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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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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최근연재일 :
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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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08

작성
24.08.24 18:40
조회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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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8쪽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DUMMY

 온몸의 신경이 바짝 조여지는 듯한 느낌.

 시야가 단숨에 밝아진다.


 길을 간신히 비춰줄 정도로 은은하게 보이는 유적 자체의 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켠 것처럼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감각이군.’


 민첩 능력치를 올리면 온몸의 움직임과 반사신경이 빨라지며, 집중 상태를 유지할 경우 마치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방식이 달랐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지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과 몸이 대응하는 것이 조금의 딜레이조차 없이 완벽히 동시에 이루어진다. 


 팔다리와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척수반사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기묘할 정도로 빠른 감각.

 게다가 근육에 들어가는 힘조차 원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게 느껴진다.

 손아귀의 힘을 끝없이 넣을 수 있어, 더 했다간 내 근육을 직접 터뜨려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긱, 까가각!


 뼈를 부딪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스펙터 솔져의 손이 올라갔다.


 곧이어 녀석의 손에 반투명한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고, 이내 그 기운은 창으로 변했다.

 조금 전 다리가 무너지며 함께 떨어졌던 창을 재소환한 것.


 곧바로 녀석은 창을 두 손으로 넓게 펼쳐 쥐고는, 몸을 앞으로 크게 기울였다.


 ‘온다.’


 스펙터 ‘솔져’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 녀석은 그냥 병사 하나에 불과한 잡몹이다.

 10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 중에서는 비교적 느릿한 편에 속하는 대신, 강한 근력과 내구력이 있어 방심하면 치명적인 일격을 입을 수 있는 게 특징인 녀석.


 빠직!


 바닥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돌진해 왔다.

 검은 기운이 모여드는 모습.

 창을 든 스펙터 솔져들의 공용 패턴인 ‘랜스 스트라이크’였다.

 감각의 가속 덕분에 녀석의 움직임은 물론, 이후의 동작까지 머릿속으로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대시··· 는 못 쓰고.’


 기본 동작으로 취급되는 대시를 버릇처럼 사용하려다가 깨달았다.

 지금 나는 시스템의 보정조차 받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뿐만 아니라,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진다.

 감각은 극도로 가속되었고, 근력 또한 한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가속된 신경을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이 속도로는 나의 몸을 왼쪽으로 틀어봤자, 스펙터 솔져는 곧바로 내 움직임에 맞추어 돌진 방향을 수정하겠지.


 ‘느려. 내가.’


 지금의 몸으로는,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랜스 스트라이크’가 보일 수 있는 최대 각도의 바깥까지 몸을 빼는 게 불가능했다.


스킬이라도 억지로 재현해보려고 했건만, 내 신체 능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놈에게 대적하기엔 그저 빈틈 투성이의 몸부림이 되겠지.


 이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게 당연했다.

 10이나 20레벨 정도의 차이도 아니고, 무려 100레벨.


 고작 1에서 2 정도의 스탯 차이만 있어도 상대와의 격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데, 기본 베이스가 1레벨과 다름없는 몸을 아무리 증폭해 보았자 한계가 있다.


 ‘비교적 느리다’라는 건 어디까지나 같은 100레벨 대의 몬스터들 사이에서 이야기지, 지금 나에게는 녀석의 가속이 실린 스킬을 굴러서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계획 수정이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고 있던 몽둥이를, 손바닥이 찢어질 각오로 꽉 쥐었다.

 녀석은 가슴이 땅바닥에 닿을 것 같은 수준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고, 그 낮은 창 높이에 맞추어 삽 끝의 높이를 조정했다.


 -까각.


 어느새 창이 눈앞까지 쇄도하며 들어왔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창날을 끝까지 응시하며, 삽의 끝을 창의 옆에 맞대고 손목을 꺾는다.


 카앙!


 고작 잠깐 닿았을 뿐인데, 쇠로 이루어진 삽의 머리가 꺾이며 바깥으로 부서져 나갔다.


 그 대가로 창의 궤도가 아주 조금, 고작해야 몇도 정도지만 확실히 기울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궤도는 내 어깨를 향하는 상황.

 나는 몽둥이 손잡이 부분을 더욱 강하게 다시 쥐었고.


 “흡!”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창날의 옆면을 향해 내려찍는다!


 콰아아앙!


 검은 기운과 함께 쇄도하던 스펙터 솔져는 그대로 유적의 벽을 꿰뚫곤 먼지의 폭풍을 일으켰다.


 지금의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흘려내기’였다.


 ―그래, 이만큼의 능력의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이것보다 더 완벽한 흘려내기란 있을 수 없다.


 ‘···트럭에 치인 것 같네.’


 [ 우측 새끼손가락 골절, 손바닥 출혈, 양쪽 팔목에 근육 내출혈. 인대 손상 또한 감지 됩니다. ]


 완벽한 타이밍에, 두 번에 걸친 충격 분산이 이루어졌음에도 몸이 미칠 듯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멈춰있어선 안 됐다.


 곧바로 나는 벽에 박힌 채 등만 보이는 스펙터 솔져를 향해 달렸고, 그 등을 몽둥이로 힘껏 내리쳤다.


 빠악!


 그러나 힘없이 튕겨 나가는 몽둥이.


 이번에는 몽둥이를 창처럼 넓게 쥐어 잡고, 최대한 뼈가 없을 만한 부분을 향해 찔러넣었다.

 삽 머리 부분이 부러져, 몽둥이가 날카로운 창처럼 변해버렸기에 시도해 본 방법이었으나.


 퍽.


 무기가 또다시 튕겨 나오고 말았다.


 알티가 신체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위 무기와 근력으로는 녀석의 가죽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탄력 때문에, 손에 전해지는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이, 질긴 새끼···!”


 쿠궁.


 녀석을 향한 공격은 그저 화를 돋우기만 한 듯, 놈은 쌓인 돌을 한 번에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허하게 빈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엔 창대를 넓게 휘두르며 나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창대를 한번 넓게 휘두르고, 회전력을 유지한 채 한번 베기, 이어지는 두 번 찌르기.

 마지막으로 느닷없이 녹빛의 단검을 빼 들고는, 몸을 기울여 발목을 크게 베기.


 그 움직임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패턴이었다.

 나는 저걸 ‘제자리 떨쳐내기’라고 부르곤 했었다.


 ‘랜스 스트라이크’만큼 빠르지는 않은 공격.

 나는 마치 곡예를 하는 것처럼, 어떻게든 종이 한 장 차이로 간신히 이어지는 공격을 피해냈다.


 막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 나무 몽둥이는 튼튼했지만, 녀석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낼 정도의 내구성은 없었으니까.


 한계 이상으로 움직이는 몸에, 온 근육이 끔찍할 정도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순 없었다.

 맨몸으로 단 한대라도 공격을 허용했다간, 맞은 부위의 뼈는 스티로폼 마냥 산산조각 나고 말테지.


 슈슉! 쐐액! 쾅!


 그 뒤로도 몇 개의 패턴이 더 이어졌지만, 모두 몸이 기억하던 패턴들이었다.

문제없이 피해 나가며 거리를 조금씩 좁혔지만.


 촤악!


 “큭!”


 정형화된 패턴이 아닌, 대각선 내려 베기가 이어진 순간.

 최대한 뒤로 길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허벅지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공격을 포착하는 것도, 그 속도에 반응하는 것도 모두 완벽했지만 내 움직임 자체가 느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주 약간, 정말로 살짝 창이 스쳤던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마치 갈퀴로 살점을 뜯어낸 것 같은 상처가 생겨버렸다.


 -그긱. 끼릭.


 스펙터 솔져 녀석은 움직이지 않고 기괴한 소리를 냈다.

 마치, 드디어 상처를 냈다며 기뻐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고통에는 정말로 익숙했다.

 쾌락에 절여진 미래 세계에서는, 통각마저도 쾌락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레닉수스에서는 너무 극심한 고통이 아니라면 가감 없이 전부 전해지도록 설정해 두었고, 당연히 수천 수만 번의 사망을 겪은 나는 고통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의 움직임에 불편함이 있어. 팔도.’


 하지만 한가지 현실과 큰 차이가 있다면, 플레이어들의 상처는 고통으로 치환될 뿐 움직임 자체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근육이 크게 베여도 별문제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데, 부자연스럽긴 해도 오히려 게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부상은 고통뿐만 아니라, 실제로 신체 능력 저하를 동반했다.

 근육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알티, 고통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나? 잘못하면 진짜 죽겠는데.”


 [ 인페르날린 합성 준비. 완료. ]


 순간 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강하게 자극되고,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몸이 본능적으로 더 많은 산소를 갈구하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동시에 온몸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제 3자의 시선에서 내 몸의 통증을 관측하는 것 같은 감각.


 아니, 심지어 고통이 죄다 시원한 상쾌함으로까지 변해버린 것 같았다.


"그래, 고맙다."


 [ 경고 : 영구적인 신경 손상이 감지··· ]


타닥!


 경고음이 들리고 있었지만 무시한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스펙터 솔져를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다.

 조금 전 녀석의 돌진 스킬을 겪어보지 않았나.


 그 속도를 내가 뛰어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차라리, 그 끔찍했던 랜스 스트라이크 스킬을 발동하지 않도록 가까이 붙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가각!


 녀석의 양손에 검은 기운이 모이고, 창은 돌진하는 들소처럼 쏘아진다.


 얼굴을 향해, 정확히 단 한 지점을 노리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창.

 고개를 반 이상 꺾으며 창을 피하면서도 시선은 창에 고정한다.


 곧바로 회수되는 창.


 다시 창은 쏘아지고, 또다시 회수된다.

 다시 위, 다시 아래, 좌상, 좌상, 좌하, 위―


 모든 공격지점이 무작위로 결정되는 ‘찌르기 난사 패턴’.


 지금의 나에겐 마치 개틀링건을 연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찌르기를, 가공할 만한 집중력과 동체시력으로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한번. 딱 한 번만.’


 스펙터 솔져들이 가지고 있는 공용 패턴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동시에 허점이 큰 그 패턴만 보여준다면!


 쐐액! 슈욱!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신경 하나하나, 모든 털끝이 곤두세워지는 듯한 감각.

 필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피한다.

창이 쏘아지기도 전에, 이미 그 궤적을 예측하고 피한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 창끝이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 녀석이 디딤발을 옮겨 뼈가 덜걱거리는 소리.

 온 근육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러댄다.


 호흡조차 멈춘 지 오래.

 나의 시야 속엔 오로지 찔러 들어오는 창과 나, 둘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수십 번에 달하는 찌르기를 이어갔음에도 단 한 번의 유효타를 내지 못한 스펙터 솔져의 발 아래로 스산한 기운이 모여든다.


 ‘!’


 곧 녀석은 역수로 창을 바꿔 쥐고는, 높게 창을 들었다.

 발 아래 모인 기운을 창으로 내려찍어, 충격파를 전방위로 폭발시키는 ‘바닥 내려찍기’의 동작.


 그게 보인 순간, 나는 온 근육이 터져나갈 기세로 방망이를 쥐었다.


 “흐으읍!”


 역수로 쥐어진 방망이가, 한계 이상의 힘이 실린 방망이가 수평으로 휘둘러진다.


 목표 지점은, 스펙터 솔져의 창.

 그 목 부분을―.


 까아앙!

 으득. 뚜득!


 어찌나 힘을 세게 주었는지, 비유가 아닌 진짜 비명을 지르는 듯한 파열음이 어깨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온 신경은 오로지 창끝만을 향해있었다.


 채애애앵!


 이윽고, 창끝이 허공을 가른다.

 붉고 노란 불꽃이 터져 나온다.

 녀석의 양 팔이 공중으로 들리고, 몸이 균형을 잃은 채 뒤로 넘어갈 듯 말 듯 한 자세가 되었다.


 적에게 가장 큰 허점을 만들 수 있는, 공격을 완벽히 파훼했을 때만 발생하는 시스템을 증명하는 불꽃의 색깔.


 패리 시스템.


 그것이 발동된 순간, 스펙터 솔져의 몸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 몽둥이로 그 어떤 피해도 줄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오직 이것만을 노리고 있었다.


 녀석의 왼쪽 허벅지 앞에 매달린 녹빛의 단검.


 단검은 비취색 기운을 뿜어내며 윙윙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단검을 낚아챈 뒤, 곧이어 몸을 비틀며 녀석의 뒤를 향했다.


 원심력을 받기 위해 내 몸을, 전력을 다해 회전시킨다.


 신체 증폭과 인페르날린의 각성 효과가 겹친 상태에서도, 이 가죽을 뚫기에는 힘이 부족할 수도 있었기에.


 “흐아아아아압!”


 원심력을 받은 단검이 노리는 지점은, 바로 녀석의 발목!


 서-걱!


 -끼극, 가, 그가가각!


 한순간에 발목의 반 이상을 베인 스펙터 솔져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고.


 퍼억! 꽈지직!


 “윽!”


 원심력을 담기 위해 몸을 크게 움직인 여파로 균형이 무너져있던 나는, 놈의 팔을 맞고 벽으로 튕겨 나갔다.


 나를 노린 것도 아닌, 단순히 휘적거리는 팔.


 맞기 직전에 최대한 몸을 비틀어 충격을 분산시키려했건만, 그럼에도 그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레벨의 격차가 여실 없이 느껴졌다.


 “쿨럭!”


 기침이 일어나자, 피가 분무기처럼 솟아났다.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것 같았다.

 인페르날린으로도 슬슬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스펙터 솔져를 바라보았다.


 -기, 그각···.


 왼쪽 발목은 8할 이상 잘려 덜렁거리고 있었고, 오른쪽 발목 또한 절반 이상 잘려진 것과 동시에 녹빛 단검이 박혀있다.


 아니, 이제는 회색의 단검이라고 해야겠지.

 이미 단검의 녹색 빛은 녀석의 발목으로 옮겨가, 상처의 치유를 막고 있었으니까.


 스펙터 계통의 몬스터들이 낮은 확률로 지니고 나오는 저 단검의 이름은 ‘녹빛 서약의 단도’.

 저 단도에는 인챈트가 걸려있다.


 그건 바로 단 한 번, 절삭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입힌 상처가 자연치유 되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저주.


 나는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 허리 근육을 손바닥으로 내리치곤,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 몽둥이를 든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미 파괴되어 손잡이 부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몽둥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끝을 보자···.”


 스펙터 솔져는 서 있는 것조차 위태위태해 보였으나, 근처로 다가온 나를 보자마자 다시 창을 쥐곤 휘두르기 시작했다.


 ···슉!


 그러나 그 공격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힘도 실리지 않았으며, 방향조차 내가 고개를 피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마음대로 안 되지?”


 네가 이족보행 영장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양 발목이 통째로 잘려 나갔는데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좀비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서 있는 게 고작이겠지.


 녀석은 말을 알아들을 순 없어도 내가 도발하는 것임은 느꼈는지, 괴성과 함께 다시 한번 창을 휘둘렀다.

 그래봐야, 무게도 실리지 않은 엉망진창의 궤적.


 ‘한 번만 더.’


 손잡이 밖에 남지 않은 몽둥이.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이 휘두르는 창날에 공격을 맞춰 패리를 시도했다.

 엉망진창의 공격에 패리를 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챙! 카아아앙!


 붉고 노란 불꽃이 허공으로 튀기며, 완벽히 무방비가 된 녀석의 몸뚱아리.


 주저 없이 그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팔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오른쪽 다리를 크게 들어 올렸다.


 “흐아아압―!”


 그리곤 온 체중을 힘껏 담아, 이미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녀석의 몸통을 온 힘을 다해 밀어버렸다.


 방향은 바로 전투가 시작하기 직전, 이 녀석이 창으로 스스로 부숴버린 다리가 있던 방향.

 발목에 힘을 줄 수조차 없던 녀석은 힘없이 뒤로 밀려 버렸고, 곧 낭떠러지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어, 가, 가각···.


 슈우우우우-


 “흐···.”


 [ 이게 바로 스파르탄입니··· ]


 털썩.


 내 몸은 힘 빠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충격으로 장기까지 건드렸는지, 그제야 격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가방에 포션이 있습니다. ]


 “알···아.”


 나는 싸우기 전 던져둔 가방을 향해 몸을 질질 끌며 기어갔다.

 숲의 안내자가 준 기초 포션 두 개를 찾아, 그대로 하나는 원샷으로 마셔버리고 하나는 상처 부위에 고루 펴 발랐다.


 진통제의 효능도 있었기 때문인지, 곧 온몸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포션도 귀환의 돌처럼 비전투 상황에서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그 효과도 뛰어나다.


 또, 포션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말은.

스펙터 솔져는 확실히 낙사로 사망했다는 것을 뜻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시는 듯하며 여유가 생기자, 이겼다는 짜릿함보다도 먼저 느껴진건 다름아닌 아쉬움이었다.


 ‘아까워 죽겠네.’


 낙사로 죽였으니 낮은 확률로 부산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얻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경험치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상태창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마저도 물 건너가 버린 것.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살아남은 것에 대한 안도도, 목숨을 건 전투에서 이겼다는 환희도 아닌, 경험치도 못 먹었다는 아쉬움부터 느끼다니.


 이제는 중독자가 아니라고 농담도 못 하겠네.


 어차피 뭐, 이 세상의 특성상 몬스터를 잡는 거로 얻는 경험치는 얼마 없었다.

 아무리 100레벨이 넘는 몬스터라지만, 이 게임의 사냥 경험치는 처음 해본다면 속이 탈 정도로 짜니까.


 이 세상에서 제대로 레벨을 올리려면 그게 필요했다.

 엘리트도 아닌 잡몹들에게선 수백 마리를 잡아야 하나쯤 나올까 말까 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아이템.


다른 부산물과 다르게 '귀중품'으로 분류되다보니, 낙사같은 수단을 써서 죽이더라도 귀속 아이템마냥 파티의 눈 앞에 떨어지게되는.


 툭. 데구르르.


 그래, 저런 보라색 구슬같이 생긴 경험치 구슬, ‘에테르 오브’ 말이다.

 ······.

 ···.


 “···진짜야?”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비비적거렸지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 발칸델리안 스펙터 솔져의 에테르 오브를 획득하셨습니다. ]

[ 축하드립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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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7 알골
    작성일
    24.08.25 16:18
    No. 1

    엥 템이 어데서 나왔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딜로
    작성일
    24.08.25 20:55
    No. 2

    스킬북이나 에테르 오브같은 드랍 템은 귀중품이라 단순 부산물과 달리 어떻게 처리하더라도 눈 앞에 떨어진다는 설정입니다.
    너무 나중에 언급하게 되는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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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2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3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4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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