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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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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최근연재일 :
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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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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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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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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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진짜 재능이란 (2)

DUMMY

 어제 했던 걱정이 바로 이거였다.

 서태후인지 뭔지, 아무튼 저 녀석을 이겨버리게 되면 분명 빅터 교관이 내게 대련하자고 말하는 상황 말이다.


 나는 곧바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싫습니다. 그런 규칙 없다는 거 압니다.”


 룸메이트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교관에게도 사실확인을 했었다.

 수석 수료생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당사자와의 대련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보는 눈도 많으니, 혹시라도 이걸로 단념한다면 좋을 텐데.


 “아니, 거짓말이 아니네. 이의제기 신청 결과를 훈련 본부에 제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석 교관의 손에 달렸거든.”


 “···.”


 이런 치사하고 유치한 인간을 봤나.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대놓고 결과를 전해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꽤 많이 만나봤다.

 이빨을 숨기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맹수와도 같은 타입.

 그러다가 자극을 받기라도 하면 그 야생성이 툭 튀어나와 버리는 사람 말이다.


 쯧.


 짧게 혀를 차고 고민에 빠졌다.

 대련이니 죽을 일은 없고, 치료 비용도 아마 교관이 부담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가장 아까운 게 제일 컸고, 그리고 또 이길 수 없을 게 뻔하니까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분명 ‘에코즈’였다.

 마과학 연구실의 그 사람처럼, 초월자들이 호기심 충족을 위해 세상 이리저리 내려보낸 ‘아바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관을 하고 있다는 건, 최소 50레벨 이상은 될 거라는 이야기야.’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여럿 해본 베테랑 전사.

 분명 괜찮은 마나 연공법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가 진심을 낸다면, 임기응변이나 흉내뿐인 기술들로 상대해 봤자 전부 파훼 될 것이 뻔했다.


 그냥 져준다는 선택지도 고를 수 없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거니와, 신청 결과를 제출하지 않겠다며 협박하는 사람이 아닌가.

 만족할 만한 싸움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당연히 대련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느니 하며 심술을 부릴 게 뻔했다.


 내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 손이 근질근질한 듯한 티를 감추지 않던 빅터 교관이 추가로 제안을 해왔다.


 “고민되나? 그렇다면 말이야. 대련에 응할 시 이 단련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네.”


 “어차피 전 심화 과정을 하려고···.”


 “전부 면제. 등록할 필요도 없네. 그런 것 상관없이 이 단련장을 쓸 수 있네. 나도 보는 눈은 있네.”


 그가 말하는 ‘보는 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대련과 실습이 내게 무의미 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단련장에 얼마나 오래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빅터 교관의 이번 제안은 꽤 솔깃했다.


 기초 과정과 다르게, 심화 과정은 대련이나 몬스터 실습이 필수라고 들었다.

 하지만 전부 내게는 필요 없는 일이다.

 대련도 어차피 시간 낭비고, 이곳의 몬스터는 부산물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숲의 안내자처럼 환영으로 이루어진 가짜 몬스터였으니까.

 돈도 안 되고, 경험치 오브도 안 떨어뜨리는데 내가 그걸 잡을 이유가 어디 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는데,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다.


 “으음···.”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고민하는 척을 이어갔다.

 왜냐고?

 지금 저 교관의 손을 봐라.


 [ 피아노라도 치는 줄 알았습니다. ]


 무기를 쥐고 싶어서 안달이 나다 못해 손가락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나.

 빅터 교관이 당당하게 이야기를 꺼내긴 했어도, 사실 내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거절한 뒤 도시 상층부에 찌르러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또한 알고 있다는 거다.

 칼자루를 쥔 쪽은 교관이 아니라 나라는 말.


 “무기고. 무기고를 열어주지. 원하는 장비 하나를 고를 권리를 미리 주겠네.”


 “···최종시험 우수 통과자에게 준다는 장비 말입니까?”


 역시, 뭐가 더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는 자경단들이 사용하는 실전용 장비를 잔뜩 보관해 둔 창고가 있었다.


 튜토리얼 최종 통과 시험.

 그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자들에겐 무기고를 개방해 원하는 것을 하나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주는데, 그것을 미리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수준 높은 장비는 아니지만, 당연히 기초 훈련 이수로 받는 장비들보단 훨씬 좋다.

 하지만.


 “흐음···. 어차피 시험 보면 얻을 텐데···.”

 “세 개.”

 “거기 장비들 수준이 사실 좀···.”


 다만 그건 기초 지급 장비에 비했을 때의 이야기라, 실제로 돈 좀 있는 중산층 개척자의 경우 주 무기를 바깥에서 미리 제작하여 들어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내가 젊은 시절에 쓰던 무기 중 하나를 고르게 해주지.”


 오.

 그건 좀 진짜로 솔깃한데?


 “거기에 나와 언제든 대련할 수 있는 권리.”


 “제안은 감사하지만, 역시-”


 [ 앞으로도 귀하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


 거기서 악수를 두면 어떡해요, 이 사람아.

 알티까지 이건 불합격이라는 듯 말하고 있지 않나.


 “크레딧.”


 쿵.

 어느새 무기를 들고 바닥에 내리찍은 빅터 교관이, 이를 악물었지만 최대한 티내지 않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 받을 크레딧에 내가 좀 보태도록 하지.”


 “···.”


 “장담컨대, 시험을 끝낼 때까지 호화롭게 생활할 수 있을걸세.”


 “치료 비용도···.”


 “그건 처음부터 줄 생각이었고.”


 원래 받아야 할 수석 수료 보상에 더해서.

 단련장 자유 이용권, 치료비 제공, 본인이 사용하던 무기 제공, 거기에 추가 크레딧까지.


 “어쩔 수 없네요.”


 콜.


 당연히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보조 교관님께 가장 무난한 크기의 롱소드를 하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무기가 바뀌는 것을 보자마자 빅터 교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숏소드와 단검이 주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제는 롱소드를 달라고 하니 흥미가 솟았겠지.


 ‘알티, 지금 투자하자.’


 [ 미리 얘기하셨던 대로 그대로 갈까요? ]


 ‘응.’


 [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 레벨 변화 : 3 > 18 ]

 [ 근력 : 12 > 25 ]

 [ 내구 : 17 > 25 ]

 [ 민첩 : 18 > 43 ]

 [ 후유증으로 인해 능력치가 감소됩니다. ]


──────


이름 : 성도혁

레벨 : 18(18)

상태 :

(+) 

(-) 영구 근 손상, 과도 자극 후유증, 신경 손상, 신경 쇠약


<기본 능력치>


근력 : 21(-4) / 55

내구 : 21(-4) / 51

민첩 : 34(-9) / 91

지능 : 9(-1) / 16

마력 : 5 / 9


잔여 성장 포인트 : 0


<전문화 능력치>


<특성(1)>

 -단련의 소산(F*)


<업적(0)>


──────


 단련의 소산 특성 덕분에 후유증으로 인한 능력치 감소가 꽤 줄어든 게 보인다.

 그렇게 감소한 능력치는 총 18.

 6레벨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이니, 지금 내 능력치는 12레벨의 개척자와 엇비슷하다.


 내구가 상승하자, 질풍파계검식의 초식을 억지로 사용해 비명을 지르던 팔과 허리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늘어났던 인대 또한 마법처럼 원상 복구된 것 같고.

 역시 시스템의 힘이란.


 보조 교관님이 어느새 롱소드를 가져다주었다.


 “그럼.”


 어설픈 기교를 쓰기엔, 상대의 힘에 비해 나의 능력치가 너무 낮다.

 같잖은 수 따윈 한 번에 파훼 당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허무하게 질 생각 따윈 없다.


 취하는 자세는 중단세.

 검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



 ‘이건···.’ 


 가슴팍과 얼굴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에 서태오는 정신을 차렸다.

 아직 시야는 흐릿하고, 뇌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주변이 웅웅거리는 것처럼 시끄럽게 느껴졌다.

 의식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그는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결론은 확실하게 낼 수 있었다.

 한번 패배한 뒤 추하게 재도전을 요청했고, 그럼에도 또다시 패배했다는 것.

 심지어, 자신과 같은 검법으로 말이다.


 ‘스승님께서, 분명 아무에게도 전수한 적 없다고 하셨는데.’


 틀림없다.

 숏소드를 사용했고, 양손을 쓴 탓에 자유로움도 부족하고, 내공조차 실리지 않았다.

 회전의 묘리도, 끊임없는 순환도 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필시 그것은 광풍환류검법이었다.

 그걸 어떻게 사용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백 그룹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최정상급 랭커를 무려 한달이나 고용하면서 얻어냈던 기술이 아니던가.


 최상위권 개척자들의 시간은 금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돈만으로 그들의 시간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고, 태백그룹에서 접촉한 랭커는 돈보다도 서태오가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했다.


 그 랭커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태오에게 이것저것 테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체력의 한계는 어디인지, 얼마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지, 강제로 내공을 주입 당해도 정신을 잃지 않는지.


 각성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버텨내기엔 너무도 힘든 테스트들.

 그걸 서태오는 이 악물고 견뎌냈다.


 -이 정도면 자격은 충분하군.


 그렇게 재능을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 검법을 전수할 수 있었다.

 그의 자신감은 스승의 인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스승님을 볼 낯이 없다.’


 점차 시야가 안정되었다.


 자신을 치료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태백 그룹에서 큰돈을 주고 육성해 낸 신관 윤태성이었다.

 그의 양손이 가슴팍과 얼굴을 덮고 있었고, 거기에 맺힌 따뜻하고 노란 기운이 몸을 치유해 주는 중이었다.

 그 옆에는 최민서와 주나영을 포함해 그의 파티원들이 모두 모여있는 게 보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파티원들의 시선은 본인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어디를···?’


 뻐근한 목을 앞으로 기울이며 윤태성의 손을 치웠다.


 “아···.”


 그가 일어났음을 알아채고 윤태성이 짧게 목소리를 냈지만, 잠깐 돌아왔던 시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서태오의 시선 또한 같은 곳을 향했다.


 캉!

 카각!

 쿵!


 성도혁, 그리고 빅터 교관.

 바로 그 두 명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날뛴다.


 검이 휘둘러지고, 철퇴의 사슬이 그 궤적을 가로막는다.

 순식간에 검은 역수로 전환되고, 기묘한 각도를 그린다.

 그게 채 닿기도 전에, 철퇴의 손잡이가 검신을 짓누르려고 내려온다.


 그 둘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서태오의 가슴 한켠에는 절망감이 내리 앉았다.


 ‘애초에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던가.’


 그 움직임과 담긴 힘은, 조금 전 자신과 대련을 벌일 때와는 몇 배 이상 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은 그의 전력조차도 끌어낸 적 없던 것이다.


 “크흐···!”

 “큭!”


 성도혁은 계속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초 훈련 첫날 서태오와 빅터 교관의 대련과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빅터 교관은 마치 늑대처럼,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이빨을 다 드러낸 체 소름 돋을 것만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에서 침까지 흘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맹수가 빙의한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그의 주 무기가 사슬 철퇴라는 것조차도, 서태오는 지금 처음 알게 된 것이었고.


 내리치고, 받아치고, 사슬이 걸리고, 튕겨 나가고.


 한 호흡에 도대체 몇 합을 주고받는 것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와···.”

 “저걸, 어떻게···.”


 그의 주변 파티원들은 감탄의 기색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래.

 서태오에게조차 그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움직임도, 무기가 그리는 궤적들도, 주변에 흩날리는 흙먼지까지도.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도 유려하게 느껴졌다.


 동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성도혁은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철퇴의 이중 회전 궤적을 피하면서도, 사각에서 찔러 들어간 공격이 쉽게 파훼 되면서도.

 저토록 공포스러운 교관의 기세에 맞서면서도.

 그는 웃고 있다.


 즐겁고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나.

 교관과 성도혁 둘 모두, 의미는 다르지만 만개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자신과는 다른, 전투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투지가, 그 재능이.

 실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순수하게 전투를 즐긴 적이 있던가.’


 가슴 한켠에 있던 까만 절망감이 서서히 희석되어 간다.

 절망감은 곧 경악이 되었으며, 경악은 감탄으로.


 이윽고 색을 바꾸어가던 감정은 하나의 씨앗이 되었다.

 그 씨앗의 이름은 '동경'이었다.


 ‘나도, 저런 싸움을 할 수 있었으면.’


 서태오의 생각이 그렇게 변한 순간.


 쐐애액!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도혁의 머리를 향해 철퇴가 쏘아졌다.



**



 폭발적인 힘을 철퇴에 실은 빅터 교관의 눈은, 성도혁의 오른쪽 손을 향해 있었다.


 이미 이 대련의 승자는 조금 전에 결정 났어야만 했다.

 성도혁이 어느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진즉에 판단이 끝났고, 그 이상의 힘으로 분명 갈비뼈를 모조리 부숴냈어야했다.


 하지만 그때, 성도혁은 예상외의 행동을 선보였다.

 몸을 회전시키며 찰나의 시간을 벌고,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에 있던 수련용 단검을 꺼내 철퇴의 사슬을 비틀었던 것.


 그는 그 단검을 다시 집어넣지 않고, 거꾸로 돌려 롱소드와 함께 쥐고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그의 자세를 무너뜨렸고, 철퇴는 그의 머리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슈욱!


 “크!”


 그래, 이렇게 단검을 이용해 철퇴의 사슬을 노리겠지.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카가각!


 그의 움직임보다 한 박자 더 빠르게, 철퇴를 내리쳐 사슬을 단검에 끼이게 만들어버렸다.

 사슬의 구멍 사이에 완벽히 꽉 끼어버린 단검을 본 순간.


 “크하아앗!”


 캉!


 기괴한 기합 소리와 함께, 단검이 퉁겨져 나왔다.

 이제 성도혁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롱소드 하나.


 이것은 오로지, 그와 자신 간의 신체 능력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일임을 빅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수준을 맞추기 위해 마나 연공법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자신과 같은 ‘철의 길’을 걷는 자들은 구태여 의식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는 순간 피와 근육에 약간의 마나가 흐른다.


 순수 신체의 능력도 차이가 나는 걸로도 모자라, 분명 어떤 연공법도 없다.

 그런데도 성도혁은 자신의 공격을 힘겹게나마 모두 받아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경험을.’


 전장에서 쌓여온 그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다.

 성도혁의 전투 경험은 본인 이상일 것이라고.

 확신은 없지만, 어쩌면 그는 빅터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죽을 고비를 헤쳐왔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세계 저편, 개척자들의 고향이라는 원천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일까.


 본인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비대칭적인 전력 차이의 대련임에도, 자신이 저 사내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에 극렬한 쾌감이 느껴지고 있다.


 ‘힘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가 얼마나 엄청난 전투를 헤쳐왔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움직임도, 튼튼함도, 힘도.


 롱소드밖에 남지 않은 그는, 그야말로 외통수였다.

 그 또한 그것을 실감하고 있겠지.


 카가각!


 그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철퇴를 휘둘렀다.

 피할 수 없는 성도혁은, 자연스레 롱소드를 사슬에 걸 수밖에 없었다.


 이 무기마저 잃게 된다면, 그걸로 끝.


 두 팔 근육이 실핏줄을 일으키며 부풀어 오른다.

 옅은 마력이 그 힘을 강화하고, 온 힘을 다해 철퇴를 당긴다.


 캉!


 ‘호오.’


 그러나 롱소드는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슬에 의해 순간적으로 끌려가던 와중 크게 몸을 털며 속박을 빠져나갔다.


 이걸 또다시 기교로 풀어내는 모습에 감탄이 터져 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그가 어떤 공격을 시도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외통수의 공격을 시도할 뿐···.


 움찔-


 일 텐데.


 분명 그거면 끝이어야 했을 텐데.


 회수되는 철퇴의 그림자 뒤에, 무언가가 바짝 붙은 채로 쫓아오고 있다.


 오싹!



 그리고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 빅터는 자신의 세상이 멈춘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털 끝 하나하나가 곤두세워졌다.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건, 틀림없는 죽음이었다.

 확정된 죽음을 향한 공포심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팔을 뺄 수 있나?

 안된다.


 몸을 틀어버린다면?

 이미 틀렸다.


 지금이라도 몸속의 마나를 돌려, 검에 기운을 싣는다면?

 그것조차 이미 늦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 자세에서, 이런 속도를? 이런 기운을?


 지금, 나의 팔을, 허리를, 목을 어떻게 움직여내더라도.

 이 검은 반드시 내 목에 닿는다.


 죽는다.

 죽고 만다.


 서걱―!


 목이, 잘려 나갔다.


 세상이 뒤집힌다.

 시야가 점멸한다.


 뒤집어진 세상 속에서, 거꾸로 돌아간 성도혁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얼굴 절반을 넘게 덮은 검은 그림자, 그리고 붉은 눈이, 한없이 여유롭게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마치.



 “허어어억!”


 빅터는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무기를 쥐고 있지 않는 왼손이 미친 사람처럼 목을 쥔다.

 목은, 붙어있었다.

 죽지 않았다.


 ‘환···상?’


 “아씨, 허억···허억···. 아오! 이게··· 허억··· 안되네.”


 붕붕붕붕붕···.


 쿵.


 빅터의 등 뒤, 저 멀리서 무언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자, 대련용으로 가져왔던 롱소드가 벽에 부딪힌 채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검은 분명 성도혁이 쥐고 있던 검이었다.


 “후우, 후읍. 칫. 흐아···. 졌습니다.”


 그는 숨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며, 양손을 무릎에 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련의 패배를 인정하는 그에게 주변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서태오를 쓰러뜨리고 교관과 호각이라니!”

 “다른 교관도 아니고, 빅터라고 빅터!”

 “이런, 미친! 이름이 뭐라고? 성도혁?”


 거의 모든 훈련생들이 그에게 관심을 쏟아내고 있다.

패배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빅터의 진심을 보이게하고, 그가 몇번이고 뒤로 물러나게했다.


 곧 이 소식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겠지.


 “하···하하···.”


 빅터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을 쥐고 있었다.


 지옥 같은 전장들을 헤쳐왔다.

 등 뒤에서 배신한 동료의 목을 친 적도 있고, 의뢰비를 아끼기 위해 용병단을 통째로 함정에 빠뜨린 영지와 전쟁을 벌인 적도 있다.

 그가 현상 수배자가 된 하늘섬은 손가락 발가락을 가득 채워도 모자랐다.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보아왔기에, 살기를 느끼고 견뎌내는 정신력 따윈 옛날 옛적에 갖췄다.


 ‘살기였지만, 동시에 살기가 아니었다.’


 살기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기필코 저자의 목을 물어뜯겠다는 마음.

 하지만 방금, 성도혁에게 느껴진 것은 그것과 전혀 달랐다.

 그건 빅터 교관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환상이 아니다.


 그가 내뿜었고, 빅터가 느낀 것.

 그건 성도혁의 떠올린 하나의 미래였다.

 확신의 수준을 벗어나, 이미 결정되었음이 틀림없었을 미래.


 ‘성도혁의 머릿속에서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나의 죽음이 그려졌다.’


 그가 쌓아왔던 경험 속에서, 반드시 실현될 미래의 그림자였기에.

 빅터가 쌓아왔던 경험이, 그 그림자를 머릿속에 투영시키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보였던 마지막은 대체 무엇인가.

 그 검은 그림자와 붉은 눈은.


 혼란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사이,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파티는 지금 꾸릴 생각이 없으니까, 나중에. 오늘은 쉴 겁니다. 제발 길 좀.”


 달라붙는 사람들을 하나둘 떼놓으며 다가오는 사람.

 바로 성도혁이었다.


 “저기, 교관님.”


 그는 넋이 나간 빅터 교관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활짝 웃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는 데다가 숨조차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아 보이는데도, 무척이나 상쾌한 미소였다.


 “말한 것들, 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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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철과 기계의 섬 (3) NEW +1 11시간 전 256 23 18쪽
29 철과 기계의 섬 (2) +3 24.09.15 557 30 18쪽
28 철과 기계의 섬 (1) 24.09.14 685 31 18쪽
27 뜻 밖의 행운 (3) +2 24.09.13 795 33 18쪽
26 뜻 밖의 행운 (2) +4 24.09.12 924 36 18쪽
25 뜻 밖의 행운 (1) +2 24.09.11 977 38 18쪽
24 경계를 넘는 자 (4) +1 24.09.10 1,030 40 18쪽
23 경계를 넘는 자 (3) 24.09.09 1,045 36 20쪽
22 경계를 넘는 자 (2) 24.09.08 1,149 42 19쪽
21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3 44 19쪽
20 진짜 재능이란 (5) 24.09.06 1,254 43 18쪽
19 진짜 재능이란 (4) +2 24.09.05 1,274 42 19쪽
18 진짜 재능이란 (3) +1 24.09.04 1,284 43 20쪽
»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7 44 20쪽
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2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3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8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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