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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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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최근연재일 :
2024.09.17 15: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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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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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08

작성
24.09.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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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20쪽

경계를 넘는 자 (3)

DUMMY




 “···사과하마. 파티원의 돌발 행동은 파티장인 내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고개를 숙이는 서태후, 아니 서태오.


 대련 때도 한번 느꼈지만, 게이트에서의 인상과는 다르게 이 녀석은 자존심만큼이나 자존감도 높은 녀석이다.

 조금만 다혈질이었다면 ‘감히 내 파티원을!’ 하면서 검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어느새 파티의 성직자가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마력 역류를 순식간에 원래대로 고쳐놨으니, 분명 금방 일어나겠지.


 “하나만 물어보고 싶다.”


 “말해봐.”


 “혹시 최민서···. 우리 마법사가 선공을 가했기에 그런 제안을 한 건가?”


 “그런 제안?”


 “짐꾼 말이다.”


 아하.

 그러니까 저 마법사가 내게 한 행동 때문에, 복수삼아 짐꾼이라는 제안을 꺼낸 거냐고?


 “아니, 그거랑 상관없이 진심이었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내가 바라는 제일 중요한 가치는 신뢰지만 전투적으로 재능이 넘치는 짐꾼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아예 못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최소한 저 서태오만큼은 검을 맞댈 때 이미 느꼈으니까.

 나에 대한 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강제적인 수단도 존재한다.


 “그런가···.”


 깊은 한숨을 내쉰 서태오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짐꾼 제안이라면 이쪽에서 거절하도록 하지.”


 “아쉽네.”


 “아쉬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날, 네가 보여준······. 아니, 아니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을 멈추는 모습.

 아니, 이 자식이?


 [ 사람을 열받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그래, 말을 하다 마는 것.

 무어라 말이라도 꺼내려던 순간, 녀석은 다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다른 이야기다만. 최근 도시 주민들의 분위기가 좀 흉흉해진 것을 알고 있나?”


 “절도 사건 이야기라면 조금은 들었어.”


 “절도 살인 사건이다.”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내가 들었을 당시에는 절도에서 끝난 채였는데.

 이제는 이 섬의 주민을 살해하기까지 했다니.

 상황이 꽤 심각해진 듯하다.


 “이래저래 주민들이 개척자들을 대하는 분위기도 좀 안 좋아지고 있어서, 우리들도 남는 시간에 좀 조사를 해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너도 잘 모르나 보군.”


 “···그래. 혹시 아는 정보가 있어? 내가 아는 건 아티팩트같은걸로 사람을 재웠다는 게 전부인데.”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서태오.


 “그걸 어떻···. 아니, 안타깝게도 우리도 아는 건 그게 전부다.”


 “그럼 됐고. 또 다른 용건이 있나?”


 “아니.”


 어느새 파티의 마법사인 최민서가 의식을 차렸고, 그녀는 눈앞의 성도혁을 보자마자 히익 하며 뒷걸음질 쳤다.


 “우리 마법사가 멋대로 공격하려 한 건 다시 사과하지. 돌아가면 따끔하게 주의를 주겠다.”


 “그게 설마 끝은 아니겠지?”


 야밤에 먼저 공격을 시도해 놓고, 그냥 주의로 끝내시겠다?

 팔짱을 끼고 불만스럽게 쳐다보자, 서태오는 시선을 살짝 내리깔곤 고민을 이어가다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태백 그룹에 대해 들어봤겠지.”


 “모르진 않지.”


 “우린 태백 그룹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파티다. 당연히 수뇌부와 깊게 라인이 이어져 있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미래로 끌려가기 전에도 태백 그룹이라는 거대 재벌이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서태오는 내게 검지 하나를 곧게 들어올려 보였다.


 “필요할 때 한번. 태백의 힘을 네 손에 쥐여주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뭐든지. 그걸로 이번 일은 지나가 줄 수 없겠나?”


 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외에 다른 보상이야 뭐 썩 만족스러운 게 없을 거다.

 장비 같은 건 당연히 줄 리가 없고, 크레딧을 받자니 내가 수석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리 많지도 않을 거고.

 딱히 필요한 것도 없으니, 재벌가의 힘을 한번 빌릴 수 있다는 약조가 서로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보상이었다.


 [ 보증이나 서약 같은 것을 받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


 ‘약속을 어길 녀석은 아냐.’


 굳이 서약까지 받지 않아도 녀석은 분명 약조를 이행하려 할 것이다.


 정말로 만에 하나 모른 척을 한다면.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때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또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무래도 내가 미래 시대에 있던 초국가적 거대 재벌들을 보며 살아왔던 탓일까.

 재벌이라는 말을 들으니, 지금은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하다.


 말없이 빨리 돌아가라는 듯 손을 휘젓자, 그의 파티원들은 최민서를 부축한 채로 물러났고.


 꾸벅.


 “고맙다.”


 “리더의 머리가 그렇게 가벼우면 쓰나.”


 필요할 때만 숙여야지, 너무 자주 숙이면 그건 그것대로 위엄이 좀 떨어져 보일 수 있다.


 “아니, 이건···. 사과가 아니라 감사의 의미다. 그날 대련 덕분에 내 검에 대해 많은 걸 다시 보게 되었으니까.”


 소중한 가르침을 주어 고맙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 말을 남기고는, 서태오 또한 파티원들과 함께 이곳을 떠났다.


 긁적.


 “진짜로 배워갔을 줄은 몰랐네.”


 첫 대련 2합.

 재도전 후 3합을 얻어맞기만 한 주제에 솔직히 뭘 배워갔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다만.

 아무래도 정말 재능이 넘치는 녀석이긴 했나 보다.


 감사받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



 바로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최종 시험을 보기 위해 유적 안으로 들어섰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서둘러 도전하는 게 좋아보였으니까.


 쿵.


 “읏차.”


 골렘류의 몬스터는 유적 후반부에 나오기 시작하는 적.

 초보 개척자들에겐 비유적으로도, 말 그대로의 의미로도 ‘벽’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곳은 결국 튜토리얼 섬의 던전.

 등에 있는 붉은 보석을 단검으로 정확하게 찌른 순간, 골렘은 펑 하고 터져나갔다.


 “이거 확실히 좋네.”


 나는 손 위로 검을 몇 번 휙 돌려보았다.

 분류는 숏소드였지만, 크기나 날의 길이는 거의 단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짧았다.


 [ 늑대의 잔영 ]

─────

등급 : C

분류 : 숏소드

재질 : 연금술로 제작된 은제 합금


아무 특색 없는 평범한 무기였으나, 오랜 세월의 흔적과 빅터 헤일의 경험이 깃들어 스스로 잠재력을 개방한 숏소드.


특성

 -무형의 견고함 : 이 무기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무뎌지거나 부식되지 않습니다. 파괴되지 않는 이상 내구도가 고정됩니다.

 -음영의 이끌림 :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무기의 그림자가 조금 더 길게 뻗어 나갑니다. 사거리 + 10%


─────


 이 검은 빅터 교관으로부터 강탈···아니, 선물 받은 것이다.

 그동안 단련을 하느라 까먹고 있던 것을 알티가 알려주었다.


 날카로움이나 파괴력을 올려주는 옵션은 없지만, 내구도와 사거리 증가라는 옵션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 내구도가 고정되는 무기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잡몹을 모아서 한 번에 잡는 행위, 몰이사냥을 하기 위해선 내구도 고정 무기가 필수였으니까.


 특성 성장으로 인한 능력치 상승까지 더하면 내 레벨은 이미 14.

 평균 레벨 4의 개척자들이 도전하는 유적 따위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딸깍.


 “이거군.”


 마지막 골렘을 쓰러뜨린 후, 유적 끝에 있는 전시대에서 증표를 들어 올렸다.

 증표에는 하늘섬을 옆에서 본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아마 이 섬을 상징하는 것이겠지.

 배지의 뒷면에는 시험 통과 날짜와 시험관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가짜 배지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듯했다.


 그렇게 증표를 챙긴 뒤 유적 내부의 함정들을 피하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유적의 출구는 여러 곳이 있었는데, 하필 내가 나온 곳은 사람들이 입장을 대기하는 장소의 바로 옆 출구였다.


 빠져나온 나를 바라보며 아직 대기 중이던 시험 인원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머쓱하네.


 “좋겠다.”

 “에휴, 우린 잘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니까. 함정만 조심하면 돼.”


 하나 신기한 게 있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나를 못 알아볼 줄이야.’


 [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니까요. ]


 최근에 이사수 씨를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인데.

 이 신예의 둥지에서 사람들이 인간 성도혁을 구분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청바지’였다.

 스펙터 솔져가 뜯어내는 바람에 구멍까지 났던 그 청바지 말이다.

 개척자가 되길 결심하고 출발하는 사람들 중에 청바지같은 가벼운 차림을 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혼자 단련장에만 죽치고 있었다 보니 같은 기수의 훈련을 받은 사람조차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도혁이라는 이름값은 계속 올라가지만, 결국 내가 어떻게 생긴 줄은 대부분 모르는 웃긴 상황이 벌어진 것.


 그렇게 사람들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라, 사수 씨?”


 “오!”


 이사수 씨와 그의 파티원으로 보이는 사내 셋이 시험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사람들, 좀 많이 험악하게 생겼는데.’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안 좋지만, 뒤에 있는 세 명은 확실히 다른 케이스로 봐야 할 정도로 거칠어 보였다.

 모두 185cm를 훌쩍 넘는 거구에 짧게 깎은 머리.

 서태오처럼 단련된 몸이 아닌, 소위 '근육돼지'라 불리는 유형이기까지 했다.


 “사수 씨도 벌써 시험을 보시려는 겁니까?”


 “아유, 그렇쥬. 다들 이제 올라갈만 하다고 하니께.”


 사수 씨의 눈길이 내 손으로 향한다.

 방금 유적에서 들고나온 합격의 증표를 봤는지, 그는 감탄 섞인 고갯짓을 했다.


 “역시, 혼자서도 쉽게 해내니 부럽네유.”


 “사수 씨도 곧 해내실 겁니다.”


 고맙다는 듯 끄덕이곤, 이제 얼른 최종 시험 등록을 하겠다며 접수대를 향해 먼저 달려갔다.


 “파티원 분들도 힘내십쇼. 골렘 말곤 다 고만고만합니다.”


 내 말에 그의 파티원들이 멋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니까.

 생긴 건 험상궂어도 저리 순박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입가의 흉터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나았을 텐데.


 그렇게 그들을 한참 지나쳐 걸어가는 순간.


 “···괜찮겠···. 이제···.”


 그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취미는 없지만, 어쩐지 이상하게도 이 얘기는 들어봐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알티, 청각 분석해서 복원해 줘.’


 [ 시행합니다. ]


 · 말해도 괜찮겠지요. 이제는.

 · 도훈이 형님.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 흠. 이사수는 확실히 믿을만한 사람인 것 같다.


 거기까지만 들었을 땐, 실례를 저질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그럼,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수씨도 협조하게 하죠.

 · 그래. 목표지는 정해뒀겠지?

 · 예. 순찰이 좀 덜한 곳입니다.


 우뚝.


 순찰이 덜한 곳, 목표?

 이놈들은 설마.


 ‘알티, 혹시 이상한 거 느껴진 것 없나?’


 [ 스캔. ]

 [ 한 가지 있습니다. ]


 ‘말해봐.’


 [ 그들 중엔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 그런데 그들 사이에선 분명 마력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


 그게 의미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 정체불명의 아티팩트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



 이사수는 드디어 개척자의 첫발을 내딛은 기분이라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 파티의 최종 시험은 사상자를 내지 않고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동료들의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파티 리더 김도훈은 조용히 그에게 “따라오라”며 어딘가 갈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도시가 아닌 외곽의 한적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또 평소에 활발하게 떠들던 파티원 이정호와 박철민도 묵묵히 입을 다문 채였다.


 ‘으음···.’


 그의 파티원들은 사실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호와 박철민은 본래 막노동꾼이었지만, 워낙 체격이 좋고 싸우는 것을 잘해 은성파라는 조폭 집단에 한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김도훈은 스스로 밝히길 한때 지명수배를 받았던 살인범이라고 했고.


 처음 그걸 알게 되었을 땐 당연히 파티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김도훈은 정말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며 친구 대신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 친구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신이 게이트 너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했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설득력 있는 의견.

 때문에 이사수는 그를 믿기로 했으며, 그대로 파티에 잔류했다.


 하지만 지금 이 분위기는 자꾸 그에게 불안한 상상을 일으켰다.


 ‘아니겠지···.’


 그들의 목적지는 도시 외곽의 어떤 밭 근처, 한적한 민가였다.

 이사수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 가시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은 익숙하게 문 앞에 섰고, 리더인 김도훈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찰그랑.


 검은 쇠사슬로 만들어진 고리와 그 끝에 달린 칠흑의 추가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것을 흔드는 순간 핏빛 안개가 피어올랐고, 문틈과 창문 사이로 스며들 듯 빨려 들어갔다.

 김도훈은 익숙한 듯 칼을 문틈에 끼워 넣고 잠긴 문을 열어젖혔다.

 핏빛 안개가 집 주인 부부 얼굴 근처에 맺혀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리더 김도훈은 내부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침대 위에 자고 있는 중년부부를 향해 다가가더니.


 푹. 푹.


 “크헙···!”

 “우웁!”


 단숨에 둘의 목을 찔러버렸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무언가 말릴 새조차 없었다.

 이사수의 속에서 미칠듯한 구역질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정호와 발철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익숙하게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크레딧과 물약, 그리고 비상용 무기까지 닥치는 대로 훔쳐낸다.


 “형님, 연금 도구 세트도 있는데요?”

 “오늘은 수확이 좋군.”


 정신이 아득해져 헛구역질하기 시작한 이사수에게 리더 김도훈이 다가왔다.


 “진짜 동료가 된 걸 환영한다. 동료끼리 숨기는 건 없어야지. 안 그렇나?”


 그러고선 힘내라는 듯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


 “처음에는 다 힘든 법이지. 이 작업까지 하라고 시키진 않을 테니 안심해라. 정호랑 철민이도 직접 칼질까지 해 본 적은 없어.”


 “이건··· 이건···”


 “그리 걱정 마라. 이 섬만 벗어나면 추적당할 일은 없다. 신예의 둥지 원주민을 터는 일은 뒷세계에선 꽤 흔히 알려진 팁이지.”


 “튜토리얼 섬만 수천 개를 넘어갈 텐데, 어떻게 우릴 특정하겠습니까? 형님의 그 아티팩트까지 있는데.”


 “으하하!”

 “큭큭!”


 김도훈의 말에 맞장구치며 웃는 이정호와 박철민.

 웃음소리가 귓가에 어지럽게 울린다.

 이사수의 눈엔 누구 하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는··· 못해유.”


 “흠. 그게 무슨 말이지?”


 “형님, 미안하지만, 지는 파티를 나가겠―”


 빠아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도훈의 주먹이 날아왔다.

 그는 레벨을 5까지 올리는 동안 오로지 근력에만 투자한 올인형이었다.

 24에 달하는 근력에서 뿜어져 나온 주먹은, 이사수의 의식을 한순간에 희미하게 만들었다.


 쿵! 덜컹, 쨍그랑!


 “무슨 소리냐!”


 집이 흔들리고 화분이 떨어지는 큰 소리가 나자, 인근을 지나던 경비병 한 명이 다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민가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경비병은 다름 아닌 마일스였다.

 사수와 친구가 되었고, 며칠 전에도 술을 마시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사람.


 “마일스 씨, 도망쳐유!”


 찰그랑.


 하지만 무기를 쥐고 있던 마일스의 눈이 순식간에 감겼다.

 핏빛 안개가 마일스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김도훈이 아티팩트로 인해 의식을 잃고 만 것이다.


 털썩.


 옆에 있던 이정호가 마일스의 투구를 곧바로 벗겨내고는, 쇠몽둥이로 그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퍼억! 퍼억!


 후두둑.


 흘러내린 피가 몽둥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안돼···안돼.”


 “후우, 호들갑 떨기는. 몬스터랑 다를 바 없는 것들인데.”


 신예의 둥지 주민은 몬스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의견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사수는 도시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에 확실히 단언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결코 환영이나 복제체 같은 것이 아니다.

 죽어도 빛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피를 흘리고 시체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화도 낸다.


 이들을 어떻게 가짜라 할 수 있겠는가.


 김도훈은 이사수에게 다가와 단검을 그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천천히 흔들었다.


 “그래, 아쉽지만, 파티를 나가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설득 같은 건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푹. 푹.

 엎드려있던 그의 등을 향해, 아주 깊숙이 두 번 단검이 내려찍혔다.


 “으아아악!”


 “어우, 시끄럽군. 실수했어. 목부터 내리쳐야 했는데.”


 그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등에서부터 시작된 극심한 고통이 몸을 지배했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무언가 외치고 싶어 열린 입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신음 소리밖엔 나오지 않았다.


 ‘하린아, 서린아··· 미안허다, 수연아···’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절대로,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동료를 잘못 선택해 버린 본인의 안목이.

 이런 자들을 만나게 된 운명이.


 참으로 미칠 듯이 원망스러웠다.


 “허억···허억···.”


 순간, 이사수의 귀에 들려서는 안 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순찰이 적은 곳이라길래, 북쪽 농가인 줄 알았더니···.”


 한참을 달렸는지 숨을 몰아쉬며 등장한 사내.

 이사수의 눈이 순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다시 절망감이 서렸다.


 그는 분명 강하다. 강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김도훈의 손에 아티팩트가 있는 이상은, 승산이 없다.


 찰그랑.

 핏빛 안개가 뿜어진다.


 “도혁···씨, 도망쳐유···.”


 “너는 닥치고 있어라. 곧 같은 길로 보내줄 테니까.”


 분명 자신을 구하러 와준 것일 텐데.

 나 때문에 두 명이나 무고하게 살해당하게 된다니.

 하늘은 어디까지 나를 몰아넣으려 하는가.


 격통과 절망에 이사수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뚜벅. 뚜벅.


 “마일스 씨···.”


 “···응?”


 “···응, 그래. 그럼 됐어. 시간은 충분하다는 거네. 다행이다.”


 찰그랑.

 스아아―


 “뭐야.”


 “후우···. 진짜 말세네, 말세야. 너 같은 새끼가 닉스베일의 추는 또 어디서 구했냐?”


 찰그랑.


 “이런, 씨발! 이거 왜 이래!?”


 본래는 옅어야 할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실내 전체에 퍼졌다.

 그러나, 그 안개는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곧 사라졌다.

 마치 사용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는 듯이 말이다.


 김도훈은 미친 듯이 추를 흔들어댔고, 이내.


 쨍그랑!


 사슬 부분만 남긴 채, 추는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그럼에도 성도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를 냉정히 바라볼 뿐이었다.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뚜둑, 뚜둑.


 “내가 어쩌다 보니까, 뇌에 디버프 같은 게 하나도 안 통하는 몸이 돼버렸거든. 한 250레벨쯤 되는 마법사가 와도 이 머리통에는 마력 간섭이 안 통해요.”


 “개소리!”


 “그런데 이런 사실을 내가 왜 말해주느냐.”


 가벼운 말투.

 그러나 그 목소리는 싸늘하고, 깊게 잠겨있다.

 들어올린 단검에서 반사된 달빛이 반짝였다.


 “넌 여기서 죽을 거니까.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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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를 넘는 자 (3) 24.09.09 1,045 36 20쪽
22 경계를 넘는 자 (2) 24.09.08 1,149 42 19쪽
21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3 44 19쪽
20 진짜 재능이란 (5) 24.09.06 1,254 43 18쪽
19 진짜 재능이란 (4) +2 24.09.05 1,274 42 19쪽
18 진짜 재능이란 (3) +1 24.09.04 1,284 43 20쪽
17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6 44 20쪽
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2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2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3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8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8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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