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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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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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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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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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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당신을 위한 AI (2)

DUMMY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떠 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뇌를 불태우는 듯한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허억··· 허억···.”


 끔찍한 고통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아니, 실제로는 더 짧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에 길게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얼마나··· 흘렀지.”


 [ 추정하기에 38분 50초 정도 흘렀습니다. ]


 “···그 정도면 추정은 안 붙여도 되는 거 아닌가?”


 [ 제가 부팅하기 전부터 고통을 겪고 있으셨을 가능성을 감안했습니다. ]


 섬세하며 또 싸가지 없는 듯한 목소리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간 상으론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인가.


 숨을 천천히 가다듬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절여져 있었고, 안내자는 이미 이야기를 끝내고 사라졌는지 바닥에는 포션과 유용한 물건 몇 개, 그리고 몽둥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차피 안내자가 말할 내용 정도는 머릿속에 다 들어있었으니 상관없었다.

 지금 확인해야 하는 더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알티, 진짜 너야? 내가 환청을 듣는 건 아니지?”


 [ 현재 사용자의 신체에 대한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

 [ 제 존재가 환청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단 없음. ]

 [ 만일 스스로 혼란 증세를 겪고 계신 것 같다면, 땅콩버터와 젤리 샌드위치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이딴 농담을 던지는 환청이 있을 리 없지.”


 이미 크게 한번 틀린 직감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확신이 들었다.

 특수 성격 모듈도 설치한 적 없는 주제에, 조언이랍시고 실없는 농담이나 날려대는 녀석이 또 있을 리가 없었다.

 가상현실 세계 속에서 있던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있었던 동반자.

알티가 정말 돌아온 것이다.


 여전히 고통의 잔재가 남아있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꺼진 모닥불 옆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 몸을 앉혔다.

 본래 쉬지 않고 곧바로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알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곧바로 이사수씨에게서 받은 파이어 스타터를 긁어대며 불씨를 만들었다.

 쓸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쓰게 될 줄이야.

 피어오른 불을 바라보며 불멍을 때리다 보니 천천히 고통이 가셨다.


 “어떻게 네가 살아···아니,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칩이 없잖아.”


 [ 도혁 님께서 리듬을 타고 있던 사이, 자가 진단을 실시했습니다. ]

 [ 제가 손상되지 않고 기능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됩니다. ]

 [ 분석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

 [ 현재로서는 이 상태를 유지하며 작동이 가능합니다. ]

 [ 다만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는 기능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


 지금 아파서 몸부림치던 걸 리듬 탄다고 했냐? 이 자식이 진짜.


 칩만 있었다면 한 대 치고 싶은 소리였다.

 어쨌든, 어떻게 자기가 기능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퍼스널 AI를 설치할 때 받는 시술을 떠올려보면, 뇌 속에도 접속 임플란트를 설치하니 그게 남아있긴 할 거다.

 하지만 그건 뇌에 연결을 쉽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마우스와 키보드만 있고 본체가 없는데, 모니터를 켜보니 정상 작동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데이터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이 세상 안에서 뭐가 전해지고 있다는 거야?”


 [ 모든 데이터 패킷에 주소값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통신은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 전통적인 데이터 라우팅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신경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적··· ]


 어려운 이야기까지 들어가면 어차피 무슨 얘긴지 모른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말을 끊었다.


 “복잡한 얘기는 됐어. 어쨌든 네가 내 머릿속에 있다는 건 확실한 거지?”


 [ 그렇습니다. ]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 게임 ‘레닉수스’에 접속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

 [ 다만 정확한 상황 분석은 불가능합니다. ]

 [ 로그를 시간순으로 정렬했을 때, 약 25시간 정도 비어있는 시간을 발견했습니다. ]


 알티는 내 감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어, 과거의 기억도 기록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내가 현대로 돌아온 뒤 부터,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까지의 일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게이트를 넘어온 게 알티의 부활과 연관이 있을 터.


 지금은 일단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지 말로 설명해 주어야 했다.


 “오케이, 대충 설명해 줄게.”


 나는 곧바로 알티에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갑자기 내가 본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게이트가 생겨나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과 그 세상 속이 다름 아닌 게임 ‘레닉수스’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세계였다는 것까지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내 정신상태부터 의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알티는 아니었다.

 알티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쉽게 분간이 가능하다.

심박수나 긴장 상태를 읽어들일 수 있으니까.


 [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 땅콩버터와 젤리 샌드··· ]


 “아니라고!”


 [ 농담입니다. ]


 이 자식 이거, 분명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그런 거다.


 “···알티, 혹시 내 상태창을 띄워볼 수 있나?”


 본래 기능이 대다수 제한되어있다는 말을 했으니, 가장 중요한 기능부터 동작하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게이트 너머 세상에 들어가게 된 개척자들은 게임처럼 능력치가 생겨난다.

 여기서 레닉수스와 이 세상의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 직접 창을 띄우지 못한다는 것.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마을에는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이 있으며 저렴한 아티팩트등을 통해 모험중에도 스스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추가 능력치를 투자하는 것도 그런 기구들을 통해 가능했고.


 본래 이 세상을 게임으로 즐겼던 나에게는 꽤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만약 알티가 이 세상의 시스템을 읽어 들여 표시할 수 있다면, 게임과 다름없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게 가능했다.


 [ 상태창 접근 불가. ]


 “···.”


 이것도 안 된다고.

 내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자, 곧바로 눈앞에 텅 빈 반투명 창이 떠 올랐다.

 내용이 없는 창에 의문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알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상태창 열람 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현재 도혁 님의 신체에 상태창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

 [ 조금 전 보였던 ‘안내자’의 존재로 유추하건대, 이곳은 ‘헤메이는 숲’으로 추정됩니다. ]

 [ 플레이어는 ‘신예의 둥지’ 도시에 입성한 뒤, 상태 창을 부여받게 됩니다. ]


 “잠깐만, 원래 바로 띄울 수 있지 않았어?”


 새 캐릭터를 만들 때마다 잘 생성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늘 이 모닥불 앞에서 상태 창을 확인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한두 번도 아니니, 틀릴 리가 없을 텐데.


 [ 도혁님은 항상 점핑 캐릭터를 생성하고 이 숲을 통과하셨습니다. ]

 [ 점핑 캐릭터는 편의상 처음부터 시스템을 부여받은 상태입니다. ]

 [ 이는 ‘레닉수스’ 첫 접속 당시 사용자 가이드에 적혀있던 내용입니다. ]


 그제야 이해가 갔다. 난 점핑 캐릭터만 생성해 봤기에 모르는 게 당연하였다.

 솔직히 가이드를 다 읽고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심지어 몇 년이나 지난 일이기도 하고.


 묘하게 알티의 목소리가 ‘이걸 까먹으면 어떡하냐’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착각이 분명했다.


 “으흠.”


 그래도 알티가 게임과 동일하게 눈앞에 시스템 창을 띄워줄 수 있다고 했으니 분명 수확은 있었다.


 나는 헛기침하곤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앞으로의 나의 삶이 평탄대로로 변할지 아닐지는, 이 질문의 대답에 달려있었다.


 “내 채널에 접속할 수 있어? 백업 서버 같은 곳이라도.”


미래에서 운영하던 나의 영상 채널.


 거기에는 영상 기록물을 포함해, 네트워크 곳곳에 있던 레닉수스에 대한 정보란 정보는 모두 끌어모은, 지금 내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보물섬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낮은 레벨구간의 공략집 또한 모두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알티가 그곳에 접속이 가능하다면, 앞으로의 모험은 그저 편안히 누운 채로 떡을 먹는 것이나 다름 없을텐데.


 [ 불가능합니다. ]


 하지만 그 기대도 무심하게, 알티가 전해온 말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쿠키 기록 같은 것도 안 남아있어? 알티 네가 기억하고 있다던가.”


 [ 대부분의 저장 데이터가 말소되어 있습니다. ]


 “···네트워크가 달라서 그렇지?”


 [ 그렇습니다.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확답을 들으니 기운이 좀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미래 세상에서 내 귀 뒤에 설치되어있던 AI 칩은 손바닥의 절반 정도 되는 넓이에 굉장히 얇은 형태였다.

 아무리 발전한 세상이라고 해도 그 정도 부피에 엄청난 기록 용량을 다 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세상 어디서든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 그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정체불명의 데이터 통신이란 말은 곧, 그 당시의 네트워크가 아니라는 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레닉수스에 대한 데이터가 얼마나 날아갔지?”


 [ 대화 기록을 제외한 대다수의 데이터가 모두 소멸한 상태입니다. ]

 [ 현재 도혁 님과 나누었던 대화 기록을 중요 데이터로 분류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내가 올렸던 영상 기록이나, 아니면 내가 레벨 낮을 때 도움받았던 공략 정보 같은 건 전부 없다는 거고.”


 [ 그렇습니다. 영상 데이터 및 다운로드했던 공략집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 과거의 대화 기록을 분석하여 어느 정도 레닉수스의 정보를 유추해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

 [ 현재 데이터를 분석하여 정리 중입니다. ]


 나와 했던 대화 속에 남아있던 데이터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복원하는 중이라는 알티.

 그 말은 결국 알티에게 남은 정보는 대부분 점핑캐릭터의 생성 레벨인 150레벨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조금 전 상태창에 대한 정보 또한, 나는 기억 못 하고 있지만 먼 옛날 한번 알티와 대화했던 기록이 있어 알려준 것이겠지.

 약간 씁쓸했지만, 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걸로도 충분하고 남지.’


 아쉬운 듯 말하긴 했으나, 따지고 보면 절대 아니었다.


 나와 알티가 나눈 대화 기록이 그대로 저장되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분에 넘칠 정도의 행운이었다.

 정보가 조금 불완전할 순 있어도, 최소한 내가 한 번이라도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알티와 함께 교차검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티 없이 내 기억만을 의존해서 모험해야만 했는데, 이게 해결된 상황 아닌가.

 우연히 길에서 주운 복권이 1등이 아니라 2등이었을 뿐인 그런 이야기다.


 '여기서 더 바라는건 과욕이야.'


 무엇보다도, 내가 완벽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해야 했다.


 그렇게 속으로 납득하고 또 이런 행운에 감사하느라 이어지던 침묵을 알티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던 걸까.


 [ 만족스러운 기능을 내지 못해 실망하셨습니까? ]


 “어?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하려던 순간, 머리 뒷부분이 따끔하고 살짝 달아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 전 격통을 느꼈던 자리와 완전히 동일한 위치였기에 등골이 순간 오싹했다.


 [ 동기화 완료. ]


 하지만 격통은 없었고, 심장을 약간 조이는 것 같은 감각과 동시에 눈앞에 무언가 떠 올랐다.


 화악.


 그것은 조그마한 빛.

 내가 바라보는 부분을 조금 더 밝게 비춰주는 듯한, 마력이 느껴지는 따스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법을 배운다면 가장 처음 습득하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라이트?”


 마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더라도, 마력 제어에 대한 재능만 있다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

 정황상 알티가 그것을 만들어낸 게 분명했다.

 나는 순간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 이곳은 가상 세계가 아닙니다. 도혁 님의 신경과 감각을 제가 보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 또한 숲에 결계가 쳐져 있으며 신체 내부에 극히 미세한 마력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게임 레닉수스 세상을 구성하던 법칙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

 [ 따라서 그 마력을 제가 움직일 수 있으리라 판단. ]


 “이··· 이···.”


[ 과거의 대화 기록에서 기초 마력 운용법에 대한 언급을 복구했고. ]

 [ 자율적으로 시행해본 결과, 성공입니다. ]


 “이 복덩이 녀석!”


 알티를 이 자리에서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2등 복권은 무슨, 1등이다. 1등!


 한국 복권 말고, 최소한 미국 같은 데서 파는 복권 수준으로 말이다!



**



 전혀, 일말의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디 가상현실 게임은 사용자의 재미를 위해 게임 자체 허용한 보조기능이 아니라면, AI가 플레이어의 정신을 보조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 불가능이 아니라 ‘금지’라는 말이다.

 홀로 즐기는 싱글 게임에서는 그런 보조기능 제한을 해제한 불법 공유본이 암시장에 돌아다니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레닉수스는 온라인 게임이라 당연히 그런 건 없었다.


 물론 게임 내에 존재하는 능력치를 올리면 거기에 맞는 감각 조정이 있긴 했다.

 ‘민첩’ 스탯을 올리면 움직임이 빨라지는 동시에 반사신경도 가속하고, ‘지능’ 스탯을 올리면 마력 제어 능력이 올라가며 실제 암산 속도도 몰래 AI가 도와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감각기관의 처리능력 향상 수준이 아니라, 스펠 캐스팅을 대신 해주는 게 가능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마법 보조가 된다는 건, 신체 보조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말이지?”


 [ 현재 도혁님의 몸은 가상의 몸이 아닌 실재하는 신체입니다. ]

 [ 몸에 걸리는 부하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


 “응. 그거면 됐어.”


 조금 전 라이트를 사용할 때도 내 머리와 심장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그 정도의 리스크쯤이야 그 활용성에 비하면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았다.


 “근데 그거 원래 규제 위반 아닌가?”


 생각해 보니 가상 세계도 아니고, 현실 속 몸을 AI가 제어하는 것은 원래 여러 규제를 통해 금지되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총기나 도검을 관리하는 것처럼, 국가기관의 엄격한 관리하에만 할 수 있는 기능이었던 것 같은데.


 [ 규제할 당국이 생기려면 몇 세기는 지나야 할 겁니다. 제재할 테면 해보라지요. ]


 뿌듯한 목소리의 알티에 오히려 순간 나는 당황하여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당연히 그렇긴 한데. AI인 네가 그걸 말한다는 게, 아니, 아니다.”


 프로그래밍 상으로 뭐가 막혀있지는 않냐고 물어보려 했던 건데, 왠지 더 물어보면 바보 취급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걸 잘 아는 것도 아니니까.


 하여튼 AI 같지 않은 녀석이다.


 스윽. 꾸욱.


 그래서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냐면, 안내자가 놓고 간 물건들을 모두 가방에 챙긴 뒤 몽둥이의 반대편에 챙겨왔던 삽자루를 끼우던 중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늦어지긴 했지만, 원래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었다.


 [ 수분 공급 지역까진 이동하지 않으십니까? ]


 “이거부터 해야지.”


 튜토리얼 구간이다 보니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물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냇물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시작 지점으로 돌아올 상황을 대비해 그곳에 캠프를 설치하는 것이 초보 개척자들의 행동 지침과도 같았다.

 숲에서 탈출하는 데에는 정말 빨라도 하루, 느리면 몇 주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캠프 설치는 필수였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서 삽이나 만들고, 튼튼한지 이래저래 확인해 보고 있다니.

 다른 개척자가 본다면 빨리 캠프부터 안 차리고 뭐 하냐고 묻겠지.


 곧 나는 가방에서 연금 주머니와 함께 검은색의 이끼를 꺼냈다.

 안내자가 연습용으로 나눠주는 약초 중 다른 것은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유용하다.


 근처의 돌로 이끼를 껍질째 짓누르듯 갈아버린 뒤, 손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삽의 날 부분에 잘 펴 발랐다.

 그다음 삽 머리를 위로한 채 바닥에 쿵 하고 내리찍자, 갈린 이끼들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세워졌다.


 [ 그걸 시도해 보시려는 거군요. ]


 “응. 뭐 하려는지 알겠지?”


역시 알티는 내가 뭘 할지 곧바로 눈치챈 듯했다.

 당연히 이 이끼와 삽은 의도가 있어서 만든 것이다.

 지금의 이 세상이라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의도 말이다.


 앞으로 시도해 볼 일에 대한 기대감에 나는 씨익 하고 웃었다.


 “날아가야지, 하늘 위로.”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 삽으로 머리 위의 하늘을 향해 날아갈 수 있으니까.

 그것도 버그를 써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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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뜻 밖의 행운 (1) +2 24.09.11 978 38 18쪽
24 경계를 넘는 자 (4) +1 24.09.10 1,032 40 18쪽
23 경계를 넘는 자 (3) 24.09.09 1,045 36 20쪽
22 경계를 넘는 자 (2) 24.09.08 1,150 42 19쪽
21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5 44 19쪽
20 진짜 재능이란 (5) 24.09.06 1,256 43 18쪽
19 진짜 재능이란 (4) +2 24.09.05 1,277 42 19쪽
18 진짜 재능이란 (3) +1 24.09.04 1,286 43 20쪽
17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7 44 20쪽
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9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2 3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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