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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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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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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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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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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능이란 (5)

DUMMY

 그날 저녁, 해가 뉘엿하게 넘어간 시각.


 “아~ 상쾌하네, 진짜.”


 불이 밝게 켜져 있는 야시장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기분은 아침에 있던 대련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바로 마과학 연구실장 엘레이나에게 한 방 먹인 게 통쾌했기 때문이었다.


 [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 ‘너, 너, 너···.’ 하면서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던 모습이 말입니다. ]


 “그치? 왠지 보육원 동생들한테 장난치던 기억까지 나더라.”


 분명 나보다 훨씬 나이가 더 많을 테지만, 외모가 워낙 어려 보여서 그런지 어린 동생에게 장난치는 듯한 감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실제로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게 당연하지만, 외견이 어리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전.


 그녀가 내 앞에 쌓아줬던,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십수 권의 책들.

 나는 그 첫 번째 책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페이지를 그냥 휙휙 넘겨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엘레이나도 내가 무언가 진지하게 책을 훑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10분이 넘도록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기만 하자,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내게 다가왔다.


 -장난치지 마.


 당연히 내가 진심으로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여겼는지 경고까지 해왔었다.

 거기에 내가 다른 답을 할 게 뭐가 있는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했지.


 두 달 동안은 신경 쓰지 않겠다던 그녀였지만, 내가 태연하게 답하자마자 엘레이나는 내가 들고 있던 책을 확 빼앗아 갔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을 테스트해 보겠다는 명목으로.


 -마력 밀도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위상 이동 오차 보정을 위해 사용하는 방정식은?

 -델타 변조 방정식.


 -마나 저항을 상쇄하기 위한 기본 방법은?

 -집중도를 떨어뜨려야 하죠. 보통 위상 조정 필터를 사용하거나, 매트릭스 안정화 마법진을 이용합니다.


 -···마력의 비선형적 증폭 현상 발생 조건은?

 -세상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마력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강력한 에너지에 간섭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마나 디퓨징 공식을 늘 참조해야 하죠. 그건.


 종이를 펼치고, 수식을 써 내려간다.


 -마력 압력을 P로 두고, 마력 상수 k에 마나 흐름 변화량을 델타 M으로 가정합니다. 단면적 A와 조절 시간 t를···


 이게 무슨 의미냐고?

 당연히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저 알티가 친절하게 읽는 법까지 한글로 적어준 공식들을 그대로 읽어 내려갈 뿐이었다.


 -마나 안정화 계수 r에 에너지 변화량 델타 E를 나눈 값으로··· 이렇게.


 어깨를 으쓱하며 “참 쉽네요”라고 말하자, 엘레이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 후에도 몇 가지 테스트가 더 이어졌지만, 알티는 엘레이나가 낸 함정까지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녀는 내가 마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건 아직 안 배웠는데요.

 -···.


 황당함을 벗어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습득 속도에, 엘레이나는 결국 충격을 받아 자리를 피해버리기까지 했다.


 고위 마법사의 콧대를 이렇게 눌러버릴 수 있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그녀를 놀릴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


 그녀 자신이 내 죽음에 대한 조건을 걸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위 마법사들의 말에는 언령(言靈)이 새겨져 있어, 가볍게 꺼낸 말도 그들을 구속하는 억압이 된다.

 그녀가 내 머리를 가져가려면 두 달 안에 내가 기초마법을 선보이지 못해야만 한다.

 그 외의 방법으로 나를 죽인다면, 그녀 자신도 그리 크진 않지만 자신의 경지에 어느 정도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고위 마법사치고 여린 성격과 스스로 매듭지어버린 언령.

 이 두 가지를 믿고 나는 그녀를 골려댔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기분 좋은 발걸음을 가지고 식당으로 향할 수 있던 것이고.


 기분이 썩 괜찮으니, 오늘 저녁은 그러면―.


 “저기.”


 그 순간, 나를 지나쳐가던 사람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곤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또 파티 제안인가 싶어 속도를 높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 인물이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역시. 성도혁 씨 맞지유?”


 그리고 나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이사수씨?”


 게이트를 넘어가던 엔트리 터미널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사람.

 서바이벌 키트를 나눠주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던 이사수 씨가 내 앞에 서 있었다.



**



 그는 내게 밥이라도 한 끼 하지 않겠냐고 권했다.

 이사수 씨에게는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었기 때문에,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근처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돈은 제가 낼 테니, 마음껏 시키세요.”


 “음, 도혁 씨도 알겠지만, 지는 속물이라 그런 걸 거절 못해유.”


 환하게 웃어 보이는 이사수.

 이런 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 정도야, 그가 푸드파이터라도 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미리 조리되어 있었는지 음식은 바로 나왔고, 그는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보다 약간 고생한 듯 보였다.

 여전히 군복을 방불케 하는 검은색과 녹색의 서바이벌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옷 곳곳이 해져 있었다.

 숲에서의 고생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꽤 힘드셨나 봅니다.”


 “옷이 좀 흉하게 됐지유? 숲에서 벌레들 잡다 보니 원. 으, 떠올리기도 싫은 거.”


 게임 시절 숲을 자주 통과해 봤으니, 그곳이 초보자에게 얼마나 험난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끊임 없이 나오는 벌레 모양 몬스터들.

 일반인의 힘으로도 충분히 때려잡을 순 있지만, 진심으로 죽이려고 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로 그 껍질이 단단했다.


 그가 헤메이는 숲을 탈출하는데 걸린 시간은 7일이었고, 지금은 내일 열리는 기초 이수 훈련에 참가 신청을 해두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내가 있던 기수가 종료되었으니, 교관만 바꾸어 바로 시작하는 거겠지.


 “7일이면 꽤 빠르셨네요.”


 숲에서 탈출하는 데에 2~3주 넘게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사수 씨의 탈출 속도는 꽤 빠른 편에 속했다.

 재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파티를 잘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음, 그렇지유. 힘들긴 했지만서도, 뭐.”


 그는 대답을 하면서도 묘하게 주변을 둘러보거나, 쭈뼛거리는 듯한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밥을 얻어먹는 것에 관해 부담을 느낄만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뭔가 내게 말하고 싶은게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반쯤 높이고 있네.’


 그런 그의 태도로 보았을 때 짐작 가는 점이 있어 입을 열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제 소문 같은 걸 들으셨습니까?”


 “으잉? 어떻··· 아니, 뭐, 들을 수 밖에 없지유. 도시에 일주일이나 있었으니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단련장에 있었다고 했고, 거기에 마법도 쓸 줄 아신다고 하고. 아니, 등록증엔 아카데미 기록도 없었는디 어떻게 한거유, 정말로?”


 “어쩌다 보니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 맞지. 이런 거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지요~ 멋있네 멋있어. 거기에 그, 우리가 봤던 금수저 개척자들도 죄다 때려눕혔다고 들었어유.”


 “죄다 그런 건 아니고, 그 파티의 리더와 대련을 한 정도입니다.”


 “키야···. 그다음엔 교관하고 싸우기까지 하고. 삽 하나만 들고 들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겨.”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건만, 이미 개척자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듯하다.


 그는 진심으로 부러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왠지 눈빛이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는데, 문득 그의 그릇이 텅 비어있는 걸 보았다.


 아하.


 자연스럽게 추가 주문을 하자, 그는 쑥스럽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으하, 쑥스럽구먼. 으하하!”


 고개를 서너 번 숙이곤 곧바로 두 번째 그릇까지 해치우기 시작하는 이사수 씨.

 그 행동이 묘하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파티를 하고 싶어서겠지?’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별다른 목적이 없는데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다가와 밥을 먹자고 제안할 가능성은 낮다.

 친화력 높은 이 세상의 주민들이라면 모를까.


 내 소문을 들었다면 당연히 파티를 제안하려는 목적이 있겠지.


 ‘그래도 괜찮긴 한데.’


 그가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준 서바이벌 키트 덕분에 하우징에서 침대와 난로를 설치할 수 있었고, 또 멀티툴은 반장님의 의외의 모습을 보게 해주기도 했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뒤통수를 칠 사람은 아냐.’


 짐꾼이라고 해서 다른 파티들처럼 정말 막일꾼으로만 쓰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행보를 따라오려면, 그 또한 평범한 짐꾼이어서는 안 될 테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사수 씨만 괜찮다면, 파티에 초대하기로. 

 다만 대놓고 말하기보단 천천히 돌려서 말을 꺼내기로 했다.


 “이사수 씨. 혹시 지금 파티가 있으신가요?”


 “음. 있지유. 다들 꽤 괜찮은 사람들이고.”


 ···있다고?

 보통 여기선 ‘파티를 찾고 있다’고 대답하지 않나?


 순간 말문이 막히고,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던 이사수 씨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혹시 방금 파티 제안하려고 물어본 거였어유?”


 “···예. 그럴 의도로 말을 꺼낸 건 맞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냐. 아으~”


 순간 그의 얼굴이 핼쑥해지더니, 충격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들은 게 있으니, 정말 황송할 정도긴 해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크게 내쉬기까지 하는 모습.

 그러고는 포크로 그릇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그 때 내 말 기억해유? 꼭 살아남을 거라고 했던 거.”


 “예. 당연히.”


 “나한테 제일 중요한 목표, 그 첫 번째가 생존이고.”


 면을 돌돌 말아 한입에 삼키곤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약속 이유. 사람 간의 믿음, 신의, 뭐 그런거유.”


 “신의···라.”


 “그날 게이트에서 괜찮은 파티원들을 찾았어유. 그 친구들하곤 3계층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해버렸지, 뭐유. 그것만 아니었으면··· 에휴.”


 내가 미쳤지, 하며 손을 휘휘 젓는다.

 정말로 아까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약속을 철회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설득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든, 그는 자신의 파티를 먼저 버리지 않을 사람이었으니까.


 첫 인상보다도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아깝네.


 이후에는 사소한 잡담이 이어졌다.

 그는 내 마법이나 전투 이력에 대해 전혀 묻지 않고, 주로 아내와 두 딸에 대한 자랑을 했다.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가 가족을 위해 게이트 너머로 자신을 던지고, 또 그곳에서도 목숨 다음으로 신의를 지키는 낭만까지.

 내가 찾던 파티원으로는 딱 맞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결국 다른 짐꾼을 찾아야 하나.’


 [ 룸메이트 황지호는 어떠십니까? ]


 ‘음, 일단 킵해두자.’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너무 절박함이 없어 보이는 게 문제다.

 정말 다른 후보가 없을 때 물어봐야지.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차로 입가심을 할 때쯤.

 이사수는 좀 의외의 것을 물어왔다.


 “그 뭐냐, 혹시 이 섬 경비분들의 힘이 막, 엄청나게 세고 그럴까유? 양성소의 교관님들처럼.”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도시에 온 첫날 마주쳤던, 하품하던 경비병을 떠올려보면 그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흠, 그래유?”


 “그건 왜···?”


 “아니 그냥, 동료들이랑 떠들다가 경비병도 셀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어가지구.”


 “동료분들이라.”


 이사수 씨 같은 사람의 동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했지만.

 더 물으면 캐묻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내일 입소 준비를 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고, 나도 단련장으로 가볼 시간이었기에 소화도 시킬 겸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 정말, 그냥 한 끼 얻어먹고 싶어서 말을 걸었던 거네.”


 [ 쭈뼛거리던 모습은 밥그릇이 먼저 비어버리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


 나 혼자 김칫국을 마셔버린 꼴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건 내가 아니라 이사수 씨 쪽이겠지.


 “정말 기억에 남는 사람이야. 저게 연륜이라는 걸까.”


 자존심은 쉽게 굽히지만, 자기가 지켜야 하는 부분에서는 타협이 없는 강단.

 거리낌 없으면서도 또 그리 기분을 상하지는 않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처세술.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작은 감탄을 하던 와중 알티가 의외의 말을 꺼내 왔다.


 [ 그와 도혁 님은 그렇게 많이 나이가 차이 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사수 씨쯤 되면 나이가 좀 있으실텐데.”


 첫 만남 때부터 나는 그를 40대 후반 정도로 짐작했었다.


 왜냐하면 이게 그, 처음부터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윗머리는 꽤 반들반들했으니까.

 이마에도 주름이 있었고.


 [ 이마를 제외하면, 눈가나 목의 주름이 거의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얼굴이나 손등의 피부도 탄탄하며, 다크서클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

 [ 이마 주름은 체질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

 [ 꽤 높은 확률로,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됩니다. ]


 ···진짜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딸이 둘이라고 했잖아.”


 [ 결혼을 일찍 했다면 이상하진 않습니다. ]


 “그럼 그 머리는···.”


 알티는 굳이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어쩌면, 내가 꽤.

 아니,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걸어가는 한참 동안 우리 사이엔 정적이 흘렀고.


 [ 그를 위해 언젠가 에버 그린스 섬을 찾도록 하죠. ]


 기억에 있는 섬의 이름이다.

 에버 그린스 섬에는 짙은 영원의 샘이라는 곳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재생과 복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그 축복은 모근에도 작용한다.

 비슷한 퀘스트를 받은 적도 있고.

 생각해보니까 현실에 들고오면 떼돈을 벌겠네.


 그래. 언젠가는 꼭.



**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내 생활 패턴은 간단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과학 연구실에 들러 마법 책들을 공부, 아니 스캔하고.

 낮 시간엔 가끔 하우징에서 반장님을 불러 같이 밥을 먹거나 혼자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단련을 해 상한치를 높이는데 집중한다.


 원래는 연구실과 훈련의 순서가 반대였는데, 엘레이나가 땀 냄새가 난다며 싫어해서 훈련을 저녁으로 돌렸다.


 내 존엄성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안 씻고 간 게 절대 아니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이동했는데도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억울하긴 해도 결벽증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이론 서적에는 그정도 가치가 있었으니까.


 엘레이나의 책들에는 본인이 공부했다는 증거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공식에 대한 자신의 해설이나 책과 다른 의견 같은 것들이 메모처럼 적혀있던 것.

 그것도 난 잘 모르지만, 알티 말로는 굉장히 유익한 접근이라고 한다.


 “엠버.”


 화륵.


 “···.”


 엘레이나는 이제는 놀랄 힘도 없는지, 힘 빠진 표정으로 내 손가락 끝에 솟아오른 불을 바라본다.


 “너, 노스티카르의 아바타라도 돼?”


 “···예?”


 “···아냐,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예언과 변이의 신 노스티카르.

 모를리가 있나.


 그녀는 지금 내가 신의 아바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심이 되는 상황인거다.

 그럴만도 하지.


 알티의 학습 속도는 ‘배운다’가 아니라 ‘빨아들인다’라고 말하는게 나을 지경이었다.

 좀 재능있는 개척자라도 족히 2~3년은 걸릴 이론 구축을 고작 1주만에 완벽히 끝내버렸으니까.

 그러곤 이제 본격적으로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기까지 했다.


 불꽃을 피우는 1등급 마법 앰버.

 이외에도 몇가지 기초 공격 마법을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녀가 전해준 책에는 수많은 마법이 기술되어 있으니, 앞으로도 쭉 쭉 지식을 흡입할 예정이시다.


 ‘무섭네, AI.’


 [ 과찬이십니다. ]


 이 얼마나 든든한지.

 그녀는 감탄보다도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나를 바라본다.


 “에휴. 아무튼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럼···.”


 “그래. 마력 그릇 만드는 거 도와줄게.”


 테스트를 했던 바로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거래조건을 하나 걸었다.

 기초 마법을 한 달 안에 보여줄테니, 그릇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수 없느냐고 말이다.


 애초에 그건 약속도 뭣도 아니었고 협박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으나.


 -좋아. 그게 학습 동기가 된다면.


 조금 짜증은 냈지만 흔쾌히 약속을 했던 것.

 이런 호구···아니, 천사를 물어온 알티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1등급 마법이라면 몰라도, 2등급 이후의 마법을 쓰기 위해선 반드시 그릇이 필요하다.

 같은 마법이라도 소모 마력, 위력도 달라지고.

 혼자서도 만들 수는 있지만 고위 마법사가 기초를 잡아준다면 엄청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고민이네.’


 [ 그래도 베슬 식이 맞지 않겠습니까. ]


 대표적인 마력 그릇, 서클과 베슬.

 장단점이 서로 다르다보니 어느게 나을 지 저울질을 잘 해봐야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와중, 그냥 툭 던지듯 그녀가 말을 꺼내왔다.


 “혹시 나처럼 네트워크식 마력 그릇 만들어볼 생각 없어?”


 “···네트워크 식 말입니까?”


 처음 듣는 그릇의 이름.


 “응. 나쁘지 않아, 이것도.”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얼굴과 목에 마치 수많은 광섬유를 심어놓은 듯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식 그릇이라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어쩌면.


 [ 일단 자세히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건··· ]


 이건 내가 한 번도 제대로 얻어본 적 없던, 히든 직업에 대한 힌트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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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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