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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님의 서재입니다.

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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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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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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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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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DUMMY




 인간 총알처럼 쏘아진 몸은 그 기세를 잃지 않고 한참이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처음엔 그 속도감과 압력에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 하지 않나.

 어느새 나는 그 속도에 적응했고, 눈동자를 굴려 가며 드문드문 나타나 저 멀리 시야 아래로 사라지는 섬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하늘섬은 정말 많이 존재하고 그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울릉도 정도 크기의 하늘섬이 있는가 하면,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자리한 거대한 크기의 섬까지도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자, 어느새 머리 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올려 위를 쳐다보니, 거대한 섬 하나가 머리 위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충돌을 대비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본래 모든 섬의 결계는 정해지지 않은 출입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리기에, 이런 식으로 허공을 홀로 날아가 섬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버그는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 나를 침입자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버그가 정상적이라는 말도 좀 웃기긴 하네.’


 만약 튕겨 나가더라도 대비책은 있다.

 숲의 안내자가 주는 초기 지급품 중에는 일회용이지만, 회귀 결계에 닿은 것처럼 숲의 시작점으로 돌려보내 주는 아이템이 있었으니까.


 웅!


 그렇게 섬에 가까워지는 순간, 몸이 결계의 위쪽으로 이동했다.

 다행히도 별다른 문제 없이 섬의 결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곧이어 천천히 아래쪽을 향해 몸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지고, 발 아래에는 신예의 둥지가 아닌 다른 하늘섬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쪽에는 거대한 화산과 말라붙은 듯한 용암이, 그리고 반대편에는 푸른색의 숲으로 이루어져 그 중앙을 거대하고 구불구불한 강줄기가 양분(兩分)하고 있는 듯한 모습.

 푸른색의 숲은 흔히 생각하는 초록색의 푸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파랗게 물든 특이한 분위기의 숲이었으며 용암지대 한가운데 솟은 화산에는 거대한 유적이 보였다.

 바닥부터 시작하여 비스듬하게 산을 타듯이 건설된 유적은 산의 1/4가량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 비행은 어떠셨습니까? ]


 “끔찍했어. 아직도 멀미가 나네.”


 [ 만일 착륙 이후에도 증세가 계속되신다면, 땅콩버터와 젤리 샌드위치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얘 또 이상한데 꽂혔네.

 예전부터 혼자 네트워크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상한 농담에 꽂히는 일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말없이 하늘섬의 풍경을 감상했다. 


 ‘이 섬의 이름만큼은 잊을 수가 없지.’


 적정 레벨 103레벨의 섬.

 아마 전 세계의 개척자 그 누구도 도달한 적 없는 레벨의 섬.

 당시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지금은 계획이 반쯤 성공했다는 성취감에 꽤 희열이 느껴졌다.


 이 섬의 이름은 발칸델.

 하지만 그 이름보다는 유저들이 부르는 다른 이름이 더 유명했다.

 여긴 바로 ‘버스의 섬’ 혹은 ‘쩔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으니까.



**



 천천히 내가 낙하한 곳은, 거대한 섬에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의 근처였다.

 다만 내 기억과는 좀 달랐던 게, 눈앞에 보이는 도시는 차라리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작고 평범한 공간이었다.

 나름 목책도 세워져 있고, 계급 체계도 있는지 왕이 살고 있을 법한 성도 보이긴 했지만, 외곽은 죄다 농부나 나무꾼, 사냥꾼이 지낼만한 허름한 건물뿐이었다.


 “이렇게 초라한 공간이었나?”


 [ 발칸델은 본래 특산물도 존재하지 않고, 몬스터들의 파밍 효율도 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

 [ 지금은 개척자의 발조차 닿지 않았을 테니 이상해할 것은 없습니다. ]


 “하긴 뭐, 그때 그 모습이 특이한 걸 테니까.”


 나는 마을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목책의 외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거래할 수 있는 공용통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굳이 들를 필요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돌다가 마을 내부까지 이어지는 작은 강이 보였다.

 수통에서 물을 보충하고, 강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이렇게 작은 마을이었다니.”


 내 기억 속의 이 도시는 그야말로 유저들이 바글바글한 대도시에 가까웠다.


 초창기 레닉수스에는 점핑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서브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서버에서 ‘슈퍼 점프’ 버그가 발견되었다.

 내가 조금 전 이용한 그 버그 말이다.


 삽시간에 서버 내로 퍼진 버그는 모두가 유용하게 사용했고, 아예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발칸델 섬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버그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유저는 메인 캐릭터를 놔둔 채, 새로 캐릭터를 만든 경우였다.

 레벨만 낮을 뿐이지, 재력은 이미 빵빵한 1레벨 유저들이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곧바로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의 레벨을 올려주는 행위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버스’나 ‘쩔’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


 편하게 일을 돕기 위해 각 길드가 이 섬에 지부를 건설하며 진출했고, 덩달아 이 섬의 발전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 뒤로는 뭐, 도시가 커지고, 모인 사람들이 용암지대 위에 휴양지를 건설하고, 거래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쩔이 아니어도 그냥 이 섬에 들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 섬은 발전했다.


 ‘점핑 시스템이 생긴 것도 이 사건 때문이었다고 들었어.’


 본래 점핑 시스템 같은 걸 만들 생각도 없었던 운영진이, 슈퍼 점프를 발견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정말 개발에만 신경 쓴 것인지, 아니면 버그가 절대 없을 거라 자신해서였는지, 내부 사정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발견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서버를 과거로 돌려서 해결하는 건 이미 불가능했다.

 한국 서버에만 고레벨 캐릭터가 많아 서버 간 균형이 깨졌고, 그걸 막기 위해 도입하게 된 것이 바로 점핑 시스템.

 내가 레닉수스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훨씬 지나서였지만, 하도 유명한 사건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옛날 생각을 하며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산길 뒤쪽 파란 나뭇잎들 사이로 천천히 내가 목표로 하던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쏴아아-


 얼추 10m쯤 될까 한 높이지만, 한 번에 뚝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몇 번에 걸쳐 나눠지는 느낌의 폭포였다.

 곧바로 나는 몸을 움직여 폭포 옆 절벽을 기어올랐다.


 “여기도, 읏차. 지금은 자연 그 자체네.”


 [ 지상에서 6m 지점에 마력 잔재가 느껴집니다. ]


 알티가 말하는 곳까지 벽을 타고 올라간 나는, 망설임 없이 폭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분명 돌로 가려진 벽면임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쑥하고 내부로 들어갔고, 곧바로 나머지 부분까지 전부 안을 향해 집어넣었다.


 그러자 음각으로 파인 기묘한 문양으로 뒤덮인 벽, 그리고 평탄하게 정비된 길이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근처의 문양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났는데, 덕분에 멀리까진 안 보여도 충분히 걸어 다닐 만한 시야는 확보가 되었다.


 “됐다.”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발칸델 섬에 존재하는 십수 가지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던전의 비상 탈출구.

 본래라면 수많은 몬스터를 물리치고, 각 던전의 컨셉에 맞는 고난을 극복해야만 보스가 존재하는 방으로 향할 수 있지만, 가끔 이렇게 숨겨진 비상 탈출구가 존재하는 곳도 있었다.


 거꾸로 바깥에서 이 길을 찾는다면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안을 향해 걸어갔다.



**



 내려가는 길은 매우 조용했고, 또 스산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당장이라도 함정이나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이곳부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향한다면, 몬스터 하나 마주치지 않고 끝에 도달할 수 있다.


 ‘헷갈릴 일 없는 길이라 다행이네.’


 지금 이 상태로 100레벨이 넘는 몬스터를 만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옛날의 나는 모든 장비를 해제하고, 디버프를 주는 약물까지 먹어가며 공략 영상을 촬영하는게 일상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스탯이 뒷받침을 해주는 점핑 캐릭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신 차려라, 도혁아.'


 속으로 내심 ‘스릴 있겠다’라는 미친 생각이 솟아오르는 것을 억지로 휘휘 흩트려놓으며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싸우려고 해도 일단 동작이 보이고, 상대의 공격을 흘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시도해 보는 것 아니겠는가.

 20~30레벨 정도의 차이는 어떻게든 극복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몸으로 이 섬의 생명체를 건드리는 것은 아무리 온갖 랭킹을 갈아치운 나라고 해도 해선 안될 일이었다.


 이 섬에 존재하는 몬스터라면, 숲에 있는 벌레 한 마리조차 지금의 내가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온 힘을 다해 무기를 내리쳐도 흠집 하나 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몬스터 하나도 잡을 가능성이 없고, 옛날과 다르게 버스를 태워줄 플레이어 같은 것도 없는 상황인데도 왜 이 섬을 찾아왔는가.


 그건 바로 이 길 끝에 있을 유물, '섬의 정수'를 얻기 위해서였다.


 “슬슬 도착할 것 같은데.”


 [ 약 5분 정도 남았습니다. ]

 [ 과거 대화 기록 사이의 시간 흐름으로 거리를 유추했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


 “5분이면 오차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가볍게 피식하고는, 눈앞의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가뿐히 넘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늘섬을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 약간씩 열리게 되는데, 101레벨에는 그야말로 게임의 확장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콘텐츠가 새로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집 시스템’이었는데, ‘섬의 정수’는 바로 그 시스템의 핵심 수집 품목 중 하나였다.

때문에 이 기능을 열고난 뒤 부터는, 섬의 정수를 얻는 것이 하늘섬 탐사의 기본이 된다.


 ‘기능을 미리 열었을 때 얻게 되는 이익. 특히 수집 시스템은 그 보너스가 어마어마하다.’


 단순히 '수집이 됐으니 뿌듯하다'에서 끝났다면 당연히 버그까지 써가며 이곳에 올 이유는 없다.


 수집품은 플레이어에게 여러 추가 보너스를 제공한다.

 후발주자로 출발하는 이상, 미리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얻으면서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이미 이 세상이 지구와 연결된 지도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물론 내가 겪었던 레닉수스의 역사와는 차이가 크긴 하다.

 4년이나 지났는데 레벨 100을 넘긴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게 당연하긴 하지. 플레이어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도전이 가능하니까.’


 따가닥···


 코인을 끝없이 쌓아두고 도전하는 것과, 한번 죽으면 끝인 세상이 서로 진도가 같다면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나.


 따가닥.


 “!”


 순간적으로 들려온, 가볍고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

 아주 작은 소리라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두 번이나 이유 없이 소리가 날 리 없다.


 분명히 무언가 있었다.


 ‘알티, 뭔가 있나?’


 [ 청각 이외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


 ‘라이트. 아주 짧게. 천분의 일초로.’


 [ 동기화 완료. 발현. ]


 팟.


 숙련된 고레벨 마법사라도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짧은 순간의 마법 발현.


 무언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지하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이지만, 찰나의 시간 내 시야 한켠에 무언가 사람같은 형체가 보였다.


 그리고 알티는, 내 감각을 다시 돌려볼 수 있었다.


 [ 촬영 화면 출력합니다. ]


 눈앞에 창이 떠 오르고, 찰나의 시간동안 내 눈이 관측한 장면이 확대된 채 펼쳐졌다.


 오싹!


 ‘이런, 씨.’


 텅 빈 눈, 뻥 뚫린 코.


 좀비인지 해골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몸은 투박한 갑옷으로 뒤덮여있고, 온몸의 부패한 살결은 뼈와 갑옷 달라붙은 채 흐느적대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창대를 붙잡고 있는 그 손은 무덤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생기가 없었는데, 창날만큼은 위협적으로 번뜩이는 상태였다.

 왼쪽 허리춤에는 단검이 붙어있었고, 녹색 빛의 스산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저 눈동자 없이 비어있는 눈구멍이 분명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는 점.


 나는 주저 없이 가방에서 넓적하며 가운데 문양이 파인 주먹만 한 돌 하나를 꺼냈다.

 ‘숲의 안내자’가 주는 유용한 도구 중 하나인 귀환의 돌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노력을 들였든, 그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귀환!”


 그러자 돌이 번쩍···이는 일은 없었다.

 주문이 틀릴 일은 없었고, 남은 가능성은 한가지.


 [ 전투 상태 돌입을 확인. ]


 튜토리얼에서 나눠주는 귀환의 돌은 전투 중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있었다.

아주 잠깐 내가 보였을 뿐인데, 이미 전투 상태에 돌입되어 있었던 것.

아니, 보이기 전부터 이미 전투 상태 였을지도.


 그와 동시에, 녀석의 발밑에 있던 유적 벽의 문양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전투 시작’이라며 유적이 알려주는 듯한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주저 없이 몸을 돌리고 왔던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스펙터 솔져가 왜 여기 있는데!”


 [ 기록에 따르면, 이 길은 몬스터 소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간이 맞습니다. ]


 기억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대충 짐작 가는 점은 있다.


 이 섬에 들어온 개척자는 내가 처음이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도 아무도 들어온 적 없었을거다.

 몬스터들은 보통 소환 위치 주변에서만 배회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우연히 길을 벗어난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필, 다 도착해갈 때쯤에 그런 몬스터를 마주치다니.


 -까가각!


 좀비인지 스켈레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저 형태는 틀림없이 스펙터 솔져였다.

 보통 섬의 이름이 고유명사처럼 달라붙는 경우도 많으니, 아마 ‘발칸델리안 스펙터 솔져’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겠지.


 휙.


 달리는 와중에도 미세하게 들리는 투척음.

 본능적으로 달리던 방향을 살짝 비틀었고.


 슈욱!


 동시에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방향으로 창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스펙터 솔져 시리즈는 레벨이 높은 지역에도 가끔 등장하곤 하는 몬스터, 그중에서도 흔히 잡몹이라고 부르는 잔챙이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큭!”


 몸을 비틀어 투창을 피해낸다.


 패턴이 이래저래 바뀌긴 해도, 잡몹은 잡몹.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것으로 한 번 정도는 창을 피해낼 수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콰광!


 녀석이 노리던 것은 애초부터 내가 아니었다.


 “···염병.”


 그렇게 나는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창이 목표로 하던 곳은 바로, 쉽게 무너질 것 같아 점프해서 지나쳤던 바로 그 다리였으니까.


 그래, 기본적으로 레닉수스는 기본적으로 하드코어 액션물을 지향하던 게임이다.

 100레벨을 넘겼으니, 잔챙이 몬스터조차도 퇴로 차단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당연한 구간.


 어느새 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하, 나.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몇 번이나 되새기며 속을 진정시켰다.


 몬스터가 하나도 없어야 할 길에 뜬금없이 길잃은 스펙터 솔져가 하나 있지 않나, 딱 발견하자마자 전투상태에 들어가는 바람에 귀환의 돌도 먹통이 되지 않나.

 거기에 하필이면 딱 무너질만한 다리 앞에서 녀석을 마주치지 않나.


 죽어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모를까, 이 모든 것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아닌가.


 두 번은 없다.

 실패는 죽음으로 직결된다.


 흘긋.


 무너져 내리는 다리를 보며 아주 잠깐 생각을 한 뒤, 곧바로 몸을 돌렸다.

 저 멀리, 다리를 무너뜨리자마자 다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스펙터 솔져가 보였다.


 “알티, 너 내 신체 보조도 가능하다고 했지.”


 [ 현재 라이트 이외의 마법은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

 [ 마력 제어를 제외하고, 신경과 근육에 간섭하는 것은 영구적 신체 손상을 불러일으킬··· ]


 ‘보조’라고 언급했지만,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알티는 곧바로 경고를 전해왔다.

 나는 그 말을 끊었다.


 “가능하단거지.”


 [ ···그렇습니다. ]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영구적인 신체 손상이니 뭐니.

 일단 살아남아야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옆으로 내팽개쳤다.

 내 손에는 삽으로 개조했던, 튜토리얼용 싸구려 몽둥이 하나가 손에 들려있을 뿐이었다.


 짧게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또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서 꽉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았다.

 곧 그 입꼬리는 아주 천천히, 호선을 그리듯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진짜 미쳤네, 미쳤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지금 이 불행이 겹친 듯한 상황 자체에 대한 한탄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에게 거는 말이었다.


 씨익.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난다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래선 안 되지 않은가.


 “그럼 해. 할 수 있는 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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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경계를 넘는 자 (4) +1 24.09.10 1,030 4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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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8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5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1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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