, 반바지는 허벅지에 각 8개, 허리띠도 10개의 주머니가 있어 무게 조절이 가능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임 끈이 있어 밀착이 쉬웠다.
손목과 발목용 밴드도 납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100kg짜리 납 상자가 3개.
뚜껑을 열어보니 1kg, 2kg, 3kg짜리 무게 추로 들어 있다.
‘이것을 주머니에 넣어 무게를 조절하는 건가 보네?’
바로 주머니 안에 납을 채워가며 무게와 균형을 조절했다.
납을 채울 때는 몰랐는데 막상 뛰려고 하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참고 버텨야 해. 이것도 곧 익숙해질 거야.’
그날 저녁.
익숙하지 않은 무게로 체력이 고갈돼 정신을 놓기 직전, 집에 들어왔다.
전화 녹음기에 빨간불이 깜빡이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했다는 뜻.
‘누구지?’
재생을 누르자 아버지 후배다.
바로 전화했다.
-물건은 도착했나?
“네.”
-도착한 물건이 뭐지?
“닭이랑 사료, 주머니가 있는 조끼와 반바지 10벌, 조임 끈 100개, 손목과 발목용 밴드 10개, 주머니에 들어갈 납 300kg입니다.”
-잘 도착했군.
토종닭과 오골계를 섞어 보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잘 숨어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전에 본인 말만 하곤 전화를 또 끊는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친해질 생각이 없는 것.
학교에서도 그랬고, MO 제약에서도 그랬다.
‘그럼에도 날 도와준다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확고하단 뜻이겠지?’
그러니 아버지가 언급했겠지만.
다른 조직원의 눈을 피해 날 도와주고 있다면 그도 목숨을 걸었을 거다.
그러니 이 도움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최대한 부탁은 자제하는 게 좋겠어.’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한 아버지는 지금껏 어려운 일을 당한 조폭들을 본인 일처럼 도왔던 것 같다.
아버지의 선견지명.
역시 인맥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있다.
‘잡생각은 접어두고 운동이나 다시 하자.’
* * *
얼마간은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정말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움직일 때마다 납이 들어 있는 부분이 쓸려 굳은살이 생기고 피부도 벗겨졌다.
한 달이 지나고 무게 추를 2배로 늘렸다.
단지, 근육을 크게 만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큰 근육을 잘게 쪼개 작은 근육으로 만들어, 근육 밀도를 극한으로 높여야 한다.
그럼 신경 조직이 늘어나 근육에 엉키면서 강한 생체 전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느 순간, 조끼와 바지에 납을 모두 채우고 담을 따라 뛰는데도 체력이 남아돈다.
이때부터 산을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 뒤가 산이고 특별히 유명한 산도 아니라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이 상황에 적응해 갔다.
닭을 잡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폭들의 신입식.
막내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바로 앞에서 선임 중 하나가 닭의 목을 자르고, 닭의 가슴을 발로 눌러 피를 빼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 후 막내들에게 닭을 잡게 했다.
대부분은 티가 나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하면서 닭을 잡지만, 간혹 닭을 잡지 못하는 놈들이 나온다.
그러면 삼촌들이 나를 불러 닭을 잡게 했다.
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다.
삼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해서 우쭐한 마음에 닭을 잡았었다.
내가 그렇게 닭을 잡으면 8살짜리 아이보다 못한 놈이라고 구박하면서 다시 닭을 잡게 했다.
아버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제지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문제가 생길 테니까.
그때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여덟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 몸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어깨가 벌어지고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역삼각형 모양이 됐다.
체력도 어마 무시하게 강해졌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운동만 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내 몸에서 나던 악취도 사라졌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키가 컸다는 거다.
키가 큰 게 뭐가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난 13살이다.
학교에서도 168cm까지 큰 녀석은 본 적이 없다.
변화가 제일 많은 시기인 건 맞다.
그렇다고 11개월 만에 23cm가 크다니.
확실히 정상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가 왜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준 약 말곤 딱히 이유가 없어.’
2번째 주사를 맞을 때부터 몸에 변화가 생겼고, 3번째 주사를 맞을 때는 기억력과 집중력, 인지력, 판단력, 사고력 등이 대폭 향상됐다.
겨우 3번 만에 이런 변화를 겪었는데, 남은 5병을 모두 투약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할 정도다.
곧 있으면 4번째 주사를 맞아야 하니, 그때 변화를 확인해 볼 생각이다.
‘그럼 확실히 약의 효과인지 알겠지.’
잠잘 시간은 명상으로 대처했다.
명상만으로도 피곤함이 사라지니 오히려 잠을 자는 것보다 더 개운하다.
물론 한동안은, 육체적인 피곤함과 고통으로 명상을 하는 동안 쓰러져 잠을 잤다.
그러나 지금은 체력이 강해져서 지쳐 쓰러지진 않는다.
또한, 이 단계를 절대 건널 뛸 수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제일 기초적인 훈련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극소량의 전하를 몸에 모으는 거다.
단점은 ···.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내 눈이 콘센트 쪽으로 이동했다.
‘저 콘센트 속에 엄청난 전하가 있는데 굳이 이런 무식한 방법을 써야 할까?
저걸 직접 몸에 쏟아부어도 되잖아?
그럼 좀 더 빨리 전하를 모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하루 전이다.
‘그냥 미친 척하고 전기를 내 몸에 직접 흘려 볼까?’
이런 생각으로 또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 * *
2층 창에서 대문 쪽 길을 보고 있다.
‘오늘도 역시 아빠는 오지 않네.
무사히 잘 살아 계실까?’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이다.
500마리가 넘는 토종닭과 오골계, 병아리가 먹이 활동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완전히 야생 닭이 됐는지 나무나 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놈들도 여럿 보인다.
닭들이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땅을 파헤쳐, 작년과 다르게 마당에 풀이 거의 없다.
매일 100개가 넘는 달걀과 한 마리 이상의 닭을 먹고 있는데도, 닭이 늘어나는 속도가 오히려 더 빨랐다.
그만큼 내가 걷어 들이지 못한 달걀이 많다는 뜻이다.
덕분에 단백질 공급에는 차질이 없다.
한 번 더 정문을 보고 실험실로 이동했다.
‘이 정도면 몸은 충분히 단련했어.
전기를 몸에 주입해도 버틸 거야.’
준비한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았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피복을 벗긴 구리 선 중 하나를 왼손으로 잡았다.
손에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한 것 치곤 너무 싱겁네?’
엄청난 반응은 아니더라도 뭔가 느껴지는 건 있을 줄 알았다.
나머지 구리 선을 오른손으로 살짝 만져봤다.
역시 몸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이 상태로 단전 호흡을 해야 하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전자보단 많은 양이 몸으로 들어올 테니 효과는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선 단전 호흡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역시 아무 변화도 없다.
몸도 그대로인 것 같고.
‘이것도 육체 단련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논문에도 연구 기간이 평생이라고 쓰여있긴 했다.
‘하긴 단기간에 되는 게 뭐가 있겠어.’
그렇다면 먼저 해결할 게 있다.
‘장치를 만들어야겠어.’
전기선을 잡고 명상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손에서 떨어질까 봐 집중도 힘들다.
창고에서 절연 테이프를 가져와 바닥에 3중으로 붙였다.
그 위에 얇은 철판 두 개를 깔고 전열 테이프로 고정한 뒤 전기선을 납땜했다.
꼭 재래식 화장실에서나 볼 법한 그런 모양이다.
‘성능만 좋으면 되지 뭐.’
실험 삼아 앉자 보니 편안하다.
* * *
다시 한 달이 지났다.
‘벌써 5번째 주사를 맞는 날이네.
남은 약을 굳이 1년이나 기다려가며 나눠 맞을 필요가 있을까?’
2번째 주사를 맞을 때부터 기억력이 증가되 몸의 변화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내 몸의 변화는 아버지가 주신 약의 효능이 확실해.’
이미 몸으로 검증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1년 치 약을 모두 투약했다.
10분 뒤.
꽝. 꽝. 꽝.
해머 같은 것으로 머리를 맞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고통스럽다.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욕심이 너무 과했나?’
나눠 맞으라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다.
단지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
‘내 결정이 섣불렀던 것 같아.’
언제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내 몸은 점점 뜨거워져 갔다.
속은 타들어 가고 입도 바짝 말랐다.
‘버텨야 해.
난 살아남을 수 있어.’
온몸에서 수분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선 물부터 마시자.’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는다.
물 마시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의 복수도 못 하고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가부좌하고 명상에 집중했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3일이나 지났다.
‘살았네.’
3일 전을 생각하자 몸서리쳐진다.
‘끔찍했어.’
가부좌 상태에서 일어나려다 보니 전기 판 위다.
‘죽을 것 같으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가부좌했네.’
역시 습관이 정말 무섭다.
방 안에 있던 물을 한 사발 들이켰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여기까지 오지 못 하다니.’
정신을 잃은 사이 똥이라도 싼 걸까?
방안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우선 밖으로 나가자.’
그 자리에 도저히 있을 수 없어 창문을 열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크게 숨을 쉬었다.
상쾌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더 좋다.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봤다
‘3일 동안 운동을 못 해, 부풀었던 근육이 죽은 것 말곤 특별히 문제없는 것 같네.’
가볍게 달리기도 해보았다.
‘체력도 그대로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약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다.
약을 맞을 때마다 몸의 변화를 확실히 느꼈기에 아버지가 연구에 성공해서 만든 약이라 확신했다.
한데, 아니었나 보다.
‘그럼 나한테 뭘 준 거지?
단지 성장제나 면역제 같은 건가?’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내 상상력이 너무 풍부했던 것 같다.
‘그래. 세상에 무림 고수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지금까지 생각한 모든 계획을 바꿔야 한다.
현실적으로.
꼬르륵.
‘밥부터 먹자.’
창고로 가,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입에 집어넣었다.
얼마나 먹었을까?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닭이나 한 마리 잡아먹으면서 앞으로 어떡할지 생각하기로 했다.
Comment '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