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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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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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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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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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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진짜 재능이란 (4)

DUMMY

 내가 가진 크레딧은 이곳에서 3달 넘게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다.

 하지만 하우징 비용으로 따져보니, 공용 재화로서의 가치는 아쉽게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신예의 둥지.

 일반적으로 레벨이 낮은 지역일수록, 그 재화의 가치도 낮아지는 법이었다.


 그래도 반장님은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설치할 수 있는 설비들을 성실하게 알려주셨고.


 “예, 반장님 들어가세요.”

 “그래, 애송이. 다음에도 가능하면 한낮에 부르라고.”


 작업을 마친 반장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포탈 너머를 향해 사라지셨다.


 재밌는 것은, 지금까지도 반장님과 서로 제대로 이름을 나누지 않았단 걸 방금에서야 알아차렸단 점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를 ‘반장님’이라 불렀는데, 정작 내 이름은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것.


 그렇게 조금 전 통성명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애송이’와 ‘반장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선 그런 게 있지.’


 이름을 부르기엔 조금 멋쩍기도 하니 입에 붙은 호칭을 그냥 계속 부르는 그런 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반장님을 보내고, 나는 무려 10만 크레딧을 지불하며 완성된 설비에 다가갔다.

 하우징 문 바로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영광스러운 첫 번째 하우징 설비.


 그건 바로 지하수 펌프였다.


 끼익. 끼익.


 옛날 시골에나 설치되어있을 법한 모양의 펌프.

 끝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밀자,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수통에 물을 담고 알티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알티?”


 [ 해당 물을 아이템 화하여 분석합니다. ]

 [ 병균 및 해로운 성분 존재하지 않음. pH 농도는 7.1로 적합합니다. ]

 [ 미네랄 함량이 높아 ‘광천수’로 분류됩니다. ]

 [ 판정 결과, 먹는 물로 크게 적합합니다. ]


 “이야, 이제 물 걱정은 끝났네.”


 별 거 아닌 것 처럼 보여도 식수는 정말로 중요했다.


 나도 검색으로 알게 된 거지만, 생각보다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섬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게임이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 해본 문제점이었다.

 가상현실 게임이었니 마실 것도 많고 갈증도 구현되어 있지만, 디버프로 존재할 뿐 실제로 목이 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 섬의 사람들에겐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막상 개척자들이 먹으면 배탈이 나서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사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지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쓸만한 설비가 몇 개 없길래, 살짝 테스트하듯 부탁해 본 것이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펌프를 몇 번 더 눌러보며 물이 나오는 장면을 신기하게 감상하다 보니, 이제는 하우징에 다른걸 설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냉장고 같은 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주방도 있으면 좋겠고, 침대도 다른 거로 갈고 싶고.

 욕실이나 창고, 뭐 이것저것 다 바꾸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했다.


 ‘옛날에는 싸우다 보면 돈이 자연스럽게 모이니까, 그닥 부족한 줄도 몰랐는데.’


 처음부터 150레벨 점핑 캐릭터로 시작한 게임이었으니, 돈을 버는 것도 수월했었다.


 역시 얼른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여기만 끝내면, 일단 2계층으로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하자.’


 돈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두 의남매의 소식을 찾기 위해서도 2계층을 먼저 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곳에는 한국 개척자들이 한 번은 꼭 거쳐 간다는 거대한 하늘섬이 있었으니까.


 자 그럼, 밥도 챙겨 먹었고 하우징 정리도 끝났고.

 슬슬 나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집구석에 보관해 두었던 인장을 손에 들었다.

 가시나무 덤불과 두 마리의 흰 뱀이 그려진 배지.


 2주 전의 협박을 따라서 마과학 연구실로 찾아갈 시간이었다.



**



 안내 책자에는 학술 지구의 방향과 대략적인 위치만 나와 있을 뿐, 그 내부에 대한 설명까지는 없었다.

 가는 길에 중앙 시장의 주민분들께 ‘마과학 연구실에 대해 아시냐?’라고 묻자, 다들 반응은 한결같았다.


 ‘가보면 알 거다, 라···.’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도착하니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학술 지구 입구를 지나 한참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검은빛과 은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4층까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검은 유리와 금속으로 이루어져 마치 현대 예술 작품을 연상케 했고, 차가운 듯한 세련미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던 것.


 지잉-


 -입장해 주세요.


 입구에서 제시하라던 배지는 사람이 아닌, 도어락처럼 생긴 스캔 장치에 인식시키는 형태였다.

 그냥 어디 현대 예술관에 마법진을 덕지덕지 붙여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척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놀라운 시설이었다.


 “이 정도의 기술력이면 소문이 없던 게 이상하지 않나?”


 [ 예. 아무리 개척자들의 출입이 드물다는 학술 지구라지만,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


 실제로 이런 첨단 시설이 존재했다면, 내가 ‘신예의 둥지’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당연히 정보가 나왔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곳에 대한 소문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겠지.


 ‘아바타가 개입한 시설이니까.’


 이 또한 그녀가 ‘아바타’라는 사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신예의 둥지는 각기 독립된 게임의 채널처럼 수천 개가 존재한다.

 다른 섬에 실재하는 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보낸 아바타는, 당연히 그 많은 둥지 중 한 군데에만 있고.


 이계에 있는 수많은 하늘섬들 중, 유독 신예의 둥지에는 헛소문이 많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튜토리얼 섬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그것도 사실 아바타들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니 이 마과학연구실 또한, 오직 이 신예의 둥지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시설이겠지.

 역시 이건 알티 덕분에 연이 닿게 된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나는 마법진 속에 감금되고 말았다.



**



 “···저기.”


 “아니, 이것도 간섭이 안 되네. 도대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눈앞에 띄워진 스크립터를 이리저리 조작하는 여성.


 “잘못된 건 아닐 텐데, 이상하네 진짜···.”


 혼자 화면을 보고 중얼중얼하고 자판을 이리저리 조작하는 게, 정말 무슨 미친 과학자처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내 말에 반응도 하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지금 마법진 속에 감금되어 있다.

 감금이라고는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처음에는 좀 위험한가 싶긴 했다.


 내가 도착했음을 확인한 연구실장이, 기다리기 힘들었다는 듯 마력을 이용해 나를 그대로 낚아채더니 ‘테스트를 해보자’라며 이 마법진이 그려진 공간에 세워둔 것.

 마력의 실 같은 것이 줄줄이 이어진 머리띠를 착용하게 했고, 그걸 스크립터에 연결해서 뭘 이리저리 한참이나 만지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기, 엘레이나 씨.”


 그렇게 한참 뭘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도 해주지 않으니 내가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었고, 일단 연구실장의 이름이 엘레이나 노아르라는 것 정도의 수확은 있었다.

 물론 기억에 없었으니, 아바타로서의 이름일거고.


 “왜.”


 안경을 치켜세우며, 불만 있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


 또 하나 알게 된 점이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의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은 아마 마법으로 만든 환영 같은 거였을 거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녀는 매력적인 금발 머리를 대충 싸매서 위로 올려 묶은, 그야말로 연구자 같은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머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력의 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하는지 설명이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끙. 그래.”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결계 안으로 손을 훅 집어넣는 엘레이나.

 그녀는 내 머리에 있던 마력끈을 대여섯 개 정도 꺼내더니, 자신의 머리에 툭툭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스크립터로 돌아가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자, 그 끈들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에게선 보이지 않던 현상들이었다.


 “그러니까, 흠. 뭐라고 비유해 줘야 하지. 뇌를 일종의 계산기처럼 강제로 써서, 마법을 발현하는 과정을 관측하는 기구야.”


 그녀의 눈앞에 화륵하고 라이터에서 나올만한 작은 도깨비불이 솟아올랐다.

 1등급의 기본 마법 중 하나인 엠버(Ember, 불씨)였다.


 “마법적인 효율은 훨씬 떨어지는데, 스크립터가 강제로 캐스팅 과정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법 계산을 끝냈는지 볼 수 있어.”


 자신의 뇌가 어떤 계산과정을 거치는지 관찰해서, 비효율적인 과정이 있다면 찾고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장치라고 한다.

 근데, 그러면 그 말은.


 “···그러니까 제 머리를 맘대로 열어서 보려고 했다고요?”


 “응. 왜? 그냥 계산 과정만 보는 거잖아. ···아.”


 엘레이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나를 보며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불만이라도 있어?”


 [ 마력 압력이 감지됩니다. ]


 마력을 일으켜서 상대의 기세를 압박하는 협박 수법.

 그녀는 아바타를 만들고 1계층의 벽을 뚫어 내려보낼 정도의 실력자다.

 이런 초보자 구간의 개척자들 따윈, 정말로 개미 다루듯 단숨에 목숨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나는 배 째라는 듯이 배짱을 부리며 말을 이어갔다.


 “예. 불만 많습니다. 프라이버시 모르십니까?”


 실제로 알티가 알려주는 메시지가 아니라면, 엘레이나가 하고있는 마력 위협은 거의 느낄 수도 없었다.


 “허락도 없이 제 뇌를 마음대로 건드리고 그러시는 게 어딨습니까. 전 그냥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요.”


 사자의 입에 대놓고 목을 들이미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고, 너무 나갔나 싶어 살짝 심장이 쫄깃하게 오므라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로 날 개미나 다름없이 봤다면, 저번에 만났을 때 죽였겠지.’


 분명.

 그녀는 날 죽이지 않을 것이다.


 “···진짜 이상한 놈이네. 알았어. 안 할게.”


 툭. 투둑투둑.


 머리에 꽂힌 마력의 실이 끊기더니, 나를 가두고 있던 막 마저 사라졌다.

 예상대로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내 요청을 겸허히 수용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가진바 힘에 비해 그녀는 기괴할 정도로 유순하며 착한 편에 속했다.


 상대의 말에도 쉽게 휘둘리고, 정말로 사람을 죽일 생각은 잘 하지 않는 느낌.

 아마도 어디 마도 문명이 엄청나게 발전한 하늘섬의 귀족 영애 같은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앞으론 머리 뒤져보기 전에 허락 정돈 구할게. 됐어?”


 “···예. 그거면 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머리를 뒤져보겠다는 선언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마법사가 있다는 게 황당할 정도로 신기해서였다.


 ‘어디서 이런 양갓집 규수 같은 마법사가 나왔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기중심적이고 매너가 없는, 그냥 소위 말해 싸가지 없는 성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일 때의 이야기.


 그녀는 아바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

 그런데 내가 아는 고위계 마법사들 중 그 누구도 1계층의 개척자에게 이리 친절히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다 성격이 ‘굉장히’ 괴팍하다.

 일단 사람을 잘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위 10%의 인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윤리적 도덕적 기준도 없이, 그저 실험이 성공하면 만족하는 미친 인간들이 대다수니까.

 그나마 좀 스스로 자비롭다고 생각하는 극소수의 마법사들도, 1계층의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며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나야 좋긴한데.’


 물론 내가 그녀에게 접근한 목적은 마법을 뜯어내려는 것이었으니, 다루기 쉬운게 훨씬 좋긴 했다.


 도대체 어느 섬에서 이런 호구··· 아니, 바람직한 마법사를 배출해 낸 건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렇게 좁은 마법진에서 해방되어, 그녀가 계속 집중 중이던 화면에 가까이 갔다.

 하지만 내 지식으론 뭐가 적힌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뇌가 마력 간섭을 거부하는 것도 신기한데, 도대체 어떻게 마력 재능까지 존재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가네.”


 “마력 간섭을 거부한다고요?”


 “응, 봐봐.”


 엘레이나가 내게 손을 뻗더니, 아- 하고 깜빡했다는 듯 다시 손을 거두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머릿속 좀 건드릴게.”


 “···예, 그러십쇼.”


 이건 허락이 아니라 통보 아닌가 싶었지만, 굳이 태클을 걸진 않았다.


 그녀의 손이 빛나고, 차가운 마력의 기운이 머리 피부를 타고 흐르는 것이 조금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 외에 다른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봐. 내 마력도 거부하고 있잖아. 무슨, 밑 빠진 독 마냥 마력이 사라지는 건 처음 봤어. 내 아까운 마력.”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엘레이나.

 뇌가 마력을 거부하고, 빨아들인다니.

 내게 그런 특성은 당연히 없다.


 ‘알티, 네가 한 거야?’


 [ 마력 간섭이 들어오면 차단하려고 했던 건 맞습니다. ]

 [ 하지만 제가 한 게 아닙니다. ]


 알티 또한 모른다는 말을 이어왔지만, 잠시 뒤 무언가 생각한 듯 다시 말을 걸어왔다.


 [ 어쩌면, 격이 달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


 ‘격?’


 [ 제가 관리하는 체계, 그러니까 이 시스템이 마법보다도 더 상위의 법칙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


 상위의 법칙이라.


 왠지 그 말을 듣자마자, ‘크로노 스피어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처음 각성하던 당시 알티가 알림창에 띄운 단어.

 그러나 로그에는 남아있지 않았었다.


 확인은 없지만, 어쩐지 그게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 모르겠다. 그래.”


 그녀는 기지개를 한번 쭉 켜더니, 의자에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해볼 건 다 해봤으니, 이제 네가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안 남았네. 마법은, 스킬 전수로 할 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근처의 책장을 뒤지기 시작하는 모습.


 “개척자들은 편해서 좋겠다. 마력 간섭만 할 줄 알면, 조금만 배워도 스킬이니 뭐니 하면서 마법을 흥청망청 써댈 수 있으니까.”


 “혹시 마법 이론을 아예 다 가르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처음부터 계획해왔던 요청을 했다.


 우뚝.


 내 말에 멈춰서더니, 이번에는 어딘가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 여기 있는 마법 교습소에서는 개척자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아?”


 “예. 대충은.”


 “대충? 이걸 봐.”


 그녀가 손을 한번 흔들자, 책장의 가장 윗줄에 있던 먼지 쌓인 책들이 줄을 지어 아래로 날아왔다.

 그걸 순서대로 눈앞에 띄워두곤, 제목을 하나씩 읽기 시작한다.


 “마나 위상이론. 아크메드 정리와 응용. 티르 변환식. 펠루스 미분 기초···.”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이름의 나열.

 거의 20권이 넘는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멈췄고, 그녀는 삐딱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너 시간이 아주 썩어 넘쳐? 이걸 처음부터 배우겠다고?”


 개척자들과 원주민들의 마법 사용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계의 원주민들과 달리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개척자는 마법을 ‘딱 한 번만’ 사용하면 된다.

 따라서 마법 교습소 등에서는 정확히 필요한 이론만 딱 정리하여, 주입식으로 어떻게든 그 마법을 쓰게 만들곤 한다.

 그 마법에 대한 캐스팅 방식과 마력의 움직임 등을 한 번만 이해하면, 시스템에서는 그걸 ‘스킬 습득’의 형태로 변환한다.


 그 이후에는 암산 과정이 아주 간략하게 줄어들고, 마력을 얼마나 불어넣을지만 결정하면 그걸로 끝.

 하지만, 그 방식에는 하나의 단점이 존재했다.


 ‘처음 마법이 등록되고 나면 더 이상 그 수준을 높일 수 없지. 아예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게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싸구려 파이어볼 마법을 잘 못 배워버린다고 치자.

 그럼 그걸 다른 파이어볼로 바꾸기 위해 스킬을 지우는 특별한 아이템을 사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된 파이어볼에 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머릿속에서 공식을 바꿔 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개척자의 방식이 극도로 유리한 것은 여전하다.


 처음부터 잘 배울 수 있으면 그만이고, 또 마법의 계산과정을 시스템이 단축해 준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니까.

 개척자들 입장에서는 ‘진짜 마법’을 배운다는 건 시간 낭비나 다름이 없다.


 정말로 마법을 이해하고 쓰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기초 이론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걸 다 익히고 이해하는 데에만 몇 개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언제 그걸 배우고 있겠는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스킬'로 마법을 익히는게 당연한 선택이다.


 그래,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예. 그 책들부터 다 이해하면 되는 겁니까?”


 “허.”


 내 말에 엘레이나는 기가 찬다는 듯 숨을 내뱉는다.

 미간까지 크게 찌푸리고는, 손짓과 함께 그 책들을 모두 내 앞으로 날려보냈다.


 “그래, 맘대로 해라. 2달 만에 잘도 그걸 다 배울 수 있겠네. 에이, 정말.”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스크립터를 바라보며,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하는 그녀.


 “짜증 나니까 그 선택은 안 물려줄 거야. 두 달 안에 내 앞에서 기초마법을 쓰는 모습을 못 보여준다면, 네 머리를 가져가 버릴지도 몰라.”


 담백한 말투였지만, 분명 진심이 담겨있었다.

 두 달 안에 기초마법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내 목은 그대로 약물에 절인 통 안에 보관되겠지.


 그럼에도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가져가겠다’가 아니라 ‘그럴지도 몰라’라니.

 고위 마법사가 할 말 치고는 참으로 귀엽기 짝이 없는 협박 아닌가.


 나는 가장 위에 놓인 ‘마나 위상 이론’이라는 책을 펼쳤다.


 개척자들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 안에서는 대부분의 언어를 문제없이 해석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고대 문자로 적힌 책이면 어떡하나 싶긴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책의 글자들은 확실하게 한글로 보이고 있다.


 ‘이야, 이게 도대체 뭔 말이야.’


 다만, 한글로 보인다고 해서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첫 페이지부터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은 기호와 수식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준비됐어, 알?’


 [ 물론이지, 혁. ]


 내게는 ‘당신만을 위한 완벽한 퍼스널 AI'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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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3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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