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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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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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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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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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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귀환 (1)

DUMMY

 불그스름한 하늘, 그리고 마치 거울처럼 보이는 얕은 수면이 지평선 끝까지 넓게 펼쳐진 공간.

 그곳에서 어떤 두 형체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쐐애액! 콰앙!


 영롱한 붉은 투기가 담긴 주먹이 휘둘러지자, 공기가 찢겨나가며 일어난 소닉붐이 천지를 뒤흔든다.

 어림잡아도 5m에 달할 것 같은 인외경지의 체격, 황금과 진홍빛 금속을 베이스로 한 휘황찬란한 갑옷.

 피같이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며 그 형체를 감싸고 있다.


 마치 전설 속 치우천왕이라도 강림한 것만 같은 강렬한 위압감.


거대한 주먹이 연이어 공간을 가른다.

 그 주먹 끝에 서 있는 사내는 날카로운 듯한 인상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체구였다.


 다윗과 골리앗, 그 이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차이 나는 크기.

 심지어 작은 사내는 우스꽝스러운 양 뿔이 달린 헬멧과 거적때기 같은 속옷 말곤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맨몸이었다.


 -이게 원래는 최소 6명은 있어야 파훼할 수 있게 설계된 패턴이라 어려워요.

 -지금 구슬 써주시고.


 쐐애액! 슉!


 -이어서 지금. 공격은 계속 피해주시고.


 사내의 손에서 몇 개의 푸른 구슬이 흩어지더니 거구 사내의 갑옷 사이사이로 박혀 들어갔다.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전히 이어지는 공격을 물 흐르듯 피하는 남자.

 단 한대만 허용해도 치명상을 입을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느껴짐에도 사내는 웃고 있었다.


 -파생 동작이네요. 왼쪽 발끝만 잘 보기. 좌측으로 한번, 깊게 한 번 더, 우측 한번.


 쩌저적!


 사나운 발구르기가 땅을 가르고, 동시에 그 균열에서 뛰쳐나온 붉은 투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쇄도해 들어왔다.

 그는 곧 왼쪽으로 허리를 꺾으며 투기를 회피하고는 몸을 낮춘 채 왼쪽으로 쏘아지듯 튕겨 나갔다.


 그가 있던 자리에 마치 화살비가 내려꽂히듯 붉은 투기의 거미줄이 사납게 박혀 들어왔지만, 단 하나도 그의 몸에는 닿지 않았다.

 사내의 동작을 예측하듯 좌측으로 펼쳐지는 투기의 파도를,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다시 우측으로 몸을 돌려 피해냈다.


 -패턴 파훼는 결국 기본 대시 하나면 충분하다는 얘깁니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툭툭 털어내는 사내.

 그가 짓고 있는 미소는 호승심이나 자신감의 발현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듯한, 보는 이를 편하게 하기 위한 긴장감 없는 미소.

 바로 ‘영업용 미소’였다.


 -자, 이제 오른팔이 올라가는 거 놓치지 마시고.


 재빠른 공격만 이어지던 전투 속에서 이례적으로 적의 오른팔이 느릿하게 올라가는 것을 사내는 놓치지 않았다.

 팔이 채 다 내려가기도 전에 들고 있던 단봉의 손잡이 부분으로 상대의 손목을 정확히 타격하는 모습.


 쾅!


 붉고 노란 불꽃이 튀며 주먹의 궤적이 크게 휘어지고, 곧 공격은 자신의 갑주를 강타하고 말았다.


 쩍.

 쩌적.


 -이렇게 하시면 16인 이상 권장 레이드도.


 파스스.


 -간단하게 마지막 패턴까지 진입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진홍빛 갑주가 유리 조각처럼 바스라졌다.

 지금껏 단 한대의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했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았던 적의 표정.

 그 얼굴이 마치 악귀처럼 변하는 순간.


 “정지.”


 나는 영상을 정지하곤 다시 처음으로 돌려 1배속으로 재생했다.

 방금까지는 일반인들도 볼 수 있도록 슬로우 모션을 걸어뒀지만, 이제는 눈으로 좇아가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빨라진 움직임.

 조금 전까지 달고있던 자막들도 함께 휙휙 지나간다.


 내가 움직이는 모습은 그나마 좀 보이긴 하는데, 저 보스 녀석의 움직임은 영상인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능력치 보정이 있긴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사람은 전세계에도 몇 명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음, 표정이 좀 부자연스럽나.’


 너무 뻣뻣한가 싶은 마음에 몇번 영상을 체크해보지만, 이미 촬영이 끝난지라 어쩔 수 없었다.

 제일 중요한 전투 만큼은 맛깔나게 찍혔으니 상관없지않나 싶다.


 [ 지금까지 편집한 내용을 저장할까요? ]


 “응. 어차피 이 뒤는 평소랑 같은 부분이니까.”


 [ 저장 완료. 채널 업로드 완료되었습니다. ]


 ‘빠르구먼. 빨라.’


 몇 년째 이 작업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렇게 빠른 처리 속도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다.

 확실히 보는 맛은 만족스러운 게임이라 그런지 곧바로 댓글 알람이 날아온다.


 └오늘도 잘 먹고갑니다

 └아퀼루스 대장군 얼마만이냐 걍 요리를 하네

 └이거 얼마나 느리게 찍은거임? 배경에 느리게 떨어지는게 이제 보니까 비 오는거였네 ㅁㅊ ㅋㅋㅋㅋ

 └태그에 온라인 있는거 실화임? AI 보조 안걸려서 민첩올려도 반속 한계 있지않음?

 └ㅇㅇ 걍 이사람 재능임 나도 첨엔 편집빨인줄


 참으로 고마운 시청자들이었다.

 이미 망해버린 지 오래인 이 게임의 영상을, 저 분들을 비롯해 꽤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방금까지 보였던 화면은 온라인 게임 ‘레닉수스’의 세계에서 내가 플레이한 기록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동시 접속자가 이젠 두 자릿수밖에 안 되는 게임을 온라인 게임이라고 불러도 될 진 모르겠지만, 뭐 각설하고.


 끝을 모를 정도로 방대한 세계관과 다양한 전투 방식.

 전 세계에서 동시접속 가능한 서버.

 스스로 생각하는 AI와 자율적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섬들로 이루어진 사회.


 게이머들에겐 그야말로 솔깃할 만한 캐치프레이즈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적어도 이 공간, 이 시대에서는 말이다.


 ‘흔해빠진 게임일 뿐이지. 그것도 단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성공할 리가.’


 오히려 그래서 이런 컨셉 플레이 영상들이 인기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는 게임의 레이드 보스를 온갖 장비를 뺀 채 수백 가지 컨셉으로 손쉽게 요리 하는 사람이 있다니 말이다.


 작업하느라 굽은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자담배를 입에 꼬나물곤 발코니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내리쬐는 햇살, 상쾌한 해변에 하하호호하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부서지는 파도와 적당하게 맡아지는 바다 내음까지.


 놀랍게도 이건 전부 가상으로 만들어진 홀로그램이었다.


 “스읍- 후우···.”


 원래부터 이곳에 살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던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천애 고아로 태어나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검정고시를 남들보다 1년 빨리 통과하고 대학보다는 사회로 곧바로 진출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독립을 준비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눈을 떴다.


 축축하고 어둑어둑한 네온사인과 콘크리트로 가득 찬 향락으로 가려진 지옥 같은 도시.

 처음에는 어디 납치라도 됐나 생각했으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더 황당했다.

 이곳은 내가 살던 시대에서 최소한 몇 세기는 더 지난 것 같은 미래 세계였으니까.

 이름만 한국이지, 역사마저 내가 알던 것과는 아주 딴판의 세계였다.


 ‘이젠 다 케케묵은 기억이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했고,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당당히 집까지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7급 시민이었다.


 “알티, 집 정보.”


 [ 남부 섹터, 스모그 스트리트, 21번 빌딩 지하 38층 8044호 ]

 [ 소유주 : 성도혁 ]


 “크으.”


 길거리 난민 출신에 이 시대의 의무교육조차 이수한 적 없는 내가 임대도 아닌 자가 집 한 채를 마련하는 데 걸린 것은 고작 11년이었다.

 물론 의식주의 전반적인 가치가 모두 원래 있던 세상과는 확연히 차이 나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기쁜 것은 매한가지였다.


 [ 어떤 용무가 있으십니까? ]


 “용무는 무슨. 그냥 좋아서 그러지.”


 [ 도혁 님이 기쁘시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 


 “또,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한다.”


 [ 하지만 진작에 다른 게임을 하셨··· ]


 “어허, 쉿.”


 말을 끊고 귀 뒤쪽에 부착된 작은 칩을 괜스레 만져본다.


 이 녀석의 이름은 알티.

 처음 일하던 고철 처리장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퍼스널 AI 칩이자, 불행 덩어리였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떨어진 복권과도 같은 녀석이다.

 집과 가구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이곳에서 번 돈을 모두 합쳐도 평범하게 퍼스널 AI를 장만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복덩이 녀석.”


 이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된 육체노동 일거리에서 벗어나 지금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영상을 네트워크에 업로드하는, 소위 우리 시대의 ‘너튜버’ 같은 일이다.

 퍼스널 AI가 있다면 게임 접속은 물론 영상 편집과 업로드까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이게 원래 하던 일보다 돈을 더 많이 벌 것이라는 기대감에 간 것은 아니고, 그냥 심적으로 좀 많이 지쳐있던 상황에 그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깊게 파고들게 된 것이 바로 ‘레닉수스’였다.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하늘섬들을 계속해서 올라가는 컨셉의 온라인 가상현실 게임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테스트해 볼 겸 처음 해본 게임이었는데, 접을 수가 없게 돼버렸지.’


 유저는 많이 떠났어도 과거에 세워진 랭킹 기록들은 남아있었는데, 그 기록들이 곧 나의 경쟁자나 마찬가지였다.

 의미 없는 낮은 레벨 대의 기록들을 제외하고, 모든 전투 랭킹의 최상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다수의 파티를 짜서 도전하는 레이드까지 포함해서, 모두.


 내가 가진 재능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한다.

 알티 말로는 가상현실 적응력, 동체 시력, 반응 속도, 거기에 어느 정도 보정은 있었겠지만, 전투 센스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고.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


 물고 있던 전자담배를 실수로 떨어뜨린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하반신을 회전시키며 오른발을 날카롭게 들어올렸다.


 툭.


환회(還回)의 묘리를 담은 발차기가, 마치 오랜 훈련을 통해 각인된 동작처럼 뻗어진다.


떨어지던 전자담배는 마치 동영상을 역재생 한 것 마냥,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거꾸로 올라오며 내 입으로 돌아왔다.


 [ 게임의 스킬 동작을 현실에서 응용하는 사람은 도혁님 밖에 없을겁니다. ]

 [ 그걸 담배 줍는데 쓰는 사람도 말입니다. ]


 [ 이번에도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


 └와, 스킬이 없는데 그냥 몸으로 재현해버리네

 └마법사 부캐라면서 지팡이 들고 유성천격검 ㅇㅈㄹ ㅋㅋㅋㅋ

 └보정 없이 저런게 됨? 이거 진짜 온라인겜 맞음?

 └이 사람은 이 재능으로 왜 이딴겜만 함?

 └나였으면 바로 프로 지망했다 이정도면 국가대표도 껌인데


 “알았어. 어차피 곧 옮겨야하는거 알잖아.”


 슬그머니 댓글창을 닫는 알티.

 지금 이러는 것처럼, 녀석은 몇 번씩이나 ‘제발 다른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며 간청하곤 했다.


 이 재능을 다른 곳에 써먹어야 더 돈이 된다며.

 ‘디지털 글래디에이터’니 뭐니, 그쪽으로 가면 사회 최상류층을 넘어 그 꼭대기까지도 넘볼 수 있는 재능이라고까지 했다.


 솔직히 욕심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 게임을 쉽게 버리기 힘들었다.


 그렇게 언젠가 해보기로 해놓고 여전히 손대지 않은 채였는데.

 이제는 반 강제적으로 다른 장르에 손을 뻗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알티, 이제 서비스 종료까지 얼마나 남았지?”


 [ 레닉수스의 서비스 종료는 표준시 기준 앞으로 14일 후 04시입니다. ]


 레닉수스의 수명은 앞으로 2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채 100명도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지금 지구 외에도 뭐 식민 행성이니 차원을 넘어가니 시대였기에, 인구가 내가 살던 때보다 수십 배는 훌쩍 뛰어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100명 미만.


 뭐라 변명할 길도 없는 망해가는 작품, 망작 그 자체라는 이야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쾌락이 범람하는 시대였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AI 기술은 개개인의 취향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게임을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낸다.

 정말로 인간과 차이를 느낄 수 없는 NPC들이 널려있으니, 굳이 진짜 사람과 소통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온라인게임은 매니아층의 전유물이었다.


 안내에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만 해도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게 설계된 싱글 플레이 게임이 넘쳐나는데, 굳이 남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즐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소수라고 해도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정말 넘쳐날 만큼 많으니 그걸로도 운영하기엔 충분했을 거다.


 ‘문제는 이게 최신작도 아니라는 거지.’


 레닉수스는 출시한 지 이미 20년이 넘어가는 장수 온라인 게임이었다.

 나름 초창기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고는 하는데, 내가 시작하던 때에는 이미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다른 게임을 찾으러 떠난 상황이었다.

 내가 플레이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업데이트는 계속되었지만, 이미 개발자들의 손을 떠나 AI가 정해진 명령대로 자율 생성하고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심지어 반년 전 서비스 종료 공지가 뜬 이후에는 충격적인 업데이트가 계속되었다.


 그 많던 섬들이 하나둘 천재지변으로 몰락하기 시작하고, 설정상 모든 유저들의 고향이라는 세상조차 깡그리 멸망하기 시작한 것.

 처음부터 언젠가 멸망이 예정된 다크 판타지 세계라는 설정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눈앞에서 세계가 망해버리는 걸 보여주고 있으니 신규 유저가 들어올 턱이 없었다.


 [ 추천 게임 목록 정리본 v31을 띄워드릴까요? 드디어···. ]


 “아직 괜찮아.”


 [ ···예. ]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다른 비슷한 게임 목록은 찾아두었다.

 영상미가 있고, 또 인기도 많은 놈들로.


 하지만 여전히 나는 레닉수스에 발걸음을 옮긴다.


 현실 시간으로 레닉수스를 플레이한 건 6년 정도지만, 브레인 시프트라고 부르는 뇌 동기화 기술 덕분에 실제 플레이 시간은 그 배 이상이었다.

 가상현실 중독 어쩌고 법 때문에 정확한 플레이타임을 알 순 없었지만, 1만 시간의 법칙 따윈 훌쩍 뛰어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영상을 촬영하는 게 전부였다면 한 게임에만 이리 모든 걸 쏟아붓진 않았을 것이다.


 그 세계는, 매력적이다.

 수많은 컨셉의 하늘섬도 그 매력의 원인이긴 했지만, 핵심은 바로 그곳을 살아가는 NPC들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들이 가진 의식 수준은 정말로 높았다.

 지능이 높은 NPC 중에선 스스로 AI라는 것을 깨우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을 정도였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레 많은 인연을 얻었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게임의 AI도 같은 수준이라고 듣긴 했지만, 마치 정든 고향 친구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계속해서 이 세상에 남아있던 것이다.


 [ 가상공간 몰입 안전 규제법에 의한 중독 방지 알림을 강제 종료했습니다. ]


 “성능 확실하네.”


 가상현실 중독자들이 할법한 생각을 하면 뜬다는 알림을 알티가 꺼버리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중독자는 무슨. 그냥 ‘조금’ 몰입했을 뿐인 일반인이라니까.

 슬슬 다시 게임에 접속하려 전자담배를 챙겨 넣던 그때.


 쿠궁···.


 진동과 함께 창밖 풍경에 노이즈가 잠깐 끼었다가 사라졌다.


 “밖에 무슨 일 있어?”


 [ 알려진 공지는 없습니다. 진동 방향은 북북동으로 약 42km 지점입니다. ]


 “또 뭐 차원 어쩌고 실험 하나 보네.”


 우리 도시 인근 연구 섹터에서 무슨 간섭 현상 실험을 하느니 어쩌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크게 관심도 없는 일이라 몸을 돌리곤 회복 캡슐에 몸을 눕혔다.


 ‘영화나 소설 같은 데선 꼭 저런 실험 이후에 재난이 발생하곤 하던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자, 이내 알피의 알림창이 가상 시야에 주르륵 뜨기 시작했다.


 접속하면 해야 할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멸망의 여파 속에 남아있는 NPC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 다음엔 다시 새로운 서브 캐릭터를 생성해 컨셉을 맞춰봐야 했다.


 최대 가속 시간까지 감안하면, 만들 수 있는 영상은 30개 정도인가.


 ‘점핑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게 참 다행이야.’


 점핑 캐릭터는 굳이 귀찮은 성장 과정을 건너뛰고 처음부터 고레벨 콘텐츠를 즐기게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지만, 반년 전부턴 점핑 없인 정상적인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했다.

 멸망중인 세상 속에서 초보자 구역 자체가 이미 소멸한 지 오래였으니까.


 팔릴만한 영상을 뽑기 위해서는 랭킹을 갱신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고, 당연히 점핑 캐릭터를 만들어 즐겨보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었다.

 세상이 하도 넓으니 굳이 저렙 구간의 섬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콘텐츠는 많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로딩이 완료되었는지, 의식이 점차 흐려지며 어디론가 당겨지는 듯한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감각.


 곧이어 검게 물든 세상 속에서 천천히 선이 그려지고 그것이 모여 배경을 이룰 것이다.


 ···이어야 할 텐데.


 ‘···알티?’


 쿠궁···


 알티의 대답 대신 들려오는 것은 불길한 진동뿐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물밀듯 몰려온 순간.


 쿠궁···!

 화악!


 새하얀 빛이 나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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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경계를 넘는 자 (4) +1 24.09.10 1,030 40 18쪽
23 경계를 넘는 자 (3) 24.09.09 1,044 36 20쪽
22 경계를 넘는 자 (2) 24.09.08 1,149 42 19쪽
21 경계를 넘는 자 (1) +1 24.09.07 1,222 4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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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2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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