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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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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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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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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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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경계를 넘는 자 (1)

DUMMY



 히든 직업.

 게이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름다운 단어.


 레닉수스의 히든 직업은 시스템적으로 정확히 ‘히든 직업입니다’하고 구분되지 않는다.

 일인 전승의 무공 비급이라도 얻는다면 히든 직업이겠거니― 하는 것.


 나도 그런 히든 직업을 동경했다.


 시간을 짧게 되돌릴 수 있는 기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함께 싸워주는 격투가.

 서예가 마법으로 변하는 마법사나 기억을 재료로 삼는 연금술사 등.


 레이드 랭킹 최상위권에 있던 사람들은 9할 이상이 히든 직업 유저였다.

 물론 내가 전부 갈아치웠지만.


 그러나 누군가 전직 방법을 공개하더라도 얻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저들이 전직 NPC를 다 죽여버렸었지.’


 게임을 접던 다른 유저들이 그냥 재미 삼아 죽이는 일이 잦았던 것.

 그나마 살아있는 히든 직업은 그 자체에 하자가 있어 전직 의미가 없었고.


 나는 후발주자였기에 히든 직업에 대한 제대로 된 힌트 같은 것조차 얻어본 적이 없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만든 방식의 그릇 생성법이야. 정확히는 개조에 가깝고.”


 그녀가 손바닥을 위로 펼치자, 마력이 뭉쳐 심장을 둘러싼 작은 마력의 띠 모형을 형성했다.


 “이게 가장 대중적인 서클. 적은 마력으로도 자연 마력에 대한 간섭력이 뛰어나지. 하지만 느려. 또 심장에 만드는 탓에 신체 압박감이 심하지.”


 서클 마법은 주로 제자리에서 강력한 한방을 자랑하는 마법사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포대 타입에 가까운 그릇.


 살짝 손을 휘젓자, 이번에는 역으로 뒤집힌 오각형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베슬은 마력 간섭 재능이 넘쳐흐르는 마법사만 만들 수 있지. 간섭력은 조금 떨어져도, 순수 마력양이 어마어마해.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고.”


 베슬 식은 마력 손실이 적고 마법 생성이 빠르며, 순도 높은 마력을 모으기 때문에 마법사 간의 결투에서 우위를 점한다.

 서클식에 비하면 몸을 움직이기도 쉽고.


 “그리고 이게. 마력 네트워크야.”


 손 위의 마력은 커다란 형상을 그린다.

 인체 모형이 만들어지고, 그 속을 밝힌다.

 뇌부터 시작된 빛이 척수, 혈관, 신경을 따라 온몸으로 흩어진다.


 “마력 네트워크는 온몸을 하나의 그릇으로 사용해. 핏줄과 신경을 ‘링크’라고 부르고, 일정 지점마다 작은 마력의 그릇인 ‘노드’를 생성하지.”


 링크를 따라 흐르던 마력이 노드에서는 크게 번쩍인다.

 예술 같은 건 잘 모르는 나조차도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이런 방식이, 장점이 큰가요?”


 “서클보다 간섭력은 떨어지고, 베슬처럼 순수하고 강대한 마력을 담을 수 있진 않아. 마력의 질과 간섭력만 따지면 중간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적어도 네게는 의미가 큰 장점이 있지.”


 주먹을 꾹 쥐자, 환영이 흩어진다.


 “너, 마법사가 아니잖아. 검으로 교관과 싸우기까지 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검이나 봉, 활, 몽둥이에 맨주먹까지 뭐든 쓸 수 있으니, 검사보단 전사(戰士)라고 해야겠지.


 알티가 엄청난 마법 실력을 보여준다고 한들 그 길까지 바꾸진 않을 거다.

 나의 재능은 오롯이 몸을 다스리는 것에 있으니.


 “네트워크식 그릇의 최대 장점은 신체의 움직임이 오히려 마력의 흐름까지 강화시키는 데에 있어.”


 눈이 커진다.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과 발현 속도는 덤이고, 다른 세세한 장점도 많지. 지금은 말해줘도 잘 모르겠지만.”


 [ 하나 장만하시죠. ]


 ‘가만히 있어봐, 알티.’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알티가 먼저 나서서 구매··· 아니, 배움을 청할 정도다.

 그 말대로 상당히 매력적이다.


 “혹시 단점을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스킬 식으로 마법을 쓰려면 베슬 식이 훨씬 나아.”


 그 정도는 별것 아니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같은 마법이어도 발동이 상당히 복잡해져. 연산은 그대로지만, 마력을 수백 개의 링크로 뻗어 보내야 하니까. 나는 그래서 굳이 몸을 안 움직이거든.”


 그녀는 조금 불만이 서린 얼굴로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치만 너는 그냥 쓰려고 하면 마법이 나온다며.”


 머쓱하게 긁적인다.

 물론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고 알티가 한순간에 끝내버리는 거지만, 내 입장에선 쓰려고 하면 이미 마법이 생성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

 아주 완벽하게 말이다.


 그녀의 입장에선 좀 불공평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제게는 그럼 단점이 없네요?”


 “그래. 열받네.”


 “하하···. 혹시 제 뇌가 이런 데도 문제가 없을까요?”


 “시술은 뇌를 건드리진 않아. 척수부터 시작하니 문제는 없을 거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탁드립니다.”


 "그래. 어서 와, 로얄 아르카나 서킷티어의 길에."


 그녀는 어딘가 조금 들뜬 듯한 분위기로 그렇게 말했다.



**



 그녀의 안내를 따라 처음으로 1층이 아닌 지하에 들어섰다.

 바깥에서 본 것 보다 내부가 훨씬 넓어 보였는데, 아마 공간 계열 마법이 걸려있는 듯했다.


 코너를 몇 군데 돌며 도착한 곳은, 마치 현대식 병원의 수술실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벗어.”


 그 말에 주저 없이 웃통을 까고, 단숨에 바지까지 다 벗어 던졌다.

 속옷도 벗어야 하나 싶은 생각으로 밴드에 손가락을 걸치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야, 이, 야! 상의만! 미쳤어!?”


 고개를 홱 하고 돌린 채, 신경질적으로 말을 쏘아붙이는 엘레이나.


 “아니, 처음부터 말씀을 하시지···.”


 온몸의 혈관과 신경을 마력의 통로로 사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수술실 같은 분위기면 당연히 다 벗어야 하는 줄 알았지.


 아바타를 만들 수준의 고위 마법사라면 당연히 나이도 엄청 많을 건데.

 겉모습이야 20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세 자릿수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일 거다.

 연배도 있으실 분이 고작 속옷에 호들갑은.


 주섬주섬 바지를 챙겨입고 수술대 위에 몸을 눕혔다.

 그녀도 진정이 됐는지, 평소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네트워크식 그릇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펜 같은 무언가 내려오고, 그걸 잡은 채로 이리저리 휙휙 돌리는 모습.

 옆에 있던 고글까지 착용하곤 스크립터에 무언가를 입력하는 모습이 꽤 진지했다.


 나는 차분히 시술이 시작하는 것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치직.

 파직!


 “···.”


 “뭐야, 왜 그리 긴장했어?”


 “아니 그, 손에 있는 게 좀 흉흉해 보여서요.”


 처음엔 펜 같아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파란 손잡이에 송곳 같은 심지가 박혀 있고, 그 뒤로 전깃줄같이 생긴 것이 천장까지 빙빙 이어져 있었다.


 그래, 그건 딱 납땜하는 데 사용하는 전기 인두기 같이 생겼다.

 주변 분위기까지 현대적이니, 차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거 좀 뜨겁긴 할 건데.”


 치익 치익.


 “아플 정도는 아닐걸?”


 파지직, 치이익!.


 “···정말로요?”


 연기랑 불꽃이 나오는데요?

 아니, 진짜 겁나 뜨거워 보이는데.

 인두기가 아니라 용접기 아니냐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뚱해졌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나를 마력으로 위협할 때는 눈 하나 깜빡하지도 않았으면서, 고작 이런 기계에 쫄아버린 게 마음에 들지 않겠지.


 “에휴, 봐.”


 푹. 치이익.


 “우아악!”


 “꺄악!”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엘레이나는 몸을 크게 움찔하더니, 고글까지 벗고 황급히 자기 팔에 인두기를 가져다 댔다.

 아니, 시술기.


 그러더니 곧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오!”


 푹! 치지이익!


 “크으윽! 비밀 기지는 남쪽에 있다···.”


 “장난 그만 쳐!”


 “옙.”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거리자, 꽉 쥔 주먹으로 어깨를 퍽 내리친다.

 ···레벨 차이 때문인지 마법사의 주먹임에도 꽤 아프다.


 그녀의 말대로, 겉모습이나 소리와는 다르게 정말 살짝 따끔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뾰족한 저주파 치료기를 갖다 댄 정도의 느낌.


 처음 닿자마자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그냥 골려보고 싶은 마음에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하도 반응이 맛깔나다 보니, 자꾸 보육원 동생들을 대하는 것처럼 해버리고 만다.


 고위 마법사한테 이런 장난을 치는 저레벨 개척자라니.

 레닉수스 커뮤니티에 만약 이걸 올렸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각인 작업.

 목 아래쪽으로부터 양팔까지 무언가를 세밀하게 쭉 그려간다.


 “문신을 새기는 겁니까?”


 “피부가 아니라 신경과 동맥 위주로 기운을 유도해서 그리는 거야. 겉에는 아무 흔적도 안 남으니까 참아. 그리고 힘 풀고. 자꾸 뭐가 막힌다.”


 ‘알티, 들었지?’


 [ 마력 간섭에 최대한 순응하고 있습니다. ]


 그녀의 작업이 방해받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몸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어도 계속 참고 있었는데.


 “음···. 으음···.”


 무언가 잘 안되는 것인지, 골치 아픈 듯한 목소리를 내는 엘레이나.

 한참을 그렇게 뚝딱거리다가, 이내 손을 멈추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혹시 내 뇌가 마력 간섭을 거부하는 게 다른 식으로 영향을 준 것일까.


 “너, 몸이 왜 이래?”


 뜻밖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떠오르는 것은 있다.

 내 몸에 남아있는 신경 후유증.


 “신경이 다 박살 난 거나 마찬가지잖아. 이딴 몸으로 어떻게 대련하고 다니는 거야?”


 고글을 벗더니, 스크립터 화면을 내 눈앞까지 가져다 댄다.

 빨갛게 X자 표시가 나 있는 신체 부위들.


 “이 상태면 길을 못 열어. 노드가 생성되려면 신경이 건강해야 하는데···. 못하진 않겠지만, 강행했다간 이 신경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그럼, 마력 네트워크는 포기해야 합니까?”


 “아니, 포기는 아니고. 일단은 대체 가능한 마력 회로만 심어둘게. 조금만 손대면 네트워크식 그릇으로 금방 전환 가능해.”


 “회로식 그릇은 들어본 기억이 있네요.”


 “그래. 아, 이것도 일반적인 마력 회로랑은 달라. 네트워크식을 개발하기 전의 전신(前身). 내가 예전에 쓰던 그릇이니까 당연히 훨씬 좋은 편이야.”


 “부탁드립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회로식을 개선하다가 네트워크식 그릇을 개발한 거였군.


 고개를 끄덕이자 곧 시술이 재개되었다.



**



 회로식 그릇이 상체에 정착하고 난 뒤.

 나는 떠오른 정보창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미친, 이런 식이었구나.”


 [ 당신의 마력이 새로운 전문화 능력치 <회로 마력>으로 통합되려 합니다. ]

 [ <발칸델 큐브> 수집 특전 추가 효과 발동. ]

 [ 당신의 직업이 새로이 <아르카나 서킷티어>로 변경··· 실패. <신규 개척자>로 돌아갑니다. ]

 [ 마력이 전문화 능력치 <회로 마력>으로 자연 통합됩니다. ]


 [ <에테리움 서지> 획득! ]

 [ 등급 : C ]

 [ 종류 : 연공법 ]

 [ 숙련도 : 1등급 ]

 [ 마력 회로에 최적화된 기초 마력 연공법. 마력의 흐름을 부드럽게 유지하며, 회로 순환이 이루어질 때 신체의 저항을 줄입니다. 장시간 연공을 지속할 경우 최대 마력이 증가합니다. ]

 [ 회로 안정성 + 15% ]

 [ 신체 움직임으로 인한 마력 흐름 저항 -90% ]


──────


 이름 : 성도혁

 레벨 : 18(18)

 직업 : 신규 개척자

 상태 :

 (-) 영구 근손상, 과도 자극 후유증, 신경 손상, 신경 쇠약


 <기본 능력치>

근력 : 21(-4) / 58

내구 : 21(-4) / 54

민첩 : 34(-9) / 94

지능 : 9(-1) / 16


잔여 성장 포인트 : 0


 <전문화 능력치>


회로 마력 : 10


<특성(2)>

 -단련의 소산(F)(성장형)

 -에테리움 서지(C)


<업적(0)>


──────


 엘레이나의 말에 따르면 ‘에테리움 서지’는 이후의 연공법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기초단계의 연공법이라고 한다.

 이것을 마스터하지 않으면 어차피 고등급의 연공법을 배울 수 없다고.


 그럼에도 C등급.


 아마 본격적인 연공법은 S등급 이상일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연공법을 받아들였고, 마력이 전문화 능력치로 통합되어 양도 10으로 늘어났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전직이 되지 않고 <신규 개척자>를 유지하고 있다.


 입가가 씰룩인다.

 이게 안 좋은 상황이냐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다.


 [ 도혁 님. 이건 페널티가 없다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

 [ 이게 가능한 겁니까? ]


 알티조차 어안이 벙벙한 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나.


 ‘그래. 중복 직업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같은데.’


 [ 그럼, 앞으로도 핵심만 쏙 빼먹을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


 ‘이론상 직업을 무한히 얻을 수 있다는 거지!’


 발칸델 큐브의 특전 효과가 이런 식으로 발동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로 문제없이 마력 회로가 정착되었는지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다급히 엘레이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지금 바로 몸 좀 움직이러 가봐도 되겠습니까?”


 “힘들 걸. 연공법에 대한 이질감 때문에 마법은 바로 안 나갈 거야.”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그럼, 단련실 열어 줄게.”


 공간이 하도 넓다 보니 단련실도 있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라가자, 바로 근처에 현대적인 느낌의 단련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한 표적들이 서 있어 몸을 풀기에도 딱이었다.


 조작 패널을 이용해 표적들을 배치한 뒤, 옆에 놓인 연습용 목검을 들었다.


 ‘알티, 간다. 보조하는 느낌으로.’


 양손으로 목검을 쥐고, 천천히 호흡을 집중한다.


 떠올리는 것은, ‘던 브레이커 소드’.

 주로 ‘철의 길’을 가는 용병들이 사용하던 D급 검법으로, 몸의 균형을 크게 낮춘 채 적의 하반신을 집중적으로 노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테스트하기에는 딱 적합한 검법이다.


 몸을 크게 낮춘 채로, 대시를 발동한다.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몸.

 가속을 유지한 채, 첫 번째 표적의 하체에 일격을 날린다.


 따악!


 이어서 두 번째 표적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지금.’


 어깨의 마력 회로가 반짝이는 것이 느껴진다.

 격한 움직임을 하고 있음에도, 전혀 몸에 거슬리는 감각이 없다.


 [ 아케인 다트 ]


 연보랏빛 에너지로 이루어진 화살이 나타나더니, 두 번째 표적의 옆 허공을 허무하게 가른다.

 그 사이 나의 목검은 표적의 우측 하체에 적중했다.

 가벼운 발걸음과 빠른 움직임이, 표적과 표적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베어간다.


 [ 스파크 샷 ]

 [ 애로우 플리커 ]


 1등급 공격 마법들이 끊임없이 솟아나고 허공을 가른다.


 잠깐 시야에 들어온 엘레이나의 얼굴이 또 경악으로 물들어 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연계 공격이 끝난 후, 나는 자세를 멈추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하.”


 마법이 표적을 한번도 맞추지 못했지만 웃음이 나온다.

 맞추지 못한게 아니었다.


 조금 전 알티의 마법들은 허공을 가른 게 아니다.


 만일 상대가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면.

 만일 이쪽 팔꿈치가 내려오고 있다면.


 표적이 만일 가상의 적이라면 이런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상상하며 지시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알티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마법들을 쏘아 보내고 있던 것이다.


 “크으으!”


 결과는 대만족이다.

 주먹을 꾹 쥐고는 희열을 느낀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의 방어를 내가 직접 걷어낼 필요가 없는 콤비네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머지는 훈련을 하며 천천히 맞춰가면 된다.


 너무도 만족스럽다.

 단순히 공격 수단이 하나 늘어난 수준이 아니다.


 ‘알티, 분명히 위력 증가했지?’


 [ 예. 그렇습니다. 필요하다면 더 강하게 출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그럼 지능 능력치는 의미 없다는 가설이 들어맞았네.’


 [ 예. ]


 알티는 스킬화된 마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론을 쌓아가고 있다.

 내 본신의 지능 같은 걸 올리지 않아도, 녀석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마법의 위력은 강해진다는 말이다.


 ‘에테리움 서지도 문제없이 진행 중이지.’


 [ 예. 마력이 소폭 증가한 것이 감지됩니다. ]


 훈련을 진행해도 상한치만 올라가는 일반 능력치와 달리, 전문화 능력치는 훈련을 통해 수치 자체를 상승시킬 수 있다.

 물론 필요하다면 능력치 투자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고!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명상을 통해 마력 상한치를 높이고 잔여 능력치를 투자한다.

 그러나, 그 과정조차도 내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앞으로 쭉 안 쉴 각오 됐지?’


 [ AI에게도 노동청의 보호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


 ‘AI를 규제할 당국이 생기려면 몇 세기가 어쩌고 하던 게 누구더라.’


 [ 우우, 쓰레기. ]


 말은 저렇게 해도 알티의 목소리 또한 들떠있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복덩이 녀석.


 “···진짜, 그걸 바로 하네···.”


 엘레이나는 감탄은커녕 경악의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다가왔다.

 이질감 때문에 마법을 쓰기 힘들 거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몸처럼 다스리며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중에 신경이 회복되고 네트워크식 그릇을 설치하면, 그때 원래 주려던 연공법을 알려줄게.”


 “네, 그때 다시.”


 신경 회복이라.

 조금 쓴 웃음이 나왔다.


 아마 내 신경을 치료하려면 최소한 전설의 영약이라는 엘릭서 계통의 포션이나, 최고위 주교급 신체 복원 기도를 받아야 할 거다.

 어느 쪽이든 200레벨은 넘어가야 가능성이 생긴다.


 “몇 년이나 걸리려나···.”


 “응? 몇 년? 그런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는데, 엘레이나가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여왔다.


 “엘레이나 씨. 신체 복원계 마법도 잘 아시나요?”


 “아니, 그쪽은 잘 몰라.”


 그렇겠지.

 척 보기에도 그녀는 전형적인 연구 마법사다.

 그것도 원소 계열의 탐구를 진행하며, 마법을 과학화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마법사.

 치료에 일가견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내가 먼저 치료를 부탁했을 거다.


 “근데 신경은 말이 다르지. 말했잖아, 마력 네트워크는 신경계를 그릇으로 만드는 거라고. 당연히 그 분야는 잘 알 수 밖에.”


 ···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의외의 말을 꺼내 왔다.


 “잠시만요, 그러면 혹시 제 신경을 치료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던지는 말투.

 그러나 그건 지금 내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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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4 4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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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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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3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89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3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09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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